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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와 세상 (고전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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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세상 (고전 6:1-8)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올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하여 2013년도 한국인의 종교생활에 관한 총체적 분석 보고서를 낸 바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지난 5월 3일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출판되었고, 그 책의 출판기념회를 우리 교회에서 열었습니다.
그 조사 보고서를 보면 비종교인들에게 한국의 주요 종교별 신뢰도를 물었더니, 천주교가 26.2%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불교로서 23.5%였으며, 마지막이 기독교로서 18.9%로 제일 낮은 신뢰도를 보였습니다.

한국의 모든 종교에 대한 비종교인들의 신뢰도는 20%으로 매우 낮았는데, 세 종교 중에서도 가장 낮은 것이 바로 기독교였습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가 우리나라 근대사에 미친 막대한 영향으로 미루어보면 비종교인들로부터 너무 혹독한 비판을 받은 것 같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한국에 처음 들어 왔을 때 기독교는 한글 보급과 문화창달, 교육과 의료분야, 3.1독립운동 등 한국 사회의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를 지나면서 교회가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여 사회의 기득권층이 되면서부터 사회의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비기독교인들은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로 1) 이단이 많아서 10.7%, 2) 이기주의 집단 같아서 10.5%, 3) 언행일치가 되지 않아서 9.4%, 4) 헌금강요가 심해서 9.1%, 5) 목회자의 사리사욕이 심해서 6.2%라고 답변했습니다.
비기독교인들이 보기에 기독교인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바로 말과 행동의 불일치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말로만 사랑하고, 말로만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여 비기독교인들은 우리 기독교를 이기주의적인 집단, 반사회적인 집단으로 보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3-16).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고 버려져 불신자들에게 밟히고 있고, 빛 된 행실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말 우리는 참 비극적인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것은 탈북 청소년 9명이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라오스 국경을 넘다가 잡혀서 북으로 다시 송환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이들은 원래 12명으로 이뤄진 탈북 그룹의 일원이었고 이 중 3명은 지난 2월 미국에 입국했습니다. 
9명 중 한명을 뺀 8명 모두 북-중 접경지역인 양강도 혜산시에서 노숙자 생활하면서 쓰레기장에서 주워 먹고 도둑질하면서 살았던 “꽃제비”들입니다. 부모 형제 없는 고아들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11세 때부터 북한에서 구걸 생활을 했던 친구들입니다. 이들은 2010년에 북한에서 나왔습니다. 

이후 2년여 동안 중국에서 북한 탈북자 선교를 하는 주 목사님을 만나 한집에 모여서 생활하면서 수학, 한글, 성경, 영어 등을 공부했습니다. 
5월 10일, 주 목사님은 아내와 아이들 9명을 데리고 중국에서 라오스 국경을 넘다가 국경수비대에 잡혔습니다. 
당시 이런 사실을 바로 한국대사관에 알렸지만 억류 16일째 날까지도 대사관은 한 번도 머리도 안 내밀었습니다. 
이들이 체포된 후 보름동안 라오스 정부는 이들이 자유롭게 외출 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주목사님은 미국대사관이나 한국대사관으로 망명을 하려고 했지만 대사관 측에서 안 된다고 말려 결국 허망하게 아이들이 북송되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주 목사님과 함께 이민국에 잡혀 있던 사모님이 억류 기간에 시어머니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서 알게 된 것입니다. 

주 목사님 부부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탈북자들을 도우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주 목사님은 이번에 함께 체포된 이후 쓰러져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었고, 사모님도 지병이 있어서 약을 꼭 챙겨 먹어야 하는 분이셨습니다. 
진정으로 이분들은 세상의 소금과 같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주 목사님처럼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가 다른 종교만도 못하게 불신을 받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본문을 보면 고린도교회 역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 내적으로 분쟁에 시달렸고 부도덕한 행실인 음란한 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오늘 본문에 보면 교인들 간에 소송 사건까지 있어 일반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교회 내적인 분쟁과 음란한 생활에 대해 해답을 주었고, 오늘 본문에서는 소송 사건으로 세상의 빈축을 사는 일에 대해 영적인 처방을 해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교인들끼리의 분쟁이 결국 세상 법정에까지 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1절).

여기서 ‘불의한 자들’이란 ‘이방인’ 곧 ‘불신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교회 내에서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고 왜 불신자들의 세상인 법정으로 끌고 가느냐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최고의 법으로 여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으로 해결하지 않고 세상 법정으로 나가는 것을 치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 또한 신앙의 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법이 가장 높은 법이기에 성도들의 문제를 신앙으로 해결하지 않고 세상적인 기준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임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2절).
성도들은 세상의 판단을 받을 자가 아니라 도리어 세상을 판단할 자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진리를 역전시켜서는 결코 안 됩니다. 
성도들은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죄 용서를 받고 주님의 부활로 영생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벧전 2:9)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왕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비판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의 정의로 세상 사람들을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우리 주님과 더불어 세상을 심판할 사람들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계2:26-27).
주님과 더불어 세상을 심판할 이런 존귀한 사람들이 자기들의 문제를 가지고 세상 법정에 가서 송사해서야 되겠습니까?

세상을 심판할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다른 종교보다 낮은 평가를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이것은 정말 치욕적인 일입니다. 
이번 글로벌리서치 분석에서 보면 기독교인들의 이기주의 때문에 기독교가 낮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이기주의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 또한 세상 법정에 호소하였습니다. 자기가 이겨야 하기 때문에 영적인 가르침을 무시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세상 법정에서 송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 받은 성도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구원 받은 거룩한 성도로서 세상 재판관의 판결을 기다립니까?

한국교회는 회개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다시 세상의 존경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평양대부흥운동으로 인해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평양 장대현교회을 중심으로 일어난 1907년 대부흥 운동의 주역은 길선주목사였습니다. 
선교사들은 한국민족과 교회를 위하여 매년 신년 초에 전국적으로 특별집회를 갖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 계획에 따라 평양에서도 신년특별집회가 열렸습니다.
1907년 신년집회는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약 1500명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열심히 기도하였는데에도 아무런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주일 저녁 예배가 시작되었는데 평양 장대현교회의 길선주목사가 일어서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였습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약 1년 전에 내 친구 중 한사람이 임종시에 나를 자기 집으로 불러서 말하기를 ‘길장로(원래 그는 장로였음),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나지만 내 집 살림을 돌보아 주시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미망인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미화 100불 상당의 금액을 사취(詐取)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 그 돈 전액을 그 미망인에게로 돌려 드리겠습니다.” 
길선주목사가 회개하자 그렇게 분위기를 억눌렀던 힘이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내어놓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성도는 자기 아내가 병들었을 때에 죽기를 바라며 다른 여자를 보았던 것을 회개했고, 어떤 여인은 살기 어려울 때 자신의 아이를 죽였다고 회개했습니다.
그 날 밤 예배는 새벽 2시가 지나서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집회에 직접 참석하였던 정익로 장로는 “그날 밤 길선주목사의 얼굴은 위엄과 능력이 가득 찬 얼굴이었고, 순결과 성결로 불붙는 얼굴이었다”고 후에 고백했습니다.

이런 회개 운동이 평양 시내로 퍼져 나갔고 함흥, 신의주에 이어 전국으로 펴져나갔습니다. 
이 평양대부흥운동으로 전국에 금연, 금주 등 절제 운동이 일어났고, 여러 구제운동이 일어나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존경하며 우러러 보았습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 또한 세상을 지도하고 나가야 합니다. 세상은 거짓과 허위와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음란과 탐욕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화시켜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넘쳐 흐르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 교회가 그런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교회는 이런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까”하니 묻자 예수께서는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7-8).

이 세상을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성령이 임해야 되고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만으로는 소금과 빛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을 받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끌고 나갈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능력을 달라고 성령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심판을 받을 자가 아니라 사랑으로 세상을 심판할 자입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우리는 성령의 은혜를 체험해야 합니다. 성령 체험을 통해 사랑의 은사를 받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전병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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