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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좁은 길 좁은 문 (눅 13: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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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길 좁은 문
누가복음 13:22-30

본문 누가복음 13:22-30절의 말씀은, 나사렛 예수께서 갈릴리 여러 지역을 다니시면서, 하나님 나라운동을 전개하신 결과, 여러 지역에서 무리들이, 나사렛 사람 예수를 메시야라고 여기고, 쫓아다니기 시작을 했고, 어떤 지역에서는 성급한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고 하는 시도까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의 계획을 피하시고는, 제자들과 함께 유대인들의 땅의 중심이고, 유대교 지도자와 교권을 가진 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성읍인,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면서, 제자들과 특별히 구원받기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길’은 ‘좁은 문과 좁은 길이다.’ 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을 앋기 위하여 달려가야 할 길은 편안한 길이 아니라 가기가 어려운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달려가야 할 길에 대하여 본문 23-24절에서 말씀하기를,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구원을 받을 사람이 적습니까?’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라고 하신 것으로 누가는 기록을 했습니다. 여기서 ‘좁은 문’이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문으로, 종말론적인 차원에서 하신 표현으로, 마지막 날에 구원 받을 사람의 숫자가 예상보다 많지 않을 것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본문 20절에서 ‘사람들이 동과 서에서, 또 남과 북에서 와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곧 세계 각 곳에 거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초청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동서남북, 곧 천지사방에서 구원의 소식, 곧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이 모여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구원 받을 잔치 자리에 모여 와서 앉게 될 사람들은, 모두가 좁은 길을 걸어서, 좁은 문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구경꾼들이 오다가다 우연히 모이는 곳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 나라 잔치자리에는 잔치에 참여하기 위하여 좁을 길이지만 참고 견디고, 좁은 길을 걸어온 사람만이, 문이 좁아서 들어가기가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좁은 문을 통과하느라고 무진 고생을 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좁은 길과 좁은 문으로 가라는 소리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전해집니다. 누구나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에 오라는 초청하는 소식은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들어가는 사람은 초청을 받고 좁은 길을 걸어가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자 땀을 흘리고 애를 쓴 사람만 들어간다는 점을 이 시간 분명하게 깨닫고 믿는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과 함께 떡을 나누는 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각색 병자를 고치는 치유의 자리에도 마치 구름 떼와 같이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라는 고난의 잔을 마시는 자리에는, 많은 사람은 차지하고, 12 제자들까지도 애써 외면하고 고난 당하는 자리에서 도망을 쳤습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께서 감당한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에 끝까지 동행했던 사람들은, 12 제자들이 아니라 놀랍게도 가장 연약한 여인들과 겁과 두려움에 질려 있던 몇 명의 제자들뿐입니다. 

그런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선생이요 주님이신 나사렛 예수와 더불어, 좁은 길을 가려고 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각오와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와 새 세상에서 왕 노릇을 하겠다는 허욕만 가지고 있었지, 진정한 예수의 마음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자, 예수를 사랑하고, 사모하세요. 모든 허욕을 버리세요. 허욕을 버려야만 좁은 길을 가자는 예수의 온유하고 겸손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당연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좁은 길을 가기 위하여 허욕을 버리고, 예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하여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지만 ‘좁은 문, 좁은 길’을 가는 것이 고행주의나 금욕주의가 아님을 유념하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나사렛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요구하신 ‘좁은 길, 좁은 문’으로 가라.는 말씀은, 고행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금욕주의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본문 25-27절의 말씀을 보세요. 누가는 기록하기를,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면서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때에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주인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인님은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할 터이나, 주인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악을 일삼은 자들아, 모두 나에게서 물러가거라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유념해야할 부분은, ‘늘상 주인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길거리에서 주인에게 가르침을 맏은 사람들이, 주인 베푼 잔치 자리에 들어가지를 못했다는 점’이고, 더욱 놀라운 것은 ‘주인이 베푼 잔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주인을 안다고 하는데, 주인은 말하기를,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악을 일삼은 자들아 모두 나에게서 물러가라.’라고 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늘상 교회에서 생활을 하고, 교회에서 많은 교육과정에 참여하여 배웠을지라도, 마지막 구원받은 사람이 참여하는 잔치 자리에는 못 참석하게 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주인의 잔치 자리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는 (1) 긴장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갑자기 문이 닫혀서 잔치 자리에 못 들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내가 가야하는 길이 좁은 길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들어가는 문이다. 잔치에 못 들어갈 사람은 없다. 라고 착각을 한 것입니다. (2) 악을 일삼았다는 점입니다. 악한 것은 무엇이든지 끊어버려야만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살전 5:21-22에서 데살로니가 교인에게 말하기를, ‘모든 것을 분간하고 좋은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여러 가지 모양의 악을 멀리하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은혜 아래서 거룩한 삶을 살자면, 먼저 마음의 악과 손발로 행하는 악과 눈과 귀로 행하는 악과 입술과 혀로 범하는 악을 모두 버려야만 합니다. 더러운 것을 버리지 않으면, 여러분의 주인되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 날에 여러분을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악을 버리는데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길은 많은 사람에게 인기가 있는 길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믿음의 길은 화려한 조명이 비치는 길도 아닙니다.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찾는 사람이 적은, 좁은 문이고 좁은 길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여기서 ‘힘쓴다.’라는 표현은, 육상선수가 세계신기록을 세우기 위해서 골인 지점을 향해서, 힘을 다해서 달려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권투선수가 승리하기 위하여 죽을 힘을 다해서 경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달려가고 있는 믿음여정이란 한가롭게 공원을 목적도 없이 두리번거리며 거니는 산책이 아닙니다. 믿음의 경주는 지금도 마치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다니는, 믿는 사람의 대적인 사탄 마귀와 감당하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악한 영과 마주하여 싸우는 영적 전쟁터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힘을 다하여 사탄과 싸워야만 하고, 장차 들어갈 도성인 새 예루살렘 성을 목표로 끊임없이 달리가여만 합니다. 

여러분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가운데 임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거룩한 영을 만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늘의 지혜를 얻습니다. 오직 주님의 뜻만을 따라서 드리는 기도를 통하여, 그리고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성령께서 주시는 감옥의 터전을 흔드시는 구원의 역사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담대한 용기와 새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다시 자신의 삶 전부를 오직 그리스도 예수에게 맡기고, 그리스도와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길을 달려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넓은 길, 넓은 문’을 택하고, ‘좁은 문 앞에서 왔다 갔다는 할지언정, 세상재미에 취하여, 좁은 문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얼쩡거리는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 날에 하늘 잔치 자리의 문을 닫으신, 주님 앞에서 말하기를,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님은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은 과거에 여러 차래 자주,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주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길거리에서 자기에게 무슨 말씀을 가르치셨는지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도 줄줄 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들었어도, 자신의 삶에 적용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마치 바람을 잡은것처럼 허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21절에서 말씀하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하셨고, 사도 바울께서는 로마서 2:13절에서 로마교인엑 분명하게 말씀하기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형제 야고보께서도 약 1:22절에서 말씀하기를,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말씀한, ‘믿음의 길, 생명을 얻는 길, 구원의 길’은 구원을 얻기 위하여 인간의 자기 공로를 보태는 고행이나 금욕주의적 삶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의 복음은 인간의 자기 공로 때문에 보상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구원은 인간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진 대속의 은총 때문에 값없이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구원을 위하여 어리석은 계율을 만들지 말고, 겸손히 주님의 말씀인 복음을 받아들이고, 오직 복음에만 순종하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좁은 문, 좁은 길’은 준비하는 사람만이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을 얻기 위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로 가라고 한 것은, 여러분이 어려워서 그 길을 가지 못한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좁은 문과 좁은 길은, 준비 없이는 못 가는 길이며, 들어가고자 하는 피나는 훈련이 없이는 들어가지를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본문 29-3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기를, ‘사람들이 동과 서에서, 또 남과 북에서 와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보아라, 꼴찌가 첫째가 될 사람이 있고, 첫째가 꼴찌가 될 사람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시편 126:5-6절에서 노래하기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눈물을 흘리며 수고할 때에, 기쁨의 열매를 얻을 수 있는 소망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좁은 문은 닫히면, 열리지 않습니다. 좁은 문을 통과할 기회가 지나고 나면,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지는 사랑이라고 기준도 없고, 무제한적인 것은 아닙니다. 본문에서 누가는 기록하기를, ‘한번 닫은 후에’라고 했습니다. 좁은 문은 동서남북 누구에게든지 열려있는 문이기는 하지만, 들어가기를 힘쓰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제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럿이 우르르 떼거리로 몰려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아닙니다. 좁은 문은 예수 그리스도와 여러분과 일대일의 관계에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만이 들어가는 문입니다. 

어떤 성이든 큰 성문이 있다면, 그 옆에는 작은 문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문이 닫힌 후에, 성안으로 들어가야 할 경우나 급히 성밖으로 나가야 할 때에 사용하는 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이 문은 작다고 하여 ‘바늘귀’라고 불렀답니다. 그런 문을 통과하자면, 짐이 많으면, 많은 짐을 포기해야만 통과할 수가 있습니다. 문이 좁기 때문에 가진 것을 대부분 포기해야만, 겨우 몸만 빠져나갈 수 있는 문입니다. 그리고 좁은 문은 작기도 해서 키가 큰 사람은 허리를 크게 굽히지 않으면 지나갈 수가 없는 문입니다. 그러니까 좁은 문은 겸손하지 않으면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몸인 교회에 나오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입니다. 왜냐하면 겸손하게 그리스도 예수에게 예배를 드리는 일은, 구원의 문,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이고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이나, 지식이 많은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이나, 당한 형편에 상관없이, 동서남북, 전 세계 어느 누구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자기의 구세주라고 믿고, 마음에  영접을 하고, 사람 앞에서 자기의 입으로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좁은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만을 그리스도라고 부르고 고백하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문이기 때문에 좁은 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믿음 여정은 산책이 아니라 악한 영과의 영적 전투를 하는 현장입니다. 수많은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면서, 애를 쓰고, 수고하는 일꾼만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베푼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여러분이 좁은 길을 걸어가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 하나님 나라에서 열린 잔치 자리에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하기를, ‘여러분이 구원을 얻으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을 가야만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좁은 길은 고행주의나 금욕주의가 아니라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준비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감당하는 악한 영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구경꾼이 차지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기까지 수고하는 사람만이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교회와 가정을 위해서 애를 쓰고, 땀을 흘려서, 결국은 큰 기쁨의 곡식단을 풍성하게 추수하는 복된 삶을 살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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