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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든 성경은 (딤후 3: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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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은 (딤후 3:16-17)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이 한마디의 말씀이 사람들에게는 논쟁거리가 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 여기에는 우리가 받은 신앙을 각종 논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반드시 숙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학자들은 말하기를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이 문자로 기록되어 성경으로 우리에게 있게 된 일이라고 했습니다.

전 우주와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과 계시를 사람들이 쓰는 문자로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모든 성경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주어진 신구약 66권 전부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 『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고 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장 2조에 『 이 모든 책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신앙과 생활의 법칙 』이라고 했습니다. 

장로회 12신조 제 1조에는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한 법칙이라고 했습니다.

이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 written)이라고 했습니다(1장 2조).
벨직 고백에서는 그(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이라고 했습니다(제 2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성경 스스로가 자증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4장 4절에 『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 1장 1절에 『 여호와께서…가라사대 』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3장 21절에 『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라고 했습니다. 

마태는 이사야 7장 14절을 인용하면서 『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 』이라고 했습니다(마 1:22).

호세아 11장 1절을 인용할 때도 『 주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바 』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성경에 쓰기를 혹은 기록한 바와 같으니, 일렀으되, 성경에 일렀으되와 같은 말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 기자에게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선지와 사도들은 성경과 하나님을 분리시키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롬 9:17),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갈 3:8)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과 하나님을 동일시하였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전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살전 2:13). 베드로전서 1장 11-12절, 베드로후서 3장 2절에, 사도들이 선지자와 같은 권위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들이 쓴 것은 모두 성경으로 인정되었습니다(요 20:31; 살후 2:15; 고전 14:37).

베드로는 바울의 편지를 성경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누가복음에만 있는 말씀을 구약과 함께 인용했습니다(벧후 3:16, 딤전 5:8).

사도행전 1장 16절에 『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행 28:25). 성경은 선지자나 사도들이 말했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인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감동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을 저자(Auctor Primarius)라고 부르며 성경기록에 사용된 사람들을 제 이 저자들(auctores secundarii) 또는 인간 저자들이라고 부릅니다. 

cf. A greijdanus, schriftbeginselen ter schriftverklaring(KamPen iJ H, Kok, 1946) 7. 45f,(개혁주의를 말한다 개혁주의 성경관 변종길 역)

성경의 기자는 여러 사람이고 권수로 66권이나 되지만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모순이 없이 통일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34장 16절에 『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고 했습니다.

Ⅱ.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 입니다.

본문 3장 16절에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모든 성경은 신구약 66권이라고 했습니다. 『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라는 말은 데오프뉴스토스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 호흡하시는 의미로 사람이 하나님의 생기로 생령이 된 것 같이(창 2:7) 성경의 말씀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 3장 16절의 『 하나님의 감동 』(God-breathed)과 요한복음 1장 18절에 하나님의 품속(The bosom) 이 모두는 다른 대용품이 없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최고 최귀의 표현입니다.

앞에서 『 하나님의 감동 』으로 된 이란 단어가 말해주듯이 하나님에 의해 불어 넣음 받은(inspired by God)이란 뜻입니다. 

이 단어는 수동태적 의미로서 기록당시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기록자를 감동하셔서 그가 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개혁주의를 말한다 성경의 영감 변종길 역).

인간 저자들은 성령에 의해 강력하게 인도되고 조종되었습니다. 따라서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오류가 없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하나님의 본래의 뜻입니다.

여기에 대해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 『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고 했습니다.

영감에 대해 루이스 고센(Louis Gaussen)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영감이란 하나님의 영이 옛날 성경저자들에게 주신 그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용한 단어까지도 지도하심으로 모든 오류에서 그들을 보호하신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했습니다.

영감에 대해 챨스 하지(C. Hodge)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정한 사람을 택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마음과 의지의 무오한 전달을 위해 하나님의 기구로 삼으신 성령의 감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기계적 영감이나 동력적 영감과는 구별되는 주장입니다. 

영감에 대해 워필드(B. B. Warfield)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령께서 성경저자들로 하여금 신뢰할 수 있는 책을 저술하게 하신 그의 초자연적인 감화라고 했습니다. 
영감에 대해 린젤(H. Lindesll)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선택한 인간의 마음에서 일하시며 그들로 하여금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쓰게 하시는 성령의 내적사역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성경학자들의 정의를 감안할 때 성경 전부는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인간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Calvin)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경을 경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스톤하우스(N. B. Stonehouse)는 성경은 신앙과 생활의 무오한 법칙과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 『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고 했습니다. 
성경을 기록하는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의 생애 전체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영감되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예언할 때, 혹은 성경을 기록할 때 성령께서 그들의 생각과 말, 혹은 쓰는 글을 친히 주장하셔서 글자 한자 한자에 이르기까지 무오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기록영감(graphic inspiration)이라고 합니다. 

성경의 영감(inspiration)은 성령의 조명(illumination)과는 구별됩니다. 성경의 영감은 시간적으로 성경기록 당시에만 있었던 특별한 성령의 사역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조명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서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단독사역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장 17-19절에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2장 27절에 『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고 했습니다.

성령이 각인의 마음에 밝게 비취어서 진리를 깨닫도록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있는 죄는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배척하고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타락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 있는 성직자들이 무오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감은 성경을 기록하는 기자나 성령의 특별한 역사로 말미암아 감동되기 때문에 무오합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성경이 기록될 때까지 시간적인 제한이 따릅니다. 개혁주의에서는 완전축자영감完全逐字靈感(verbal inspiration)을 믿습니다. 즉 성경글자 한자 한자에 이르기까지 영감 되었다고 주장하므로 성경사상에만 영감되었다는 사상적 영감론을 배격합니다. 

개혁주의자들은 성경전체가 영감되었다는 완전영감完全靈感(plenary inspiration)을 따르기 때문에 성경에 어떤 일부분만 영감되었다는 부분적 영감론을 배격합니다. 

개혁주의자들은 성경기록에 있어서 성령은 성경기록자의 전인격을 사용했다는 유기적 영감有機的靈感(organic inspiration)을 믿기 때문에 신적요소만 부각되고 인간적 요소를 무시하는 기계적 영감론(mechenical theory of inspiration)을 배격합니다. 


Ⅲ. 성경은 절대무오합니다. 

시편 119편 89절에 『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라고 했습니다.
성경무오에 대한 성경을 몇 구절 더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0장 35절에 『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7절에도 『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8절에도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고 했습니다.

여기 무오無誤(inerrancy)라는 말은 오류가 없다는 말입니다. 즉 성경이 사람을 속인다거나 그릇 인도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전적으로 신뢰할 만하다는 것입니다. 

디도서 1장 2절에 『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기록되는 것입니다. 만약 성경을 기록하는 기자들이 유오하다고 하면 우리 가운데 무오한 성경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하신 저자들을 자신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유기적인 방법으로 사용하시므로 오류가 없도록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역사학자 쉐퍼는 말하기를 교회가 강력한 절대성경관을 소유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교회가 서느냐 넘어지느냐가 결정된다고 한 말은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교회가 힘이 있을 때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뢰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경의 권위가 바로 하나님 말씀의 권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그렇게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대답하기를 성경자체가 그렇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산을 오르는 사람을 보고 당신은 왜 등산을 하느냐고 물으면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고 합니다. 이 말에는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지만 등산하는 사람의 내면까지 따질 수 없기 때문에 등산하는 사람들의 금언金言(생활의 본질이 될 만한 귀중한 내용을 가진 짧은 어구)이 되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믿는다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생략되었을 뿐입니다. 

성경을 믿는 것은 성경에 있는 말씀이 어떻게 말하든지 그 성경자체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라는 전제가 항상 진실하게 성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빙크(H. Bavinck)는 화육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낮아지신 연약한 사람이시지만 죄는 없으신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 의해 인간의 말로 기록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신적神的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말하기를 과학적 사실에 관계된 성경말씀도 언제나 참되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성경이 그런 일에 있어서 과학적학문의 술어를 사용하지 않고 통상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성경이 과학술어를 사용했다면 시대를 따라 변하는 과학처럼 변할 성격을 가졌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통상적 술어로써 영원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목사의 생애 전체가 영감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에 『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칼빈은 목사의 설교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목사가 설교할 때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헌법 예배모범 제 1장 주일을 거룩히 지킬 것.
④ 주일아침에는 개인으로나 혹 권속으로 자기와 타인을 위하여 기도하되 특히 저의 목사가 그 봉직하는 가운데서 복받기 위하여 기도하고…

제 2장 교회 회집과 예배시 행의行儀
① 경건한 모양을 지켜 자기와 목사와 그 참석한 모든 사람과 참석치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묵상기도로 복을 빌 것이다. 
② 목사가 낭독하거나 인증引證하는 성경 이외는 다른 것을 보지 말 것이요 목사의 복은 일차적으로 말씀 전하는 복과 기도 응답의 복입니다. 따라서 목사의 설교와 목사의 기도가 자기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와 병행해서 교인이 은혜가 충만할 때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뢰할 때입니다.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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