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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복과 변화된 삶을 위하여 (롬 7: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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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과 변화된 삶을 위하여 (롬 7:15-17)


시작하는 말 

오늘은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회심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웨슬레 목사님은 일찍이 독실한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대학을 졸업하고 성직자가 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는 완전한 헌신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고 규칙적인 경건생활을 통해 내적인 성결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 미국 조지아 선교사로 자원하여 선교활동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적 노력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힘으로 넘어설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혀 괴로워했습니다. 그의 중심의 소원과는 달리, 신앙적으로 오히려 실패하고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너무도 슬프고 마음이 무거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그의 일기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존 웨슬리의 생애」, 김진두, 도서출판 kmc, 147쪽) 

그러다 놀랍게도 1738년 5월 24일 저녁 올더스게이트 거리의 네틀톤 코트에서 모이는 모라비아 신도회의 기도회에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는것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지며, 성령의 감동으로 회심의 체험을 하면서, 그의 영혼이 새롭게 회복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그는 기쁨과 확신으로 가득 차서 능력 있게 복음을 전파하며 영국사회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복음전도자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마침 저는 지난 10일부터 나흘간을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 개인에게는 대단한 감격과 느낌이 있는 순례였습니다. 감리교 목사로서 왜 진작 와 보지 못했을까? 후회스럽기까지 하였습니다. 영국 멘체스터에 비행기를 내려 버스로 5시간 정도 이동하여 웨슬레 목사님이 태어나고 자랐으며 화재로 죽을 뻔 하였던 그 동네인 에보트(Epwopth), 그의 생가와 아버지가 목회하셨던 작은 교회. 나중에 그가 강단에 서지 못해서 그의 아버지 묘석에서 설교했다는 그 무덤, 시장터,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을 그의 어린 시절을 눈에 본 듯하였습니다. 

그 후 그의 활동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브리스톨의 감리교 최초의 교회와 활동공간을 보며 그의 세심한 손길과 믿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런던에서 그의 회심이 일어났던 올드스케잇 거리와 작은 교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에 서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감리교 운동의 본부 역할을 하였을 런던의 웨슬리 채플을 둘러보며 기도하였습니다. 한 사람의 변화가, 한 사람에게 나타난 성령의 역사하심이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웨슬레 목사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렇게 행복하거나 남들보다 훌륭하고 좋은 환경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은 누구보다 가난한 목회자의 열 다섯번째 아들이었고, 목사로서의 그의 첫 사역은 실패하였고, 결국 영국 국교회에서 쫒겨나게 됩니다. 그의 결혼은 매우 불행한 경우였습니다. 외모도 정말 볼품없는 사람이었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원칙주의자였습니다. 그러니 그 자신의 고민과 갈등, 좌절은 남보다 유달리 심하였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런 웨슬레 목사님을 회복시키시고 변화시키어 사용하신 성령님을 바라보고 우리도 그 성령님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 성령의 역사하심이 예배하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몸 말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힘으로 넘어설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혀 괴로워할 때가 참 많습니다. 마음에 소원은 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도 참 힘들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이, 나의 삶이, 내 마음의 소원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볼 때, 너무나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 앞에서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당면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그 문제의 원인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문제의 원인을 깨닫고 나면, 그 문제의 결과를 이해하게 되고, 그 문제의 해결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 모든 문제의 원인이 우리의 죄의 본성(sinful nature)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의 말씀 로마서 7:15-17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새번역 성경에서 보면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내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율법이 선하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라고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바울이 말하는 것과 같은 괴로움이 있지 않습니까? 마음에 원하는 것, 분명히 그것이 바르고 좋은 것을 아는데, 정작 그 반대의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과연 어디에 원인이 있습니까?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그렇다면, 이 죄의 본성(sinful nature)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내가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맞다, 틀리다 말해 주는 것이 싫습니다. 맞든지 틀리든지 내가 알아서 판단하고 처리하길 원합니다. 내 나름대로 삶의 법칙을 세우고, 내가 우주의 중심이 되고, 내 삶의 주인이 되어서 마음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바로 그것이 죄의 본성입니다. 내가 하나님 노릇 하려는 것입니다.“내 인생은 내가 컨트롤 하면서 살아간다. 우리 가정은 내가 컨트롤 한다. 우리 교회는 내가 컨트롤 한다. 내 자식은 내가 컨트롤 한다. 내가 하나님이다.”뭐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내가 하나님 노릇 하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스스로 하나님 노릇 하다 보면 많은 어려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것들을 단순하게 몇 가지로 표현해 보면, 

첫째, 두려움입니다. 
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게 되었습니까?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된다고 하는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려고,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짓고 나서 아담과 하와가 첫 번째로 경험했던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10) 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 되어 살면, 늘 두려움과 걱정과 염려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삶이 됩니다. 이렇게 죄는 두려움을 가져다줍니다. 

둘째, 좌절감입니다 
내가 하나님 노릇을 해 보려고 하지만, 실제로 나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한때는 잘 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바닥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잘 안 되니까 좌절감을 경험합니다. 살고 싶지 않습니다. 바울은 오늘의 본문 뒤에 23절에서“내 속 깊은 곳에 어떤 다른 것이 있어서 그것이 내 마음에 분란을 일으켜 나를 누르고 아직도 내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라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하나님 노릇 하려는 이 죄의 본성이 나를 지배하게 되면, 그때부터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뼈마디가 녹는 아픔과 좌절과 한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시 32:3). 이렇게 죄는 반드시 좌절감을 가져다줍니다.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셋째, 피로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다가 아픔이 있고 문제가 생기면, 그것과 직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자신을 바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계속 뭔가로 바빠야 됩니다. 무슨 일이든지 과도하게 하면서 자신을 바쁘게 만듭니다. 그러나 바쁘다고 해결됩니까? 결국 늘 피곤한 인생을 살아갈 뿐입니다. “여름 가물에 땅 메말라 들풀 바싹 타들어가는 것같이 이 몸의 힘이 모조리 빠졌습니다.”(시 32:4-5, 현대어성경) 
시편기자의 이런 탄식을 우리 모두 공감하게 됩니다. 

넷째, 실패입니다 
잘 될 수가 없습니다. 죄로 뿌린 씨앗, 교만으로 뿌린 것은 제대로 열매 맺을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 성공하지 못합니다. “자기 죄를 숨기는 사람은 형통하지 못할 것이다. You will never succeed in life if you try to hide your sins.”잠 28:13의 말씀입니다. 죄가 그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상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죄는 육체의 암 세포와 같습니다. 우리 영혼의 암 세포와 같아서 그냥 있으면 결국 나를 잠식합니다. 
    
여러분,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이 죄의 결과들을 과연 어떻게 떨쳐버릴 수 있겠습니까? 어디서부터 회복의 실마리를 풀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 속에 있는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노릇 하려던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께 나아가 고백해야 합니다. 회개란 아주 간단합니다. 진실 되게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하나님, 난 하나님이 아닙니다. 당신이 하나님입니다. I am not a God. You are God.”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내가 하나님이다. 넌 하나님이 아니다.”주님 안에서의 변화된 삶은 바로 “당신이 하나님입니다”라고 고백하며 그를 나의 주인으로 삼고 살아갈 때 시작 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힘만으로 변화될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문제 해결의 열쇠가 있습니다. 여기서 회복과 변화의 첫 단계가 이루어집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더 이상 자신을 과거의 경건한 행위와 경력으로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좋은 학교를 나왔고 우수한 성적으로 일찍 대학 교수가 되었고, 성공회 목사가 되었고, 그리고 아무도 접근할 수 없을 만큼 철저한 경건의 삶을 살아 티끌 만큼도 그에게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  가난한 심령이 되어, 애타는 심정으로 실패를 인정하고 사모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거기서 바로 그 자리에서 회복과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안의 문제를 발견하게 되면 당황합니다. 주님 안에서 회복되고 변화된 삶을 살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괴로워합니다. 이제는 나의 자만함, 교만함, 고질적인 내면의 문제, 성격의 문제, 악한 습성의 문제 등… 이 잘못된 것을 알기에 끊어내고, 회복하고, 변화하고 싶은 소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원은 이루려 애를 쓰면 쓸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것만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 삶에 문제가 있습니까? 남들은 몰라도, 나는 내 문제를 압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게 문제가 있습니다. 도저히 스스로 풀어낼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 노릇 하면서 살았습니다.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깊은 상처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부도 하고, 세상에서는 괜찮다고 하고, 나름대로 노력하며 살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다 나를 인정해 주고, 때로는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 속의 썩은 것을 아시지요. 나도 그 냄새가 싫습니다. 

남보다 아는 것도 많고, 남들은 나보고 인간성이 좋다고 하지만, 정작 나는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 보고, 비판적으로 보고, 그래서 정작 내 속에서 나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교만함과 열등감이 뒤엉켜서 늘 편치 않은 마음으로 삽니다. 나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기도와 도움이 필요합니다.‘하나님 도와 주십시오. 성령이여 내게 임하시어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이렇게 고백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바로 그 자리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 삶의 회복과 변화가 가능하게 되는 거지요. 

마무리하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성령강림주일에, 그리고 웨슬레 회심 272주년 기념주일에 나도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 속에 선한 일을 하고 싶은 소원이 있다는 것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내 의지보다 더 큰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에‘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 하십니다.”(현대어성경)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베푸시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겸손하여, 우리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인정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믿으십시오. 

그렇다면 과연, 은혜란 무엇입니까?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나의 삶 속에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게 도와주시는 능력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 삶이 회복되고 변화되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까? 오직 한 가지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겸손하고도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인정하며 기도하면 거기서 부터 회복과 변화의 아름다운 삶은 시작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성령강림’혹은 보혜사 성령의 충만하신 역사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웨슬레 회심주일이기도 하고 교회력의 성령강림주일이기도 합니다. 절묘한 타이밍이라 생각됩니다. 제자들에게 임하셨던 성령의 역사하심이 웨슬레 목사님에게 임하셨고, 그 성령의 강림하심이 오늘 우리에게도 임하시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의 능력이 우리를 회복과 변화의 삶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하신 역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영의 임재하심이요,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주인되어 내가 마음대로, 내 뜻대로 하려하면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두려움이, 좌절감이, 피곤함이, 실패가 찾아오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믿고 살게 되면 그의 능력이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미 우리 속에 주신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요, 능력의 회복이요, 변화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 변화란 무에서 유의 변화가 아니라 유에서 유의 변화요, 곧 회복이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강림하심이 우리의 삶을 회복하고 변화시킬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하심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임하셨듯이, 요한 웨슬레에게 임하여 자신의 삶은 말할 것 없고 영국 사회와 온 세계를 살려내었던 그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오늘도 여기 우리에게 여전히 임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십자가를 보고 도망쳤던 제자들에게 오순절 다락방의 성령강림이 그리스도교의 시작 교회의 시작을 만들었습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성령의 뜨거운 체험과 회심이 무너지는 영국 사회를 살리고 세계를 움직이는 감리교 운동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해에‘오순절 다락방 같은 교회되게 하소서’라는 표어로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작은 변화와 회복이 작은 하나의 이 교회의 변화가 어떤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이루게 될지 기대하며 바라보며 이 한 해를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순절 다락방의 제자들을 변화시키며, 회복시키며, 요한 웨슬레를 회복시키고 그를 통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하셨던 그 하나님 성령의 임재하심이  오늘 오순절 다락방과 같은 교회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모여 예배하는 우리들에게도 충만히 임재하셔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변화시키시고 우리를 통하여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 땅에 이루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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