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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도:예배자여 복 있으라 (민 6:22-26, 고후 1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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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예배자여 복 있으라 (민 6:22-26, 고후 13:11-13)


I. 축도

설교가 늘 부담스러운 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총동원 주일 마을 주민들을 초청하여 숲속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립니다. 
목사님이 준비된 설교를 읽어내려 갑니다. 
그날 초청되어온 한 사람이 뒤에서 “안들려요” 큰소리를 질렀습니다.
역시 새로 나온 주민 한분이 앞에서 뒤를 보고 외쳤습니다. 
“차라리 안듣는게 나아.” 

예배에서 설교는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설교를 듣기 위해서만 교회에 오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예배 마지막 순서인 “축도”를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린이주일 담임목사가 어린이 예배에 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젊은 교육전도사가 하는 설교보다 재미 있을 리가 없었지요.
예배를 마치며 목사님이 축도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보니 목사님이 손을 번쩍 들고 기도를 합니다. 
한 아이가 친구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목사님은 왜 손을 들고 기도를 하지?”
“바보야, 목사님이 설교를 못해서 손들고 벌서는 거야!”

축도는 예배하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에 손을 들고 벌 서는 것이 아니라 축복하는 것입니다. 
축도는 하나님의 복을 선포하는 강복 선언입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은 제사하는 백성들에게 축복을 선언했습니다. 
그 내용이 민수기 6:24-26절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신약시대에도 예배하고 나아가는 교우들에게 목사는 복을 선언합니다. 
그 내용이 바로 고후 13:13에 나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제가 어떤 때는 민수기 아론의 축도를 하고 어떤 때는 고린도후서 바울의 축도를 합니다. 혹시 언제 아론의 축도를 하고 언제 바울의 축도를 하는지 아십니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게 그날 설교 본문이 구약이면 아론의 축도를 하고 그날 설교 본문이 신약이면 바울의 축도를 합니다. 

문제는 고린도후서 13:13 이 말씀으로 축도를 할 때 마침 문장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두고 교단 안에서 말이 참 많았습니다. 
목사님들은 성경대로 “~ 있을지어다”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장로님들은 젊은 목사가 어른들이 많은 자리에서 “~지어다”라고 하는 것이 한국문화에 맞지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원문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모두와 함께”입니다. 그래서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꼬리를 떼고 이대로 합니다. 
그런데 우리 말에는 “~있을지어다” 하든지 “~축원하옵나이다” 하든지 
동사형 마침 문장이 있어야 문장 완성이 되는 겁니다. 

교단의 입장없이 제 개인에게 자유롭게 결정을 하라고 한다면 성경 원문대로 축도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이렇게 복을 선언하는 겁니다. 

축도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돌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친히 내리시는 복입니다. 교우들은 세상에서 살아가다 보면 죄에 오염되기도 합니다. 
가슴 아픈 상처를 견뎌내기도 합니다. 근심 걱정의 무거운 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돌아가게 됩니다.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론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너를 지켜주신다.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평강을 주신다”고 선언하도록 한 것입니다. 

신약교회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교회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자리에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교통입니다. 

II.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가 되어 살아갈 때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 그들을 구출해 냅니다. 이름하여 영광의 탈출 – 출애굽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이유, 목적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 하나님께 예배하는 백성을 만들기 위해서 였습니다. 

신약 교회에서 구원얻은 천국백성들이 해야 할 가장 큰 의무는 예배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복도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사업보다 우선됩니다. 
돈 버는 것보다 우선되는 일입니다. 밥 먹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어떤 희생, 어떤 댓가를 지불하고서라도 
먼저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배하고 하나님 앞을 떠나 갈 때에 하나님은 천국가는 그날까지 세상에서 승리하도록 복을 주시는데 그것이 축도입니다. 

예배하고 나아가는 백성들에게 주시는 첫 번째 복이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은혜”로 번역된 구약의 하난 ( הוח )이란 말이나 헤세드 ( חַסְדֵּ )는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호의나 은총을 말합니다. 
신약의 카리스(χαρις)나 카리조마이(χαρζομαι)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말합니다. 
그래서는 은혜는 하나님께서 받을 자격없는 인간에게 값없이 거져 주시는 
복된 선물을 말합니다.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찬송 둘이 있습니다.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하는 찬송과 
305장 amazing grace –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워 하는 찬송입니다.
공교롭게도 둘다 “은혜”를 노래하는 찬송입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죤 뉴톤의 시입니다.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와 시장에 팔던 노예상 뉴톤이 모진 풍랑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구원받은 은총이 너무나 놀랍다고 노래한 것입니다. 저주받고 버림받아 마땅한 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사실이 은혜라는 겁니다. 

305장 

1절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절 큰죄악에서 건지신 주은혜 고마워 나처음 믿은 그시간 귀하고 귀하다
3절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절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찬양하리라 아멘

하나님은 예배하고 나아가는 자녀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을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죄 많은 나를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셨다. 이 감격, 이 기쁨, 이 자신감, 이 은혜를 가지고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Sola Gratia - 오직 은혜를 종교개혁신학의 모토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오직 은혜로 구원받아 은혜로 살아갑니다.
젊은 시절 - 지금도 젊습니다만 지금보다 조금 더 젊은 시절 어르신들께 묻습니다.
· 어떻게 이처럼 교회가 부흥되었습니까? 모두가 다 은혜지요.
· 이 연세에 어떻게 이토록 건강하십니까? 하나님의 은혜지요.
·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삽니다.

그때는 이 말씀이 입에 발린 형식적인 대답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제게 동일한 질문을 한다면 동일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지요.
· 내가 잘나서 이루어진 것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 오늘이라도 하나님이 안도와 주시면 실패할 수 밖에 없는게 인생입니다.
그래서 예배자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기를...”하고 복을 선언하는 겁니다.

III. 하나님의 사랑

예배하고 예배당을 떠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두 번째 복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하늘과 땅, 금생과 내세의 주인이요 왕이십니다. 그토록 높고 높으신 그분이 사랑받을 자격도 가치도 없는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합니다. 
· 우리의 삶이 거룩하고 고상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 학식과 덕망이 높아서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내가 만약 하나님이라면 이 세상 사람들의 죄악이 너무 추하여 사람들 머리위에 하늘의 불을 내려 멸하였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인간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복음의 요약이라 일컬어지는 요한복음 3:16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즉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여 소 한 마리를 보낸 것이 아닙니다. 
·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여 금반지 하나를 보낸 것이 아닙니다. 
·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여 아파트 한 채를 보낸 것이 아닙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 그분이 내 죄를 지고 죽으시고 나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 내 구원의 값이 얼마나 됩니까? 
  예수님을 지불하고 나를 사셨습니다. 나는 예수짜리 인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하고 돌아가는 성도들에게 약속을 하십니다. 
· 얘들아, 독생자 예수를 주고 너를 내가 샀다.
· 나는 너를 버리지 않는다. 
· 세상에서 때묻고 지치고 병들고 아프면 언제든 내게 오너라.
· 나는 너를 사랑한다.
· 용서해 놓고 기다리마.
· 무조건 너를 사랑할거야.
· 내게 올때마다 너를 깨끗게 하고 너를 치료하고 너를 회복시킬거야.
·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예배하고 이 자리를 떠날 때 바로 이 약속, 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영국의 어느 목사님 가정 얘기인데 제가 그 목사님 이름을 잊어먹었습니다. 
아들 목사님이 은퇴하신 아버지 목사님을 모시고 살았던 모양입니다. 
조금 늦은밤 아들 목사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오늘은 정말 감사한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주시지 않았더라면 정말 큰일 날뻔했습니다. 골목길에서 강도를 만나 돈을 다 빼앗기고 목숨까지 위태로운 그 순간에 경찰이 나타나 저를 구해주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차가 굴렀는데 차만 찌그러지고 저는 약간의 찰과상뿐 크게 다치지를 않았습니다. 이건 기적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아버지 목사님이 아들을 위로하고 말합니다.
“얘야, 나는 오늘 너보다 훨씬더 감사한 일이 많단다.”
“아버지, 집에 강도라도 든 것입니까?”
“나는 너처럼 강도를 만나지도 않았고 돈도 빼앗기지 않았으니 얼마나 감사하냐? 먼길 다녀왔지만 차가 구르지도 찌그러지지도 않았고 찰과상을 입지도 않았으니 이거야 말로 기적 아니고 뭐겠지 하나님의 사랑이 정말 놀랍지 않니?”

- 사고 만났다 구출되어야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 죽을 병에 걸렸다 나아야 기적입니까?
- 언덕에 굴러 떨어지다 살아나야 하나님의 돌보심입니까?
아무런 사고 없이 지내온 것, 큰 병없이 오늘까지 산 것, 오늘까지 생명이 연장되어온 것...
이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습니까? 하루 하루가 기적이 아닙니까?

IV. 성령의 교통

예배자들에게 주시는 약속 중 마지막 세 번째 복은 “성령의 교통”입니다.
“교통”이란 단어는 너무나 익숙한 단어인데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교통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오늘날 교통이 얼마나 발달했습니까? 세계 어디든 하루에 갈 수 있고 어지간한 곳은 하루에 왕복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인천공항으로 달려가 비행기를 타면 미국 LA에서 다시 주일 예배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만약 이 편리한 교통이 일시에 중단되면 어떻게 될까요?
지구촌은 일순간 지옥이 되고 말 것입니다. 모든 직장은 마비되고 식량과 연료공급이 중단되어 도시엔 굶어 죽는 사람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생산지에서는 농산물, 공산품이 썩어갈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성령의 교통”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성령의 교통이 중단되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막히고 기도는 벽에 부딪혀 되돌아옵니다. 
기쁨과 감사는 사라지고 모든 은사가 중단되어 집니다. 
성경을 읽어도 죽은 문자처럼 아무런 감동이 없을 것입니다.
예배는 인간들의 친목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게 영적 생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기 교통은 헬라어 “코이노니아”입니다. 
이 말의 뜻은 첫째 교제, 사귐의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님과의 교제 그리고 성령안에서 성도들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성령의 마음이 우리에게 부어지고 내 마음이 성령님께 전달되어지는 교통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 그에게 기도가 응답되어 지는 것이 교통입니다.
나의 기쁨이 누군가의 기쁨이 되고 누군가의 슬픔이 내 슬픔이 될 때 그것이 교통입니다. 

·예배, 찬송, 기도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까?
·누군가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싶은 갈망이 있습니까?
·구원얻은 감격이 넘치고 누군가를 구원하고 싶은 전도의 열정이 있습니까?
바로 당신안에 성령의 교통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이노니아는 “동업”“고통에의 참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신앙생활이 무력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교회들마다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고 파산상태에 이르게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성령님과의 동업이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교회의 사역이 성령님과 아무런 관계, 참여를 맺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성령님을 환영하십시오.
·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 성령님이 역사하시도록 그분께 기회를 드리십시오.
   당신안에서 성령의 교통이 힘차게 일어날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성령의 말씀이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성령님을 우리의 삶 밖에 세워 두지는 않았습니까?
성령님을 교회 모든 활동 밖에 세워 두지는 않았습니까?
성령님과의 교통이 사라진 교회는 예배가 냉냉 합니다.
기도가 식습니다. 찬송에 열정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 이런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3:16)
  성령의 교통이 끊어지면 버림받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하고 지금 세상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 성령이 너의 모든 삶에 동행할 것이다. 
· 성령이 언제나 너와 함께 할 것이다. 
· 성령이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것이다. 

- 너는 그분과 교통하라.
- 너는 그분과 동업하라.
- 그분이 너희를 도울 것이다. 할렐루야. 

V. 삼위일체 하나님의 보호하심

펭귄은 남극의 여름이 끝나갈 무렵 알을 낳습니다. 
여름이래야 영하 20도, 이 혹한에 어미는 낳은 알들을 수컷 아빠에게 맡기고 어디론가 길을 떠납니다. 남극의 겨울 섭씨 영하 6-70도를 오르내리는 4개월여, 수컷들은 알을 지키고 새끼 한 마리를 얻기 위해 혹한 눈보라와 한판 승부를 벌입니다. 수컷들은 대형 스크럼을 짜고 서로의 몸을 부벼댑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바깥쪽 펭귄은 몇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동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펭귄들은 질서정연하게 자리와 위치를 바꿔 줍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 자신들의 스크럼이 보호하고 있는 알을 지키고 자식들을 얻는 것입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드디어 알이 부화됩니다. 갓 태어난 새끼는 먹이는 얻지 못하면 금방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긴장된 순간 저마다 어미의 입에서 새끼의 먹이 물고기가 나옵니다. 무려 4개월동안 먹이를 삼키지 않고 입에 머금고 있었던 게지요.

이 긴박한 순간 정확한 시간에 온 몸에 먹이를 담고 어미 펭귄이 나타납니다.
자신 한 마리를 향한 미물 펭귄의 사랑과 돌봄을 보십시오.
이 마음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 성령님의 교통이
택한 백성 하나님의 자녀를 이토록 정확하게 신비하게 
예배하고 나아가는 여러분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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