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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6.25] 애국의 은혜에 감사 합시다 (시 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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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의 은혜에 감사 합시다 (시 137:1)
  
(시 137: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발밑의 흙에서 시작된 애국의 숨결에 동네에 UN기념공원이 있어서 현충일뿐 아니라 현장학습부터 학교 사생대회까지, 심지어는 중학교 졸업사진 촬영 장소마저 UN묘지와 그 옆의 평화공원이었을 정도로 굉장히 친숙한 곳이지만 기억을 돌이켜보면 실제로 UN묘지에 들어가서 순국선열들의 넋을 기리며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고 하며 단지 연못 위를 평화롭게 떠다니는 오리를 신기해하며 산책로를 천천히 걸어 다니기만 했을 뿐이었는데 중학생 때 뜨거운 어느 여름날, 친구들과 함께 시원한 분수에서 더위를 식히기 위해 평화공원을 찾아가 상쾌하게 물을 뿜어내는 분수에서 서로 쫓고 쫓기는 물놀이를 하다 보니 얼떨결에 평화공원에서 조각공원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까지 뛰어나와 버렸고 물에 젖은 옷을 짜내고 술래잡기 탓에 턱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쫓고 있던 친구의 이름을 소리쳐 부른 찰나 별안간 아저씨 한 분께서 다가와 "조용히 좀 할 수 없겠니? 지금 너희가 서 있는 이곳이 어딘지는 알만한 나이쯤은 되지 않았어? 라고 말씀하시었다는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꾸짖음에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왼쪽에 커다란 철문이 있는 UN묘지 입구였고 그 입구를 지키시던 경비 아저씨께서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잃으신 분들이 이 땅 밑에 잠들어계시니 조금만 조용히 하자는 말씀을 덧붙이셨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누군가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내리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땅의 진정한 의미가 파도치듯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생각 없이 뛰어놀고, 예쁜 꽃들의 자태에만 감탄하곤 했던 그곳은 1950년부터 시작된 비극에서 희생되었던 수많은 영혼이 흙 밑에서 숨 쉬고 있는 장소였다는 것입니다. 

밟고 있는 그 흙은 몇 십 년 전 어느 군인의 군화 속에서 쏟아져 나왔던 흙일 수도 있고, 누군가가 목숨의 연명을 위한 땅굴을 파며 퍼 나르던 흙일 수도 있을 것이며, 또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가족들이 무덤 속으로 떨어뜨리던 눈물 섞인 한 덩이의 흙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순간, 너무나도 부끄러워졌고 학교에서 또 집에서 항상 듣는 순국선열들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경비 아저씨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사과를 드리는 동시에 잠들어계시는 수많은 분께도 마음속으로 사과드렸다합니다. 

밟고 있는 흙 속에서 그분들의 숨결이 새어나오는 것 같아 물에 젖어 모래알이 덕지덕지 붙은 신발을 신고 있는 발이 창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합니다. 평소 주위의 많은 곳에서 민족의 비극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는데 학교에서 매년 빠지지 않고 실시하는 호국보훈 교육부터 시작해서, '포화 속으로', '고지전' 등의 영화까지. 또한 학교에서 그런 교육을 항상 들었고, 영화도 모두 보았지만 돌이켜보면 배운 것들을 진심으로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는 것입니다. 

중학생 때의 그 여름날을 떠올리며, 지금 서 있는 땅 또한 그때 나라를 목숨 바쳐 지켜주신 분들 덕분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전쟁 영화를 보면서도 남주인공의 잘생긴 얼굴이 아닌, 그 얼굴에 묻은 흙을 바라보며 저 흙이 세월을 건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운동화에 묻어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학교에서 호국보훈 영상을 보여주면 가족의 시체와 군모 위에 흙을 뿌려야 했던 유가족들의 눈물을 함께 흘리게 되었다합니다. 

진정한 애국심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다고 하며 당장 서 있는 흙이 많은 이가 흘렸던 피와 눈물이 섞인, 대한민국의 흙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흙에서 나오는 숨결은 약 60년의 세월 동안 더는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나라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을 지켜보는 수많은 순국선열의 기쁜 꿈이 담긴 숨결이라는 사실 또한 깨닫는다면, 바로 거기에서부터 애국은 시작되는 것이다 라고 합니다.(현충일 추념 '제24회 국제백일장' 입상작 중·고등부 산문 장원 백민주)
  
6월은 현충일과 6.25 사변일이 있어 호국 보훈의 달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애국에 대해 다시 한번 상각하게 됩니다. 애국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을 합니다. 또 다시 6.25를 맞으며 믿음의 사람들은 성경적인 애국을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애국은 조국을 위해 우는 일임을 교훈 받게 됩니다.
유다가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이 바벨론은 다시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망하는 역사의 격동기에 살았던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의 옆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을 누리고 있을 그 때에 친척 '하나니'를 통해서 조국 유다와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황을 전해 들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느1:4)"했습니다. 자신 때문, 가정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조국과 동족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울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도, 예수님도 조국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사로 잡혀간 자리에서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이스라엘의 처연한 모습을 봅니다. 멸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온 바벨론의 정복자들은 그들을 강변으로 끌고 와 강변에 야영시키면서 가혹한 일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곳은 흑암만이 있으며 오직 군사들의 채찍과 고함 소리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정박하게 된 강가가 바로 '그발 강'(겔 1:3)과 '을래 강변'(단 8:2)이었고 포로로 잡혀온 백성들은 고역에 시달리다가 강변에 모여서 과거를 회상하며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고 그를 맘껏 경배하고 찬양하며 그와 함께 즐거움을 나누던 일이나 철따라 내리는 우로를 따라 풍성하게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이며 기쁨의 노래를 부르던 과거를 그리며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특별히 고향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모셔진 성소에서 절기마다 드리는 제사의 기쁨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사모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고향에 돌아가기를 소원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으로 주신 언약의 땅 예루살렘을 향한 그리움의 눈물이었으며 이방 나라의 포로로 잡혀 온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에 대한 슬픔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도 한때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열방을 다스리던 영화로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의 손에 파셔서 가나안에서 쫓겨나 이방 나라의 노예가 된 상태였던 것입니다. 언약에 따라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신 땅을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언약을 파기하므로 도로 빼앗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슬픔은 이방의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때 이스라엘은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버린 이스라엘은 깊은 슬픔 속에 잠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지난날들을 회상하면 나라를 빼았기고 언어도, 문화도, 양심도 송두리채 짓 밞힘을 당했던 비극의 큼이 가슴을 짓누르기에, 뜻이 있고 생각 있는 백성 이라면 이 민족의 역사 앞에 눈물 지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민족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북녘 땅에는 자유를 모두 빼았기고 많은 생명들이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으니 같은 피를 이어 밭은 동족으로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을 금 할 길이 없어 눈물지우기도 합니다. 이러한 조국을 위하여 눈물 지우는 것이 애국인 줄로 믿습니다,

애국은 단순히 우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나이라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기도하는 일임을 교훈 받게 됩니다.
느헤미야도 조국, 동족에 대한 소식을 듣고 단순히 울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조국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느1:4)"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회개의 기도였고, 민족의 회복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우리나라도 6.25 전쟁 때, IMF와 같은 경제적인 위기 때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교회에서 골방에서 산에서, 토굴에서, 기도원에서 밤을 지새우며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무엘처럼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나 중심 기도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시온을 기억하고 울어야 했던 이유는 하님을 반역하고 패역한 죄 값을 받아야 하는 서러움을 자복하며 회개하는 기도의 눈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패역한 길로 갈 때마다 하나님의 강한 이방 민족을 막대기로 사용 하시어 저들을 징계 하신 것 입니다. 징계를 받고 있는 백성을 위로 한 음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들아 앗수르가 애굽이 한 것처럼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오래지 아니하여 네게는 분을 그치고 그들은 내 진노로 멸하리라 하시도다(사 10:24-25) 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자기 백성에게 진노의 막대기를 드시나 저들이 회개하면 그 사용하시던 막대기를 꺽으셨습니다.

지난날에 우리 선배들도 나라를 빼앗기고 이국땅에서 조국을 생각 하며 울며 기도해야 했던 것입니다.
회개의 운동이 진정으로 나라를 구원 하는 운동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원수 때문이 아니요. 그 민족의 죄가 관영 할 때 그 죄 값으로 인해 민족이 버림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언 14:34)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5:1)고 하였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백성은 망합니다. 사울 왕이 회개 못하고 망했습니다. 헤롯왕도 회개 못하고 죽었습니다. 바로 왕도 회개 못하고 망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회개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고 저주까지 했던 베드로는 회개하여 살아있는 믿음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개인이고 국가고 회개하면 살고 회개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회개하는 길만이 사는 길입니다. 회개 운동은 이민족을 한 반도의 수난에서 구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하되 민족 양심 회복을 위해 기도 해야 합니다.

모세는 민족 양심의 가지고 산 위대한 산 표본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고 합니다.

모세는 자기 민족이 당하는 학대와 고초를 생각 할 때 바로의 궁궐 속에서 먹는 기름진 음식이 모래알 씹는 것 같았고 자기 백성이 헐벗고 착취당하는 모습을 생각할 때 푹신한 잠자리가 송곳방석 같이 느꼈기에 내일의 영화도 헌신짝처럼 내던질 수 가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 자기 이로울 때는 애국자처럼 떠들고 막상 자기 일신상에 어려움이 오면 떠나고 맙니다.

인간에겐 다 각각 인간이 본능적으로 지니는 욕망이 있으나 문제는 그 본능과 본심을 숨기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 고사가 이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느 날 왕과 왕후 그리고 재상 세 사람이 앉아서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말하거나 알리지 않은 자기만의 비밀스런 얘기를 툭 터놓고 한 가지씩 얘기하기로 했다합니다. 그리고 만일 세 사람이 각각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병풍 속에 그려져 있는 금계가 소리치고 울 것이라고 했다합니다. 왕이 입을 열었다합니다. 

"나는 이 나라의 전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이고 이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내 아래 있는 것들이지만. 때로 관민들이 나한테 좋은 선물을 가져다주면 내 마음이 심히 기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병풍 속의 금계가 울었다합니다. 재상이 입을 열었다합니다.

 "나는 이 나라의 통치자로 내 위에 한 사람만 제외하고는 다 내 아래 있지만 매일 저 왕좌를 바라볼 때마다 나도 한 번 저 자리에 앉아보았으면 하는 생각이든다"고 말하자 역시 병풍 속의 금계가 울었다합니다. 왕비도 입을 열었다합니다. "나는 한 지아비를 섬기는 사람이지만 어전 회의에서 가끔 문무백관들 틈에 젊고 건장한 신하가 있으면 저 사람과 깊은 교제를 나눠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자 역시 병풍 속의 금계가 울더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제일 거룩하고 청렴결백하고 가장 애국 애족적인 인사인 것으로 자신을 위장하나 밝고 건강한 개인 생활과 사회가 되려면 위선의 탈을 벗고 진실을 찾는 것이라 합니다.

거울을 보아야 얼굴을 고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진실 앞에 서야 자신의 왜곡된 인생과 생활을 교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따르는 자라야 바른 가치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양심이 회복되어야 애국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민족의 죄를 회개하며 기도 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성경적인 애국은 나라를 위해 눈물 흘리며 회개하며 기도 하는 일이며 나아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나라 건설과 확장을 위하는 일임을 교훈 받게 됩니다.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하는 시인의 눈물은 단순한 애국주의나 민족주의에서 솟아오르는 감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하는 신앙의 눈물입니다.
시인은 어떤 것보다도 자신이 예루살렘을 기뻐하며 사모함을 고백하며 다짐하며 만일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혀가 입천장에 붙는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을 상징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시인의 예루살렘에 대한 고백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 고백이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진정한 애국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할 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영광 제일 중심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 하여야 합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님이 독립운동하다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합니다. 그가 검사 앞에 섰을 때 독립 운동은 누가 시겼나?라고 묻자 시키기는 누가 시켜 하나님이 시키셨지 라고 대답하였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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