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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육의사람과 영의사람 (롬 8: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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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의사람과 영의사람 (롬 8:5-11)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지금 우리 교회 안에는 두 가지 모습의 사람이 있습니다.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오늘 말씀이 저 세상에 대고 한말이아니라 로마의 교회에 보낸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영의 사람만 있다면 바울은 이런 편지를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좀더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편지를 썼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너희에게 감사한다. 서로 사랑하며 봉사하는 너희에게 감사한다. 오늘도 열심히 전도하는 너희에게 감사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헌신하는 너희에게 감사한다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그런 말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걱정하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에는 초대교회에나 현대교회에나 항상 영의사람과 육의사람이 공존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로마교회에도 육의사람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이 다 영의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다 하나님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영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에게 택함 받고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임재 하여 함께하는 성령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령한 것에는 민감하고 육신의 것에는 둔감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먹는 것을 너무 탐하고 입는 것을 너무 탐하고 자리 차지하는 일에 너무 민감하면 걱정이 됩니다. 혹시 육의사람은 아닌가? 하고요. 하늘의 것에 민감하고 세상의 것에는 둔감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나환자가 많습니다. 제가 말하는 나환자는 한센병-나병환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수 윤형주장로가 쓴책 [또 하나의 아름다움]에 나'환자의 치유의 길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나'환자는 자아, 자기 자신, 나만을 추구하는 병적인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겐 고질적인 질병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자기중심적'인 병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지나치게 돈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기중심적 인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돈을 사용할 줄을 모르고 모으는데 열심이고 자기 소유가 늘어 가는 것으로 만족하며 그래서 자기뿐인 삶을 삽니다.

돈만 보면 좋아서 웃는 사람은 내가 대견스럽고, 내가 자랑스럽고,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분석해보면 이런 단어들이 많이 사용되지요. '내가 말이야', '내 생각은', '난데', '나의', '내 입장', '나보고', '나한테', '나에게....' 온통 '나'뿐입니다. 주어도 '나'요, 서술어도 '나'요, 목적어도 '나'입니다. 내 땅, 내 집, 내 주식, 내 건물, 내 재산, 내 돈, 모두가 나 중심으로 연결되고 펼쳐지는 것입니다."이런 사람들이 나환자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육의 사람과 영의사람이 있습니다. 육의사람은 육신의 일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영의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 했습니다. 인간은 세 번 죽습니다. 첫째는 영혼이 죽습니다. 하나님과 영혼이 단절되는 것을 말합니다. 불신자의 시절에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었으나 사실은 영혼이 죽어있었던 것입니다.

다음은 육체가 죽습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의 영혼이 육신과 결별합니다. 끝으로 육체와 영혼이 함께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단절됩니다. 지옥의 형벌을 받습니다. 여기서는 영적인 죽음과 영원한 죽음을 동시에 받습니다.

육신대로 살면 죽습니다. 세상에서 살지만 죽음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왜 밥을 먹느냐 하고 물으면 살려고 먹는다 합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우리는 살기위해 먹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에 사는 사람은 살기위해 먹지만 결국은 죽습니다. 결국은 죽게 되니 죽기위해 먹는 것입니다. 70년 80년 살기위해 달려 왔는데 보니까? 죽음밖에는 없습니다. 지옥의 형벌이 있습니다. 이것이 육신대로 살면 우리가 받게 되는 결론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 와서 봉사하고 직분을 받으면 무슨 천국 가는 보증수표라도 되는 줄로 착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목사든 장로든 육신적으로 형식적으로 믿으면 지옥 갑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의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육의 일들을 떠나야 합니다. 육의 일들을 끊어야 합니다. 시편 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했습니다.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육신의 것에 붙들리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데 더욱 무서운 것은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하는 말씀입니다. 거기서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아예 빠져나올 생각조차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서운 저주입니다. 병중에 제일 무서운 병은 무감각 병입니다. 암이무서운 것도 병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모르는 것입니다. 언제 알게 되느냐? 죽게 된 다음에 사 알게 되는 것입니다.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눅16장에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사로는 부자 집 문간에서 얻어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부자는 날마다 떵떵거리며 세상을 즐기고 살던 사람입니다. 가진 자의 인심도 있습니다. 거지나사로를 문간에 거하게 한 것은 대단한 인심입니다. 요즈음 문간에도 못 오게 하는 부자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부자는 나사로를 용납했습니다. 그런데 그 용납이 가진 자의 인심정도지 그 이상이 없습니다. 근본적인 것, 영적인 것, 사랑이 없습니다.

이 사람은 육의 사람입니다. 육을 위해 살았습니다. 육을 위해 인심도 쓰고 육을 위해 존경 받을만한 일을 찾아 힘을 쓰고 노력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일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수고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똑같은 밥을 먹어도 생각은 다릅니다. 한사람은 이 밥을 먹고 오늘 하루도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겠다. 하고 밥을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밥을 먹으면서 오늘 무엇을 즐길까 하고 먹는 사람, 아무개 손 좀 봐야 겠다. 하고 먹는 사람의 길은 다른 것입니다.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부자는 지옥에 갔습니다. 지옥에 간 다음에 부자가 깨닫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과 원수 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 하나님이 나사로라는 거지를 자기문간에 보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살려달라는 부자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16:25절 “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부자는 좋은 것을 받았습니다. 좋은 것을 받았으면 문간에 고난 받는 자를 생각했어야 합니다. 육의 생각으로 동정이나 인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으로 영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마음씨 좋은 인간이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육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수고 했지만 땀을 흘렸지만 구제도 하고 봉사도 했지만 육의 생각으로는 했습니다. 육의 생각으로는 하나님나라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영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생각으로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부자는 하나님께 받은 그 좋은 조건 속에서 영의 생각을 가졌더라면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하지를 못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지금 있는 자리에서 영의 생각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영의사람은 영의생각을 합니다. 영의 생각은 하나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생각대로 살면 오는 축복이 있습니다. 생명과 평안입니다. 앞에서 살기위해 먹는다. 했습니다마는 살기위해 먹는 사람이 영의사람입니다. 영의 사람은 한평생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살다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부활의 생명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살기에 우리는 살기위해 먹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기위해 먹지 말고 살기위해 먹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살기위해 먹고 살기위해 일하고 살기위해 봉사하고 무엇을 하던지 우리가 하는 일에 생명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영의 일을 하고 영의 일을 생각 하면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영의 일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생각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영의 사람은 세상과 타협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손해가 나도 고난이 와도 불이익을 당한다 해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 것이 예수님이 가신길입니다. 십자가를 지신길입니다. 부활하신 길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영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갔을 때 왕은 유대 소년 중에 지혜 있는 자들을 뽑아서 갈대아 사람들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쳐 왕의신하로 삼았습니다. 포로들이 관원이 된 것입니다. 왕이 먹는 음식과 포도주와 필요 한 것을 다가지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축복입니다. 적당하게만 살면 얼마든지 출세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환관장에게 부탁하여 채식만 먹습니다. 적당하게 타협하면 됩니다. 이전에 생전 먹어보지 못한 진수성찬 입니다.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채식이 뭐요, 얻어 먹는 사람도 그렇게는 안 먹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지키기 위하여 육의생각을 포기하고 영의생각을 따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몸을 더럽힐 수가 없다. 그래서 타협을 하지 못합니다. 적당히 타협해서 사는 사람에게는 충격입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영의 사람이 됩니다. 적당히 해서는 영의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다니엘 그리고 세친구 영의 사람들이기에 왕 앞에서도, 불구덩이 속에서도, 사자굴 속에서도 건짐을 받았습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을 가져다 줍니다.

그들 속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살리시리라. 영으로 사는 사람은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있습니다. 14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생명이 여기 있습니다. 살길이 여기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 영의 사람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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