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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결하고 더러운 하나님의 나라

  • 허태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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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결하고 더러운 하나님의 나라
눅13:20-21

 

왜 하나님의 나라가 부정하고 더러운 것이냐고 물으실 터입니다. 더럽고 불결한 나라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엄연히 오늘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더럽고 불결한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우선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들을 때 등장하는 주인공이 여자입니다. 고대세계에서 여성은 일반적으로 부정한 존재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직까지 이른 아침에 여자를 처음으로 보면 재수가 없다든가, 우시장에는 여자가 들어갈 수 없다든가 하는 풍속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물론 패미니즘의 차원에서는 불가한 이해들이긴 합니다만, 엄연하게 존재해 왔고 아직도 그 잔상이 남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고대 세계에서도 여자는 하나님 나라처럼 고귀한 이야기에 주인공으로 등장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런 불결한 존재인 여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불결한 존재였던 여자가 취급하는 누룩은 더 문제입니다. 누룩은 발효의 속성도 있지만 부패의 속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선 부패의 부정적인 속성에만 의미를 두고 있었습니다. 빵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나 시채가 썩어서 부풀어 오르는 이치는 같습니다. 단지 유익한 미생물이냐 무익한 미생물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인데, 대부분 성서에는 누룩이 부패와 관련된 은유로 사용됩니다. 막8:15, 마16:12, 눅12:1, 갈5:9, 고전5:6-8등이 신약에 나타난 누룩의 용례인데, 모두 부정적으로 쓰였습니다. 구약성서에서 누룩을 넣은 빵은 더러운 빵이고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이라야 거룩한 빵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만찬에도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써야 했던 겁니다. 유월절에는 누룩을 넣은 빵은 모두 버려야 했습니다.

 

이런 것들로 볼 때 누룩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로 적절할리 없었습니다.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도 불가한 일이고, 그런 여자가 누룩을 넣은 빵을 만든다는 일은 상상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여자가 누룩 넣은 빵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나라는 부정하고 더러 울 것이 분명하고, 거기 계시는 하나님조차 누추한 존재일 게 분명합니다. 이게 예수님이 본문에서 제시하는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누추하고 불결하다’입니다. 아울러 거기 계신 하나님도 누추하시다는 겁니다.


여하튼 예수님의 이야기를 따라가 봅시다. 이 하나님 나라와는 어울리지 않는 여자가 누룩을 가루 서 말에 넣었습니다. 적어도 100명은 먹고도 남을 양입니다. 그럼 이제 빵을 만든다고 합시다. 이 빵은 누가 먹을까요? 그렇습니다. 평소에 죄인과 세리들과 잔치를 자주 벌였던 예수님의 성품으로 보아 불결하고 더러운 존재들일 겁니다. 이들은 유대교나 유대사회에서 배제된 민중들입니다. 이 빵을 그들과 함께 먹으며 잔치를 베풀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를 듣는 청중들은 ‘여자가 누룩을 가 루 서 말에다 넣었다’는 이야기를 하실 때 ‘응, 우리에게 빵 잔치를 베풀어 주시려고 하는 구나’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비유에서 여자가 가루 서 말에다가 누룩을 ‘넣었다’가 아니라 ‘숨겼다’고 한다는데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숨겨져 있다’라는 말이기도 해서입니다. ‘숨겼다’는 단어는 ‘크립토’거나 ‘엔 크립토’인데 이는 ‘은폐하다’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루에 누룩을 ‘숨겼다’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를 은폐했다’는 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보통이상의 사람)이 지니고 있던 상식에 거슬리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연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본래 고대 그리스어의 ‘바실레이아’에서 왔습니다. 이는 옥타비아누스가 기원전 31년에 로마를 통일하고 공화정을 무너뜨린 후 가혹한 독재를 펼치던 시대의 ‘로마 나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나라-바실레이아’를 로마와 동일시했고, 로마가 통치하는 나라를 경멸하고 부정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상황에서 예수는 ‘로마 나라-로마 바실레이아’가 아니라 ‘하나님의 바실레이아’를 말했습니다. 로마황제와 대립되는, 옥타비아누스-티베리우스 그리고 유대의 왕인 헤롯 안티파스와 대립되는 나라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 선언은 로마와 그 수하인들의 폭력과 수탈에 신음하는 갈릴리 농민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까닭 때문에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비유로 들어 하나님 나라를 말하지 않고 누룩을 넣어 만든 부정한 빵으로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한 부류의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을 것입니다. 자신들만이 정결하다고 자부하는 지배계층이나 바리새인들이었겠죠. 반면에 이 비유를 환영한 부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정하다고 정죄당한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여성들이 가장 기뻤을 것이 아닙니까? 자신들이 늘 상 하던 그 일, 가루에 누룩을 넣어 빵을 만들어 먹고 살면서 부정한 인간으로 취급을 받던 그들로서는 그들이 하는 그 일이 곧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예수님이 살던 시대의 대부분은 누룩처럼 부정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중산층이라는 게 없었던 사회입니다. 소수의 부유층을 제외하면 모든 국민이 세상의 누룩과 같았습니다. 세상을 부패하게 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 처지에서 그들은 복잡한 종교의 계명이나 율법의 세칙 따위를 지킬 수 없는데도 강요당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들은 경제적, 종교적, 육체적, 정신적인 수탈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현재 있는 그대로, 그들의 삶 그 자체로 하나님 나라와 연관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입니까? 예수님은 그들에게 의인이 되라고 하지 않습니다. 처지를 지금보다 낫게 하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긍정해 줍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누룩과 같은 그들 편이라는 이야기와도 같습니다.

 

여러분은 톨스토이라는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를 아십니다. 그는 엄청난 대지주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톨스토이가 그의 나이 50(1828-1910)살 즈음에 기독교인으로 회심을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누룩과 하나님의 나라’이야기를 민담하나로 발표를 하는데 그것이 [바보 이반]입니다. 그는 회심이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토지를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고, 농민들과 하루 여덟 시간씩 일하고 장화를 짓고 살았습니다. 훗날 사람들은 그를 무정부주의자 혹 ‘아나키스트’의 범주에 넣는 것을 망설이지 않습니다. 그는 돈과 권력이 신화화된 국가와 군대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와 같은 바실레이아를 거부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가 하셨던 그대로를 따라하는 일이었습니다.


바보 이반에는 도깨비가 나오는데, 돈과 권력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믿는 것은 ‘도깨비장난’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합니다. 예수님의 시대거나, 톨스토이의 시대거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과 권력’이 ‘바실레이아’를 만든다고 믿고 삽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걸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바실레이아’는 ‘로마의 바실레이아’가 아니라, 돈과 권력으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라는 겁니다. 여자가 가루 서 말에 누룩을 감춰 넣고 빵을 만들어,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이들과 나누어 먹으며 잔치를 벌이는 나라와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천국으로 데려가기 위한 어드벤테이지(Advantage)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탄생에 대한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희망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더러 새로운 나라의 건설 자들이 되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과 같이 돈과 권력(혹은 종교심이나 믿음의 공력)으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라 ‘여자가 가루에 누룩을 넣어 빵을 만들고, 그 빵을 누룩 같은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면서 잔치하는 나라’압니다. 이런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대의 기득권자들에게는 감춰져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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