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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가 그니 기름을 부으라 (삼상 1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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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그니 기름을 부으라 (삼상 16:1-13)  

얼마 전 부산에서 두어 시간 떨어진 곳에 사시는 장로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오신 목적은 당신 교회에 목사님을 모셔야 하는데, 좋은 목사님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위해 세 번을 찾아간 <삼고초려(三顧草廬)>는 너무도 유명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찾아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넘쳐나는 것이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상황과 기준에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청춘남녀들은 결혼 상대를 찾고, 어떤 이들은 사업 파트너를 찾습니다. 이들은 종종 말합니다. <다 준비되었는데 옆에 서 줄 사람이 없어서 결혼을 못했어요!>, <일을 맡기려 해도 적당한 사람이 없어!>. 

<함석헌>선생께서는 <<성서조선>>을 함께 발행하던 <김교신>선생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정말 슬퍼했다고 합니다. <<성서조선>>은 일본에 나라를 잃은 현실에서 사랑하는 조국 조선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주기 위해 펴내던 잡지로서, 성산 <장기려>장로님 같은 분을 배출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김교신 선생의 별세에 즈음하여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여러분, 인생길에서 좋은 동행인들을 많이 만나길 기원합니다. 

우리만 사람을 찾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찾으십니다. 사람의 눈에 드는 것도 축복이지만, 하나님의 눈에 드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찾으시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베들레헴 마을로 보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을 찾아 세우게 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사울> 왕이 있었지만, 그가 하나님을 크게 실망시켜 드렸기에,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대신할 왕재를 찾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은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의 여덟 아들 중에 있었습니다.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베들레헴 이새의 집에 도착해서 아들들을 데려오게 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맏아들 <엘리압>에게 한눈에 반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이 반한 이유는 엘리압이 용모가 출중하고 키가 커서 장군감이요, 영웅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무엘의 생각은 오판이었습니다. 엘리압은 하나님께서 찾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7절을 읽어봅시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아멘! 용모와 키는 하나님의 관심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외면당한 이유는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압이 하나님이 마음에 둔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 사무엘은 <아비나답>, <삼마> 등 이새의 다른 아들들을 만나 보았으나, 그 중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인물은 없었습니다. 이 때 사무엘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는 이새에게 <다른 아들은 없느냐>고 물었고, 이새는 아직 막내가 남았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막내아들을 데려오게 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다윗이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미 식탁이 모두 차려져 있었지만, 다윗이 오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기다렸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과연 이제 도착할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 것인가?...>라고 생각하며 기다렸을 것입니다. 이새는 이새대로 <이럴 줄 알았다면 다윗을 일찍 불러 씻기고 옷이라도 깨끗하게 입혀둘 걸...>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날 이새가 다윗을 부르지 않은 이유는 우선 그가 어렸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울이 아직 시퍼렇게 왕좌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사무엘은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사람을 찾으러 왔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었기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왔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청했습니다. 아직 이십 세가 되지 않은 다윗은 기본적으로 제사에 초대받을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을 부르지 않은 또 한 가지 이유는 다윗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새의 여덟 아들 중 객관적으로 최고의 인재는 맏아들 엘리압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다윗까지 부르게 될 줄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머리칼이 흐트러지고, 옷매무새도 양털과 흙으로 범벅이 된 다윗이 들어섰습니다. 자신을 데리러 온 사람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하늘같이 존경하는 사무엘 선지자께서 오셨고, 널 데리고 오라고 하신다>는 말을 들었지만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사무엘은 그의 두 손을 붙들고,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것입니다. 초롱초롱한 두 눈, 발그레한 볼, 위아래를 여러 차례 훑어보았을 것입니다. 

그 때 사무엘의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12절 후반부를 보세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사무엘은 가지고 온 기름을 다윗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준비되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든 것에 대해 사도행전 13장 22절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라고 했습니다. 그 날 베들레헴 이새의 집에서 있었던 차기 왕재를 뽑는 하나님의 면접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입니다만,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엘리압을 택하지 않으신 이유의 반대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압을 택하지 않으신 이유는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기준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게 비해 다윗은 양을 먹이던 복장 그대로 초라하게 왔고, 아직 어려 키와 몸집이 엘리압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 마음이 하나님의 눈에 들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속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외모가 아닌, 마음을 가꾸시길 바랍니다. <이솝우화>에 <요술쟁이와 생쥐>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생쥐 한 마리가 요술쟁이의 집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는 고양이가 있었기 때문에 생쥐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요술쟁이는 생쥐를 불쌍하게 여겨 생쥐를 고양이 모양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개를 무서워했습니다. 요술쟁이는 생쥐를 개 모양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한데 이번에는 호랑이가 무섭다고 했습니다. 실망한 요술쟁이가 말했습니다. <너는 겉모양만 바뀌었지 속은 언제나 생쥐의 마음이니 가망이 없다. 다시 생쥐가 되어라!>  

외모와 환경과 여건이 볼품없다고 해서 기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외모와 환경에 매달리지 마십시오. 그것들은 상대적입니다. 엘리압의 큰 키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 앞에서는 돋보였겠지만, 골리앗 앞에서는 우스운 것이 되었습니다. 키가 170센티인 사람은 키가 150센티인 사람 앞에서 으스댈 수 있겠지만, 190센티인 사람 앞에 서면 금방 주눅이 들 것입니다. 외모만 바꾸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개혁과 성숙의 핵심은 마음의 변화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좀 생각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신다고 하면서도 정작 본문에는 다윗의 마음이 어떠하기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있는 다윗에 대한 언급은 12절에 있는 대로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는 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빛이 붉다든가, 눈이 빼어나다든가, 얼굴이 아름답다든가 하는 것은 외모에 대한 설명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마음이 어떠했는가를 알려면 다른 성경의 도움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 말씀이 사무엘상 17장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된 다윗과 선택되지 못한 엘리압이 가장 잘 비교되는 것이 17장입니다. 

17장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의 전쟁 기사입니다. 블레셋은 많은 군대를 동원했을 뿐만 아니라, 천하의 맹장인 <골리앗>을 앞세우고 왔습니다. 골리앗은 기골이 장대한 거인으로서 그를 당할 상대가 없었습니다. 골리앗은 <누구든지 나와서 나와 일 대 일로 겨루어 내가 이기면 이스라엘 모두가 블레셋의 종이 되고, 내가 지면 블레셋 모두가 이스라엘의 종이 되기로 하자>고 외치면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조롱했지만, 이스라엘은 사울 왕부터 모든 병사들이 기가 죽어 숨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바로 이 상황에서 다윗은 참전한 형님들을 위문하기 위해 전쟁터에 왔다가 골리앗의 무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다윗이 보인 태도에서 그의 형 엘리압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다윗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다윗의 마음에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나가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26절을 보면 이 대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사무엘상 17장 32절을 보면 다윗은 사울 왕 앞에서도 동일하게 말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 다윗의 마음은 골리앗 앞에서 뛰었습니다. 그의 조롱을 참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기꺼이 나가 싸울 용기가 있었습니다. 

또 다윗의 마음에는 모두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희생정신과 의지>가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나가서 싸워야 하고, 아무도 싸울 사람이 없다면, 나라도 나가겠다.>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아직 왕이 된 것은 아니었으나, 사울 왕도 꼼짝 못하는 상황에서 그가 골리앗을 향해 걸어 나가던 바로 그 때, 이미 그는 백성의 마음에 왕처럼 우뚝 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윗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비록 자신이 어리고 골리앗은 강하지만,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4절 이하에서 다윗이 사울 왕에게 하는 말을 보십시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짐승의 손에서 자신을 건지신 것처럼 골리앗의 손에서도 건지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짐승이나 골리앗이나 매일반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짐승에 대해서만 강하고, 골리앗 앞에서는 약해지는 분이 아님을 믿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강하시고, 자신을 건지실 분임을 믿었습니다. 다윗의 믿음은 사무엘이 그에게 기름을 부은 후에 비로소 생긴 게 아니라, 양을 먹일 때, 양을 지키기 위해 짐승과 맞서 싸울 때, 이미 그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형 엘리압은 어떻습니까? 사무엘상 17장 28절을 보십시오.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엘리압은 다윗을 꾸짖기만 했습니다. 그는 싸울 용기도 없었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도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패배감과 두려움만 가득했습니다. 

결국 다윗과 엘리압의 마음의 차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차이였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경외하니 위기에서도 그 분을 의지하게 되어 용기를 가지게 되고, 그 분을 경외하니 그 분이 모욕을 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이것이 바로 믿음의 힘이었습니다. 믿음은 외모가 작은 사람의 인생도 크게 만듭니다. 믿음은 겉이 초라한 사람의 삶도 아름답게 만듭니다. 믿음은 우리를 강자로, 영웅으로 만드는 힘입니다. 믿음이야말로 우리 영혼의 정원을 가꾸는 도구요, 믿음의 열매야말로 그 정원에 열릴 열매입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마음을 가꾸길 원합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했고, 하나님께서는 늘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본문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아멘! 

그 이전부터도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살던 다윗은 그 날 이후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였습니다. 그가 골리앗에게 나갈 때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갔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을 보면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13절 맨 마지막 문장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암시를 줍니다.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이 의미가 무엇일까요?  사무엘은 다윗 곁을 그 후로 사무엘과 다윗은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사무엘이 다윗을 도운 적도 없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에도 사무엘은 다윗을 차기 왕으로 지지한다고 성명서 한 장 발표한 적이 없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도, 전쟁의 승리자가 된 것도, 사울의 손에서 피할 수 있었던 것도, 시련을 뚫고 왕이 된 것도 순전히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 결과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마음을 가꾼 사람들을 어떻게 책임지고 도우시고 축복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마음을 가꾼 사람들을 택하시고,  함께 하시고, 도우십니다. 그러면 그들은 <나의 승리는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압처럼 자신의 뛰어난 외모와 자질을 자부하는 사람은 <내 힘으로 이겼다>고 말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마음을 가꾸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다윗과 함께 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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