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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직접 느끼고 알고 그리고 따르라 (요 10: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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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느끼고 알고 그리고 따르라 (요 10:22-30)

예전에 한 번 제 친구 중 하나가 지난 밤에 보고 온 영화때문에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은채 영화에 대한 자신의 얘기를 열변을 토해내듯 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굉장하고 대단하고 어마어마한 영화였다고 장황하게 감탄을 하면서 그 영화의 줄거리는 물론 연출과 각색과 화면, 컴퓨터 기법 등등을 칭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말이 끝날 때마다 덧붙이는 말이 “말로는 다 설명이 안되니까 가서 직접 봐야 돼”라는 것이었습니다. 줄거리 다 얘기 해 놓고 가서 직접 보라는 심사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줄 곧 “꼭 가서 봐야 한다”며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일이 아닙니까? 대개 우리는 그 영화가 볼 만한지 아닌지 듣고 싶어합니다. 줄거리를 얘기하려고 하면 하지 말라고 말리고 귀를 막곤 하지요. 왜냐하면 미리 얘기를 들어 버리면 직접 영화를 감상할 때 재미와 흥분을 떨어 뜨리기 때문입니다. 

예고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고편은 그 영화를 보도록 자극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입니다. 그 영화의 모든 것을 다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누가 영화를 보려고 하겠습니다. 그저 예고편만 보고 말겠지요. 알짜는 예고편보다는 실제 영화에서 찾아져야 하겠지요.

만약에 어떤 도시를 여행한다고 치면, 예를 들어 뉴욕, 보스톤, 북경, 도쿄, 서울 등등, 우리는 대개 그 도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합니다. 지도도 구하고 여행지도 보고 사진도 보고 인터넷 검색도 해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 가기 전에 이미 그 도시에 대해 거기 사는 사람보다 더 전문가가 되어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직접적 경험이 가져다 주는 생생한 느낌을 아마도 가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연구만 많이 한다면 아마도 성지에 대한 지식을 성지에 다녀 온 사람보다 더 많이 그리고 전문적으로 가질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서 느낄 수 있는 바람과 물과 땅과 하늘의 냄새, 촉감, 빛깔, 그리고 모든 성경적 유적들,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비춰지는 나의 삶이 만들어 내는 그 생생한 느낌들은 아마 가지기 힘들 것입니다. 

유명한 신학자나 설교가나 종교적 지도자는 보통 평신도와 비교할 때 훨씬 월등한 성경적 지식을 가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 교회의 어떤 한 성도보다 터 큰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장담하기 힘들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지적인 지식에만 달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적인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게 다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만일 그게 전부라면 아마 세상은 믿음 있는 사람들고 점점 더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아님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오늘 유대인들이 수전절에 성전에 모여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요 10:24) 어떻게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것을 간단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이야 간단하지만 그것을 밝히기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볼수록 이는 정말 기이한 일입니다. 

성경을 알면 알수록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란 수월한 일이 아닙니다. 참으로 묘한 현상입니다. 나에게는 더욱 분명해 지는 것이 사실인데 전할려고만 하면 그렇지 않아지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영화를 장황하게 설명하던 제 친구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 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말하면서 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말로 다 전할 수 없으니 이는 당신이 직접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직접 경험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이와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요 10:25) 에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일을 스스로 직접 경험함으로 알게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지식으로 외워지거나 얻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경험함으로 생겨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속에서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일을 경험하고 계십니까? 세상 속에서 주를 믿는 믿음의 백성,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백성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경험하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그것을 알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임을 알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를 모르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격리하고 차별하시는 것입니까?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양은 그 목자를 그들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7) 제 막내 딸 소원이를 보면 엄마를 알고 듣고 엄마도 소원이를 알고 서로 잘 교감하는 것 같습니다. 아빠인 저는 그정도는 안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소원이가 엄마를 배 속에서부터 지금까지 느끼고 알고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원이는 생생히 살아 있는 경험을 통해 엄마를 알게 된 것입니다.

질문을 던졌던 유대인들은 아마도 “그리스도”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메시야”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에게서 그가 그리스도임을 경험하지는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양이 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목자로 느끼는 경험을 해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하는 것이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마치 예고편 영화를 보고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마음으로 실제 영화를 봐서 아무런 감동도 느낌도 없는 경우와 같습니다.

목사인 저는 아주 난처한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한 번씩 매주마다 저는 예고편을 여러분들에게 보여 드려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저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한 부분이요 또한 저의 직업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 부족하지만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여 드리는 이 예고편이 복이 될지 아무 것도 아닐지 혹은 저주가 될지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를 어떻게 받아서 실제 영화를 보게 될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백 번, 천 번을 얘기해도 실제 생활에서 적용이 안되는 분이 있는가 하면 단 번에 변화와 감동을 일으키는 촉진제가 되기도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행가기 전에 한 도시의 지도와 흥미거리와 호텔과 식당 등을 알고 간다면 실제로 그 도시로 가서 그것을 즐기고 또한 그것 이상의 다른 세세한 경험과 감동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똑같은 정보를 가지고 가도 그 정보 이상의 것을 보지 못하거나 그 정보에도 모두 다 식상해서 여행 전체를 의미 없이 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막 10:15, 눅 18;17)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생생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 품에서 엄마를 알아 가듯이, 마치 어린 양이 그 목자를 경험하고 알아가듯이 우리도 이세상에서 하나님의 품을 체험하고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단지 예고편을 여러분에게 보여 드릴 뿐입니다. 실제로 목자를 만나고 체험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에게 제가 가장 추천할 만한 예고편 중에 한자락을 선사하겠습니다.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며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들으셨습니까, 여러분? 이제 이 말씀의 예고편이 여러분의 생생한 체험으로 살아나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그 목자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을 만나십시요. 의로 인도하시는 분,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분, 나를 지키시며 언제나 나와 함께하시는 그 분을 만나기 바랍니다. 그 분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이전에도 있어 왔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 계속될 것입니다. 느끼십시요. 체험하십시요. 그리고 그 목자를 따라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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