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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 19: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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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 19:9-14) 
 
 
19: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9: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9: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9: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9: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9: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일을 하던 시대에 아합이라는 악한 왕과 이세벨이라는 악한 왕비가 북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이 악한 왕과 왕비를 지지하는 거짓 선지자들과 일전을 치르고 승리했습니다. 그들은 작으만치 바알선지자가 450명아었고, 아세라선지자가 400명이나 되었습니다. 1:850명의 영적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갈멜상의 전투에서 홀홀단신 여호오만 섬기는 엘리야가 승리한 것입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악한 왕과 왕비는 겸손히 무릎 꿇기는커녕 더욱 악해져서,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 합니다.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최후통첩을 합니다. 왕상 19:2절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 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했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부득불 자기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브엘세바를 거처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이르러 그곳 굴에 들어가 머물게 되었습니다. 호렙산은 특별히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는 곳이었습니다.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불에 타오르고 있었지만, 도무지 타서 없어지지 아니하는 떨기나무를 보여주신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모세에게 10계명을 주신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출3:2 "모세가 호렙산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니라" 엘리야는 지금 그 거룩한 곳으로 피신을 하여 굴속에 숨어 지내게 되었습니다. 

굴에 머물러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네가 어찌 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왜 엘리야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정말 무엇을 하시는지 몰라서 물으신 것일까요? 하나님이 모르실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이 너로 하여금 지금 그곳에 있게 하는지 자신을 살펴보란 말씀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일에 열심이 유별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 일을 하다보니 이해 관계자들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이렇게 자신이 일하던 곳을 떠나서 굴에 머물러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을 만나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유일신으로 섬기는 이스라엘에서 선지자 노릇하다가 이 문제를 만나서 호렙산에 있는 굴로 도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하려고 하면 언제나 어느시대에나 아합과 이세벨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이시대에도 예외는 없습니다. 그럼으로 가장 복음적인 국가 복음적인 민족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순교적 신앙이 요구된다는 사실입니다.  

1. 열심히 유별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유별나게 쓰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유별하오니"(10절.14절)라는 말이 두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별'이란 말을 개역성경에는 "특심'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엘리야는 과연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이 유별난 자였습니다. 열심이 특심한 자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불후의 명작 [최후의 만찬]을 무려 10년에 걸쳐 그렸습니다. 워낙 그 작품에 몰두해서 하루 종일 먹는 것조차 잊어버릴 때가 많았답니다. 그의 마음은 이 최후의 만찬으로 불 붙어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불이 붙어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열정이 불타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 마음의 불이 꺼지면 우리 인생은 모든 것이 멈추게 됩니다. 마음속에 열정이 식으면 우리 인생은 파산되고 맙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 심령이 불붙어있습니다. 그 심령에 열정이 넘칩니다. 

엘리야는 기도하는 열심이 유별난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하므로 3년 6개월 동안 땅에 우로가 내리지 아니하였고 또 그가 비오기를 구하매 메마른 땅에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손바닥 크기만 그름 한점으로 시작된 비는 큰 빗줄기가 되었습니다. 사르밧 과부에게 배푼 기적도 기도하는 중에 사르밧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그런 기적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 합 850명의 우상 섬기는 선지자들과 갈멜산상에서 기도로 대결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제물에 불로 임하셨습니다. 그가 그릿 시넷가에 아합을 피해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까마귀로 하여금 먹을 것을 물어다 먹여주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일에 남달리 열심히 유별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물리치는 일에 유별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면 언제나 유별난 열심으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들에게 유별난 것을 한 가지 이상주셨습니다. 이것이 개성이고 소명이고 사명입니다. 이것을 발견하고 이 일에 유별나게 열심을 다하면 모두가 행복한 인생, 승리하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2. 열심히 유별난 사람은 유별난 시험을 만납니다. 
  
열심이 특심하였기 때문에 일도 치루어내기도 하지만 또한 유별난 사람은 유별나게 시험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열심이 특심한 사람이었던 엘리야와 함께 해 주셨고 그를 놀랍게 사용하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적수도 많았고 대적도 많았습니다.
돈 버는데 유별난 사람, 일하는데 유별난 사람, 훈련하고 교육하는데 유별난 사람, 무엇을 할 때 꼼꼼한데 유별난 사람, 착하고 의로운데 유별난 사람......
한결같이 다 욕을 먹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을 다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는 아닙니다. 

열심이 유별한 사람 엘리야에게도 위기가 찾아옵니다. 오늘 본문 10절과 14절에 보면 "오직 나만 남았사오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자기 혼자인 것만 같습니다. 도저히 자기 혼자의 힘으로 자기 앞에 놓인 대적을 물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멀리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열정이 있더라도 일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열정이 있더라도 앞 뒤 좌우 길이 막혀있을 때가 있습니다. 기적의 사람에게도 아무 기적이 없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고 그래서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열심이 특심한 자가 가장 주의 해야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실로 생명의 위협이 닥치더라도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이 특심한 것을 끝까지 가져야 합니다.

3, 열심히 유별난 사람을 하나님은 챙기십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에 보는대로 그가 절망하고 괴로워하고 힘들어할 때도 하나님은 그 열심이 특심한 자를 그냥 버려두시지 아니하고 굴속으로 찾아오셔서 큰 바람 가운데서, 지진 가운데서 그리고 불 가운데서 다시 만나주시고 힘주시고 위로하시고 확신주시고 다시 사명에 굳게 세워주셨습니다. 

호렙산의 굴에 숨어 있는 엘리야에게 "엘리야야 네가 왜 여기 있느냐? 하나님께서 물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있어야 할 곳은 그 곳이 아니라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하셨습니다. 

우리가 침체에 빠져 있을 때 이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하나님께서도 사랑하시는 자가 침체에 빠져 있을 떄에는 반드시 동일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곳이 하나님의 산 호렙이기는하다만은 그곳은 굴속이 아니냐? 네가 왜 굴 속에 있느냐? 하신 것입니다.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야 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혼자라 생각해서 이 굴 속에 숨었나이다. 
혼자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만 일한다. 나만 손해본다. 나만 잠못 이룬다. 나만 시험이 있다.......
나 말고도 더렵혀지지 아니한 자가 아직도 7000명이나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품속과 같은 인간이 없는 혼자만의 세계속으로 도망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굴속에서 나가서 할 일들을 15절 이하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로 인해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일하기 싫습니다. 사람으로 인해서 시험 당한 사람은 사람 만나고 사귀고 동역하는 것 싫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싫다고 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 생각일뿐이라는 것입니다.  
순교자 신앙을 본받는 계절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만의 굴 속에 숨어 있지 말고 순교신앙으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서 주께서 주신 사명을 열심이 유별나게 감당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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