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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넉넉히 이기리라! (롬 8: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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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넉넉히 이기리라! (롬 8:31-39)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채워주시는 하나님만을 순간 순간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저 높은 하늘이 맑은 날과 비오는 날을 마음대로 조정하지 못하는 것처럼, 인생 길에 다가오는 평안의 날과 슬픔의 날을 마음대로 조정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인생 길에 폭풍처럼 다가오는 슬픔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슬픔을 맞는 태도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물밀 듯 밀려오는 인생의 환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환난에 대처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지식을 낳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태도를 낳는 것입니다.  신앙은 얼마나 많이 아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의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어떤 고난이나 환난도 박차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은 오늘도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기적을 볼 수가 있을까요?  주님이 함께 하셔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인생 길에 부푼 꿈과 기대를 가지고 나의 경륜, 나의 재능, 나의 온갖 힘을 애써 동원해 봅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이런 것들이 전혀 통하지 않는 때가 훨씬 더 많았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5장에 나오는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어느 날 밤 베드로는 만선의 꿈을 안고 넓은 바다에 배를 띄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경륜과 재능과 온갖 힘을 다 동원해서 날이 밝도록 수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허탕이었습니다.  빈 배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좌절과 허탈감에 빠져서 아쉬운 마음으로 텅 빈 그물을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를 훤히 알 듯이 우리도 우리의 사업 구상을 너무 잘 알고 있었는데 결국 꿈은 사라지고 좌절과 허탈감에 빠져서 지나간 세월들을 못내 아쉬움과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이런 인생의 배에 주님께서 오르시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우리 개개인의 심정에, 우리의 가정에, 기업에, 국가에 주님이 함께 하시면 기적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보십시오.  그 날 새벽에 갈릴리 바닷가에는 허탈한 심정을 안고 하선하는 많은 어부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좌절과 허탈한 마음을 몰아내고 희망과 기쁨으로 심령을 불태웠던 사람은 오직 베드로뿐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배에 주님께서 함께 오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내 인생의 배에, 내 가정의 배에, 내 사업의 배에, 우리 믿음의 공동체인 우리 교회의 배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기적은 일어날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기적은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주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동업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말씀 앞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한 사람이 발견되면 그를 세워서 역사를 만들어 가십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은 생각해 보는 것이 아니고 듣고 저지르는 것입니다.  신앙은 귀로 시작하지만 그 열매는 손과 발로 맺는 것입니다.  바른 믿음은 그 믿음이 증거합니다.

보십시오.  베드로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다 거두어들인 배를 다시 바다에 띄웠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롱을 했겠습니까?  그렇지만 말씀에 순종한 베드로는 깊은 곳에서 고기가 얼마나 잡혔든지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옆에서 손가락질하고 조롱하던 사람들까지 불러서 그들의 배마다 고기로 가득 채웠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한 사람의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만선이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나 한 사람의 순종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 가정이 일어날 것입니다.  내 가문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민족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하는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으나,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함으로 생명이 왔다.  그래서 한 사람의 순종하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은 누구나 좌절합니다.  그런데 이 삶의 좌절감은 인생 길에서 잘못된 가치관을 낳게 합니다.  성경에 엘리야 선지자를 보십시오.  그는 광야에 들어가 헤매고 헤매다가 하루는 스스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크게 좌절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좌절감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게 만듭니다.  좌절감은 자기가 처한 곤경을 다른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고 그들을 비방하게도 합니다.  좌절감은 끝없는 비난을 낳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남을 탓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은 언제나 맑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찬란한 태양만 비추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이 땅은 황량한 사막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아름다운 산천이 되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태양도 있어야 하고 구름도 있어야 합니다.  맑은 날도 있어야 하고, 폭풍이 내리치는 날도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 여정에는 언제나 맑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름답고 좋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도 있습니다.  고통과 아픔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이러한 실패와 고통과 아픔을 통해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실패와 고통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좌절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인생 여정에서의 좌절은 삶의 시야를 흐리게 합니다.  그래서 좌절은 자신의 사명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자신의 존재 의식조차도 잊어버리게 합니다.  좌절한 엘리야는 자기 혼자 남은 줄로 착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역사를 위하여 준비하신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살아가면서 수많은 크고 작은 실패를 안고 실망과 좌절과 가치관의 혼란과 책임 회피와 비방과 원망에 사로잡힐 때가 없지 않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성령의 능력으로 속히 그러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눈만은 크게 뜨고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사명의 자리는 꼭 붙잡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결국 더 멀리, 더 넓게, 더 크게 본 사람들을 붙들고 일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갈릴리 바다가 잔잔할 날이 없듯이 인간이 한 생애를 사는 것이 끝없는 고난의 연속이고 어떤 때는 슬픔의 광장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고난 당한 욥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

사실 인생이 그런 것 같습니다.  이쪽에 불꽃이 일어났는가 하면, 저쪽에 불꽃이 또 일어납니다.  이쪽에 일어나는 불꽃을 겨우 잠재웠는가 했더니 어느 새 저쪽에 또 다른 불꽃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있는 곳에 고통의 문제는 그림자처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 고난의 문제는 신학적이거나 종교적이거나 학문적인 논쟁의 문제가 아닙니다.  고난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결코 누구나 외면하고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자신의 삶의 문제입니다.  사실 인간의 삶이란 고난의 숲과 늪을 헤쳐 나가며 사는 여정일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고난은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문제는 이 삶의 고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것입니다.  고난 그 자체를 우리는 거부할 수는 없지만 그 대응책을 주 안에서 마련할 수는 있습니다.  내 머리 위로 참새가 지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참새가 내 머리 위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맑은 날과 비오는 날을 우리가 마음대로 조정하지 못하는 것처럼, 한 평생 살면서 인생의 다가오는 평안의 날과 슬픔의 날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연약한 우리들입니다.  때로는 슬픔이 파도처럼 엄습해 올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고난의 수레바퀴에 여지없이 짓밟히며 돌아갈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밤을 새워 울고 또 울어도 다 감당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극한 슬픔의 상황에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이 되어 헤매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전혀 사람의 위로와 소리가 아무런 의미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그럴 때에라도 분명한 것은 우리 모든 인간은 이 고난에 지지 말고 고난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에 지지 말고 일어나 헤치고 나가십시오.  하늘에 바람이 불어야 비행기가 비상할 수가 있습니다.  바다에 태풍이 휘몰아쳐야 물고기가 몰려듭니다.  그런 점에서 때때로 우리 인생 여정에서 만나는 고난은 축복의 그림자가 될 수 있습니다.

고난에 대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성경적인 교훈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한 마디로 삶의 고난을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같이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내게 이런 고난이 다가올까?"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고통을 주시는가?"
그렇게 이상한 일을 당한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사도 야고보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에게 고난은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도전의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위로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도 있습니다.  강물을 보십시오.  어제 흘렀던 그 강물은 오늘도 유유히 흘러갑니다.  그 강물은 내일도 그렇게 흘러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도 그렇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의 강물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철철 넘쳐흘러갈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그렇게 강같이 넘쳐도 깨닫지 못합니다.  언제 깨닫습니까?  고난의 때입니다.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그 고난은 축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이 왜 유익이 됩니까?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삶의 방향을 수정해 줍니다.  무엇보다도 고난은 인생에 깨달음을 주고 회개할 수 있는 깊은 기회가 됩니다.  또 하나님은 그 고난에 대한 보상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고난에 대해서 틀림없이 보상을 하십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자기 고집대로 하나님을 반역하던 인생이 고난 중에 그 완고하던 자아가 깨어집니다.  인격적으로 모난 것들이 정비되고 아버지의 품을 찾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오늘 이 한 말씀은 외우고 가십시다.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상급이 꼭 따른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그가 아무리 잘 배웠든, 그가 아무리 교양이 있든, 그가 아무리 도덕적으로 살든, 그가 아무리 나이가 들었든, 누구에게나 탕자 같은 기질이 다 있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자기의 몫만을 챙기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나 규범이나 원칙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피해 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자기 인생을 간섭받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제멋대로 살고 싶은 욕망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 얼굴을 모르는 곳, 내 이름을 모르는 곳에 가서 편안하게 살고 온다거나 …  그런 마음이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방황이나 자기 파괴가 인생의 멋인 것처럼 여겨지는 착각의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게 자신 있던 탕자에게 어느 날 갑자기 극한의 슬픔과 굶주림과 고독과 질병과 묶임과 문제 앞에서 밤새워 슬퍼하며 울어도 무슨 방법이 없습니다.
"내 꼴이 어쩌다가 이 꼴이 되었는고?  내가 이곳에서 이렇게 굶주려 죽게 되었는구나?  주는 자도 도울 자도 없으니 어찌하면 좋을꼬?  오호라!  내가 어디로 갈 것인가?"

이때서야 그가 그의 원래적인 감각으로 돌아왔다고 그랬습니다.  자기 회복의 강한 의지가 살아난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이렇게 굶주려 죽을 수가 없다.
내 인생을 이렇게 마칠 수는 없다.
나에게는 아직 길이 있다.
돌아가리라,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리라,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리라, 아버지의 사랑으로.
돌아가리라, 아버지의 주권 밑으로."

사랑하는 여러분, 탕자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인간의 타락의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사람의 배신의 문제도 아닙니다.  죄의 문제도 아닙니다.  성경은 이것을 가르치고자 탕자의 이야기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고난과 고통의 문제는 여러 길, 여러 곳, 여러 방향으로 오지만, 이 모든 것의 해결의 길, 해결의 방법은 오직 한 분 아버지의 품 밖에는 없다는 축복의 비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많은 문제, 여러 고난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일순간에 갑자기 다 해결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이신 하나님입니다.  아버지의 품에 안기면 살 길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도 어디가 살 길인지를 몰라서 방황하십니까?  여기에 길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리라!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잃었던 내 아들이라.  좋은 옷을 내다 입혀라.  손에 가락지를 끼워라.  발에 신을 신겨라.  살진 송아지를 잡아라.  그리고 잔치를 베풀어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영원한 아버지 하나님이 계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고난 중에 있을 때에라도 전능하신 아버지, 사랑이 충만하신 아버지가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떤 고난 중에서라도 내일에 대한 꿈을 버리지 말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저는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에 가져야 할 신앙적 자세에 대해서 특별히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는, 고난 당할 때에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모든 믿는 사람은 고난을 새로운 삶의 창조에 대한 도전으로 삼아야 합니다.  또 고난을 인격 변화의 최고의 능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고난의 때에 사람이든 하나님이든 결코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원망할 시간이 있거든 욥처럼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었나이다."(욥 42:5)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지상에서 제일 위대한 힘입니다.  기도는 최고의 승부입니다.  이 시간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성경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 중에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름만 불러도 죄송한 사람이 있습니다.  생존하는 인물이라면 미안하고 미안해서 마주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욥이라는 사람입니다.  그 많은 소유가 어느 날 하루 아침에 새가 날아가듯이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열 자녀가 그렇게 비극에 갔습니다.

심지어 온 몸에 알 수 없는 악창까지 얻고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잿더미 위에 앉아 기왓장으로 온 몸을 긁고 있을 때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의 아내조차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지만 욥은 인간도 하나님도 결코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주여, 고난 중에 있을 때에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주여, 고난 중에 있을 때에 형제나 부모나 사람도 원망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요셉은 또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분하고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한 사람이 요셉입니다.  가는 곳마다 이유 없는 고난을 당한 사람입니다.  요곱은 아버지의 열두 아들 중에서 제일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형들의 무서운 시기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옷이 벗겨지고 우물 속에 던져 졌을 때에 그는 우물 속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극적으로 우물에서 끄집어내어 애굽에 팔려 갈 때 보디발의 집에서 성실과 진실의 결과가 전혀 통하지 않고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끌려 들어갔을 때 요셉은 집을 떠나 이렇게 13년 동안 한결같이 이유를 모르는 고통을 견디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 밖에는 할 수 없었습니다.  요셉은 나중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은 이 놀라운 기도를 힘입고 어떤 고난에도 어떤 여건에도 어떤 지경에도 내일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욥이 우리와 특별히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요셉이라고 우리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입니다.  그들에게도 아픔을 아픔으로 느낄 수 있는 심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적인 고난 속에서도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적으로 붙잡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보여주시고자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죽으시고 삼일만에 우리를 너무 너무 사랑하셔서 부활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십시오.

인간 육신의 부모는 자녀를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녀를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내 형제는 나를 외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없다고 나를 무시하지도 않고, 어리석다고 나를 외면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할 때 두 번째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로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의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확실하게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내 생애는 멸망치 않으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녀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넘어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녀도 핍박을 받습니다.  아주 버린바 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녀도 거꾸러뜨림을 당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아주 망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일어날 것입니다.  반드시 일어나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시위할 것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 로마서 8장 30절에서 39절을 볼 것 같으면 인생의 모든 고난과 갈등을 해결한 승리자의 노래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세상의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던 인생이 삶의 해방의 세계를 깨달은 노래입니다.  이 고통과 절망 중에서도 날아오르는 젊은 독수리 같은 능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아들의 생명을 아낌없이 주신 이가 무엇인들 안 주시겠는가?
누가 감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끝까지 괴롭힐 수 있겠는가?
누가 감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겠는가?
환난도 곤고도 박해도 기근도 적신도 위험도 칼도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나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으로 인하여 넉넉히 이기고 일어날 것이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 길에는 꼭 깊은 곳으로 가는 길목이 있습니다.  이 깊은 길목에서만 나와 내 가정의 방향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깊은 길목에서만 내 교회와 민족의 방향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람은 얕은 곳에서 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얕은 곳에서는 희생이나 헌신이 없어서 아무런 부담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의 자세로는 결코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래가지고는 결코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 길에는 이성이나 상식이나 경험으로는 알 수 없는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삶의 낭패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삶의 낭패와 실망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골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삶의 어떤 고난과 좌절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면, 하나님을 붙들고 나가면 반드시 기적은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 주변에 보면 모든 난관 앞에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고 끝없이 무너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느 날엔가 어느 시간엔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고 일어나 자기의 극한 상황 앞에 맞서면서 하나님의 붙들림 바 되어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역사를 나타내셨는지를 증언하는 믿음의 대열에 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꿈을 꾸십시오.  환상을 보십시오.  비전을 붙잡으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다시 하나님을 강하게 의지하십시오.  다시 하나님을 강하게 붙드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고 일어나 내일에 대한 꿈과 비전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십시다.

내가 확신하노니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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