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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는 행복자로다 (신 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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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행복자로다 (신 33:29)

(신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1. B.C. 990년경, 다윗 왕이 어느 날 저녁에,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왕궁 옥상에 올라가서 거닐었습니다. 그 때에 그는,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옥상에서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 여인은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다윗은 신하를 통해 그 여인이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임을 알아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왕궁으로 끌어들여 정을 통했습니다. 통간하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얼마 후 다윗 왕은 그 여인이 임신한 사실을 알고, 전쟁터에 나가 있는 우리아에게 휴가를 주어 자신의 아내와 동침하게 하려 했지만, 우리아가 거절하여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다윗 왕은 밧세바의 뱃속에 있는 자기 아이를 우리아의 자식으로 뒤집어 씌워, 자신의 간통죄를 덮으려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뜻하지 아니한 명령으로 휴가차 집으로 돌아온 우리아가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장막을 치고 지내며, 저의 상관이신 요압 장군과 왕의 모든 신하가 벌판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만 홀로 집으로 돌아가서, 먹고 마시고, 나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가 있겠습니까? 왕이 확실히 살아 계심과, 또 왕의 생명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런 일은, 제가 하지 않겠습니다.” 며 귀가를 거절합니다. 참으로 우리아는 충신 중 충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 왕은 자신의 간통죄를 덮으려던 계획이 무산되자, 요압 장군을 시켜 우리아를 전장(戰場) 함정으로 내몰아 죽게 했습니다. 이른바 다윗 왕이 충신 우리아를 간접 살해한 것입니다. 다윗 왕은 이후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려와 자기 아내로 삼고 아들을 낳게 했습니다. 이 사건 후 약 1년 정도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음과 같은 비유를 말하게 하셨습니다. “어떤 성에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양과 소를 아주 많이 가진 부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자기가 사서 기르는 어린 암양 한 마리밖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암양은 온 가족의 애완 동물이 되어 식구들과 함께 같은 상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인은 마치 자기 딸처럼 그 양을 부둥켜안고 귀여워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 부자집에 손님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그 부자는 자기의 양과 소는 아까워서 잡지 못하고, 한 마리밖에 없는 그 가난한 사람의 암양을 빼앗아다가, 그것을 잡아서 손님을 대접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던 다윗이 그 사람을 크게 노하여 나단에게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사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고 명령합니다. 

바로 그때 나단이 다윗 왕에게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왕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출해 내었으며, 사울의 궁전과 그의 처들을 너에게 주었고, 또 이스라엘과 유다를 너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였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다면 내가 너에게 더 많은 것을 주었을 것이니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악에 대해 징벌을 선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범죄 사실을 샅샅이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즉시 견책하지 아니하시고, 1년 동안이나 참으신 후 견책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년 동안 다윗으로 하여금 양심의 큰 고통을 겪게 하셨고, 그 가운데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책망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 상태를 준비시킨 것이었습니다. 참된 회개를 할 수 있도록 하여 생명에 이르도록 하신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회개하지 않고 지낸 1년 동안의 양심의 가책과 심령의 고통, 그리고 회개의 축복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32:1-5)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참으로 하나님은 죄인 하나,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회개시키기 위해 선지자 나단을 보내신 사실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에게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 준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겔34:11-1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사실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여전히 죄와 절망의 자리에 버려진 상태에 있을 것입니다.(롬 1:28) 

찾아오셔서 자신의 죄에 대해 완악하거나 강퍅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유를 통해 자신의 죄악을 기억하고 고백하도록 유도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죄의 실상에 대해 둔감한 다윗에게, 비유를 통해 그 죄의 참담한 실상을 환히 볼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비유에서 ‘부한 자’는 다윗 왕을, 그리고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사람이 딸처럼 여기는 암양 새끼를 강탈했다.’는 것은 다윗이 많은 아내들을 거느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아니하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게 눈길을 돌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 왕은 이 비유를 듣고 ‘그 사람’에 대해 크게 진노했습니다. 다윗의 잠자던 양심이 깨어나는 순간을 말합니다. 분명히 자기 눈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끌에만 민감히 반응한 다윗의 모순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마7:3-4) 

그러나 죄악에 둔감했던 그의 양심이 일단 깨어나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 사람’을 크게 노하여 나단에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다윗은 이 말을 통하여 간음(11:4)과 살인(11:15)을 저지른 자신의 죄악에 대하여, 스스로 율법에 따른 형벌(레 20:10; 24:17)을 선고한 셈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자신의 큰 죄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타인의 적은 죄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엄격한 타락한 인간성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다윗 왕의 선고를 듣고, 나단 선지자가 “당신이 그 사람이라.” 며, 비유 말씀 중 ‘그 사람’, ‘4배나 갚아주어야 하는 그 사람’은 바로 다윗 왕 자신임을 지적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나단의 비유를 남의 일로만 알고 정죄하던 다윗의 무딘 양심을 결정적으로 일깨워 주는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하나님의 책망이 계속됩니다. 사무엘 하12:7-9입니다.

(삼하12:7-9)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언제든지 부족함 없도록 채워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다윗이 과욕을 부려 범죄한 것을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즉 다윗은 무엇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탐욕과 정욕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범죄했던 것입니다.(눅12:15) 

1970년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던 ‘사무엘슨’(Paul Anthony Samuelson)이란 사람은 경제학자답게 ‘욕구 충족이 곧 행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행복에는 조건이 있는데, 그 조건이 충족될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먹고 싶은 것 먹는 것이 행복이고, 가고 싶은 곳 가는 것이 행복이며, 입고 싶은 것 입는 것이 곧 행복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얻는 행복은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3번 이상 먹으면 맛이 없어지고, 가고 싶었던 곳도 3번 이상 가보면 별로 가고 싶지 않게 되며, 아무리 멋진 옷도 3번 이상 입으면 그저 그런 옷이 됩니다. 계속 새로운 것으로 욕구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곧 계속해서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으로 인해 항상 행복하지 못하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은 9만9천원을 가지고도 10만원을 채우려 하고, 100만원이 되면 200만원를 채우려 하고, 200만원이 되면 1,000만원을 채우려 합니다. 사람의 욕구는 끝이 없습니다. 또한 내가 많이 가졌다고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내가 1억원을 가지고 있는데, 이웃이 2억원을 가지고 있다면 그 많은 것을 가지고도 행복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조건을 만족시킴으로써 행복을 얻으라는 주장은 결국 행복을 포기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를 두고 지혜자는 이렇게 말합니다.(전2:1-11) 

(전6:2-5)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 이름이 어두움에 덮이니 햇빛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나 이가 저보다 평안함이라.

행복은 조건을 충족시킴으로서 얻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조건들을 누림으로써 얻는다는 것이 성경의 행복론입니다. 

전도서 6:2에 보면,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고, 자꾸 채움으로써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진 그것을 누리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씀입니다. 


2. 오늘 본문은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죽기 직전 이스라엘의 12지파를 하나하나 축복한 후, 마지막으로 선언한 말입니다. 

1). 오늘 본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이 말씀은 이미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이유를 보겠습니다. 신명기7:6-8입니다.

(신7:6-8)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천하 만민 가운데서 특별히 구별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소유된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하신 이유는,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고 했습니다. 

고대 국가에서 일차적으로 인구가 많은 것은 강력한 국력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민(選民)으로 택정하시고 불러 주신 때는, 이스라엘의 수효가 많고 강성했을 때가 아니라, 오직 갈대아 우르를 떠나 이방의 나그네 된 아브라함 한 사람 뿐이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고 하신 것입니다. 

‘가장 적다.’는 것은 능력이나 재능이나 물질 등 모든 면에서 가장 보잘 것 없고 하찮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가장 적은’ 이스라엘을 택하시어 ‘성민’으로 삼으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기뻐하시고 다만 사랑하심을 인하여” 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실만한 다른 이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조건이 없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에, 성민으로 삼으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했는데 자식이 없었습니다. 이에 이삭이 하나님께 간구하자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으셔서 리브가가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쌍둥이를 잉태하게 되었습니다.(창 25:21) 

이를 두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동생으로 태어나는 야곱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선택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쌍둥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야곱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은, 그들이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 택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그들의 행위에 따라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전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고 하신 것입니다. 야곱을 선택하신 이유는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다만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야곱이 선택된 것뿐입니다. 

(롬9:10-13)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행해 ‘너같이 구원얻은 백성이 어디 있느냐?’며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4:32-38입니다.(참조 : 롬4:4-16)

(신4:32-38)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었느냐.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호와께서 너를 교훈하시려고 하늘에서부터 그 음성을 너로 듣게 하시며 땅에서는 그 큰 불을 네게 보이시고 너로 불가운데서 나오는 그 말씀을 듣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사랑 하신고로 그 후손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 너보다 강대한 열국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너를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네게 기업으로 주려 하심이 오늘과 같으니라.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구원받게 된 것은 여러분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어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롬 3:27-28)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4:2-16)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이유는 다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로마서 5:8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의 행위를 보지 아니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다만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독생자를 십자가에 희생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어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광야 사막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선택받아 구원받은 이스라엘은 행복한 자들입니다. 

비록 광야 사막 길을 걷고 있다 해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왜냐 하면 그 길을 통해 영원히 행복한 삶의 길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아파 본 사람이 건강의 소중함을 압니다. 고난을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그 고난의 소중함, 그 고난 뒤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섭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사막, 고난의 길을 40년 동안 걷게 하신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8:2입니다.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고난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여 배우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배워 순종하는 삶이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시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신28:1-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고백했습니다.

(고후4:17-18)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고난을 당해보았습니다.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했고,(출 12:40) 그 종살이 끝에 애굽은 이스라엘의 씨를 말리기 위해 출산하지 못하도록 무거운 노동을 시켰고, 심지어 태어난 남자아이들을 모두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혹독한 고난과 환난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그러니 이 구원의 은총을 충분히 누리라는 말입니다. 이 구원의 은총을 잊지 않고 누리도록 하기 위해 유월절을 기억하여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신 16:3) 유교병을 그것과 아울러 먹지 말고 칠일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아울러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속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너의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요즘 뇌사자들의 안락사가 합법화 되려는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심장은 뛰고 있지만 뇌가 활동하지 않으니 고통당하지 않도록 의학적으로 죽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미국에서 10년 동안 뇌사 상태에 있던 사람이 기적적으로 깨어나서 하는 말이 ‘다 들었다’는 것입니다. ‘의사가 하는 말, 가족들이 하는 말 다 들었는데 다만 말을 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의사는 이미 죽었다고 선언하고 더 이상 치료하지 말자고 했지만, 환자 자신은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포기하는 일은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포기가 없습니다. 특히 자기 백성에 대한 애정은 결코 포기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430년 동안 종살이 하고 있을 때, 그 고난과 환난이 극에 달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하여 구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 그 구원을 이미 받은 너희는 행복하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니 다른 조건을 찾아다닐 것 없다고 말합니다. 구원받은 그 은총을 충분히 누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어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의 물과 피를 따 쏟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십자가 보혈의 은총과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구원의 사실을 누리는 것이 행복의 길입니다. 이 구원이 가장 귀한 것이기에 다른 욕구들이 불충분하다 할지라도 우리의 행복을 빼앗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조건없이 베푸시는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하신 그 구원의 기쁨을 즐기는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 다음으로, 이스라엘이 행복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하시고 “(창12:1-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고 언약하시고 25년이 되어가는 즈음, 아브람의 나이 99세가 되는 때에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17:4-5)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이 말씀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 증표로 ‘아브람’이라는 이름을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아브라함’으로 개명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살던 땅에 흉년이 들자 하나님께서 이삭을 불러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26:2-4)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삭이 하나님 말씀대로 애굽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그 땅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므로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창26:12-1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이삭이 거부가 되자 주변 부족들이 시기하여 이삭의 우물들을 모두 메워버리거나 강탈해버렸습니다. 목축업을 하는 이삭에게 우물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삭은 주변 부족들이 자기 우물을 메우거나 강탈할 때마다, 그들과 다투거나 하지 아니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해서 우물을 팠습니다. 그리고 우물을 팔 때마다 물이 터져나왔습니다. 이러한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창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그 후 주변 부족들이 두려운 마음으로 이삭을 찾아와 자기들을 해하지 말고 자기들과 화평 조약을 맺어달라고 사정합니다.

(창26:28-29)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이삭의 주변 부족들은 자기들이 아무리 축복의 근원같은 우물을 메우거나 강탈해도, 이삭이 더욱 더 번성하고 왕성해지는 복을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분명히 보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기 위해 그 언약에 따라 아브라함의 자손된 사람들과 항상 함께 하십니다. 그 언약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태중에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야곱이 외삼촌이 사는 머나먼 하란으로 가는 길에 해가 져서 피곤한 몸을 누이고 돌을 베게 삼아 잠을 청했습니다. 잠에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 꿈은 이렇습니다.(창28:10-15) 

사닥다리가 땅에서부터 하늘에까지 닿았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사닥다리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그 사닥다리 위에 서서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야곱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그리고 야곱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의 계승자임을 분명히 하시며,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어디로 가든지 야곱을 떠나지 아니하고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로부터 20년 후, 야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거부가 되었고, 무려 12아들들을 낳게 되며, 또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개명(改名)해 주시어 명실공히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12지파를 통해 아브라함에 약속하신대로 번성하고 창대하시게 하셨습니다.  

(창 31:1) 야곱이 들은즉 라반의 아들들의 말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 하는지라. 

(창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이처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게 되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라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여기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데 있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장 행복한 성도 여러분이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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