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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 방언으로 말하고 듣게 하시는 성령 (행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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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으로 말하고 듣게 하시는 성령 (행 2:8)


(행 2: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장마 끝에 퍼부었던 소낙비가 한 줄기 지나갔지만, 태양의 열기로 달궈진 대지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인 어느 날 대문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한 아이가 들어와 “ 물! 물! 물! 밖이 너무 더워요.”

아이는 가방을 던져 놓자마자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더니 컵에 따르지도 않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아이는 잠시 숨을 돌린 후 아빠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빠! 오늘만 영어학원에 안 가면 안 돼요?” 
“그럼 안 돼지! 영어란 날마다 조금씩 해야 느는 거예요.” 

조금은 늦게 시작한 영어 공부 탓에 아이는  영어 공부를 무척 힘들어하고 있었다. 날마다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외우고, 동영상을 보면서 발음을 익혀야 한다며 요즘에는 불만이 자주 터져 나왔다.
“왜 이렇게 어려운 영어를 만들었어요? 누가 만들었어요?” 
아이는 입을 삐죽이며 아빠를 바라보았다. 아빠는 아이에게 성경의 바벨탑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신 것을 알고 있지?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어. 왜 그랬지?” 
“아, 전도사님이 전에 이 이야기 한 번 해준 적이 있어요.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어서요.”
아이는 아주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아빠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래, 맞아.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이제는 에덴동산이 아닌,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지. 그런데 사람들은 전처럼 다시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되었어.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도 미움과 강도와 사기와 살인이 늘 그치지 않는 것처럼 옛날의 사람들도 죄와 친구하며 살았지. 하나님은 오래도록 참고 인내하며 보셨지만, 사람들은 회개하기는커녕 더 악하게 살았지. 그래서 하나님은 도저히 보실 수가 없었어.” 
“그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데요?”

아이는 갑자기 아빠의 이야기 속으로 불쑥 끼어들어 왔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물로 심판하시기로 했어.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구원의 방주도 준비하셨지. 심판의 무서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도 예비해 놓으시는 분이야.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어.”
“아! 배 말이 죠?” 
“그래. 배 타봤지? 그 배보다 훨씬 큰 배를 지으라고 노아에게 명령하셨어. 그렇게 큰 배를 지으라고 하신 것은 많은 동물과 사람들을 구원하고 싶어서였지. 물론 노아의 말을 듣고 그 방주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만 구원은 열려 있었던 거야.” 
“배가 컸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노아의 가족들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게 한 동물들밖에 구원을 받지 못했어. 왜 그랬을까?” 
“바빠서 다 어디 갔나 보죠?” 아이는 너무나 쉽다는 듯 대답했다. 

“아니야. 사람들이 노아의 말을 믿지 못한 거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많이 지나갔어. 다시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로 넘쳐났지. 그런데 그때는 한 아버지에게서 자녀들이 태어났고, 또 그 할아버지, 그 아버지에게서 말을 배웠기 때문에 지금처럼 여러 나라 말이 있지 않았어. 그때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옆집 아저씨도, 아주머니도 다 같은 말을 했어. 그리고 이 세상의 사람들의 말이 다 똑같았어.” “정말요? 야, 정말 좋았겠다. 지금처럼 영어 때문에 고생 안 해도 됐겠네요?” 아이는 신기하고 부러운 듯 원망하는 말투였다.“그런데 이렇게 하나였던 말이 지금과 같이 여러 나라 말로 바뀐 이유에 대해서 성경에 나와 있는데 너 그거 아니?” “아니요!” 아이는 궁금하니 빨리 그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눈치였다. “사람들이 그들의 살던 곳을 더 많이 넓혀가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시날 평지라는 곳에 이르게 되었어. 그런데 어떤 사람이 획기적인 제안을 내놓았지.‘ 우리가 이 곳에다 성과 탑을 쌓고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면 어떨까?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 이름을 세상에 떨칠 수가 있고, 우리가 그 탑을 중심으로 살면 절대로 흩어지지 않을 거야!’그 사람의 의견에 많은 사람들이 찬성을 한 거야.”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 바벨탑을 쌓는 것을 계속 보실 수가 없었어.” “왜요? 그렇게 좋은 탑을 쌓아두면 좋잖아요. 멋도 나고 폼도 나고.” 아이는 의아한 듯 물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같은 핏줄과 같은 언어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항하려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거지. 탑의 꼭대기가 하늘에까지 닿게 하자는 것은 그 사람들의 욕망과 교만을 그대로 나타내 주는 말이지. 그래서 인간의 교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하셨어.”“사람들이 말이 안 통하니까 어떻게 되겠니? 벽돌을 가지고 오라고 하는데 물을 가지고 오고, 진흙을 가지고 오라고 하는데 나무를 가지고 오는 꼴이 되었지. 말을 해도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어.” “하하 정말 웃기고 황당했겠어요.”아이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낄낄거렸다. “사람들이 흩어지지 말자고 바벨탑을 만들려고 했는데 하나님은 사람들을 흩어 버렸어.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해서 말이지. 어쩌면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은 것인지도 몰라. 하나님은 오히려 흩어지는 것을 원하셨던 것 같아. 그렇게 세상에 흩어짐으로써 땅을 정복하고, 세상에 편만해지고, 땅을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하신 것이지.” “ 이젠 불평하지 않고 학원에 잘 다니며 열심히 공부할게요. 아참, 지금 몇 시죠? 학원에 갈 시간이 다 됐어요. 늦었어요. 늦어.” 아이는 다시 대문을 닫고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합니다.

딸아이가 국제협력단(코이카) 몽골에 나가 있는데 언어 훈련을 받기 위하여 학원에 가려고 하는데 한달 학원비가 한 달 생활비와 같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다문화 가족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언어 소통이 안되어 어려움이 많다고 하는 보도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투리 때문에 오는 문제도 있고 생활 환경에서 오는 문제도 있으며 다는 언어 때문에 오는 겨울도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는 본래 하나로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언어가 하나라는 것은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모으는 주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의 선물로 부여된 언어를 자신들의 교만과 명예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복을 악용하는 죄를 범했으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렸습니다.
하나님 없이 이루어지는 경영은 인간의 욕심과 죄의 본성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경영의 과정에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뒤따릅니다. 인간의 악한 계획에 따라 건축되는 바벨탑을 하나님은 이미 아시고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함으로써 실패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바람은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까지 닿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위와 같은 일을 한 그들의 목적은 보호를 받고, 서로 교제를 나누며, 미래의 번영을 누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은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성과 소망의 탑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의로워지려고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의 성과 탑을 쌓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인간)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자신들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을 원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온 지면에 흩어지는 것을 면하고자 하였습니다. 인간은 오늘도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것을 원합니다. 인간의 지성과 과학기술을 통해서, 그리고 자기 교만과 과시를 통해서 하늘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창 11:5)합니다.
사람들은 탑을 높이 세움으로써 온 세상에 흩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바벨탑을 중심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로 다가오시어 그들의 하나였던 언어를 나누시므로 언어가 혼잡해져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 앞에서 그들은 온 지면에 흩어졌습니다.

이로인해 바벨탑을 쌓던 그들에게 갑자기 혼란이 닥쳤습니다.
(창 11: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하나님의 임재는 행함으로 의를 이루려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로는 혼란을 뜻합니다.

사람의 눈에 매우 기쁘게 보이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을 때, 그 일이 갑자기 바벨 즉 혼란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창 11: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완전하게 흩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재난을 예방하기 위하여 그들이 애써 쌓아올린 바로 그 탑이 그들에게 재난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시어 방언으로 말하게 하시고 듣게 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 사실이 기록 되었습니다.

오순절은 유월절 다음에 오는 안식일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오순절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날은 세계의 각처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세 가지 연중 대절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많은 순례자들이 오순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몰려든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모인 곳은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누가는 그들이 한 곳에 모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집에 모였을 때 바람과 불이 임했습니다. 여기에서 바람과 불은 성령의 권능의 상징들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것을 장차 오실 이의 사역으로 예언했었습니다. 그 예언이 지금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지상 사역을 완성하신 '장차 오실 그이'께서 자기 백성들을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첫번째 효과는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한 것이었습니다.
큰 무리들이 매우 놀라 기이히 여겼습니다.
세계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난 곳 방언으로'듣게 됨을 신기해 하였습니다.
방언의 역사가 최초의 기독교 오순절에 띤 형태는 분명히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방언을 들은 사람들은 각각 출신 지역의 언어임을 식별했으며, 그 말의 내용을 즉시 이해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러 말로 말한 주제는 하나님의 큰 일들이었습니다.

성령을 받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던 제자들과 성도들, 그들은 마침내 그들 가운데 내려오셔서 임하시는 성령을 받게 되었다.
성령이 임하셨을 때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방언으로 말했다.
그 곳에는 세계의 여러 지방에서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많았다. 그러나 성령 받은 사람들이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을 때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은 자기의 나라, 자기의 언어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혼잡했던 언어, 흩어졌던 언어의 세계가 비로소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역사 속에서 회복되었다.
창세기와 사도행전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 11: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행 2:8,11)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혼잡하여 알아듣지 못한 언어가 비로소 성령의 역사와 임재 앞에서 풀리어 사람들은 말하고 알아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언어가 인간들의 어리석은 죄와 교만 된 행위로 인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나타내고자 함으로 벌을 받아 언어의 혼돈을 가져왔습니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서로 싸우고 죽이는 일과 우상 숭배와 방탕과 음란 그리고 도덕적 윤리 파괴 등의 타락된 행위로 일삼았습니다

(갈 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 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갈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그러다가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상실된 언어가 다시금 회복을 가져왔습니다.
먼저 사도들이 한 곳에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비로소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행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때부터 많은 사람들은 사도들의 방언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며, 그들 중에 많은 사람이 방언으로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적은 이미 예수가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던 것으로 특별히 언급되어 약속의 성취를 보여줍니다.

(요 16:13-14)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사도들은 성령이 부어지자마자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하나님의 큰 일'을 전파하기 시작하였으니 성령께서 언어 회복을 허락하심으로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 도다(행 2:11)'라고 합니다.

성령충만함으로 신앙을 고백 하게 하시고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큰 일에 동참하게 하심을 감사하며 영광돌리며 사명 감당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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