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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반을 만들어라 (왕하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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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반을 만들어라 (왕하 4;1-7) 

오늘 본문에 보면 선지자 엘리사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던 신학생 한 사람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사인(死人)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졸지에 남편을 잃은 부인이 엘리사 앞에 달려와 울부짖습니다. 

(1절)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남편은 신학생이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온전히 잘 섬기던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졸지에 과부가 된 이 여인, 오늘의 주인공인 이 여인은 적어도 세 가지의 아픔이 있습니다. 

첫째,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잃어버린 아픔이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아픔이 있었습니다.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고 헌신한 그런 신실한 종을 왜 이토록 일찍 데려갔는지 하나님에 대한 아픔이 있습니다.  “하나님, 왜 평생을 당신을 위해 살겠다고 헌신한 그 사람을 데려가셨습니까?” 하고 기도해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불행한 여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 잠길 여유도, 하나님 앞에 따질 여유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빚쟁이가 찾아와서 남은 두 아들을 노예로 삼기 위해 끌어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 여인에게 가장 힘든 아픔, 가혹한 현실이라는 세 번째 아픔입니다.    

이 가혹한 현실 앞에서 여인은 연약하고 무능했습니다. 도저히 문제를 풀어갈 방법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절망적인 순간에,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 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여러분, 이 여인의 문제는 해결을 받습니다. 엘리사는 이 여인의 부르짖음에 응답을 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죽은 남편의 경건함입니다.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미 죽은 사람이지만 그가 살았을 때의 경건함이 지금 자기 아내와 두 아들을 살리는 근거가 되고, 엘리사가 여인의 기도를 들어주어야하는 이유가 됩니다. 경건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의 경건이 산 사람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원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종에게로 나아오는 여인의 태도입니다.   성도여러분,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의 종을 찾아간다는 것은 참 좋은 습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적인 문제라면 몰라도 금전 문제, 경제문제인데, 주의 종에게 찾아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요.  사실 인간적으로 볼 때, 목사가 세상 물정 잘 모르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분은 아직 여유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진짜 급해 보십시오.  진짜 급한 사람은 목사에게 막무가네로 매달립니다. 이렇게 목사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분은 목사를 주(主)의 종(從)이라 여기고,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맺어준 기도의 통로요,  축복의 통로요,  은혜의 통로로 활용할 아는 사람입니다.  목사에게 기도를 부탁한다는 것은 목사의 뒤에 있는 하나님에게 부탁을 한다는 것 아닙니까?  이런 사람은 자기도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도여러분,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고 그 사람은 하나님에게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이 여인은 엘리사에게서 응답을 받습니다.  여러분은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한계상황에 부닥쳤을 때, 어떻게 하십니까? 본문은 우리가 한계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어떠한 모습으로 서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귀중한 교훈입니다. 

1. 오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는, 항상 막다른 상황에 처한 심정으로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가로되...”  

여기 ‘부르짖어 가로되’ 는 히브리어로 ‘케라’(kera)라는 단어로, 특별하고 간절하게 마음을 쏟는 기도를 말합니다.  이것은 현실을 바꾸어 달라는 부르짖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현실, 나의 한계상황을 바꾸실 수 있다는 기도입니다.    

정말 이상한 일은 많은 신앙인들이 소소한 일상에서는 어느 정도 기도를 하는데,  정작 한계상황에 부딪쳤을 때에는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에 교회에서 알콜 중독자 성도님은 전기 줄로 목을 매어 죽으려고 하면서도 교회 와서 기도로 부르짖지는 않았습니다.   

왼팔이 없는 한 청년은 참 자주 심방을 갔습니다. 최소한 2주에 한 번은 심방을 가서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면서 3년을 권했는데 그는 결국 자살해버렸습니다.  성경말씀을 반복해서 듣고, 다른 사람의 간증 이야기도 들으면서도 본인은 왜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는지 참 안타까웠습니다.
 
여러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나님에게 기도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사실 기도 안 해도 밥 먹고 사는 것은 별 지장 없지 않습니까? 기도(祈禱)는 나는 절대로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는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날개입니다.  한계상황을 넘어서는 날개, 현실을 넘어서서 새로운 현실을 만드는 날개가 기도입니다.  언제 기도의 날개를 펴야 합니까?  지금입니다. 지금이 부르짖어 기도할 때입니다.     

렘33:2절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는 여호와’ 입니다. 우리의 한계상황을 바꾸고 해결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의‘내게 있는 것’으로 역사하신 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지금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남편은 죽고 남은 것은 빚뿐이고, 두 아이가 종으로 팔려갈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때에 엘리사가 여인에게 묻습니다.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여인이 갑자기 멍청해집니다. 

여러분, 이 집에 무엇이 남아있겠습니까? 남편은 죽었고, 아이가 종으로 끌려갈 집에 뭐 남은 것이 있겠습니까? 있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그런데 엘리사는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합니다. 이것이 엘리사의 질문이면서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엘리사를 통해 광야에서 만나를 내리시듯 물질과 양식을 쏟아지게 하실 수도 있으십니다. 천지를 만드신 분이 그런 일을 못하시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천지(天地)를 만드신 그분은  우리가 가진 것으로 일을 하십니다.  그 여인이 말하기를, "계집종의 집에는 한 병 기름 외에 아무 것도 없나이다" 기름 한 병. 그것이 이 여인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 목록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것을 사용하십니다. 

전에 가르치던 청년한 명이 인사를 왔습니다. 
모교의 교직원으로 취직이 되었습니다. 대학교 교직원이면 대기업 직원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런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고충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이름 있는 사립대학인데도 학교운영자금의 80%가 학생들의 회비랍니다.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학교는 쓰러지는 구조인데... 정부 지원을 받는 것도 쉽지가 않다고 합니다. 어떤 선배의 말을 듣고 5년 뒤를 생각해서 자격증을 미리 따놓아야 하는가 하는 걱정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다른 자격증을 따려고 하지 말고, 지금 하고 있는 업무에 충실해라.  

지금 하고 있는 업무분야에서 최고가 되도록 해라. 가지고 있는 2달란트를 4달란트가 되도록, 5달란트를 10달란트가 되도록 노력을 해라. 그러면 정말 학교가 쓰러지더라도 다른 대학에서 스카웃이 올 것이다.  하나님은 내게 있는 것으로 역사하신다.   
 
마중물을 아십니까? 전에는 동네마다 펌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펌프 곁에 항상 그릇이 있는데 거기엔 물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마중물입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그냥 펌프질을 하면 물이 안 나옵니다.   펌프는 공기의 압력으로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원리인데 빈 펌프는 압력이 새버립니다. 그래서 펌프 옆에 항상 물을 담아 놓은 통이나 바가지가 있습니다. 한 바가지의 물이 펌프 안에 들어가 빈틈을 막아서 지하수를 마음껏 끌어올리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하에 깊이 고인 무한한 물을 데려오기 위해 마중 나가는 첫 물을 일컫는 우리말 ‘마중물’입니다.   한 병 기름은 이 집안에 남은 마지막 유일한 재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한 병 기름을 마중물처럼 사용하십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엄청난 기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방법을 기억하십시오.  다 잃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그래도 무너진 잿더미 아래에서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보세요. 그것을 발견했다면, 바로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으시면 됩니다. 그것으로 하나님과 다시 함께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다는 분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왜 나에게 아무 것도 없습니까?  한 바가지의 마중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3.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셋째 교훈은, 그릇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그릇을 준비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그릇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기름 한 병을 가지고 나온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밖에 나가 모든 이웃에게서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만 빌리지 말고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빌리라" 했습니다. 

왜 빈 그릇을 빌리되 되도록 많이 빌려오라고 했을까요? 그 빈 그릇에 한 병 남은 기름을 가득 채워준다는 약속 아니겠습니까?  여인은 처음에 무슨 영문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금방 엘리사 선지자의 말뜻을 알아들었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과 함께 동네방네 다니며 빈 그릇을 빌려 왔습니다. 

5-7절을 보십시오. “여인이 물러가서 그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저희는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들이 가로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빈 그릇을 준비하고, 방에 들어가서 한 병 밖에 없는 기름을 그 그릇들에 가득가득 쏟아 부었더니... 그릇마다 기름으로 채어지는데, 병에서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빈 그릇이 없어서 더 이상 기름을 부을 수 없을 때까지 기름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 일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너무 놀라웠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삶 속에 역사하심을 체험했습니다. 


4. 마지막으로 저는 선반을 준비하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7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여인이 준비한 빈 그릇들, 이 그릇은 우리의 꿈이요 비전입니다.  
누구나 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신앙의 목표가 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이유 없이, 쓸모없이 부르심 받은 분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것이 빈 그릇입니다.  믿는 사람의 인생은 자기가 준비한 빈 그릇을 채우는 것입니다. 꿈, 목표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빈 그릇을 준비하는 일이 기쁘고, 그릇을 많이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이 여인과 두 아들은 그릇을 얼마나 빌렸을까요? 이미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릇을 빌려라. 많이 빌려라. 그리고 문을 닫고 그 기름병을 그릇에 부어라. 그릇만큼 기름이 채워질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릇을 얼마나 빌리느냐 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이라면 얼마만큼의 그릇을 빌리시겠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에게 그릇을 빌리기 전에 방안에 선반을 먼저 만들기를 권합니다. 이 여인의 방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자기와 두 아들, 세 사람이 들어가면 별로 여유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선반을 먼저 만들어 놓으면 됩니다. 3단으로, 4단으로 선반을 만들어 놓고 그리고 그릇을 빌려놓으면 얼마나 많은 기름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니면 아예 옆방을 터서 방을 크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릇만큼 기름을 부어주시겠다고 이미 말씀 하셨습니다. 그릇이 끝이면 기름도 끝입니다. 그릇이 기름을 결정합니다. 기름이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무한하신 성령님이시지만 내가 준비한 그릇만큼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반을 만드는 것이고, 방을 터서 넓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선반을 만들고 안 만들고 가 기름부음에서 차이가 몇 배로 납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선반을 만들고 후에 그릇을 빌리는 신앙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릇만큼 기름 부으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면 그런 일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여인에게 나타난 일이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빈 그릇을 얼마나 준비하느냐 입니다. 미리 그릇을 얻을 선반을 준비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기를 막다른 골목에 선 듯 한 심정으로 서고,   내게 있는 것으로 역사하신다는 믿음과,  빌린 그릇만큼 기름 부으심이 임한다는 것을 알고서 선반을 만드는 우리에게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흥을 일으키는 힘을 ‘배고픔’이라고 합니다.  부흥을 일으키는 원인은 훌륭한 설교자도 아니요, 은혜로운 목소리를 자랑하는 복음가수도 아닙니다. 진정한 부흥을 태동시키는 것은 우리의 ‘배고픔’입니다.  배부른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보고도 식욕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배고픈 사람은 음식을 보는 순간 입 안에 군침이 돌고, 먹고 싶은 갈망을 느끼지 않습니까? 

부흥은 우리의 영적인 배고픔, 영적인 목마름을 느끼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예배는 영적으로 배고픈 자들을 위한 만찬입니다.  나는 영적으로 충만해서 더 이상 내 안에 부흥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참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배고프신 분들은 예배가 너무 귀중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마다 우리의 고픈 배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선반에 가득한 빈 그릇을 다 채워서 모든 빛을 다 갚아버리고,  앞으로 남은 인생을 넉넉하게 살아가시는 여러분과 우리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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