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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 잔치집에 손님이 없으면... (눅 1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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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집에 손님이 없으면... (눅 14:15-24)

대부분 교회마다 매년 한 두 차례 믿지 않는 이웃들을 초청하여 복음을 전하는 전도 집회를 엽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는 교회에서 “이웃사랑 초청 잔치”를 하게 되었는데 남편을 전도를 위해 오랜 세월 기도했던 한 여집사님께서 남편에게 이번 한 번만 같이 가자고 간청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남편이 한 가지 약속만 해 주면 간다고 했답니다. 무슨 약속이든 해 주겠다고 다짐했답니다. 그러자 남편이 하는 말이 “교회에 가서 무엇을 하던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만 하면 따라 가겠다고 했답니다. 드디어 남편이 나왔고 예배가 시작되었답니다. 찬양을 하고 대표기도를 하고 성가대가 찬송을 드릴 때까지는 차분히 예배를 잘 드렸답니다. 

그런데 성경 봉독이 끝나고 목사님이 설교가 시작되자 눈을 감기 시작하였답니다. 아내는 교회에 가서 어떤 일을 하여도 간섭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하나님 코고는 소리만 나지 않게 하소서"라고 속으로 기도하였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코고는 소리가 들렸답니다. 아내가 참다못하여 옆구리를 꾹 찌르니까 "아 왜 그래, 간섭 안기로 해놓고"라고 말하며 또 다시 자기 시작했답니다. 

조금 있으니 또 코고는 소리가 들렸답니다. 목사님은 보다 못하여 옆에 앉은 집사님의 아들에게 아버지를 깨우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여섯 살짜리 아들이 하는 말이 "싫어요. 목사님이 재우셨으니 목사님이 깨우세요."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잔치집 음식은 맛(재미), 영양(내용), 입맛(개성) 삼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맛없는 음식을 차려놓으니까 조는 것이지요. 우리 교회도 6월 23일부터 25일까지 “이웃 사랑 초청 잔치”를 하려고 합니다. 이번 기회에 교회 와서 주무실 지라도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랑하는 이웃들을 초청하여 천국 잔치에 참여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랑하는 이웃들을 어떻게 초청해야 하겠습니까?

1. 우리는 전도의 적극성을 가지고 천국 잔치에 강권하여 초청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은 천국을 왕되신 하나님이 베푸신 잔치로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큰 잔치를 베풀어 놓았는데 오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자 주인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라고 말씀합니다. 강권하다는 말은 “아낭카조”의 번역입니다. 강요나 억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충분히 설득하여 자발적으로 오게 하는 것입니다. 

강권은 정성을 다하여 상대방의 인격 앞에 지정의로 호소하는 것이지만 강요는 억지로 끌어다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싫다는 사람들 억지로 멱살 붙잡고, 손을 비틀고, 띠로 묵어 오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문밖에 두드리고 계시지 강제로 문을 열고 멱살 잡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간절히 호소해서 상대방의 결정으로 모셔오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한 영혼을 사랑하는 전도의 적극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전도를 못합니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너무 소극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 전하다가 안 되면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에 같이 간다고 약속해 놓고 막상 주일 아침 전화를 하거나 방문을 하면 "배가 아프다"고 말을 합니다.
"시부모님이 올라오실 것 같아서요" 
"결혼식장에 가야하기 때문에요." 
"시댁에 가야하기 때문에요" 
"출근을 해야 되기 때문에요....." 

그러면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면 전도를 잘 하지 못합니다. 

오늘 성경에 보십시오. 주인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청하여 놓았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잔치는 천국 잔치입니다. 죽음도, 눈물도, 죄도, 아픔도 없는 천국 잔치에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천국과 같은 곳입니다. 잔치하는 곳입니다. 잔치가 준비된 곳입니다. 슬픈 자가 와서 기쁨으로 회복되고, 소망없는 자가 소망을 찾고, 가난한 자가 부해지고, 심령에 질병 걸린 자가 치유되는 곳입니다. 웃음과 평강이 넘치는 곳입니다. 위로가 평안이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런데 이 좋은 잔치에 초청받고 오지 않는 것입니다. 왜 이 좋은 잔치에 오지 않습니까? 

18절을 보십시오. 나는 밭을 샀으니 아무래도 그 밭으로 나가 보아야 하겠다고 거절합니다. 물질 때문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소 다섯 겨리면 10마리입니다. 소를 시험하겠다는 것입니다. 일 때문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장가들었으니 가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인간관계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 핑계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17절에 “청하였던 자들”이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유대인의 관습에 의하면 처음 청하고 허락 받고 다음 청합니다. 그러니 처음 허락하고 안간 것입니다. 유대인 관습은 큰 잔치에 초청할 때 먼저 1차 초청에 허락한 사람을 2차 초청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다 1차 초청에는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2차 초청에는 거절하였습니다. 비즈니스 때문에, 여러 활동 때문에, 가정환경 때문에 교회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결국 가치 순위의 문제입니다. 왕의 초청 잔치에 참여하는 것은 내 일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의 소, 나의 밭, 나의 결혼보다 그 잔치에 참여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나가지 않는 이유가 ①목사 및 교회 중직들의 행실에 실망해서 ② 현실과 무관한 복음 때문에 ③더 이상 교회에서 배울 것이 없어 ④세상 삶을 즐기기에 시간이 부족하여 등 여러 이유를 말하지만 결국 가치의 우선순위를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에 이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X세대, N세대, Y세대, G세대 등은 우선순위에서 신앙은 하위권에 속한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순위는 친구, 이웃, 여가, 돈, 권력, 학력에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는 가치는 삶의 변두리에 있는 것입니다. 청소년층일수록 기성세대에 비해 돈과 권력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젊은 층일수록 '가나안(뒤부터 읽으면 '안 나가')교인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왕의 잔치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왕과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웃음과 풍요가 있는 잔치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소위 꿀벌 전도를 해야 합니다. 꿀벌은 10그램의 꿀을 채취하기 위해서 6만 송이의 꽃을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그리고 꽃 한 송이를 60번씩 왕복하여 꿀을 따옵니다. 그러니 한 스푼의 꿀을 채취하기 위해 그 작은 벌은 36만 번을 반복하여 지속적으로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세상 모는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포기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업도 세일도, 자녀교육도, 가정행복도 포기해 버리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미국 소매상협회(National Retail Goods Association)의 조사에 의하면 판매원의 48%가 손님에게 한 번 전화하고 포기하고, 25%는 두 번 전화하고 포기하며, 15%는 세 번만에 포기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88%의 판매원이 한 번 내지 세 번의 전화로 판매를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12%만이 끈질기게 전화를 하는데 놀랍게도 이들이 전체 판매량의 8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88%의 판매원이 겨우 20%의 거래밖에 못 한다는 뜻입니다.

언젠가 [일만 명 전도의 꿈을 펼쳐가는 사랑의 검사장 !]이라는 간증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당시 인천지방검찰청 검사장이신 전용태 장로님의 간증이었습니다. 그분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시 양과(사법, 행정) 합격’하고, ‘막힘없는 출세가도’달렸답니다. 교회는 다녔지만 그럭저럭 마지못해 다녔답니다. 그런데, 부인 최호자 권사가 갑작스런 중병 진단을 받고 큰 수술로 중태에 빠졌답니다. 삶의 절박한 순간이 다가 오자 그는 처음으로 마음 졸이는 필사적인 기도를 드렸답니다. “최 권사를 살려만 주신다면 주일성수는 물론 성경공부와 전도인의 삶을 살겠습니다.” 

최 권사는 기적같이 건강을 회복했답니다. 그 시련 중에 그는 무엇보다 ‘죽었던 나를 살리심이 더 감사함’을 고백했답니다. 건성 신자에서 철저한 주님 사랑에 포로된 크리스천으로 거듭났답니다. 그는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졌답니다. 92년 춘천지검 차장검사로 부임했을 때는 김기수 부장검사(검찰총장 역임)를 비롯 군단장, 경찰서장, 각계 기관장들을 모아 성경공부를 시작했답니다. 무려 780여 명이 성경부에 참여했답니다. 

그는 전도 훈련을 통하여 한 사람이 100명씩 전도하자는 전도운동을 펼쳤답니다. 이렇게 검사장으로 복음을 전하자 오해도 받고 반대도, 장애물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는 ‘우리동네 기도회’를 조직, 서울의 대표적 카페촌인 방배동 먹자골목 정화운동에 나서 50여 곳의 유흥업소가 철시하고 대신에 꽃가게 등이 들어서게 하였답니다.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자녀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도 그가 발안(發案)했답니다. 

그분의 목표는 일 만명 전도였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이 도와주시면 할 수 있다고 전도에 최선을 다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멋진 인생입니까? 얼마나 분명하고 선명한 삶입니까? 예수님 말씀합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1:38) 

예수님의 삶 자체가 복음 전도에 초점을 맞춰진 삶이었습니다. 여기 나오는 주인은 우리 하나님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거절한다고 포기해 버립니까?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길 거절한다고 포기합니까? 


2. 우리는 전도의 절박성을 가지고 초청대상자를 가리지 말고 초청해야 합니다. 

이미 초청한 사람들이 오지 않자 주인이 무엇이라고 종들에게 말합니까? 21절을 보십시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 오라”고 말씀합니다. 어서 빨리 가서 초청하라는 것입니다. 전도의 절박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본래 초청 대상자에게 선정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이 아닙니다. 이방인들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빨리 가서 이들을 잔치에 참여시키라고 말합니다. 절박성을 가지고 천국 잔치에 초청 대상자 구별하지 말고 대려다 빈 잔치 자리를 채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절박성이 있어야 합니다. 내 아들이 죽는데 공부가 문제이겠습니까? 우선 살리는 것이 문제이지요. 잔치가 끝나기 전에 그 잔치 자리에 사람을 채워야 합니다. 마지막이 있습니다. 심판의 때, 결산의 때가 있습니다. 끝나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전도도 때가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고 하면 지나가는 바람 소리로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처럼, 노아의 홍수 시대 사람들처럼 듣지 않습니다. 

“이렇게 좋은 세상인데 무슨 교회가 천국이냐? 세상이 천국이지? 무슨 지옥이 있고 천국이 있느냐? 다 죽으면 끝이지”라고 말합니다. 

제 2차 세계 대전시 원자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진다고 경고하였지만 전혀 듣지 않은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제 2차 세계 대전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불길 속에 싸여 있을 때,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난데없이 재빠른 비행기 편대가 나타나 하얀 삐라를 뿌렸습니다. 온 시민은 갑자기 뿌려진 한 조각의 종이쪽지를 들고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쪽지에는 "히로시마에게 경고한다! 모든 시민은 8월 6일 아침 8시까지 50리 밖으로 대피하라! 투하되는 폭탄은 신형 원자폭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은 공갈이다." "설마 무슨 일이 있을려고, 우리가 이기고 있는데." "그 때, 가봐야 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서운 경고를 받고도 꼼짝달싹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1945년 8월 6일 아침 8시 15분 1329기 폭격기가 히로시마 상공에 나타나 상공을 두어 번 선회하더니 낙하산에 매달린 시커먼 물체 하나를 떨어뜨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수십 만 시민들은 죽음 몇 초 직전의 숨 막히는 상황인데도 그 공포를 거의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구경꾼처럼, "낙하산이 내려온다"하며, 반공호 속에서 근심어린 눈으로 처다 보았습니다. 순간 햇빛보다 수천 배나 밝은 강한 빛이 온 시가지를 휘감았고, 상상도 못할 대 폭음이 지축을 뒤흔들며, 거대한 불기둥과 버섯구름이 하늘 높이 치솟았습니다. 

사람들은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히로시마 인들은 3일간의 기회와 대피하여 생명을 구하라는 경고를 외면하다가 순식간에 히로시마 시민 30여만 명의 생명과 재산이 잿더미가 되고 만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도 그랬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때도 그랬습니다. 홀연히 끝이 다가옵니다. 언제가 인생은 끝이 오고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대하여 얼마나 많이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이 거짓말을 했겠습니까?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죽음 후 또 다른 삶이 있습니다. 우리는 절박성을 가지고 대상을 스스로 구별하지 말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초청의 대상자를 가리지 말고 초청해야 합니다. 전도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핑계 대지 말아야 합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을 전도해 놓으면 교회가 욕먹을 것 같다고 전도대상에서 제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본 작가 중에 "길은 여기에", "빙점"이라는 유명한 소설을 쓴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라고 하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녀의 삶과 책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비쳤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알기 전 폐병 환자였답니다. 생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서 매일매일 각혈을 하며 기난긴 투병생활을 해야만 했답니다. 

그러던 어늘날 어떤 청년이 찾아와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준 것입니다. 각혈을 하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 초라한 여자가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를 찾아온 청년은 각혈을 하면서 파리하게 말라가는 그녀에게 "예수 믿으세요. 예수님이 당신의 구주입니다. 예수 믿으면 당신은 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서 영원한 하늘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라며 전도했습니다. 그녀는 그 초청에 응했고 죽음의 질병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초청 대상자를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부가 서로 같이 교회 다니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어머니 전도해 놓으면 교회 와서 자기 가정 흠 소문 낼까바 전도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 전도하면 교회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구제 대상자가 되니까 전도하기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발 이 사람만은 하나님 부르지 마십시오. 그 사람은 꼭 지옥가야 합니다.”라고 원한을 품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있는 천국이라면 저도 가지 않겠습니다. 

우리 주님 말씀합니다. 시내의 거지와 골목에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21)를 초청하라고 합니다. 골목은 사회의 소외된 사람이 다니는 좁은 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치명적인 결점이 있는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결점 때문에 감사하게도 구원받은 동기가 되었습니다. 약하기 때문에 결점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호의와 친절을 거절하지 않는 겸손함이 있었습니다.
 
정문식 집사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40대 초반 이레전자를 자본금 50만원으로 만들어 15년 만에 연간 매출 1400억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고 합니다. <다섯 평 창고의 기적>이란 책을 내었습니다. 한양공고 전자과 졸업의 최종 학력으로 산업자원부가 주관하는 “신지식인”과 “벤처기업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사환 공원 이발사 등을 마다하지 않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소년 가장이었다고 합니다. 퇴직금 5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사업은 고난의 연속이었답니다. 카스테레오용 전선가공 주문은 가뭄에 콩 나듯했고, 날카로운 전선 조각들이 기어다니는 어린 자녀들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 아내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답니다.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업장 이름도 ‘이레전자’라고 지었건만 그에게 기회란 전혀 생기지 않았답니다. 한강변에서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지만 금요철야 예배를 마치고 나온 성도들 모습에 그는 자살을 포기하고 말았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제가 만일 아버지가 살아계시고 가정환경이 좋았다면 지금의 이레전자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를 성경 속 인물인 요셉과 비슷하다고 말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요셉도 아버지와 형들에게 사랑받고, 채색옷만 입고 지냈다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될 수 없었겠죠” 그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넘겨받은 고난이 자신에게는 위대한 유산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어려움 가운데 예수를 믿게 되고 인생이 변화된 것입니다. 길과 산울가 사람들(이방 땅)을 초청하라고 합니다. 주변에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절박한 전도의 접촉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영적인, 육체적인 환자, 무의탁 노인, 정신박약자, 농아자, 미혼모, 맞벌이 부부의 아이, 장애자, 죽어 가는 사람과 그 가족 들이 있습니다. 가족 및 친척 중에 이웃집 주인, 세든 사람, 앞집, 옆집, 뒷집, 같은 동, 같은 번지, 반상회 회원, 세탁소, 관리사무소 직원, 이사온 분, 자녀들의 친구 부모, 미장원, 불신 친구, 동창생, 선배, 후배, 직장동료, 회장, 사장, 부하직원 등 주님이 필요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절박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그들을 초청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땅사고 소사고 장가간 사람만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맹인, 저는 자들도 초청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3. 우리는 전도명령에 대한 절대성 가지고 순종하여 어디서나 초청해야 하겠습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계속 잔치 자리를 채우라고 말씀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종들을 보내어 초청하라고 합니다. 종들은 순종하여 나아갑니다. 그런데 초청받은 사람들이 거절합니다. 이 사실을 주인에게 보고합니다. 그러자 주인이 또 말씀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아가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 맹인들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러자 종들이 어떻게 합니까? 

22절을 보십시오. 명하신대로 다 하였습니다. 아마 종들은 왜 주인이 그렇게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아무나 잔치에 초청합니까? 대통령 아들 결혼식에 아무나 초청합니까? 아무나 갈 수 있습니까? 

우리가 전도할 때는 전도 명령의 지엄성을 깨닫고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시내에서도, 골목에서도, 길과 산울가에서도 초청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믿는 사람 20%만 보지 말고 믿지 않는 80%를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전도 명령에 대하여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가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 6:37)”

우리가 어떻게 전하든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행 13:48)”라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열정으로 전도한다면 

누가복음 13장 29절 표현처럼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흘러들어 와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앉는 것을 볼 것입니다.”

순종이 중요합니다. 실행력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라는 것 다 하겠지만 전도만큼은 죽어도 못하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죽으면 못합니다. 살아있을 때 해야 합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부탁입니다.(살전2:4) 전도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입니다. 

부활 승천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전도는 빚을 갚는 것입니다. 

롬1:14절과 15절에서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전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화가 임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9:16절)” 전도는 이론이 아닙니다. 선포가 아닙니다. 삶의 현장에서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잔치에 참여하는 복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주안교회 전도이야기” 책이 있습니다. 행동하는 믿음 ‘전도왕 4인’ 의 간증입니다. 인천의 주안장로교회가 28년 만에 재적 성도 200여명에서 8만명이 넘는 대형 교회로 급성장했는데 이 놀라운 성장과 부흥의 비결은 ‘전도’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 주안 장로교회 전도 4인방의 전도 간증문입니다. 이들 전도왕들은 1년에 비신자들을 수백명에서 수천명까지 전도한다고 합니다. 아들의 병 때문에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난 안강자 권사, 자신의 병과 싸우다가 하나님으로부터 고침 받은 이영진 권사, 영적 눌림 속에서 생생한 은혜를 체험한 양경애 권사, 미신을 믿다가 교회에 다니게 된 조정희 권사 등 이들 모두는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하고 전도 명령에 순종하신 분들입니다. 

이들은 ‘전도는 십자가의 승리이고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며 거룩한 축복이고 행동하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평신도지만 풀타임 사역자 못지않게 헌신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 전도에 시간과 물질을 아낌없이 쓰며, 영혼 구원에 목숨을 걸 정도로 헌신했습니다. 그중 안강자 권사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도에 순종하기로 작정하고 어느 날 주안 전철역에서 나오는 한 청년에게 “예수 믿으세요”하고 전도를 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집사님은 따라가면서 또 전도를 했습니다. “꼭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됩니다. 구원받지 못하고 죽으면 지옥갑니다.” 그러자 이 청년은 돌아서서 주먹으로 안강자 집사님의 얼굴을 쳤습니다. 안 권사님은 역 광장 아스팔트 바닥에 코피를 흘리면서 쓰러졌습니다. 청년은 다시 안 권사님의 얼굴을 구둣발로 짓밟아버리고 지나갔습니다. 역 주변의 상인들은 그 청년이 깡패니까 상대하지 말라고 하면서 택시를 태워서 집으로 보내주었습니다. 

일주일 후에 그 청년으로부터 사과의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까지 수 없는 사람을 때리면서 살아왔지만 아무 일이 없었는데.. 아주머니를 때리고 난 그 날부터 저는 밤마다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제 눈앞에 어른거려서 일주일 동안 꼬박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하시고, 저도 아주머니가 믿는 그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 후 그청년은 교회에 왔고 신학을 공부하여 지금 필리핀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 분이 김기영 선교사님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전도해서 일년에 9,546명까지 전도한 때도 있었답니다. 

안 권사님이 이렇게 전도하기 시작한 동기가 5대 독자인 그의 아들의 질병 때문이었답니다. 5대 독자가 호흡기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유명한 의사를 다 찾아 다녀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답니다. 어느 날, 한 여집사님의 전도를 받았는데 안 권사님은 “내 자식에게 어떤 불행이 다친다고 할지라도 교회만은 절대로 안 나가겠다”고 단호히 거절했답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던 4대 독자인 남편도 펄쩍 뛰면서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고 반대했답니다. 

아들의 병세가 악화되어서 위험수위를 넘었답니다. 자식의 생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순간에 이르자, 그처럼 거부했던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답니다. “하나님, 내 아들 고쳐주세요.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내 아들 살려주시면 내가 주의 뜻을 따라 살겠습니다.” 하고 기도했는데, 그때부터 아들의 병세가 기적같이 나아지기를 시작했답니다. 오래지 않아서 병원에서 퇴원을 했답니다. 

이분은 하나님과의 약속이 두려워서 남 몰래 교회를 다녔답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을 남편이 알게 되었답니다. 결혼한 후에 처음으로 그처럼 사랑했던 남편으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했답니다. 이분은 결심했답니다. ‘내 가슴에 칼이 들어와도 내 아들의 생명을 건져주시고 내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을 나는 배반할 수 없다. 그리고 영혼을 사랑하는 전도에 내 일생을 바치겠다.’ 결심하고 다음날부터 아들을 등에 업고 본격적으로 전도하기를 시작했답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구타하자 이혼하자고 남편이 졸라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는데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臨在)를 경험했답니다. 아파트에 들어서는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답니다. 4층 자기 집에 들어올 때는 통곡에 가까운 눈물을 흘렸답니다. 남편도 바닥에 꿇어앉아서 하나님을 믿겠노라고 다짐을 했답니다. 그 날이 언제인가 하면, 안 권사님이 남편의 영혼구원을 위해서 작정기도한지 천 날이 되는 날이었답니다. 그 후.. 건설회사 사장인 남편은 건설회사 이름조차 ‘다윗건설’ 이라고 바꾸었답니다. 장소 구분하지 않고 여러분과 제가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개인에게, 가정에, 교회에, 세상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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