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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이름으로 (삼상 17:3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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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으로 (삼상 17:38-58) 
 
 
지난주에 이어서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16:13)되었던 다윗의 중심에 어떤 것이 담겨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표로 선발된 다윗이 출전했을 때(38-40), 골리앗은 그를 “보고 업신”(42)여기며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43)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45)고 했습니다. 실제로 다윗은 “막대기”와 “매끄러운 돌”을 들고 갔습니다(40).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간다고 말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47절에서 다시 언급했듯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47)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하여 전진함을 뜻하겠지요. 다윗은 승리를 결정하는 것은 무기의 성능이 아니라 여호와이심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맹수를 쳐 죽인 사건을 언급하면서도 다윗은 “여호와께서 나를 … 건져 내셨”다고 고백했습니다(37). 승리가 여호와께 있으므로 어떤 도구와 수단을 사용할지에 대해서는 자유로웠지요. 만일 사울의 “군복”과 “놋투구”와 “갑옷”과 “칼”이 다윗의 몸에 익숙했다면 그것들을 사용했을 것입니다(38-39). 이후의 전투에서는 골리앗처럼 칼도 사용했습니다. 다만 맨손, 막대와 돌, 칼 등,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도구가 바뀌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통치 주권을 신뢰했던 그의 중심입니다. 블레셋과의 전투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어떤 방법으로 싸울지 묻는 것은 이후에도 다윗의 습관이었습니다(23:2, 12; 삼하 5:19, 23).

하나님께서는 광야 40년 동안 당신님께서 택한 백성의 인도자요 보호자요 공급자이심을 실증해 보이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위기의 때면 우상을 의지하거나 강대국을 의지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는 것 같았어도, 중심으로는 그분을 신뢰하지 못했지요. 반면 다윗은 소년일 때부터 여호와를 깊이 의뢰했습니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시 62:6-7)라는 심지가 언제나 견고했지요. 이스라엘 왕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마음 태도를 그의 중심에 품고 있었습니다.

무기와 전술이 다양해도 승리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병을 고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치료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과 같지요. 특정한 수단이나 방법 자체가 승리를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서 기자는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전 9:11)고 했습니다. “시기와 우연”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셔야 승리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심을 신뢰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승리 주실 것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36), “여호와께서 …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37),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46),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47)는 말씀들은 막연한 기대를 표현한 말이 아닙니다. 마치 예언한 듯 정확하게 성취되었지요. 흔히 이 이야기가 불가능에 도전해서 승리한 무용담으로 소개되곤 하지만, 정작 다윗 자신은 불가능에 도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패배할지도 모르지만 한번 싸워나 보자’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확신 중에 담대하게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했습니다.

다윗은 마음에 일어나는 ‘소원’과 적절한 ‘기회’와 ‘환경’이 기묘하게 마련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사명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레위기에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일지니라”고 했는데(레 24:16), 하나님을 모욕한 골리앗을 돌로 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속했음을 확인할 수 있지요. 게다가 골리앗이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43)할 때,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창 12:3a)라는 창세기 말씀의 의미를 잘 적용했다면, 더욱 담대하게 도전할 수 있었겠지요.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확인했기에 그는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도전할 수 있습니다.

확신의 과정은 불명확할지라도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옳게 분별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음은 분명합니다(딤후 2:15). 짧은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분별하고, 갈등 없이 담대하게 행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네 형편은 몇 달씩 걱정하며 고민하고서도 좀처럼 하나님의 뜻을 분별치 못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어렴풋이 짐작하는 수가 많지요. 막상 위기에 직면하면 막막해서 그 상황에 맞는 말씀을 생각지도 못하는 수가 많습니다. 말씀으로부터 유추하여 현재 상황을 해석할 힘이 없기에 끝내 하나님의 뜻을 모른 채 넘어가기도 합니다. 군인으로 징집될 연령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년 다윗의 분별력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후 다윗은 그냥 양 치고 수금 타며 물매만 던졌던 것이 아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깊은 신앙은 갑자기 형성되지 않으니까요. 인격 간의 신뢰는 오랜 시간 교통하면서 점점 깊어집니다. 짧은 순간에 깊은 신앙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이 오랫동안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대해 많이 묵상해 왔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광야생활과 그 후 많은 환란 속에서도 계속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 대해 묵상했었고, 그 때의 깨달음들을 시편에 남겼습니다. 그가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그리스도의 그림자라 칭함을 받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속하지만, 평상시의 삶에서 눈물을 흘리며 신뢰의 씨를 뿌리고 가꾸었던 것이지요.

‘은혜’를 수고 없이 날로 먹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오해입니다. 사울은 초대 왕이 되는 큰 은혜를 받았지만 은혜를 감당하지 못하여 저주 받은 것처럼 되었지요. ‘큰 은혜’를 받으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현재 주신 ‘작은 은혜’에 감사하며 그것에서부터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 대해 묵상하고 깨달아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목장에서는 좋은 목동이었고, 악신이 떠날 정도로 수금을 잘 연주했으며, 목표를 명중시킬 만큼 물매도 잘 던졌지요. 용감한 용사였고, 탁월한 시인이었고, 모범적인 왕이었습니다. 어떤 삶의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했음을 보여줍니다. 현재의 작은 일에 충성할 때 다음의 은혜를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됩니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도전하는 목적을 세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는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다는 것, 둘째는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겠다는 것, 셋째는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나타내겠다는 것입니다(46-47). 승리 자체나 승리 후에 사울로부터 받을 상급에 목적을 두지 않았지요. 이 목적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었지요. 아무도 그런 마음을 품지 않은 때에 소년 다윗의 중심에 품었던 생각이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중심에 품은 생각을 성취시켜 주셨습니다.

사울의 경우 중심에 품은 생각은 매우 세속적이었습니다. 그는 승리 자체와 자신의 영광에 집착했었지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하나님과 신뢰의 관계는 전혀 돈독해지지 않았습니다. 암몬 자손들의 침략에 대해 분노하며 물리쳤던 첫 싸움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신앙이 더 떨어지고 두려움만 많아졌습니다. 이스라엘 왕으로서 합당한 마음을 품기는커녕 하나님 백성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도 미치지 못했지요. 결국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권력에 집착하는 추악한 인간으로 변해갑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고 신앙 연륜이 오래 되어도 사울과 같이 자리만 차지한 세속적인 사람일 수 있는 것이지요.

48-54절은 다윗이 골리앗에게 했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성취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돌을 물매로 던져 그 이마를 치자 “돌이 그 이마에” 박혔습니다(49).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물맷돌 중에 큰 것은 무게가 2-3킬로 되며 야구공만하다고 합니다. 아무튼 “매끄러운 돌”(40)이 이마에 박혔다는 것은 두개골이 완전히 함몰되어야 가능합니다. 이마를 맞춘 것은 다윗이지만 그것을 사용하셔서 골리앗이 죽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시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고 했는데, 다윗의 신앙은 말뿐이 아니라 능력으로 실증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이 큰 승리를 얻었습니다.

성경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고 말씀합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 할 올바른 마음가짐을 품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지요. 특히 “행할 길”을 가르친다는 것은 관념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다음 발걸음을 어디에 둘지 한걸음씩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9)라고 했습니다. 머리로만 믿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는 죽은 믿음입니다. 실제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신뢰를 쌓아가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다윗은 소년일 때부터 합당한 마음을 품고 바르게 행하여 늙어서도 그것을 떠나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그의 하나님은 오합지졸의 군대로 조롱받는 순간에도 그 군대를 통솔하고 계시는 살아계신 자기의 왕이었습니다. 그 분을 실제로 의지하며 전진했지요. 그 후에도 더 많은 훈련들을 받아야 했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아가는 마음 중심은 바르게 놓여있었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로 부족할지만 마음가짐부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해야 하겠습니다. 이미 주신 은혜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 백성다운 합당한 마음을 품고 신뢰하며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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