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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창립] 다윗, 무너진 장막 (시 2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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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무너진 장막 (시 22:9-21) 

어렸을 때 저는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자랐습니다. 그때의 집은 농부요, 목수였던 아버지가 주추를 놓고,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놓고, 서까래를 얹고, 볏짚으로 지붕을 씌워 만든 초가삼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형제들은 아련한 추억을 간직한 채 모두 그곳을 떠나 이제는 그 집을 찾아갈 필요를 느끼지 않고, 연연해하지도 않습니다. 집을 떠난 저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후, 열두 번 정도 이사를 했습니다. 

우리는 나온바 고향을 떠나 더 나은 본향을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히 11:16).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빌 3:13). 옛날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본적을 이곳 일산으로 옮겼습니다. 또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가정이란 장소, 건물도 아니구나!’ 그런데 이 가정과 가장 닮은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또한 장소도, 건물도 아닙니다. 과연 교회란 무엇일까요?

오늘 충정교회 창립 68주년을 기념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68년 전인 1945년 10월 첫째 주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서 남하한 몇몇 성도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6.25를 거치면서 잠시 교회가 폐쇄되기도 했고, 다툼으로 교회가 나눠지는 아픔을 겪기도 하며,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한다는 값진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 후 2000년 하반기, 하나님께서는 이곳 일산으로 옮기게 하셔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헌신하신 분들, 하나님께서 분명히 기억하실 것입니다. 

저는 1989년 6월, 이 교회에 부임하여 지난 25년 동안 최선을 다해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젊음을 쏟아 부었고, 어느 틈엔가 머리카락도 희게 변해 버렸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과정을 겪으며 여기까지 이르셨습니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자리에 앉아계십니까? 특별히 담임목사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 어느 정도 이 교회에 대하여 애틋한 마음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행 15:16, 암 9:11-12). 여기 장막은 하나님이 거하셨던 성막, 회막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막의 원형은 모세의 장막입니다. 그 장막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하셨습니다(출 40:34-35). 그렇다면 ‘모세의 장막을 다시 지으며’라는 소원, 의지를 피력하셔야 합니다. 

또 웅장함으로 치자면 지상에서 솔로몬의 성전을 따를 것이 없습니다(대하 3:1-17). 모세의 장막이 아니라면 이 웅장한 ‘솔로몬의 성전’을 언급하셔야 합니다. 다윗은 생전 성전건축을 간절히 염원했지만 하나님은 전쟁을 많이 하여 피를 많이 흘린 다윗에게 성전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대상 28:3). 그러니까 다윗은 일생동안 장막을 세운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하나님은 ‘다윗의 장막’을 언급하실까요? 왜 모세의 장막, 솔로몬의 장막도 아닌 ‘다윗의 장막’을 그렇게도 간절히 염원하실까요? 

토미 테니(Tommy Tenney) 박사는 ‘다윗의 장막’이란,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메고 와서 임시로 만든 장막에 모셨는데, 바로 그때의 장막을 가리킨다고 보고 있습니다. 상당히 일리 있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장막’이란 단어가 단순히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만을 뜻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고후 5:1).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장막)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장막)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 여기에 언급되는 ‘장막’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 ‘장막’은 우리의 ‘몸’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기 위하여 만들어진 장막을 뜻하기도 하지만, 더 깊은 영적 의미로 발전하여 그것이 우리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장막’이란, 다윗의 ‘몸’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몸이 무너져 내렸답니다. 그러면 ‘다윗의 무너진 장막’이란 어떤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저는 그 해답을 시편 22편에서 찾는 것입니다. 

다윗이 지금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난에 던져져 있습니다(시 22:12-18). 이를 보며 사람들은 다윗을 비웃고, 조롱합니다(시 22:7-8). 다윗의 온 몸과 육체와 정신이 다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야말로 ‘무너진 장막’입니다. 회개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는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 속에 던져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의 온 몸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립니다. 또 서원을 갚으며, 기도합니다(시 22:22-26).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합니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시 22:27). 그는 예배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황에 던져져 있습니까? 그야말로 무너진 장막입니까? 원수들에 의해 에워싸여 있습니까? 그 상황에서 주님을 다시 한 번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입술에서 찬송을 끊이지 마십시오. 서원을 주님께 갚으십시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주께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리니’ 일으켜주실 줄 믿습니다. 응답해주실 줄 믿습니다. 들으시고, 역사해주실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당하는 고난은 골고다 예수, 오실 메시야 그분이 당하실 고난과 너무너무 흡사합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무너뜨리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무너진 장막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주님께서 무너지심으로 말미암아 그 무너진 장막을 통해 오늘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진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교회에서 예배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건지셔서 모든 만물을 그 이름 앞에 무릎 꿇게 하셨듯이 우리에게도 영광의 날이 오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교회창립 68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 자신이 무너진 장막이 되기를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너진 장막이 될 때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우시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바로 그 집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무너진 장막이 될지라도 그 상황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며, 이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임을 잊지 말고, 믿음으로 일어나 다시 한 번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옥성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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