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 백성과 본향 (창 46~50장)

  • 잡초 잡초
  • 268
  • 0

첨부 1


하나님 백성과 본향 (창 46~50장)

창세기 말씀을 마감하면서 하나님의 백성과 본향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요셉을 만나기 위해 야곱은 그가 거주했던 헤브론을 떠난 후 브엘세바에서 “그 아비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을” 드렸습니다(46:1). 브엘세바는 아브라함이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불렀던 곳이며(21:33), 이삭이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곳입니다(26:25). 과거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경우를 생각하면 약속의 땅 가나안을 벗어나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은 상당히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여호와께서는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명하셨던 일이 있었습니다(26:2). 그러므로 애굽 이주를 앞두고 야곱은 하나님의 허락을 필요로 했습니다.

밤에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3-4).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오히려 격려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큰 민족으로 키우시려는 뜻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는 금지하셨던 것을 야곱에게는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은 편애나 변덕스러움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일을 아브라함에게 계시하셨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15:13-14). 아브라함에게는 단지 모호하게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된다고만 계시하셨으나, 야곱에게는 그 자손이 ‘야곱’부터이며 그 이방이 ‘애굽’임을 분명하게 계시해주셨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속사를 진행시키시면서 각 시기마다 적합한 인물을 선택하십니다. 그래서 각 사람마다 그 역할이 다릅니다. 마치 예술가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큰 모자이크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각 사람에게 다른 색깔의 색종이를 주고 각기 다른 장소에 붙이게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이 점점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계시는 구속사가 진전됨에 따라 점점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전과는 다른 계시를 주신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계시를 좀 더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계시라는 것은 이처럼 이전 계시의 토대 위에서만 주어집니다. 그래서 아담에게 주어진 계시나 노아에게 주어진 계시나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계시는 근본적으로 그 내용이 같습니다. 구속사의 맥락과 상관없는 계시, 혹은 이전에 주어진 계시와 무관한 독립적 계시란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계시가 성취되었으므로 더 이상의 계시는 필요치 않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야곱처럼 브엘세바까지 가서 단을 쌓을 필요가 없습니다. 꿈이나 이상 중에 하나님을 만나기를 바랄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이제는 계시가 기록된 성경으로 가야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좀 더 분명하게 분별해 가야 합니다. 철저하게 성경에 의존해서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 감당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 역시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이미 계시해주셨던 바였습니다(12:2, 26:4, 28:3).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사건과 7년 기근이라는 환경을 섭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이야기는 감동적인 신앙 승리 수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관한 말씀입니다. 요셉의 신앙이 훌륭하다는데 초점이 있지 않고,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며 당신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신실하게 이루신다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46장 8-27절은 큰 민족을 이룰 족장들이 소개됩니다.

야곱은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애굽의 국경지대인 고센 땅에 도착했습니다(28). 요셉은 그들을 “고센 땅에 거하게” 하기 위해 가족들이 대대로 “목축하는 자”임을 바로에게 밝히도록 조언합니다(32-35). 애굽 사람들이 목축을 가증하게 여기는 것을 요셉이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 요셉은 애굽 사람들이 ‘5’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형들 다섯 명을 뽑아서 바로를 알현하게 했습니다. 형들은 바로에게 “종들로 고센 땅에 거하게 하소서”(47:4)라고 청합니다. 결국 바로는 그들의 소원대로 고센 땅에 있는 국고성 “라암세스”를 주었습니다(11). 그 결과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27)하였습니다. 야곱과 요셉과 그의 형제들은 어찌하든지 고센 땅에 거하려고 지혜를 총동원했습니다.

그들이 고센 땅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큰 민족으로 성장해야 했습니다. 이 목적에 비추어보면 가나안 땅은 환경이 좋지 않았습니다. 유다가 며느리와 동침한 사건에서나 디나의 성폭행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가나안 족속의 풍습과 유혹은 너무 강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육신의 생존뿐 아니라 신앙적 생존을 위해서도 가나안을 떠날 필요가 있었습니다. 동시에 애굽의 죄악에 동화되는 일도 막아야 했습니다. 고센 땅은 목축하기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애굽 사회의 변두리에 있어서 애굽에 동화되지 않고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좋았습니다. 나중에 가나안으로 다시 옮길 때도 유리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살면서도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되고자 고센 땅을 원했습니다.

요셉이 야곱을 바로 앞에 서게 했을 때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9)하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나그네로서 살아왔었고 이제 애굽 땅에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왔습니다(10). 그는 바로에게 도움을 받는 처지에 있었으나 바로를 축복합니다. 그는 도움받으러 온 사람이기 보다는 큰 민족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에 온 하나님 백성답게 품위와 당당함을 유지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축복대로 바로의 왕실이 견고해지도록 도우심으로 당신님의 백성들을 기근의 기간 동안 보호하셨습니다. 야곱은 애굽 땅에서 십칠 년을 거하였고 147세에 생애를 마감하게 됩니다(28, 31).

생의 마지막 순간에 야곱은 요셉에게 “애굽에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시키고,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고 지시했습니다(29-30). 침상에서 요셉을 위하여 축복할 때 야곱은 하나님을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48:15-16)라 칭합니다. 야곱은 영적으로 철부지 같은 자기를 언약의 계승자로 선택하시고 기르신 은혜와 험악한 세월 동안 겪었던 많은 환난에서 보호하셔서 하나님 백성으로서 생을 마감하게 하시는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실 것임을 요셉에게 강조합니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21-22). 아직 미래에 성취될 일이지만 이미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의 땅을 주신 줄 믿고 그 땅을 상속합니다.

그 후 아들들을 불러 그들의 삶의 열매들과 그들의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루실 일들을 예언합니다(49:1-28). 특히 유다의 후손이 왕족을 형성할 것이며 그들의 가문에서 “실로” 곧 메시아가 오실 것을 예언합니다(9-10). 그 후 다시 한 번 더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고 명한 후에 숨을 거둡니다(29-33). 언약을 신뢰하고 살았던 야곱의 신앙은 요셉에게도 그대로 전수되었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사후에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다며 간곡한 말로 위로했습니다.(20-21). 요셉이 형들을 용서한 것은 휴머니즘의 발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그의 해골을 매고 가나안으로 올라가도록 후손들에게 맹세시켰습니다(24-26). 

그들은 언제나 거룩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험악한 세월을 보낼 때뿐만 아니라 애굽에서 풍요를 누리고 있을 때도 하나님 백성으로서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애굽에서의 삶은 잠깐 우거하는 나그네의 삶에 불과함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살면서도 애굽에 소속되지 않고 하나님 백성으로 살았고 하나님 백성으로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오늘날의 성도 역시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언약에 철저하게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세상과 벗이 되어 하나님의 원수로 살지 않고(약 4:4), 이 땅에서 거룩한 나그네로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험악한 세월을 보낼 때에나 풍요로움 속에 있을 때나 하늘 본향에 소망을 두고 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뜻의 한 부분을 감당하면서 어느 곳에서 무슨 직분을 맡고 살든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는 무엇보다 이러한 신앙을 계승해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죽음까지도 하나님 백성으로서 아름답게 마감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