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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친히 가리라! (출 3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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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친히 가리라! (출 33:1-23)

1.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께서 직접 돌판에 새기신 ‘십계명’받았습니다.

(출31:18) 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이 때가 시내산에 오른 지 40일이 다 되어가는 때였습니다. 백성들은 지도자 모세가 시내산에 오른지 40일이 다 되도록 내려오지 않자, 모세의 생사여부를 알 수 없다며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이는 애굽에서 우리를 인도하여 낸 신이라.’며 숭배하며 음탕한 축제를 벌였습니다.

(출32:4-6)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하나님께서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은망덕하고 부패한 행태를 보시고 진노하셨습니다.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아예 이스라엘 전 백성을 다 진멸해버리시고 모세 한 사람을 통해 큰 나라를 만드시겠다고 하십니다. 출애굽기32:10을 보겠습니다.

(출32:10)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여기 “나대로 하게 하라”는 말씀은 더 이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관계를 갖지 않겠다, 지금까지 아브라함과의 언약에 따라 항상 함께 하셨지만, 그 모든 언약을 파기하고,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모두 심판하여 진멸하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은 이렇습니다.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18: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모세에게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이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모세의 자손’으로 번성케 하고 큰 나라 민족으로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이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롬 4:3) ‘믿음의 후손’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을 지켜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는 ‘율법의 후손’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 모세에게 이후 하나님의 백성의 자격과 성격을 결정짓는 중대한 제안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와 말씀은 참으로 모세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이에 모세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중보의 기도를 드립니다. 출애굽기32:11-23입니다.

(출32:11-13)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아 진멸되면 이방인들에게 조롱거리가 되니 뜻을 돌이키시어 화를 거두어 주시라는 간구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언약을 이루어 주시라는 간곡한 중보의 기도였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어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화를 거두시었습니다.(미7:18-20)

(출32: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이 후 모세는 우상숭배에 참여했던 자들과 가담하지 않았던 자들을 분리하여 철저하게 심판을 시행하게 됩니다. 우상숭배를 했던 자들이더라도 그 잘못을 깨닫고 회개한 자들은 ‘하나님 편에 있는 자’로 분리하여 처형에서 제외시켰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자들과 우상숭배자들을 레위 자손들을 통해 모두 죽이도록 했습니다. 그 대상이 비록 레위 자손의 형제이든 친구이든 가까운 이웃이든 가차없이 처형했습니다. 이때 처형된 자들이 3천명 정도였습니다.

(출32:26-28)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 천명 가량이 죽인 바 된지라. 

이렇게 철저하게 우상숭배의 죄악을 범한 자들을 처형하고 모세는 다시 두 번째로 하나님 앞에 중보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첫 번째 중보의 기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진노를 거두시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셨지만 이스라엘의 죄악을 용서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상숭배의 죄악에 가담했던 자들을 철저하게 응징하고 그것으로 하나님 앞에 속죄함을 얻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32:30을 보겠습니다.

(출32: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하나님께서 화를 거두시었지만 범한 죄에 대한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언제든지 심판을 받아 멸망되기 때문에 두 번째 중보의 기도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그로 인해 멸망받기 때문에 두 번째 중보의 기도를 드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번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출애굽기32:32입니다.

(출32: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죄를 사해 주고, 사해 주지 않고는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만, 만약 용서해주시지 않으신다면 하나님 나라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을 지워 버려달라는 것입니다. 동족의 구원을 위해 자기 생명을 걸고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영적인 생명까지 걸고서 그토록 간절히 중보기도 드리는 이유는 죄 중에 죽어갈 저 무지하고 불쌍한 뭇 영혼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저 죽어가는 뭇 영혼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할 책임이 있는 우리들도 이같은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중보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죄를 자복하기만 하면 용서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사야1:18-19입니다. 

(사1:18-19)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누구든지 지은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만 하면 그 주홍같은 죄악이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모세의 자기 목숨을 건 두 번째 중보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32:33-34입니다.

(출32:33-3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모세는 백성들 대신 자신의 이름을 지워 달라고 했는데,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범죄자’들의 이름을 지우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누구나를 불문하고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의 이름이 지워버려지는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번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영원히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요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대신 생명책에 기록된 자라 할지라도 그가 범죄하면 하나님의 징계까지 면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중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셨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한 그 언약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자신의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계시며 그들의 죄를 사하시어 모세로 하여금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도록 명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고 하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지금은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고 징벌하지 않겠으나, 다시 죄를 지으면 훗날 이번의 죄까지 함께 징벌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듭 거듭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출애굽 제1세대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 된 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던 것입니다. 민수기14:29-33입니다.

(민14:29-33)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게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가 사로 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민14:36-38)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여러분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흐려지지 않도록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흰 옷을 더럽히지 아니하는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2. 모세가 자기 생명을 걸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두 번째 중보의 기도를 드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1-3절입니다.

(출33: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서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기를 네 자손에게 주마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로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모세의 중보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용서하셨지만, 그리고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라고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올라가시지는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로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앞서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는 말씀대로 다시 죄를 지으면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에서 지난 번의 죄까지 함께 징벌하여 진멸할까 염려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목이 곧은 백성인지라 하나님께서 그들과 한 순간이라도 함께 하신다면 이내 그들의 죄악을 발견하게 되어 그들을 진멸할까 염려되니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하겠노라.’고 하셨습니다.(5절) 하나님은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하게 되면 그들이 진멸될까 염려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합1: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은 슬퍼하며 자기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고 몸에 걸친 모든 장신구들도 제거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행하지 않겠다는 것은 일종의 ‘결별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광야 사막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만 의지해야 할 백성들에게 최악의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거 금송아지 우상숭배에 대한 통회하는 마음으로 일체의 단장을 하지 아니하고 장신구 일체를 제거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몸에 걸쳤던 ‘장신구’는 출애굽할 때 가지고 온 것들인데 이것들을 모아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었기 때문에 ‘장신구’를 그대로 두게 되면 목이 곧은 백성들이 또 다시 우상을 숭배할 가능성이 많아서 과감히 제거하라고 명령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비록 하찮아 보이는 것이라도, 그것이 죄와 연결될 때에는 마땅히 제거해야 합니다. “(살전5: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뜻입니다. 


3. 다음으로,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뜻을 돌이켜 “(출33:14)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는 하나님의 온전한 용서의 은총을 얻기 위해서는 ‘회막’에 나아가야만 합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장신구를 떼어내고 회막에 나갔습니다.

(출33:7-11)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모든 백성이 회막문에 구름 기둥이 섰음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며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회막’(會幕,Tent of Meeting)은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게 되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회막에 나아간다.’는 말은 하나님과 만나는 거룩한 장소에 가서 예배드린다는 뜻입니다. ‘회막’은 오늘날 ‘교회’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죄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기 위해, 마리아의 몸을 통해 세상에 오신 분을 두고 그 이름을 ‘예수’라 하셨습니다.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는 뜻입니다.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와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바는 이사야 7:14입니다.

(사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셨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임마누엘’되시는 예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는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교회’를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마16:18-19)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예수께서 이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요2:19)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당시 유대인들은 깨닫지 못했지만 예수께서는 ‘성전’을 ‘자기 육체’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성전을 헐라는 것은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말하고,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는 말씀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10:20에서는 ‘성전 휘장’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마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성소 휘장’은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 곧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를 받을 수 있는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揮帳,the curtain of the temple)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는 것은 사람이 찢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누구든지 지성소,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에 들어갈 수 있게 열어놓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누구든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서 히브리서10:20, “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인 휘장을 찢어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말씀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위해 열어놓으신 길만이 새롭고 산 길, 영원히 새로운 생명의 길입니다.(a new and living way) 이렇게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세우신 교회가 바로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위해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 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출33:14)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는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만 합니다. 본문 말씀 7절에 보면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들은 다 그 회막으로 “나아갔다”고 기록했는데,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뵙고자 할 때면 스스로 자기 처소를 떠나 하나님의 정하신 예배장소로 나아가야 할 것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8절에 보면 특히 모세가 그 회막으로 나아갈 때면 모든 백성이 다 “자기 장막 문” 즉 자기 집 문 앞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았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대할 때 항상 경건한 예의를 갖추고 주의를 집중하는 자세를 지켜야 할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0절에 보면 그 회막에 구름기둥이 설 때, 즉 하나님께서 친히 강림하심이 나타날 때 모든 백성들은 자기 처소에서 “다 일어나 서서 경배하였다”라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깨닫게 될 때 성도는 당연히 그 앞에 머리 숙여 최고의 경외를 올릴 수밖에 없음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회막으로 나아가며 회막을 바라보며 회막을 향하여 경배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바로 모든 생활을 오로지 교회중심으로 살아야 할 성도의 자세를 단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 중심이 된 회막에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까? 그것은 곧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대면”이란 말은 얼굴과 얼굴을 직접 맞대고 이야기했다는 뜻은 아니라, 그만큼 가까운 관계, 친밀한 관계에서 요긴한 말씀을 나누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막을 통하여 모세와 그처럼 깊은 말씀의 교제를 나누시고 백성들은 그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자기 백성과의 교통, 바로 이것이 회막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계속 누리기 위해 가장 기초적으로 필요한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시는 복된 삶을 궁극적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회막, 교회중심의 삶이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교회의 중심은 예배이고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통하여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우리에게 직접 말씀해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중심’으로 살아야 곧 ‘말씀중심’이 되고, 그렇게 ‘말씀중심’으로 살아야 진실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세우신 영원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그리고 그 교회의 중심이 되는 예배를 통해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복된 성도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4.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예배드리는 자와 함께 하시며 그를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예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축복)이 주어집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약점을 이용하여 장자권을 양도받고,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아냈습니다. 이 일로 형 에서가 한을 품고 야곱을 죽이려 하자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을 머나먼 하란 땅 외삼촌 집으로 피신시킵니다. 어린나이에 홀로 천리만리 하란 땅으로 향한 야곱은 외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날이 저물어 돌을 베개삼아 잠을 청했는데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창28:13-15)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는 말씀으로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축복을 계승할 자로 야곱을 인정하시고, 그 축복을 다 이루기까지 어디로 가든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비록 어린나이지만 처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야곱이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분명히 이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로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로다.” 

그리고 야곱은, 다음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 베개 삼아 벤 그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렇게 하나님께 서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창28:10-22) 

과연 야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항상 함께 하시므로 외삼촌 집에서 20년을 보낸 후 거부가 되어, 그리고 12아들들을 거느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귀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20여년 전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벧엘’로 가지 아니하고 숙곳이라는 곳으로 갔습니다.(창33:17) 그곳이 집을 짓고 가축을 먹이는데 아주 좋은 목초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사랑하는 딸 디나가 세겜족에게 강간을 당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디나의 친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세겜 성에 들어가 세겜 족 남자들을 몽땅 도륙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재물을 노략해왔습니다. 야곱이 이 사실을 알고 이렇게 두려워 한탄하며 말합니다. 창세기34:30입니다.

(창34: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할례를 빙자하여 비겁하게 세겜 족 남자를 모두 죽인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세겜 족과 동맹을 맺은 다른 부족들이 연합하여 야곱 가족을 공격하면 가족 모두 몰살당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야곱이 두려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창세기35:1입니다.

(창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는 말씀은 야곱이 애초에 길을 잘못 갔다는 것입니다. 20여년 전,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벧엘’로 가야 했던 것입니다. 야곱이 귀향하여 먼저 돌아가야 할 곳은 자신이 서원했던 곳 ‘벧엘’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수많은 가축들과 많은 가족들이 살기 편하게 보이는 숙곳, 세겜 땅으로 갔다가 사랑하는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는 부끄러운 일을 겪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잘못된 길을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가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네 잘못을 깊이 깨닫고 바른 몸과 마음으로 회복하여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가족들과 종들을 모두 불러 명령합니다. 창세기35:2입니다.

(창35:2)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친정집을 떠나올 때 자기 아버지의 수호신 드라빔을 몰래 가지고 나왔습니다.(창31:19) 다른 야곱의 아내와 그 종들 역시 외삼촌 집에서 나올 때 ‘귀에 있는 고리들’을 달고 왔었는데 그것들은 모두 일종의 수호신으로 간이용 우상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고대인들은 이것을 부착함으로써 악귀를 몰아내고 행운을 빌었었습니다. 

또한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성에서 노략한 물건 가운데 이방 신상이 섞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 신상을 버리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며, 의복을 바꾸고’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고 합니다. 그곳에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란에서 돌아온 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야곱은 자신의 집안을 번창케 하는데 전력한 나머지 아직까지 하나님께 서원했던 ‘벧엘 서원’(창28:22)을 이행치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겜 성에서 딸 디나가 비극적인 사건을 당하게 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를 회개하기 위해 ‘벧엘로 올라가 예배를 드리자.’는 것입니다. 옛 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고 회개하여 벧엘로 올라가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그와 같이 벧엘로 올라가 예배를 드렸을 때,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창35:5)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복된 삶을 위해 ‘단장품’을 제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세상에서 살던 때, 예수 믿기 전, 우상 숭배와 같은 세상적인 생활 관습과 풍습, 그리고 전통들을 몽땅 제거해야 합니다. 세상적으로 살던 가치관을 던져 버리고 생활 습관도 모두 던져 버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돌이켜 비록 광야 사막일지라도 항상 함께 하는 복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함께 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함께 하시며 하늘에서 날마다 일용할 만나를 내려 주시며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하여 마시게 하시는 것입니다. 범사에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신앙생활로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야곱과 같이 가족 모두가 함께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리므로 주변 환경이 평안해지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전 기브온에서 일천번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어, “솔로몬아,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하나님의 백성을 바르게 재판할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하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이렇게 축복하셨습니다. 

(왕상3:10-13)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하고 살아 있는 예배생활로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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