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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응답받는 기도 (눅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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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받는 기도
누가복음 18:1-8

오늘은 본문 누가복음 18:1-8절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하신 불의한 재판관과 억울한 일을 해결받기 위하여, 원하는 결론이 날때까지 끈질기게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가서 응답을 받은 과부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에서 말씀하시고자 한 것은 무엇입니까?           
먼저 그리스도인은 주님께 기도할 때에,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응답이 없다고, 쉽게 낙심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제일 먼저 응답이 없다고 낙심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예수님께서 이 비유에서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본문 1-2절에 누가는 기록하기를, ‘예수께서 그들에게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어느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어떤 재판관이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응답을 받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기도를 해야만 응답을 받는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에서 응답을 받는 기도를 하려면, ‘늘상 기도하되, 응답이 늦어진다고 해서, 기도하다가 쉽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저는 가끔씩 ‘기도하는 것은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이 그리는 그림이 작으면 금방 그리는 작업이 끝이 납니다. 하지만 그리는 그림이 크면 클수록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렵습니다. 

머리 속에 믿음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물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보세요. 그가 머릿속에 그렸던 많은 내용들이 습작 형태로, 아니면 설계도 형태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어떤 것들은 지금 이 시대에서 현실화 된 것도 있음을 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은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필요한 많은 그림을 그려야만 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그린 그림 곧 기도가 응답을 받아서 지금 미국은 흑인이 대통령을 맡아서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늘상 기도하되,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면서, 응답을 믿고 기다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즘 특별히 한국 사람들은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을 잘 못합니다. 금방 결과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다보니까 모든 부분에서 쉽게 낙심을 하고, 쉽게 포기를 합니다. 하지만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에게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실상 어쩌다 한두 번 잘하는 것보다는, 끝임 없이 지속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그리스도 예수에게 간구할 때에도 반짝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응답받는 날까지 여일하게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음으로 기도할 때에는 응답받는 날까지 계속해서 간구해야만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비유의 대상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과 재판관에게 자기를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할 때에도, 아무 것도 그 댓가로 지불할 것이 없는 아주 가난한 과부를 비유의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과부의 형편을 본문에 기록하기를, ‘그 도시에 과부가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그 재판관에게 줄곧 찾아가서 내 적대자에게서 내 권리를 찾아주십시오 하고 졸랐다.’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과부도 돈이 있어서 좋은 변호사를 구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닙니다. 본문에 보면 과부는 무작정 재판관을 찾아가서 “내 한을 풀어달라.”고 강청을 합니다. 자기가 당연히 누릴 권리를 찾아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도 없고, 물질도 없고, 뒷배경도 없는 여인의 요구인지라, 재판관은 자기에게 아무 것도 득이되지 못하는 일에, 공연히 공을 들이고 땀을 흘려서 바로 잡아야만 하겠다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문제해결의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하지만 이 과부에게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불의하지만, 그래도 이 재판관밖에는 없다는 점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부는 처음에는 전혀 자기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재판관이지만, 재판관이 문제를 바로 잡을 때까지 다른 것은 바라보지도 않고, 집요하게 재판관만을 찾아갑니다. 노골적으로 인격적인 모욕과 무시를 당해도 전혀 개의하지 않고, 낙심도 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불의한 재판관만을 붙잡고자 재판관의 집문을 두드립니다. 이런 형편이 하루 이틀 그러다 만 것이 아니라 여러 날 계속됩니다. 과부는 남을 물고 들어 간 것도 아니고, 다른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재판장에게 정당하게 재판을 하여, 자신이 누릴 권리만을 되찾아 달라고 강청을 합니다. 이 재판관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불의한 사람이었고, 재판을 자기의 이익을 따라서 자기 편한대로, 자기 좋은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고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불의한 재판관이 마음을 바꿉니다. 과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이 과부가 끝없이 자신을 찾아와 귀찮게 할 것 같으니, 나의 편안함을 위하여 과부의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재판관은 과부의 억울한 사정을 안타깝게 여기고, 공의를 세운다는 입장에서, 과부의 요청을 들어준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을 벗어나기 위해서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로 말씀한 이유는 불의한 재판관도 강청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데, 하물며 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 왜? 여러분의 강청하는 간구를 안 들어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자녀 된 여러분이 간절하게 간구한다면 자비하신 주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중요한 표현은, 과부가 끈질기게, 그리고 자주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판관이 과부에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문제를 해결 받겠다는 강한 의지가 중요합니다. 해결 받을 때까지 계속 문을 두드려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복을 주시는 통로가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어야만 여러분이 잘 됩니다. 여러분이 복을 받으려면 주님께서 하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이 기도하는 이유는 하늘 문을 열고 닫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 에스겔은 겔 36:37-38절에서 예언하기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이제 나는 다시 한 번 이스라엘 족속을 시켜서 내게 도움을 간청하게 하겠고, 그들의 인구수를 양 떼처럼 불어나게 하겠다. 성회 때마다 거룩한 제물로 바칠 양 떼가 예루살렘으로 몰려들듯이, 폐허가 된 성읍들이 사람들로 가득 차게 하겠다.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 예언자 에스겔의 예언 가운데,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이제 나는 다시 한 번 이스라엘 족속을 시켜서 내게 도움을 간청하게 하겠고,’란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은 이미 야훼의 약속이 있었을지라도, 야훼는 당신의 자녀가 당신에게 간구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훼의 말씀은, 복을 줄 준비가 내게는 이미 되어 있으니까, 내가 이미 준다고 했을지라도, 너희가 다시 한 번 내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 자녀의 간절하게 요구하는 기도를 듣고 싶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신자의 삶을 살펴보면, 주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해서, 어려움과 환난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믿음 때문에 억울한 말을 듣기도 하고, 할 말을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당한 어려움 때문에 기도할 때, 살아 계신 주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다는 점을 이 시간 분명하개 깨닫고 믿는 여러분이 되기 바랍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모세처럼 다윗처럼 엘리야처럼 가장 위기라고 판단 될 때에, 오히려 오직 주님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획신을 가지고 응답을 받을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끈질긴 기도가 응답의 역사를 일으킨다는 점을 확신하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끈질긴 기도는 불의한 재판관까지도 마음을 고쳐 먹게 합니다. 본문 5절에서 불의한 재판관은 말하기를, ‘이 과부가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니, 그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 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자꾸만 찾아와서 나를 못 견디게 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불의한 재판관이 과부의 청원을 들어주는 이유는, 과부가 끈질기게 자신을 번거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과부의 요구를 무시하면, 늘 찾아와서 자기를 괴롭힐까봐, 그런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과부의 억울함을 해결해준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간절하게 기도할 때 일어난 표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전도자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귀신이 들려서 점을 치는 여인을 온전하게 해준 연고로 고소를 당하여 관리에게 끌려가서 유대인이라고 재판도 없이 매질을 당하고 착고에 채인채로 깊은 감옥에 갇힙니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낙심하지 않고, 시비와 원망도 하지 않고, 밤이 깊어가도록 쉬지 않고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서, 옥의 터전이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바울과 실라를 묶었던 착고가 풀렸습니다. 이 표적으로 빌립보 감옥의 간수와 그의 가족이 모두 예수를 믿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기도하자 3년 6개월 동안이나 오지 않던 비가 옵니다.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앗시리아의 왕 산헤립의 항복 권유문서를 들고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자, 하루 밤사이에 앗수르 군대 십팔만 오천명을 죽었습니다. 지도자 여호수아가 기도했을 때에 하늘의 태양이 가던 길을 멈추었습니다. 
사랑하는 마포중앙교회 여러분! 이 모든 표적은 성경 읽는데 재미있으라고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성경의 기사는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울의 하나님, 엘리야의 하나님, 히스기야의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의 하나님입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이 할 일을 이루기 위하여, 어려워도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면서 감당하기 바랍니다. 

기도는 유창하게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여러분의 앞에 있는, 삶의 어려운 현실을 가지고, 그리스도 예수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와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크게 보는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에게 구하지 못합니다. 구하지를 않습니다.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은 예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무릎으로 사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예수에게 발견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세요. 믿음의 사람과 세상에 속한 사람과의 대결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430년간 노예생활을 하다가 야훼의 능력으로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지도자 모세와 파라오의 대결에서 모세가 승리합니다. 유다지파에서도 베들레헴 에브라다란 한 촌에서 나고, 성장한 목동인 다윗과 블레셋의 가드란 성의 용장 거인 골리앗과의 대결에서는 다윗이 승리합니다. 페르시아 제국에서 총리대신이었던 다니엘과 다리우스 황제와의 대결에서는 다니엘이 이깁니다. 수산성 성문지기이자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인 에스더의 아저씨인 모르드게와 총리대신인 아각 사람 하만의 대결에서는 모르드게가 승리합니다. 진정한 결말은 인간의 눈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편이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간절하게 응답받을 줄 믿고 기도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생여정에서 행복한 시간은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그리스도인을 권세와 물질과 힘을 가진 세상 사람이 감당하지 못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인이 하는 기도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도의 원리 가운데 중요한 것은 기도하지 않으면 주님께서도 어떻게 해 주실 수가 없고, 해주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기도자가 가져야만 할 자세는 간절함입니다. 기도할 때에는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의 악순환과 선순환이 있음을 항상 유념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면서 본문 8절에서 결론적으로 교훈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라고 하십니다.  

이상하게도 많은 신자들이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응답을 받지 못하니까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은 기도하지 않으니까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의 악순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께서는 권면하기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합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쉬지 않고 기도하면 감사의 조건이 생깁니다. 감사의 조건이 계속되면, 항상 기쁨이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기쁨이 없고, 원망과 불평, 두려움과 염려만 가득하다면, 자신의 신령상 형편을 살펴보세요, 지금 그런 분은 기도를 쉬고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 세상의 염려라는 구름이 몰려오고, 시비와 원망이라는 그림자가 덮이는 것입니다. 항상 문제는 나에게 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항상 기뻐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선순환(선한순환)이라고 합니다.

나사렛 예수께서 머리가 된 공동체인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고, 교회는 만민이 복능 받게 하는 복의 근원이 되는 공동체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만민에게 복을 주는 손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역대기 기자는 대상 29:12절은 말하기를, ‘부와 존귀가 주께로부터 나오고, 주께서 만물을 다스리시며,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잇으시니, 사람이 위대하고 강하게 되는 것도 주의 손에 달렸습니다.’라고 합니다.

신자라면 자신의 삶을 전능하신 주님의 손에 맡겨야만 합니다. 주님의 손에 자기의 삶을 맡긴 사람은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약한 것 같아도, 실로 살아 계시고 전능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도움이 항상 함께 합니다. 그래서 신자의 삶은 겉으로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지혜로운 자로 남을 수 있고, 슬기롭고 복되고 영광스러운 자로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니까 신자에게 마지막날까지 필요한 것이 있다면 믿음입니다. 다른 것들은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인이 마지막까지 붙잡아야 하는 것이 바로 나사렛 사람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고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으로 검증됩니까?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음은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검증된다는 점을 이 시간 분명하게 깨닫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믿음은 큰 믿음이 아닙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입니다. 작은 씨 가운데 하나인 겨자씨만하여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 생명이 있는 것을 믿는 믿음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험악한 세상에서 살면서,  과부처럼 답답하고 억울한 일을 만날지라도 낙심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여러분 모두가 이 땅에서 삶이 다하는 날까지 날마다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부르고, 그리스도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을 믿고 의지하면서, 기도하고, 주님께로부터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늘상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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