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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삽겹줄 신앙생활! (히 10: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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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겹줄 신앙생활! (히 10:23-25)

신앙이 잘 성장하려면 교회 공동체와 한 몸이 되어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마디가 되어 연결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흔들리지 않고 해 나가려면 서로서로가 줄이 되어 붙잡아 주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신앙을 붙잡아 주는 세가지 줄을 말씀합니다. 

1. 소망의 줄을 굳게 붙잡자. 

우리가 흔들리지 않기 위하여 굳게 붙잡아야 할 첫 번째 줄은 소망의 줄입니다. 
23절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우리가 믿는 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원한 부활생명을 소유하게 됩니다. 가장 귀한 복입니다. 영원한 축복입니다. 
이 복을 우리가 지금 현실로 누리며 삽니다. 완전히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완전한 구원의 복은 장차에 천국에서 누리게 됩니다. 지금은 맛만 봅니다. 지금은 소망으로 누립니다. 

지금 현실에서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순교를 당하기도 합니다. 

히11:36-37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그 정도는 아니라도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무시를 당할 수가 있습니다. 손해를 보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수고를 더 감당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욕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흔들릴 때 빨리 붙잡아야 합니다. 소망의 줄을 꽉 붙잡아야 합니다. 미쁘신 주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붙잡고 사는 소망의 줄이 무엇일까요? 건강, 돈, 자녀... 
나이 먹으니 건강이 흔들흔들 합니다. 아픈 데만 많아집니다. 건강소망 줄이 약해집니다. 
아파트, 주식에 투자를 했는데 왕창 까먹어버렸습니다. 돈소망 줄이 끊어집니다. 
자녀 대학 졸업시키는 데, 평균 3억이 든답니다. 평생 돈 벌어서 둘 대학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가 부모를 부담스럽게 여깁니다. 자녀소망 줄을 붙잡을 수도 없습니다. 
소망줄이 흔들리니 인생이 흔들립니다. 소망줄이 약해지니 마음도 약해집니다. 
믿을만한 줄이 아닙니다. 영원한 줄이 아닙니다. 언젠가 툭하고 끊어지는 줄입니다. 

우리가 믿고 붙잡을 수 있는 소망의 줄이 무엇입니까? 임시가 아니라 영원한 소망줄이 무엇입니까? 미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영원한 구원의 소망입니다. 궁극적인 소망 줄입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죽으면 천국 가자’ 어느 교회의 주보에 나온 표어입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영원한 소망 줄입니다. 

*요한 웨슬리에게 물었습니다. <만일 오늘 저녁 죽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다니요? 예정대로 아침에는 설교하고, 약속대로 사람들을 만나고, 저녁이 되면 집에 가서 저녁 먹고, 가족과 함께 기도하고 침상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천국에서 눈을 뜰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소망 줄을 붙잡고 있습니까? 언젠가 툭 끊어질 줄을 붙잡고 있지 않습니까? 
끊어질 줄 붙잡느라고 영원한 소망 줄을 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구원의 소망줄을 단단히 붙잡고 평생을 달려가시길 바랍니다. 놓쳤다면 빨리 다시 붙잡고 다시는 놓치지 않게 되시길 바랍니다. 

*현금 운송차량 직원이 돈 가방과 자기 손에 수갑을 채워서 운반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누가 돈 가방을 채가더라도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고 수갑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구원의 소망 줄로 우리 마음을 붙들어 매시기를 바랍니다. 

2. 관계의 줄로 붙들어 주자. 

두 번째 줄은 관계의 줄입니다. 소망의 줄 위에 관계의 줄로 두 겹줄을 두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혼자 하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다른 사람 간섭 안 받고 부담 없이 자유롭게 신앙생활 하고 싶습니다.’ 

혼자는 내가 사랑 할 사람도 없고, 나를 사랑해 줄 사람도 없습니다. 혼자는 내가 기도해 줄 사람도 없고, 나를 위해 기도해 줄 사람도 없습니다. 혼자는 내가 섬겨야 할 사람도 없고, 나를 섬겨 줄 사람도 없습니다. 혼자 잘 할 수 있을까요? 성경적인 신앙생활일까요? 

*요한 웨슬리의 말입니다. <고독한 그리스도인보다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것은 없다.> 

*전4:9-12절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신앙생활은 함께 해야 합니다. 서로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요구만 하면 안 됩니다. 리더에게 요구만 하지 마세요. 서로서로 협력하세요.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모세를 원망합니다. 이미 받은 것을 감사하지 않습니다. 한 번도. 협력하려는 마음도 없습니다. 한 번도. 계속 받으려고만 하니 원망과 불평이 많습니다. 
요구만 하는 사람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받지 못하면 섭섭해 합니다. 

*마귀 중에 제일 센 놈이 ‘섭섭마귀’라고 하더라구요. 섭섭마귀에게 한 번 붙잡히면 이것도 섭섭, 저것도 섭섭 범사에 섭섭합니다. 옛날 일도 섭섭, 지금 일도 섭섭 항상 섭섭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마7:12 “무엇이든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 말씀을 사람들은 황금률이라고 합니다. 

본문 24절 말씀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입니다. 
서로 돌아보면 서로에게 무엇이 보일까요? 좋은 점 부족한 점이 다 보일 겁니다. 서로를 깊이 돌아보면 볼수록 잘난 점 못난 점이 다 보일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못난 점, 약점이 보이면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지적합니다. 비판합니다. 충고합니다. 거절하고 왕따를 시키기도 합니다.. 

*욥기에 보면 욥의 세 친구들이 고난당하는 욥을 끊임없이 비판합니다. 책망합니다. 충고합니다. 자기 딴에는 욥을 위한다고 그랬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욥은 분노합니다. 절망합니다. 
관계가 완전히 깨지고 맙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서야 돌이켜 회복이 됩니다. 

우리는 서로 돌아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으로 격려해야 합니다. 선행을 격려해야 합니다.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서로서로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관계의 줄이 서로를 하나로 묶어 줍니다. 

*성경에서 끊어지지 않는 관계 속에 있던 사람이 누굴까 생각하면 요나단과 다윗이 떠오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서 승리한 때부터 왕자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합니다. 왕 사울은 민심이 다윗에게 돌아가자 왕자 요나단이 왕이 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합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끊임없이 시도합니다. 그걸 다 아는 왕자 요나단이 다윗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보호해 줍니다. 때마다 다윗을 격려합니다. 삼상23:17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왕의 자리라도 끊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누구도 끊을 수 없는 튼튼한 관계의 줄입니다. 
우리 교회가, 각 셀이, 각 가정이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여 든든한 관계의 줄로 하나 되길 축복합니다. 

3. 예배의 줄로 붙들어 주자. 

세 번째 줄이 있습니다. 소망의 줄, 관계의 줄을 더 강하게 만들어 주는 줄입니다. 

25절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은 예배를 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당시에도 벌써 예배에 모이기를 싫어하는 교인들이 많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때는 박해를 많이 받던 시대입니다. 예배드리러 모일 때마다 많이 두려웠을 겁니다.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은 오늘도 주일 예배드리러 모이면서 얼마나 긴장할까요? 적발되면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죽을 때까지 고생하다가 처형당합니다. 그래도 이 시간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박해가 전혀 없는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왜죠? 
결혼식 가느라고? 꽃구경 가느라고? 바빠서? 피곤해서? 귀찮아서? 게을러서? 
주일 예배를 한 번 빠지면 마음이 찜찜합니다. 두 번 빠지면 나름 괜찮습니다. 세 번 빠지면 편합니다. 그러면 습관이 됩니다. 자기 힘으로 예배에 오기가 힘들어 집니다. 

*마귀의 전략은 1)모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흩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사자의 들소 사냥합니다. 떼를 지어가는 들소를 흩어 놓습니다. 혼자 떨어진 소를 집중공격합니다. 신앙을 무너뜨리는 마귀의 전략이 비슷합니다. 
2)그래도 모이면 모여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대신 비판하고 부정하게 합니다. 그러면 관계가 깨집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우리가 힘써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마지막 때가 될수록 모이기를 폐하는 분위기가 더 강해질 겁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모이기를 더욱 힘써야 합니다. 서로서로 모이기를 힘쓰도록 권하여야 합니다. 
핵심적인 두 모임이 있습니다. 주일 예배와 셀 예배입니다. 

주일예배는 우리의 소망이신 주님을 만나는 모임입니다. 셀 예배는 주님 안에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예배입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시간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이 두 예배를 가장 우선에 두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신앙이 든든하게 세워집니다. 

맺는 말 

소망의 줄을 꼭 붙잡고 주님과 하나 되어 신앙생활 하십시다. 
사랑의 관계의 줄로 두겹줄이 되어 더 든든하게 세워지는 신앙생활을 하십시다. 
예배의 줄로 삽겹줄이 되어 결코 끊어지지 않는 신앙생활 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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