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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삼상 1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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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삼상 16:1-13) 

고난을 당할 때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다윗과 같이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 향하는 삶을 사십시오. 

아브라함과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손꼽힙니다.
구약시대에 인물의 중요도를 선정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업적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관계입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어떻게 나타내는지가 인물의 중요성을 평가하는 기준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 예수님을 소개하는 족보가 나옵니다. 족보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고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설명하기 전에 아브라함과 다윗을 먼저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브라함과 다윗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을 따른 상속자입니다”(갈 3:29).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입니다.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한 자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브라함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예수님을 나타냈습니다. 다윗은 아브라함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조상이면서 예수님과 동일시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구약에서 가장 많은 지면에 등장하는 인물이 다윗일 것입니다. 

다윗에 대한 기록의 초점은 그의 영웅담이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다윗이라는 이름은 ‘사랑 받는 자’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이는 내 다윗이다”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다윗은 세 번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의미는 ‘기름 부음 받은 자’입니다.

다윗은 사무엘을 통해서 몰래 기름부음을 받았고, 유대 백성들을 통해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또 이스라엘 장로들을 통해서도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구약에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지도자로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선택하신 이유 

시편에는 예수님에 관한 예언들이 많이 나옵니다. 성육신, 예수님의 오심과 고난, 죽음과 부활, 승천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일대기에 관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에게 임하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다윗만큼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베들레헴의 목동이자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였습니다. 골리앗을 넘어뜨린 그는 군인이 되었습니다. 사울을 피해서 도망 다니면서 시를 짓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 잘못을 저질러서 살인을 하고 도망 다닐 때 정신이상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면 배우의 기질도 다분했습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다윗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선택하신 이유는 그가 위대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사람을 선택해서 위대한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보잘 것 없고 알려지지 않은 사람을 선택해서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다윗도 그랬습니다.
 

사울을 버린 이유 

오늘 본문은 다윗이 왕으로 선택 받고 사무엘을 통해 기름 부음을 받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배경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상황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못하도록 사울을 버렸는데 너는 언제까지 사울을 위해 슬퍼하겠느냐? 네 뿔에 기름을 채우고 길을 떠나 베들레헴의 이새에게로 가거라. 내가 그의 아들 가운데 하나를 왕으로 선택했다’”(1절).

오늘부터 다윗의 생애에 관한 설교를 시작합니다. 사무엘상 16장은 하나님이 버리신 사울 이 점점 추락해가는 과정과 하나님이 택하신 다윗이 역사 속에 부각되는 시점입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울이 왕이 된지 2년째 되던 해에 블레셋과 전투를 하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사기를 잃고, 군사들은 용기를 잃었는데 오기로 한 사무엘이 늦게 옵니다. 

사울은 조급해져서 제사장의 일을 자기가 행하는 월권행위를 합니다. 나름 이유가 있었지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입니다. 자신의 권한 밖의 일을 하는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14장에 보면 블레셋과 대면하고 있을 때 군사들이 지쳐서 싸울 기력도 없었습니다. 그때 숲에 꿀이 있었습니다. 그 꿀을 군사들이 먹도록 해야 하는데 사울 왕은 잘못된 명령을 내립니다. 

원수를 갚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이었습니다. 사울의 자존심에서 나온 분별력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허기진 군사들은 결국 하나님이 율법에서 금한 고기를 먹는다든지 옳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15장을 보면 하나님이 아말렉을 공격해서 진멸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버리라는 명령입니다. 아멜렉은 하나님을 대적했던 대표적인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모두 진멸하라고 했으면 모두 진멸해야 하는데 살찐 소와 양을 남겨 두었습니다. 

사무엘이 명령대로 모두 진멸했다고 말했는데 양과 소의 소리가 들립니다.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양과 소가 있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남겨둔 것이라고 또 거짓말을 합니다. 

사울은 불순종했습니다. 불순종을 감추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변명을 하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다윗을 훈련시키는 하나님 

하나님이 “내가 사울을 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는 자신의 권한 밖의 일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불순종을 감추기 위해서 변명을 했습니다. 자신의 자존심과 체면을 채우려고 한 것입니다. 

사울은 백성들의 행복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자신밖에 몰랐습니다. 그런 사울을 하나님이 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신 것은 한 영혼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왕위에서 내려오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셨다고 했지만 곧장 폐위시키지 않았습니다. 일정한 기간 동안 사울을 왕위에 두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실 때 비밀리에 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버리신 결과는 한참 후에 나타납니다.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이는 위치와 하나님의 마음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통해서 뜻과 목적을 이루어가십니다. 사울은 자신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버린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울을 통해서 다윗을 훈련시키십니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는 과정을 훈련시키는 과정을 가르치는 교사는 훌륭한 왕이 아니라 잘못된 왕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보면서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철저하게 배웠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향하는 마음의 중심 

하나님이 사울을 버린 것은 그의 영혼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되찾기 위해서, 회복시키기 위해서 왕의 위치에서 내려오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위치, 재물을 잃게 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위해 어떤 위치에서 내려오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진정 사랑하기 때문에 고난과 시련, 변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울 왕을 버리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으로 사울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끝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인생을 살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됩니다. 

사울은 왕으로써 가진 힘을 자신의 질투심을 만족시키는데 사용했습니다. 다윗을 제거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사용했습니다. 그 사이 백성들은 피폐해지고 힘들어졌습니다. 사울이 처음부터 백성들을 힘들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왕으로 세움을 받았을 때는 매우 겸손했습니다.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예전에 당신이 스스로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때 이스라엘 지파들의 머리가 되지 않았소?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신 것이오’”(삼상 15:17). 

스스로 보잘 것 없는 자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가 세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자기 자신으로 가득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음의 중심이 변한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께로 향해 있지 않으면 중심이 변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보잘 것 없다고 여겼다가도 자신을 위대한 존재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이 하나님처럼 위대한 존재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사울을 하나님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새 왕을 선택하셨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셨다는 말씀을 듣고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슬퍼한 이유는 단순히 사울과의 개인적인 관계 때문만은 아닙니다. 국가의 운명이 두려웠기 때문에 슬퍼한 것입니다.
 

다윗과 사무엘을 보호하는 하나님 

하나님이 베들레헴의 이새의 아들가운데 내가 새 왕을 선택하였으니 가서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은 두려웠습니다. 만일 이 사실을 사울이 알면 자신을 죽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의 상태가 사무엘의 말속에서 드러납니다. 

한때는 사울이 사무엘을 두려워하던 시대가 있었는데 이제는 사무엘이 사울을 두려워합니다. 사울 왕이 얼마나 포악하고 잔인한 왕이었으면 사무엘이 사울을 두려워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베들레헴에 가되 제사를 드리러 가라고 지혜를 주십니다. 기름 붓는 것을 밝히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다윗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만약 사울이 다윗에게 기름이 부어졌다는 것을 알면 다윗의 목숨이 위험했을 것입니다. 사무엘도 마찬가지입니다.사울의 포악함으로부터 다윗과 사무엘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비밀리에 기름을 부은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준비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울 모르게 행하신 것입니다. 

사무엘이 베들레헴에 가서 이새의 모든 가족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새의 아들들이 모였는데 사무엘이 장남 엘리압을 보고 한눈에 반했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그러나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겉모습이나 키를 보지 마라. 나는 그를 이미 버렸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다르다. 사람은 겉모습을 보지만 여호와는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16~17절).

사무엘이 실패했습니다. 사무엘의 한계입니다. 겉모습, 외모라고 번역된 원래 히브리어의 뜻은 눈빛입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사실 겉모습만 보고 평가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언행, 눈빛을 보고 평가합니다. 

사람의 눈빛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가 나오고, 그 사람의 생각이 나옵니다. 눈에 초점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빛을 보면 얼마나 성실하게 사는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여러분, 눈빛을 보고 다른 사람을 알 수 있지만 정확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눈빛으로는 마음의 중심은 볼 수 없습니다. 

어쩌면 사무엘은 엘리압의 눈빛을 유심히 살펴보았을지 모릅니다. 틀림없이 사무엘은 예리한 눈빛으로 엘리압의 눈빛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빛으로 사람을 정확하게 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는 그곳에 없었습니다.
 

다윗을 선택하신 하나님 

“사무엘이 이새에게 물었습니다. ‘네 아들이 다 온 것이냐?’ 이새가 대답했습니다. ‘막내가 하나 있기는 한데 지금 양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그를 불러오너라. 그가 도착할 때까지 식사 자리에 앉지 않겠다’”(11절) 

아버지 이새는 막내아들 다윗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제사를 드리라고 했는데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이새에게 막내아들 다윗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하찮은 존재였습니다. 여기서 막내라는 의미는 보잘것없는 존재,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존재라는 의미가 담긴 용어입니다. 장남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아버지 이새는 다윗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다윗은 가정에서 주목 받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 이새도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평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도 실패했고, 아버지 이새도 실패했습니다. 

다윗은 홀로 양을 치며 베들레헴 광야에서 아버지가 하라고 하는 일에 순종했습니다. 단조롭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을 꾸준히 해내면서 그의 영혼은 하나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다윗에게 자연은 교사였고, 양들은 친구였습니다. 가족들조차 알아주지 않았던 그를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가정은 매우 중요하지만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부르시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주목 받지 못했던 다윗을 택하셔서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깨닫게 하는 고난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서 다윗에게 기름 부었는데 곧장 왕위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세 번 기름 부으심을 받는 동안 1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사실 그 기간 동안 다윗은 좋은 시설에서 좋은 교사에게 교육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 있었습니다. 

그는 사울의 위협을 받아 광야라는 모든 광야와 수풀이라는 모든 수풀은 다녔습니다. 어떤 이스라엘의 왕이 광야를 모두 다녀보았겠습니까.

그곳에서 다윗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아둘람 동굴에서 만났습니다. 나중에 400여 명의 아둘람공동체 일원들이 다윗 왕국의 중요한 지도자들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에 버림받은 사람들을 모아서 다윗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게 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밑거름을 만드셨습니다. 다윗이 받았던 고통과 시험은 마치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승천하실 때까지 무수한 시험과 고난을 받은 모습과 닮았습니다. 

다윗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목동생활을 통해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위기가 올 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맞서 싸웠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그의 아버지가 되어주셨고, 교사가 되어주셨습니다. 

광야에서 마음의 중심을 바르게 세우는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다윗은 때때로 왜 이런 시련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끊임없는 훈련과 고난,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께 합당한 자로 세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고난이 주어집니다. 고난 당하고 시련을 당할 때 우리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됩니다. 평안한 환경 속에서는 절대 마음의 중심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확인하고 다윗과 같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재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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