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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좋은 선물 (엡 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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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선물 (엡 2:8-10)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페르시아에 백성들로부터 사랑 받는 지혜로운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들을 진심으로 아꼈으며 그들을 위한 최선책만을 고집했습니다.  페르시아 백성들은 왕이 자기들의 일에 친히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자신의 결정이 백성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왕은 주기적으로 변장을 한 채 거리를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시각에서 인생을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왕은 가난한 촌부 차림으로 대중 목욕탕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웃과 정담을 나누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목욕물은 지하실에 있는 아궁이에서 데웠는데 물이 식지 않도록 불을 돌보는 화부가 그곳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왕은 쉴 틈도 없이 불을 돌보는 화부를 만나려고 컴컴한 지하실로 내려갔습니다.
  
왕은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그 외로운 화부의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다음 주에도 또 그 다음 주에도 왕은 그 화부를 만나러 갔습니다.  화부는 자기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 준 손님에게 금방 정을 느꼈습니다.  그 누구도 그에게 그런 관심이나 배려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왕이 자신의 정체를 밝혔습니다.  혹시나 화부가 왕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풀어 달라거나 선물을 달라고 청할까 봐 우려했는데  화부는 전혀 그런 요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화부는 의아해하는 왕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이 어두컴컴한 지하 감옥에 있는 소인과 같이 앉아 계시려고 안락한 궁궐과 권좌의 영화를 비우셨습니다.  맛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음식을 드시고 제가 어떤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지에 대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 호사스러운 선물을 하사하셨는지 모르지만 폐하께서는 저에게 그 어떤 것 보다 소중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바로 폐하의 마음을 주셨으니까요."

하나님께서도 바로 이렇게 소중한 선물을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고자 하십니다. 이 선물은 여러분의 오늘을 바꿀 뿐 아니라 내일까지를 바꾸는 선물입니다. 죄에 얽매인 과거에서 해방시키고 현재를 감사로 바꾸며 미래를 희망으로 채우는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받으면 마음의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기쁨과 평화를 누립니다. 이 선물을 받으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 선물은 우리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며 더 가치있고 소망찬 삶을 살게 합니다. 이 선물이 무엇일까요? 이 선물을 가리켜 성경은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이 구원의 선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8)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이란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선물을 줍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그냥 주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하면 무조건 주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선물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보통 선물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가장 좋은 것으로 주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유익한 것으로 선물하고 싶어서 찾아낸 것이 구원이라는 선물입니다.  

구원은 우리를 모든 죄에서 사함받고 깨끗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죄인이었던 사람을 거룩하고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을 뵈올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풍성한 사랑을 받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신분을 변화시켜줍니다.
  
구원은 우리를 지배하는 악한 사단과 귀신의 권세로부터 해방시켜주어 자유롭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불행의 근원인 마귀의 모든 저주에서 풀려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축복을 누리고 행복하게 살도록 운명을 바꾸어주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와 우리의 모든 것을 삼킬 때에도 우리에게 영생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건강과 행복했던 시간 심지어 생명을 다 삼켜버리는 죽음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세상에 살며 불완전한 행복을 맛보며 살던 우리에게 완전한 세상인 천국으로 인도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며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합니다. 

구원은 사람의 행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선행을 많이 베풀었다고 상으로 받을 수도 없습니다.  양심적으로 살앗다고 윤리적으로 반듯하게 살았다고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종교적으로 공을 많이 쌓앗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만약에 구원이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여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앞에 가면  업신여기고 자랑할 것입니다. '나는 착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구원받았는데 너희들은 형편없어서 하나님이 구원해주시지 않았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에서 구원의 근거를 찾지 않으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근거를 정하십니다.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며 다른 것을 기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나오면 부자되게 해 주시겠지 하고 기대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건강하게 해주시겠지 하는 기대를 가진 분도 있습니다. 높은 자리를 주시겠지 하는 기대를 품은 분도 있습니다. 자녀가 좋은 학교에 들어가게 도와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런 기도도 들어주시고 자주 그런 복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이루어져도 처음에는 좋아하다가 한 달도 못가 또 다시 불만하고 다른 욕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은 다릅니다. 가장 좋은 복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완벽한 결정체로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확실하게 맺어집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가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뿐만 아니라 구원은 그 누구도 훔쳐갈 수 없는 선물입니다. 시간이 흘러가도 낡아지거나 색이 바래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새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마음것 누릴뿐 아니라 저 세상에도 가지고 갈 수 있는 선물입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주어 행복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구원의 선물을 다 받아 백 배나 더 행복해지시기 바랍니다. 

  
2.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8)

오늘 읽은 말씀에서 성경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엡2:8)라고 했습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호의"를 뜻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인간에게 은혜를 주시고자 하십니까? 성경은 하나님이 자비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엡2:7을 읽어보십시오.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죄인된 인생을 불쌍히 여겨주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구원을 선물로 주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어느 날 밤 진영을 순시하러 나왔을 때에 한 보초병이 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보초병은 너무 피곤하여 졸다가 그만 무기를 떨어뜨리고 쓰러졌습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무기를 들고 대신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습니다. 조금 후에 그 보초병이 깨어나 무기가 없어진 것을 알고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나폴레옹은 보초병에서 무기를 건네 주면서 "너 한 사람이 직무를 감당치 못함으로 인해 네 동지가 얼마나 쓰러지며 나라가 얼마나 해를 받겠는가 생각하여라. 특별히 이번만은 용서해 줄 터이니 다시는 졸지 마라."며 자리를 떠나갔습니다.

그때에 보초병은 죽을 줄 알았으나 용서해 준다는 말에 너무 감격하여 나폴레옹의 충복이 되기를 결심했습니다. 그 군인은 언젠가 나폴레옹이 위험에 빠져 있었을 때에 자기의 생명을 걸고 나폴레옹을 구출해 준 훌륭한 군인이 되었습니다.

은혜란 이처럼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인데 죽이지 않고 용서하여 살려주는 것이 은혜입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누구는 구원하여 주고 누구는 멸망받도록 하느냐?고 불공평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로 인하여 멸망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은혜로 살려주시고 영생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1700년대 중엽 영국에 한 노예상인이 살았습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다 노예로 파는 노예상인이었습니다. 그는 노예를 인간 취급도 안하고 경멸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느날 성경을 우연히 읽다가 자기가 노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죄의 노예가 되어 죄에 끌려 다니던 인생을 살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죄를 대신 질머지고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합니다. 존 뉴톤의 이야기입니다. 구원받고서 자기가 용서받고 자유해진 영혼의 감격을 안고 찬송을 지어 불렀는데 오늘까지도 많이 사람들이 자주 부르는 유명한 찬송이 되었습니다. 

(찬405장)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죄사함 곧 구원의 선물이 은혜로 주어졌음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공짜로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구원은 결코 싸구려 공짜가 아닙니다. 비싼 공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 사함 받기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으로 비싼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비싼 구원이 은혜로,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3. 구원은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는 선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은혜로 내리시는 구원의 선물을 우리는 어떻게 받을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믿음으로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본문 8절에서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면 믿음이란 또 무엇입니까? 한 신학자는 구원얻는 믿음을 가르쳐 "믿음이란 왕이신 하나님이 구원의 선물을 내리실 때 몸과 마음이 더럽혀진 거지와 같은 인생이 이 선물을 받고자 내미는 손과 같은 것이다."고 했습니다. 

거지가 손을 내밀어 선물을 받았을 때 그가 손을 내민 것을 공로라고 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왕이 선물을 하사했을 때 거지편에서 그 선물이 내게 필요한 것을 알고 손을 내미는 것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손을 내밀어 예수님의 용서의 선물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인도인을 구원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더 터커에게 힌두교 승려가 찾아와 자꾸 논쟁을 걸어왔습니다. 그는 승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종입니다. 논쟁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가지 그대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그대는 하루에 도대체 몇 번 정도 죄를 범합니까?"  

승려는 "글쎄요."라고 한마디 말한 채 잠시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하루에 다섯 번 정도입니까?" 승려가 대답했습니다.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열 번 정도입니까?" 
"아니 그보다는 많겠지요." 
"그러면 50번 정도입니까?" 
"그렇게 많이 범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요." 

이 말을 들은 터커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승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10번 정도 죄를 진다고 가정합시다. 그리고 30년을 사람의 일생으로 칩시다. 그러면 사람이 일생 동안 10만 번 가까이 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당신은 도대체 그 죄들을 어떻게 처치하렵니까?" 
  
승려는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 방법을 잘 모르겠습니다." 

터커는 마음속으로 '바로 이때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죄의 결말은 죽음입니다. 구주되신 예수님께서 그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나는 그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받았고 이제는 죄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가 휄릭스 멘델스죤의 한 작품을 연습하는데 잘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는 실망하여 악보를 챙겨 교회를 막 나오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낯선 사람이 교회에 들어와 뒷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낯선 사람은 오르간 연주자가 돌아가려고 하자 앞으로 나오더니 그 곡을 자기가 연주해 보아도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그는 퉁명스럽게 대꾸했습니다. "나는 아무도 이 오르간을 만지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도 그 사람이 두세번을 더 정중하게 부탁을 하자 연주자는 마지못해 허락 했습니다.
  
그 낯선 이는 자리에 앉더니 아름답고도 완벽한 음악으로 예배당 안을 꽉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연주가 끝나자 오르간 연주자가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저는 휄릭스 멜덴스죤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오르간 연주자는 하마터면 그 음악을 작곡한 사람이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것을 못하게 막을 뻔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너무 혼자서만 연주하려고 애쓸 때가 많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 오셔서 우리의 삶을 통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시려는 것을 막을 때가 많습니다.  마치 고집 센 그 오르간 연주자처럼 가장 좋은 선물을 주려고 찾아 오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이 우리의 인생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려는 것을 방해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려는 선물을 거부하지 말고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좋은 선물인 구원을 받아 누림으로 여러분의 인생이 최고의 작품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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