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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은혜를 주시나니 (약 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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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은혜를 주시나니 (약 4:6-10)


미국 테네시 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벤 후퍼(Ben W. Hooper)라는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날 때부터 아주 작은 체구였고,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생아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녀들이 벤 후퍼와 어울려 노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아이들도 그를 놀리며 멸시했습니다. 벤 후퍼가 12살이 되었을 때, 마을 교회에 젊은 목사님이 부임했습니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교회에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목사님이 가는 곳마다 분위기가 밝아지고 사람들이 격려를 받는다는 소문을 듣고서 꼭 한 번 교회에 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사람들을 의식해 예배 시간에 늦게 들어가 슬그머니 뒷자리에 앉았다가 축도 시간이 되면 다시 슬그머니 빠져나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벤 후퍼는 목사님의 설교에 너무나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새에 감동에 젖어 눈을 감고 말씀을 되새기고 있는데, 벌써 예배가 끝나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별 수 없이 벤 후퍼도 사람들 틈에 끼어 나오면서 목사님과 악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12살 된 소년 벤 후퍼를 보고 미소를 짓더니 “네가 누구 아들이더라?”하고 물었습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흥미로운 시선으로 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해 하며 목사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렇지만 목사님은 조금도 당황해하지 않고, 다시 환한 얼굴로 벤 후퍼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네가 말하지 않더라도 나는 네가 누구 아들인지 알겠다. 너는 네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에 금방 알 수가 있어!” 목사님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답게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고개를 숙이고 돌아가는 그의 등에 대고 목사님은 말해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벤 후퍼가 테네시 주의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취임식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던 그 날이 바로 테네시 주의 주지사가 태어난 날입니다.” 여러분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큰 은혜를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6절에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는 이미 다양한 은혜를 받았지만 더 큰 은혜를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사도행전 4장 33절에도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큰 은혜는 사람의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입니다. 사람의 은혜는 어려울 때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은혜인데 반해 하나님의 은혜는 죄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입니다. 그 은혜야말로 사람이 베푼 은혜와 비교도 할 수 없는 더욱 큰 은혜입니다. 사람은 기분과 감정에 따라 생각과 태도가 변합니다. 돕고 사랑하는 것도 변덕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가면 갈수록 더 깊어지고 풍성해 집니다.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더 큰 은혜입니다. 큰 은혜를 받으려면,  

첫째로 더 복종해야

“하나님, 제 사업이 89년에 5백억, 90년에 1천억의 매출을 기록하게 하옵소서” 80년 9월, 다른 사람에게 5백만원을 빌려 사업을 시작한 이랜드 박성수 회장의 기도제목입니다. 10여년이 넘은 지금 하나님께서 기도한 대로 복을 주셨습니다. 이랜드가 86년 본격 법인체로 등록한 이래 매년 200∼380%의 성장을 이뤄왔으며 89년 총매출액은 1천1백억을 기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성공의 비결이 어디에 있느냐 묻습니다. 그때마다 박성수 회장은 자신 있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분의 뜻에 복종하십시오. 자신을 비우는 청지기적 삶의 자세와 물질을 초월하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사실 하나님은 더 큰 복을 주시길 원하시나 우리가 받을 그릇을 준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박회장은 비록 한 평짜리 가게를 얻어 장사하였지만 주일을 거룩히 지키며 사업을 하였기에 일 년에 5천억 매출을 올리는 복을 누렸습니다. 당시 대기업의 섬유업계까지 휘청거리는데도 주일을 성수하려고 백화점 납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점마다 주일에 휴업하게 하고, 불건전한 스포츠 신문에 광고 선전도 안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복종의 모습이었습니다. 회사는 더욱 번창하여 대한민국 최고의 의류업체가 되었습니다. 루터의 말입니다. “나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기보다 복종하는 사람이 되겠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신앙은 복종하는 신앙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습니까? 그러면 복종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 가장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라 부르실 것입니다. 

본문 7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여기의 ‘복종할지어다’는 헬라어 동사 ‘휘포타게테’입니다. 전치사 휘포(아래)와 동사 탓소(놓다)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 아래 자신을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 아래에 자기를 두어 자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본서의 저자 야고보는 모든 갈등과 다툼의 원인은 자기주장에서 시작된다고 지적합니다. 모든 문제는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해 자기를 주장하는 데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다툼을 극복하는 비결은 자기주장을 그만 두어야 합니다. 내 생각, 내 뜻, 내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더 친근해야

공간과 거리를 연구하는 학문인 공간학(proximics)의 대가는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 공간의 거리를 어떻게 유지하는지 밝혀냈습니다. 첫째로 친밀한 거리(intimate distance)는 45cm 이내의 거리입니다. 애인이나 엄마와 아기 사이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둘째로 사적 거리(personal distance)입니다. 45~120cm정도의 거리인데 친구와 가까운 지인끼리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셋째는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입니다. 120~360cm 정도의 거리로 업무나 일로 맺어진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넷째로 공적 거리(public distance)입니다. 360cm 이상의 거리입니다. 

공연장의 가수와 청중 사이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당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제자들은 친밀한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예수께 병 고침을 받았거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사적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예수 가까이에서 말씀을 들은 무리들은 사회적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길가에 서 종려가지를 흔들던 사람들은 공적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혹시 우리는 공적 거리에서 주님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사회적 거리에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습니까? 사적 거리에서 감사하며 감격하며 서 있는 모습은 아닙니까? 아니면 친밀한 거리에서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따라 나선 모습입니까? 

본문 8절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할지어다.” 여기의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것은 하나님과 거리를 더 좁히라는 것입니다. 공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사회적 거리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사적 거리로, 사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친밀한 거리로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입니까? 한 발짝씩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죄를 청산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59장 2절에 보니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죄를 품고 있는 자, 부정한 자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으며, 큰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거리감이 없는 친밀한 삶을 통하여 큰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더 낮추어야

이솝 우화(Aesop's Fables)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슴 한 마리가 호숫가로 물을 마시러 갔습니다. 사슴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뭇가지 모양으로 갈라진 뿔을 보고 너무도 아름답고 우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가느다란 다리를 보고서는 볼품없다는 생각에 한심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다리는 없는 것만도 못해’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데, 사자가 으르렁거리며 사슴을 잡아먹으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 순간 사슴은 볼품없다고 하찮게 여겼던 가늘고 긴 다리를 의지하여 숲속으로 달렸습니다. 사자와의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슴이 아름답다며 자랑스러웠던 뿔이 나무에 걸려 사자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겸손한 다리는 사슴을 구할 수 있었지만 교만한 뿔은 사슴을 망하게 했습니다. 부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는 자가 될 것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앞의 6절에 나오는 교만은 ‘위로 자신을 보인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이 머리를 드는 모양을 묘사합니다. 교만은 남을 업신여기며 자신의 우월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한 교만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히 낮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의 출발입니다. 

겸손은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는데서 시작됩니다. 겸손은 어리석음을 피하게 하며 하나님의 풍요를 간직하게 합니다. 결국 낮추는 일은 우리 자신이 할 일이요, 높이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높이려 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시는 일이 훨씬 더 쉽습니다. 무엇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보다 주님이 주시는 것이 훨씬 더 빠릅니다. 이것이 바로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는 문제의 잿더미 속에서 해답의 싹을 틔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두르고 있으면 어떤 적도 감히 우리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습니다. 큰 은혜 얻는 일에 더욱 더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은퇴한 현정화 선수는 16년 동안의 선수생활 중 가장 잊지 못할 경기로 1993년 세계 탁구선수권대회를 손꼽습니다. 당시 허리를 심하게 다쳐서 은퇴하려했던 현정화는 국가 대표선수로 뽑혀 힘겨운 훈련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밤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게 해주세요.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 주세요” 그녀는 마침내 준결승에서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라가 중국선수에게 완승을 했습니다. 

우승하는 순간 마룻바닥에 꿇어앉아 기도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세계여자탁구 사상 최초로 단식 우승을 달성한 원인이 기도에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녀를 높이 들어 세계 정상에 이르는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하신 것을 깨달을 수 있음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큰 은혜입니다.

부디 하나님의 큰 은혜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지금보다 더 하나님께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지금보다 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지금보다 더 하나님 앞에서 낮추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베푸시는 큰 은혜를 경험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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