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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의 창조적 힘 (약 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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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창조적 힘 (약 3:2-1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중략)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야고보서 3장 2∼12절

성경은 온 세상의 천지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고 기록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돼 오신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몸으로 오신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말을 통해 우리의 환경을 다스리고 창조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입술의 말이 우리의 환경을 만들어갑니다. 현재 우리의 삶에 일어나고 있던 것들은 과거에 우리가 말했던 것들이 현재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현재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미래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과 우리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말은 영적인 능력을 지닌 공기의 진동입니다. 이러한 진동으로 물의 분자를 변화시켜 놓는다는 실험 결과도 있었습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의 저자인 일본의 과학자 에모토 마사루는 “말에 따라서 컵에 담아 놓은 물의 분자가 파괴되기도 하고 분자가 아름다운 결정체로 형성되기도 한다”고 자신의 실험결과를 말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 60%이상이 물입니다. 그러므로 물의 분자는 말에 따라서 변화가 되므로 우리의 건강도 말에 따라 변화가 될 수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를 얻은 것입니다. 

다도가 김의정 씨는 「마음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책에서 “입 속의 도끼를 버려라.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 때 입 안에 무서운 도끼를 물고 있다. 그 도끼로 스스로의 몸을 찍어댈 뿐만 아니라 세상을 더럽히는데 그것은 입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쁜 말 때문이다”라고 말하였으며, 공기업인 한창희 씨는 「혀, 매력과 유혹」이라는 책에서 “말은 그 말에 해당하는 것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은 병을 낫게도 하고 병에 걸리게도 합니다. 말은 부자가 되게도 하고 가난뱅이가 되게도 합니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우리는 과거에 말한 대로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아니 이 시간에 어떤 말을 하느냐가 미래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말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당연히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라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말의 창조적인 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야고보가 정의하는 말의 영향력

야고보 사도는 “말이 온 몸을 다스리며, 우리의 운명을 다스린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혀는 달리는 말의 입에 달려있는 재갈처럼 온 몸을 움직이며, 물속에 있어 눈에 보이지 않지만 큰 배의 방향을 조정하고 움직이는 작은 키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입을 통해 나오는 있는 말은 작지만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운전해간다는 것입니다. 
 
혀는 불과 같다고도 합니다. 지옥 불로 태우는 듯한 혀를 가진 사람이 우리 모임 가운데 있으면 모임을 완전히 파괴해 버리고 맙니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불씨가 결국에는 온 도시를 태우는 큰 불이 될 수 있는 불행을 가져오는 것처럼 사람이 하는 말도 그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별 볼일 없는 말 같지만 부정적인 말을 하고 흉보는 말을 해서 온 사회와 국가가 들끓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혀를 길들여야지 우리가 혀를 길들이지 아니하면 쉬지 않는 악이요, 사망의 독이 가득한 혀요, 찬송과 저주, 단물과 쓴물을 내는 이중적인 요소가 되고 맙니다. 우리는 혀를 밥 먹을 때 입속에 음식을 고루고루 섞으며 맛을 보여주는 혀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그 혀가 우리 운명을 좌우하는 일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의 혀를 가지고 두 가지 영향을 나타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은 우리 신체에도 영향을 미쳐서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아플까」의 저자인 대리언 리더와 데이비드 코필드 박사는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 근거해 병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병에 잘 걸리는 이유는 바로 그 사람 말을 들어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즉, 관절염에 걸리는 사람들은 관절염을 가져오는 말을 자주하고, 암에 걸리는 사람들은 암을 유발하는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의 성격에 따라서 그 육신의 병들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은 밖에 나가서 남에게도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에게도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3장 8절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는 성경 말씀을 입술로 고백하며 자주 외우고 그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면, 악한 세상으로부터 들어오는 수많은 부정적인 말과 생각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중심을 잡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너무나 요란스럽고 흐트러진 생각과 일들이 많아서 중심을 잡기가 힘들며 세상으로 끌려 들어가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중심을 십자가로 ‘꽉’ 붙잡아 놓고 세상이 우리를 흔들지 못하게 해야 진정으로 승리하며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은 중심을 스스로 잡아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중심을 잡고 십자가를 단단히 붙잡고 나가야 됩니다.

2. 4차원의 영성과 말의 영향력

우리는 먼저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다. 다윗이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은 생각을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는 불가능하다. 저 골리앗을 이길 수 없다. 그는 나면서부터 장사이며 장군이다”라고 이렇게 말할 때, 다윗은 17살쯤 되는 초립동이 소년이었는데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각에 하나님을 더하여 생각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4절로 35절에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라고 기록합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에 보면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고 외치며 나아가서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바라보고 사물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면 우리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을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바라보는 척도가 다르고 말이 다릅니다. 우리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별 볼일 없는 존재로 보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대단한 존재로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필요로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지라, 사랑은 사랑할 대상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대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스스로 혼자 이 세상에 버려졌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만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제자인 빌립에게 “너희들이 이들에게 떡을 주라”고 했을 때, 그는 예수님을 빼놓고 생각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에 예수님을 플러스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는 ‘우리 주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자도 있게 하시고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예수님이라면 하실 수 있으실 거야’라고 마음속에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플러스해서 생각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빌립은 자기 혼자서 그 일을 감당한다고 생각했지만 안드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나와 예수님만 의지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사하시고 기도하고 나눠주시자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우리도 안드레와 같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에 예수님을 더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기적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할 수 있습니다. 빌립처럼 되지 마십시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혼자 계산해서 어떤 일에 대처하지 마십시오. 도저히 인간적인 생각으로 불가능하더라도 성경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알 수 없는 일을 보여주겠다”라고 말씀하셨으며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누구든지 이 산들에 명하여 바다에 던지라 하고 그 말한 것이 이룰 줄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성경 말씀을 쓸데없이 준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같이 동행하시며 도와주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중에도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붙잡고 매달리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으로도 산을 바다로 던지면 된다고 했으니 보통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굉장히 힘이 강합니다. 그러므로 상상과 꿈을 가질 뿐 아니라 믿음을 마음속에 가지고 행하면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환경 변화의 씨앗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제 그 믿음을 가지고 입술로 고백하며 말해야 합니다. 그렇게 믿음을 가지고 자꾸 말을 하면 그 믿음의 고백과 선언이 승리의 바람을 일으킵니다.

민수기 14장 2절과 28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고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이 자신의 귀에 들린 대로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할 때 아무도 듣지 않는 것 같아도 지금도 듣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든 어디서든 우리의 말을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긍정적인 말이든지 부정적인 말이든지 우리가 한 말 그대로 행하십니다. 신약성경에는 더 쉽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매고 풀수 있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입술의 말로 매고 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하나님께서 듣도록 해야 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고백한 말이니,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대로 이뤄 주십니다.

열 두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을 때 그들이 본 것들은 같았으나 말은 서로 달랐습니다. 열 명은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와 같다”고 말했고,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바라보고 생각하는 믿음으로 하는 말은 다릅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바라본 그대로 말한 것이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으로 고백하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을 가지고 믿음의 말을 할 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3. 말의 창조적 힘

잠언 18장 21절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기록합니다. 또한 잠언 12장 18절로 19절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4장 29절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은 상대방에게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수도 있습니다. 

말은 창조적인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도와주고 싶은 사람에게는 한 가지 말을 계속하게 했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그 사람의 이름을 바꿔 주시는 것입니다. 자손이 없었던 아브람을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아브라함’, 즉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바꿔 부르게 하셨고, 그의 아내 사래는 ‘사라’, 즉 ‘많은 사람의 여주인’으로 부르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의 이름을 바꿔 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 이름을 불러주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부를 때 그렇게 불러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는 믿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으로 없는 자식을 있는 것처럼 반복해서 불렀더니 결국 아들 이삭을 얻었고, 그 이삭이 야곱을 낳았고, 그 야곱이 열 두 아들을 낳았고, 그들이 번성하고 번창하여 오늘날 이스라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그 이름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요, 많은 사람의 여주인’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말을 바꾸는 것은 반드시 효과가 있습니다. 야곱을 이스라엘로 만드신 하나님을 보십시오. 창세기 32장 24절로 28절에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고 기록합니다. 

야곱은 사기꾼이라는 뜻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긴 자’입니다. 이렇게 이름을 통해 야곱도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름을 바꿔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지을 때 잘 지어야 됩니다. 이름을 잘못 지어 놓으면 사람들이 그 이름을 자꾸 말로 부르게 돼 그 이름이 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7절에서 19절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라고 기록된 것처럼, 신약성경에도 예수님께서 ‘갈대’인 시몬을 ‘반석’인 베드로로 이름을 바꿔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을 받고 초대 교회의 중심인물이 되었습니다. 진정으로 교회의 반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셨으며, 복된 이름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죄인’이었던 우리는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용서받은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치료받은 건강한 사람이 되었으며, 우리는 축복받은 부자가 된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천국에서 영생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의 이름이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십자가의 능력으로 이름부터 바뀐 근본적으로 달라진 존재입니다.

우리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말을 하면 그 즉시로 마귀의 수족이 되고 맙니다. 우리의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말을 통해 마귀는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소리 내어 암송하고, 크게 외치면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말은 대화의 수단일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환경을 창조하는 수단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드셨기 때문에 항상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만물을 다스리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입술의 ‘말’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모든 환경과 매일의 생활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그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그 무엇보다 우리의 입술의 말을 다스리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입술의 말이 우리가 생각을 풀어놓고, 꿈을 풀어놓고, 믿음을 풀어놓고, 창조적인 능력을 풀어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백하는 말을 통해 우리가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 있고 아래 있지 않게 하시고,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과 승리의 말을 허락하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축복과 승리의 말을 할 권리와 근거가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를 통해 우리가 변화된 말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얻었음을 알고 항상 그 은혜를 체험하고 실천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가 죄인에서 의인으로, 버림받은 자들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병들고 가난한 사람에서 치료받고 복받은 사람으로 그리고 천국의 백성으로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의 입술을 통해 고백되는 모든 말들이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말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말이 되도록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기 원합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믿음의 고백을 통해 생각과 꿈, 믿음과 창조적인 능력을 체험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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