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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의 소원을 이루는 길 (시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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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원을 이루는 길 (시 20:1-9)
  
< 깊은 만남이 주는 축복 >
  
하나님을 믿고 사랑이 깊어지면 4가지가 생깁니다. 첫째, 하나님과 대화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드립니다. 셋째, 하나님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합니다. 넷째, 하나님을 자주 만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사모하게 됩니다. 
  
예배란 하나님을 만나 사랑의 고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 만남이 축복의 최대 원천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도 없이 손만 벌리면 하나님이 주시고 싶겠습니까? 상대로부터 뭔가를 얻으려면 그 전에 이너써클로서 만나는 깊은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 성공한 후에 그와 줄을 대려고 해보십시오. 그때는 이미 늦고 그때부터는 깊은 만남이 이뤄지기 힘듭니다. 그때는 이익을 노리고 찾아오는 사람이 귀찮을 정도로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이 눈앞의 축복을 놓칩니까? 가장 큰 이유는 앞으로 크게 될 사람과 이너써클로 만날 기회를 차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기회를 차버리면 나중에는 그런 기회가 다시 오기 힘듭니다. 결국 짧은 인생에서 이너써클로서의 깊은 만남을 만들지 못하면 결국은 인생낭비와 시간낭비가 되고 후대의 축복도 예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중에서 존재의미를 찾지 말고 소수에서 존재의미를 찾으려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대중에서 나와 소수의 비전공동체를 찾아 그곳에 몸을 담고 깊은 만남을 만들어 가십시오. 인간관계로부터 승리의 축복을 얻어 누리기를 원하면 먼저 깊은 만남부터 만드십시오. ‘깊은 만남’은 ‘함께 있음’과 동의어입니다. ‘함께 있음’이란 말은 ‘대중 안에서 함께 있음’을 의미하지 않고 ‘소수 안에서 함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이너써클로서 함께 있으면서 깊은 만남을 만들어갈 때 그의 내일은 든든하고 찬란하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 교육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함께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매를 들 자격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도 없이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하면 기도 응답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가장 기쁘게 여기실까요? 수시로 손을 벌리는 모습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너와 함께 있는 것이 기쁘구나!”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어느 날, 아빠 생일이 다가오자 매일 함께 산책하던 어린 딸이 말했습니다. “아빠! 이제 며칠간 아빠와 산책을 못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어린 딸이 와서 말했습니다. “아빠! 지난 며칠 간 아빠 선물로 드리려고 이 슬리퍼를 만들었는데 이 슬리퍼를 신고 산책해보세요.” 그때 아빠가 딸을 꼭 껴안아주면서 말했습니다. “은지야! 잘 만들었구나! 정말 고맙다! 그런데 네가 만들어준 슬리퍼를 신고 산책하는 것보다 너랑 손잡고 산책하는 것이 더 좋아!”
  
하나님도 같은 심정이실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도 기뻐하시지만 예배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결국 예배와 기도는 인생을 복되게 만드는 최고의 통로입니다. 그처럼 예배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이 만나면 성공적인 삶을 위한 힘과 능력과 지혜를 얻게 됩니다. 본문은 그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주는 여러 축복을 잘 묘사합니다.

  
< 마음의 소원을 이루는 길 > 
  
본문은 전쟁에 임할 왕을 위한 기도문이 기록된 시편입니다. 이 시편에 묘사된 축복 중에 핵심 축복은 본문 4절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백성들의 가장 큰 마음의 소원이 무엇일까요? 전쟁에서의 승리입니다. 그처럼 인생 전쟁에서 승리하고 마음에 품은 소원과 계획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이 구절에서 ‘환난 날’은 전쟁 때를 말합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말씀은 결국 기도를 전제로 한 말씀입니다. 즉 환난 날에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주신다는 말입니다.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인생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인생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생생하게 체험하도록 하나님은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 시절에 이스라엘이 아멜렉과 전쟁할 때 평지에서는 전투를 했고 산꼭대기에서는 모세와 아론과 훌이 기도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팔을 높이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의 팔이 피곤해 떨어지면 이스라엘이 졌습니다. 그처럼 전쟁과 기도의 관련성을 깨닫고 아론과 훌이 모세의 양쪽에서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게 받쳐주자 마침내 여호수아 군대가 아말렉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 장면은 기도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기도해야 승리할 수 있고 축복도 받고 마음의 평안도 얻습니다. 특별히 리더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리더가 잘못되면 많은 사람들이 같이 고통 받고 같이 잘못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비전을 가진 동역자가 리더의 양팔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면 그 공동체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의 마음의 소원도 이뤄질 것입니다.

  
2.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이 구절에 나오는 성소와 시온은 오늘날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즉 하나님이 교회에서 도와주시고 교회에서 붙들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을 도우실 때 교회를 통해 도우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힘써 돕는 자를 힘써 도와주십니다. 결국 교회 사랑이 최고의 자기 사랑입니다.
  
미국 테네시 주의 청소년 범죄 담당 태텀 판사의 보고에 의하면 그가 다룬 청소년 범죄자 4,800명 중 교인은 단 28명이었고 부모가 교회에 잘 다니는 가정에는 범죄 청소년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교회에 잘 다니면 약간의 말썽과 탈선은 있어도 교도소에 갈 정도의 범죄는 거의 저지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처럼 탈선과 범죄에로부터 자녀를 지키는 최고의 방화벽은 교회에 잘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착하고 의로운 사람만 나오는 곳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약하고 부족한 자도 사랑하십니다.
  
로마의 베드로 성당은 세계 최고의 성당입니다. 당시 교황은 100년 간 지속되는 건축비를 마련하려고 면죄부를 팔다가 종교 개혁을 초래했습니다. 그 공사 때 성당 앞 광장에 베드로와 바울 중 어느 상을 주님의 오른편에 세우느냐는 문제로 몇 십 년을 싸우다가 결국 베드로 상을 세웠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이 아닌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기에 베드로처럼 허물과 약점이 많은 자를 더 주님의 오른편에 두고 싶어 하셨을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교회는 높은 사람이 청소와 설거지를 하며 겸손하게 낮은 사람을 섬기는 곳입니다. 그래서 병든 자가 나음을 얻고, 약한 자가 강함을 얻고, 외로운 자가 위로를 받고, 가난한 자가 부유함을 얻고, 죽고 싶은 사람이 희망과 목적을 찾고, 환난 중에 있는 사람이 평안을 찾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처럼 교회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고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의 삶에 넘치는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3. 예배를 중시하십시오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셀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정 전에 시온의 성소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소제와 번제를 드렸습니다. 다윗은 그 제사를 받아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제사 즉 예배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예배를 중시하고 사모하는 모습은 영적인 상태를 진단하는 청진기입니다. 사실 신앙수준은 예배의 질을 통해 결정됩니다. 예배 시작 30분 전부터 기도하며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임하면 은혜도 더욱 넘치게 됩니다. 또한 예배가 끝나도 아쉬워하며 기쁨과 감격 중에 예배당을 떠나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귀한 능력을 얻습니다.
  
축복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야 축복이 저주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집사님은 바쁘다고 예배를 나오지 못합니다. 그처럼 예배를 거를 정도로 바쁘면 안 됩니다. 예배 자리를 힘써 지키면 손해 볼 것 같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그의 마음속의 소원을 아시고 더욱 소중한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1924년 올림픽 때 확실한 금메달감이던 에릭 리들이란 100미터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100미터 결승전 날이 주일이라고 출전을 포기해서 눈앞의 금메달을 놓쳤습니다. 그러자 위선자, 배반자, 율법주의자란 온갖 비난을 받았습니다.
  
다음 날 400미터 경기 때 그가 부탁했습니다. “감독님! 저를 400미터 경기에 출전시켜주십시오.” 100미터 단거리 선수가 갑자기 중거리를 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밑져야 본전으로 여기고 감독이 출전시켰다가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하는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기자들이 “어떻게 100미터 선수가 400미터 경기를 우승할 수 있었느냐?”고 하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200미터는 제 힘으로 뛰고, 나머지 200미터는 하나님이 도와주셨습니다.”
  
그 후 그 얘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영화로까지 제작되었습니다. 눈앞의 이익을 버리고 예배에 참석하면 손해 같지만 나중에 보면 유익입니다. 반면에 예배에 빠지면 그때는 이익 같지만 나중에 보면 훨씬 손해입니다. 이제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예배에 힘써 참석하십시오. 그러면 조만간 반드시 수지맞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어느 날, 가끔 주일예배를 빠지며 일하던 한 집사가 꿈을 꿨습니다. 꿈에서 하늘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데 어느 부분에 한 단이 빠져 있었습니다. 위험했고 힘도 배나 들어서 투덜댔습니다. “하나님! 단 하나를 빼서 왜 이렇게 힘들게 하나요?” 그리고 다시 오르는데 어느 곳에서는 두 단이나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는 오르는데 몇 배 더 힘들어서 또 불평했습니다. “하나님! 두 단이나 없는 이런 사다리를 주시면 어떻게 하나요?”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들아! 그 단은 내가 빼지 않고 네가 주일을 범해 스스로 뺀 것이란다.” 
  
매주 한 계단씩 올라가야 천국 길도 안전해지고 축복의 길도 견고해집니다. 그러므로 주일에는 최선을 다해 예배 자리로 나오십시오. 그때는 바빠도 나오고 부부싸움을 했어도 나오고 심지어는 토요일에 술을 마셔서 술 냄새가 나도 나오십시오. 그처럼 예배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이 그 마음을 기억하시고 마음속에 품은 간절한 소원을 이뤄주실 것입니다.

  
4. 하나님을 높이십시오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세운다.”는 표현은 “하나님을 높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언제 모든 기도를 이뤄주십니까? 승리한 후에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려는 마음을 가질 때 이뤄주십니다. 
  
깃발은 집단의 상징 표시이면서 동시에 지휘자의 존재 표시입니다. 그래서 사단 내에 사단장이 있으면 사단장 깃발을 게양하다가 군단장이 오면 사단장 깃발을 내리고 존중의 표시로 군단장 깃발을 올립니다. 그처럼 자신의 깃발을 내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진 깃발을 높이 올릴 때 기도응답의 역사가 나타난다고 다윗은 노래합니다. 또한 다윗은 병거와 말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겠다고 했습니다(7절). 그처럼 모든 삶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려고 할 때 더욱 큰 은혜가 주어집니다.
  
예배드릴 때도 하나님을 최대한 높이려고 하십시오. 그래서 힘들어도 기쁘게 예배를 드리십시오. 어떤 아들은 힘들 때도 부모님 앞에서는 그 힘든 일을 감추고 즐거워합니다. 그 사실을 부모가 알면 얼마나 감동이 되겠습니까? 그처럼 힘들어도 기쁘고 즐겁게 예배하면 하나님도 얼마나 감동이 되겠습니까? 그런 태도는 내일의 축복을 따 놓은 당상으로 만들게 합니다. 
  
또한 예배드릴 때 예배에 집중하는 것도 하나님을 높이는 태도입니다. 어떤 분은 예배드릴 때마다 매주 좁니다. 사람이 가끔 졸 수도 있지만 매주 조는 것은 문제입니다. 어떤 분은 “왜 그렇게 매주 조느냐?”고 하면 성경 말씀으로 대답합니다. “목사님! 시편에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말씀만은 신기하게 잘 기억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예배 때 핸드폰도 미리 끄는 것도 하나님을 높이는 태도입니다. 법정에서 핸드폰이 울리면 백만 원 이하의 벌금 혹은 구류 20일을 삽니다. 법정에서도 그렇게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존전 앞에서는 더욱 핸드폰을 꺼야 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전화는 없습니다. 그처럼 핸드폰도 끄고 예배에 집중하는 것과 같은 작은 실천들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때 하나님은 마음의 소원과 계획이 이뤄지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5. 승리를 확신하십시오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를 구원하시는 줄 안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 승리할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그처럼 구원과 승리의 확신을 가질 때 기도응답도 속히 이뤄진다고 다윗은 고백입니다.
  
구원과 승리의 확신을 견고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죄로 인한 이기심과 자기 보호 본능을 극복하고 말씀을 잘 들으면 거기서 능력 있는 삶이 나타납니다. 결국 믿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말씀을 잘 듣는 것입니다. 말씀을 잘 듣는 것은 말을 잘하는 것보다 더 우선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도 ‘탄원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듣는 기도’입니다.
  
목회하다 보면 앞으로 복 받을 사람을 보는 눈이 생깁니다. 가끔 어떤 청년은 그 앞에 놓인 복이 너무 생생하게 보여서 배우자감으로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특히 예배 중에 정자세로 예배에 집중하고 예배 시간 전에 와서 예배를 준비하고 앞자리에 앉는 청년은 최고의 배우자감입니다. 그의 앞날의 성공이 너무나도 빤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교회는 앞자리나 뒷자리나 별 차이가 없지만 나중에 예배당이 커지면 꼭 앞자리로 오십시오. LA 다저스 야구장 내야석 앞자리는 약 700불(80만원) 가까이 줘야 얻지만 선수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외야석 뒷자리는 15불(17000원) 정도만 주면 얻습니다. 약 50배의 가치 차이입니다. 자리의 질이 기쁨의 질을 크게 좌우하듯이 예배의 질도 크게 좌우합니다. 사람은 서로 얼굴 표정을 읽을 수 있는 거리 안에 있어야 관계가 깊어집니다.
  
또한 예배 때 말씀을 부지런히 받아 적는 청년도 최고의 배우자감입니다. 그런 청년은 대개 무슨 일이든지 책임감 있게 잘 합니다. 반면에 어떤 청년은 예배 중에 싸이의 시건방춤을 추듯이 팔짱을 끼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미래가 상당히 비관적으로 보입니다. 또한 어떤 청년은 예배 중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거나 손톱을 다듬습니다. 그 모습들은 마치 말씀을 손과 귀로 쳐내는 모습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도 막힙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일전에 시골에서 밤에 우물에 도깨비가 나왔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가보자 정말 우물 밑에서 파란 도깨비불이 움직였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후레시로 그곳을 비추자 알고 보니까 쥐를 잡으려다가 고양이가 빠진 것이었습니다. 고양이 구출작전이 벌어지면서 긴 대나무에 바구니를 걸어 거기에 올라타라고 내렸습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자기를 해치려는 줄 알고 마구 피하며 대나무를 할퀴었습니다. 결국 한 남자가 대나무 막대기로 고양이를 세차게 때려서 고양이를 기절시킨 후 비로소 고양이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 보면 어떤 사람은 고양이처럼 말씀을 쳐내면서 할퀴고 뜯습니다. 때로는 “저 들으라고 그 말씀을 했지요?”라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을 때 자신에게 꼭 좋은 말만 골라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정말로 잘못된 말은 듣지 마십시오. 그러나 말씀을 잘 들으려는 열린 마음만은 늘 가지십시오. 그처럼 말씀을 잘 듣고 구원과 축복의 확신이 깊어지면 반드시 마음속의 소원과 계획도 멋지게 이뤄질 날이 올 것입니다.

  
< 참된 예배자가 되십시오 > 
  
결국 그 전쟁이 어떻게 됩니까? 대적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지만 이스라엘은 일어나 바로 서게 될 것이라고 다윗은 노래합니다(8절). 그러면서 다윗은 마지막으로 구원과 응답을 달라고 기도하며 노래를 마칩니다(9절). 결국 이 시편은 참된 예배자가 될 때 하나님이 그 마음의 소원과 계획을 이뤄주신다는 강력한 교훈을 줍니다.
  
이 세상에 예배의 성공만큼 귀한 성공은 없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예배를 ‘하나님으로 하나님 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할 때 사람은 가장 복된 존재가 됩니다. 사람이 얼마나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지 그 실상을 알면 하나님의 은혜를 목마르게 구하는 예배자의 삶을 결코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일전에 한 부부가 구로구 시흥동에서 셋방을 얻으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그들이 가진 돈으로 전세방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허탈한 심정으로 돌아오면서 임신 9개월인 부인이 그만 짜증내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겨우 천만 원짜리 전세방 얻을 능력도 없어요?” 그 말이 가뜩이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남편의 자존심을 무섭게 건드렸습니다. 결국 남편이 이성을 잃고 순식간에 아내와 두 살배기 딸을 목 졸라 죽였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기에 예배하는 삶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배 자리로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는 영혼을 억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재 미국의 이혼율은 세 가정 당 한 가정이 넘지만 교회에서 결혼한 가정은 50가정 당 한 가정이 이혼하고 매주 함께 교회를 나가는 가정은 1105가정 당 한 가정이 이혼한다고 합니다. 예배자가 되면 삶은 그만큼 안전해집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 자리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예배에서 성공하면 인생의 성공자가 되고 예배에서 실패하면 인생의 실패자가 됩니다. 
  
우리 교회는 찬란한 비전과 계획을 가지고 나가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 인물이 되라!>는 모토로 한국에서 나눔의 모델이 되는 교회를 꿈꾸며 거룩한 큰손이 나오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2023년까지 <성경 전권 설교파일>을 완성해 세계적인 거대한 영적인 흐름을 선도하고 <네트영어>를 통해 국제적인 인물 배출과 많은 선교교회 개척 및 선교사 후원을 할 계획을 가지고 나가면서 지금 상당히 그 계획이 구체적으로 진척시켰습니다.
  
그 비전과 계획을 온전히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동역자와 비전을 공유하고 서로 기도하고 격려하면서 최선의 땀을 흘리고 최선의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또한 이제까지 축적된 역량을 본격적으로 꽃피게 할 영적인 뇌관 역할을 해줄 초기의 씨앗 재정도 하나님이 신기하게 채워주시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참된 예배자가 되는 일입니다. 그처럼 참된 예배자가 되어 숱한 땀을 통해 그 동안 진척시켰던 비전과 계획을 멋지게 완수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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