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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 성령충만과 성령의 은사에 (엡 5:17-21, 갈 5: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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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충만과 성령의 은사에 (엡 5:17-21, 갈 5:16-26)


지난 주일에는, 성령의 열매와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는, 특별히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또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성령의 강림하심은, 하나님의 언약의 증표인 동시에, 우리에게는 구원의 증표가 됩니다.그러므로, 성령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시니 하나님의 자들을 또한 사랑하게 됩니다. 성령받은 사람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생기므로, 마음속에서부터 즐거운 동기에서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마음이 즐거우니, 질병도 머르는 사이, 치유되는 것입니다.

대전에서 2만명이나 모이는 큰 교회를 만드신 박아무개 목사님이란 분의 책을 읽어 보았는데, 다음과 같은 간증이 실려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 분이 몸이 아파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는데, 기도중에 자기가 성령을 받았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고 회개가 터져나오더니,기도문이 활짝열리더니, 방언을 말하였고, 성경말씀을 읽었더니, 꿀송이 같이 달더랍니다. 그런 일이 있고나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괜스레 길을 가면서도 웃음이 실실 새어 나오더라고 말했습니다. 질병으로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괴로왔었는데, 그런건 다 잊어버리고 마음이 너무나 편안해졌습니다. 하늘을 날아갈 듯이 기뻐지더랍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어느날 자기 몸에서 죽음을 위협하던 병마가 자기도 모르는 사에에 확실하게 고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지나간 30년간 몸이 아파서 병원엘 가본 일이 없답니다. 하나님의 신이 온전히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그분에게는 교리가 필요없습니다. 다만 예수을 구주로 믿었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다가 성령을 받았는데, 그 성령님과 지나간 수십년을 동행하고 있다는 간증을 누가 감히 부정하겠습니까!

1.성령강림에 관해서 

성령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성령강림에 대하여 체험한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자신이 성령받았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간증하더라는 점입니다.그리고 그의 신앙생활에서 변화가 나타나게 되므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그를 성령받은 사람으로 인정하더라는 사실입니다. 오랫만에 만난 사람은 깜짝놀랄 정도로, 변화를 보이기도 합니다.

첫째로,성령강림을 체험한 이는, 변화의 증표로써 최우선적으로 꼽는 것이 하나님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이 사랑스러워지고,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며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란, 성령의 열매도 되고, 성령의 은사로도 해석하게 됩니다. 

사랑을 성령의 열매라 한다면,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도들을 사랑하니, 나타나는 증거로써 열매임이 분명합니다.또 사랑은, 성령의 은사로서, 곧 성령의 도구로서의 `사랑`이 주어진 경우, 사랑할 만한 이유를 초월하도록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한 초월적인 사랑이 나타나게 되는 경우, 전도가 효과적이고, 대단히큰 능력이 나타나게 되므로, 이를 가리켜서 성령의 은사라고도 말하는 것입니다.

손동아목사님은 순천에서 사랑의 원자탄으로 유명하신 손양원목사님의 조카분이 되십니다.

지금도 극동방송에서 전도방송도 하셨고, 사랑의 전도단을 운영하시면서 교도소전도에도 힘을 기울이신다고 듣고 있습니다.

손동아목사님이 자기의 작은 아버지, 손양원목사님에 대하여 간증하는 것을 들었는데, 손양원목사님께서 자기의 두 아들을 끔찍하게 죽인 원수를 석방시켜 달라 하였을 때, 아무도 그 분의 진심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혹시 개인적으로 원수를 보복하려고 그런다며, 목사님을 정신이상자로로 취급하였답니다. 마침내,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감옥에서 석방시키고 자기의 양아들로 삼으신 손양원목사님의 행적은, 나중에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도 만들어져서 수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처럼, 남이 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구약성경에서 호세아 라 이름하는 선지자의 글이 수록되었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특별한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하나님의 사랑받는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좋은 가문에서 정숙한 부인을 아내로 맞도록 중매하시지 않고, 시장거리에서 웃음을 파는 거리의 여인을 데려다가 아내로 맞으라 명하셨습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여인을 집에 들였는데, 아뿔싸 그 여인은 집에만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나 답답하여 계속해서 머물지 못하고, 자주 집을 뛰쳐나가 버리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에게 그 무절제한 여인을 데려다가 다시 아내로 삼으라 명하셨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물론 순종하였고, 아이들도 생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부인은 여전히 가정적이기보다는 자유분방하게 거리의 여인으로 살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백성들이 세상을 사랑하고 있는 모습을 빗대어서 교훈을 주시고저, 선지자의 가정을 본보기로, 교보재로 삼으신 것입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제 친구 목사님 한 분은, 제주 사람으로 인물도 좋고 실력도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목회를 반대하여, 자주 집을 비웁니다. 함께 목회를 하자 졸라도 부인은 ‘목회를 그만 두던지, 이혼을 선택하라`니, 목사로서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그런 사실을 교회서도 알고,기도제목이 되었는데, 어느 장로님이 사모님 앞으로 신형 소나타 세단을 사서 선물해 드렸다고 합니다. 사모님이 교회에 정을 좀 붙이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토요일인데, 한국에서 그 사모님의 여고친구가 방문했는데, 그 차로 라스베이가스로, 그랜드캐년으로 관광을 떠나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호세아 선지자를 생각하면서 꾹 참고 기도만 하였는데, 어느날, 건강검진을 받다가 부인에게 유방암진단이 떨어졌습니다. 이제 화개할 기회가 왔거니 하고 기대하였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수술날짜를 받고 병원에 입원하여 있던 중에, 위로의 전화를 받았는데, 목사님은 그냥 대수롭지 않게, 별 것 아니라’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옆에서 그 전화를 듣던 부인이 매우 섭섭했던지, ‘남은 죽느냐 사느냐 고민 하는데, 고작 별것 아니라고 말하느냐` 며 분노하였고, 급기야 부인이 일방적으로 이혼을 선언하더니, 퇴원하자마자, 친정으로 가버린 것입니다.

두 아이들을 데리고 홀애비로 목회하려니, 참으로 기가찰 노릇이 아닙니까?

유방암걸린 부인을 버렸다느니, 그러고도 목회를 하느냐면서 별의 별별 나쁜소문이 세계각국을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결국 그 고장을 떠나서 다른 곳에 가서 목회를 하였는데, 2년쯤 지나서, 부인의 병이 완치되었고, 하나님께서 그 부인의 마음을 돌려주셔서 다시 가정이 회복되었습니다.

그 가정의 회복소식을 들은 옛교우들이 모여서 “우리가 개척교회를 할터이니, LA로 와서 도오주세요!”라고 초청하니, 10여년만에  다시 고향과도 같은 LA로 되돌아 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성령안에서 나타나는 사랑의 진정성에 대하여

여러분, 사람들은 무슨 조건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거나, 인간을 사랑하는 경우가 참 많은 듯보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성령받고 거듭나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사람이 형제와 이웃을 얼마나 사랑하게 되면, 서로 결혼도 하고, 물건을 공유하며, 서로 자기 소유를 아끼지 않게 될까요? 심지어 몸에서 장기도 떼어주면서 생명을 서로 부듬어 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김동길교수님은, 결혼주례사를 하시면서, “서로 사랑할때까지만 함께 살라”는 주례사를 주셨습니다.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한 것처럼 들리지만, 이치에 맞건 안맞건 상관않겠습니다만,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을 결심한 것이 맞겠지만, 그 이후가 더 큰 과제아닙니까?

결혼이란, 현재의 사랑도 귀하지만, 장래에도 서로 사랑할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사랑하기에 결혼도 하지만, 결혼하였기에 가정에서 사랑의 의무도 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일찌기, 요한웨슬리 목사님께서 미주 전도여행을 실패한 연후, 영국으로 되돌아 가셨을 때, 너무나도 자신감을 잃고, 낙심되이 지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흔히 우리가 접하는 시시한 종교인 수준으로 낙심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가나의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과 같은,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요한웨슬리의 성령받기 전의 인간적인 열심으로만 섬기던 모습입니다.

즉 요한웨슬리의 종교생활은 1727년에 옥스포드에서의 홀리클럽을 만들던 때, 경건하게 살자며 형제와 다른 두명의 친구들과 굳게 언약하던 때로 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웨슬리와 그 친구들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천재성과 충성심으로 뭉친 젊은 신학도들의 열정은 미국 조지아주에 선교사로 갈 정도로 식을 줄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학교시절, 토마스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라는 책을 읽고는 그책을 성경처럼 사랑하였고, 그 방식대로 실천하고자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한, 열정은 가히 누구도 따르지 못할 정도였으니, 과연 누가 이들에게 성령받지 못한 이들이라 말하겠습니까?

도적적인 생활에서도 전혀 흠이 없었습니다. 공부하고 기도하고 봉사하는 일에 남들이 가히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한 웨슬리는 대서양을 건너는 바다 한복판에서, 풍랑이 일어날 때에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 했습니다. 더욱이 부끄러운 일은, 그 배안에 있던 허름한 차림의 모라비안들은 찬송을 부르면서 평화로운 모습으로 그 사나운 풍랑속에서 견뎌내더라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어린아이들조차도 동요함이 없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공부를 많이 하였고, 가문이 좋은 요한 웨슬리 목사지만, 위대한 결심과 착실한 훈련으로 잘 길러진 종교지도자임에는 틀림없었으나, 막상 죽음의 공포앞에서는 어린아이만도 못하였던 자기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즉, 바다 한복판에서,풍랑을 만나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자연인에 불과한 한 신앙인의 모습이 바로 그러합니다.평지에서는 인간적인 열정으로, 아메리카 인디언을 구원하겠다며 포부와 의욕을 가지고 용감하게 출발을 하였고, 바다도 건너갔던 웨슬리였습니다. 그러나, 암초에 부딛치고 선교실패를 자인하게 되었을 때, 웨슬리는 영국으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후 집으로 돌아온 웨슬리는 자기자신의 영적수준에 대하여 회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너무나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통감했습니다. 그리고 몹시도 부끄러웟습니다. 그럼에도 웨슬리는 아직도 영국교회목사이며, 여러 사람이 인정하는 실력있는 설교자였습니다. 그러나 자기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도 초라하다는 진실앞에서 웨슬리는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독일에서 온 모라비안교도이며, 복음주의자인, 진첸도르프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대서양을 건너던 때 자신의 영적두려움의 상태를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진잔도르프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당신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그때에 웨슬리는 답하기를, “나는 구원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때 진잰도르프는 다시, 당신은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믿음에 대하여 설교하십시오 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리고 구원에 대한 확신이 생기거든 그 믿음으로 더욱 열심히 믿음에 관해 설교하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사랑의 원리도 꼭같습니다. 은혜를 받는 것도 성령을 체험하는 원리도 100% 하나님께서 안주신다고 불평할 게 아니라, 내가 노력하는 단계도 어느 정도까지는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꾸준히 노력하고, 순종하며 꾸준히 사랑을 실천하다 보면 어느 정도 단계에서는 열매도 생기고, 그 열매가 무르익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때가 되면, 하늘에서부터 사랑으로 성령충만과 더불어 각양성령의 은사를 넘치도록 허락하실 것입니다. 한아님은 꾹꾹 누르시고, 흔들어 차고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모자람이 없도록 채워주십니다. 

은혜충만, 말씀충만, 성령충만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허락하시는 축복입니다.
이처럼, 하늘로부터 성령을 부어주시고, 모든 충만으로 충만케 채워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플로리다에서 목회하시는 친구목사님이 어느날, 미국인 친구목사로부터 받은 메일을 전송해 주었는데, “목사에게 가장 나쁜말이 무엇인지 아느냐?” 묻고는,
“성령의 도우심 없이, 너 혼자서 목회하라!” 는 말이라고 하였답니다.

과연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님과 함께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장거리 운전을 할 때면 옆에서 지도를 보아주고, 말동무가 되어 주는 친구가 필요합니다.하물며, 성령님의 도움없이 목회든지, 인생을 경영하는 분은 참으로 불쌍한 것입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35년전, 신학교에 입학할 당시, 예수님께서 금방 재림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이 세상이 점점 세속화되고 신자들음ㄴ 물론 성직자들도 믿음에서 떠나는 이들이 많으리라는 경고를 들었을 때, 나는 차라리 목사가 되어, 그 이름 탓에 나를 감시하고 기도해 주는 교인들 틈에서 신앙생활을 강제로라도 지켜야 하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삼각산 동굴속에서 홀로 한밤중에 기도하다가,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철부지 어린 시절에 나를 만나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체험하였고, 성령의 재충만을 체험하였습니다. 나중에 그동굴을 다시 찾아가 보았으나, 세검정 도시를 재개발하여 어딘지를 찾지 못하였는데, 생수기도원이란 곳을 찾아 갔다가, 옛날 기도하던 분들을 만나 반가운 재회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마무리하는 말씀

몇해 전, 그리스 아네테를 방문했던 당시 파르테논 성전에 가본 일이 있습니다. 한 때 기독교인들의 예배처소이기도 했지만, 후에 이교도들이 와서 제사드리기도 하였고, 또 전쟁의 군수물자와 포탄들을 저장하던 창고로도 쓰여졌다고 합니다.

파르테논의 성전기둥들은 서너사람이 둘러서야 할 만큼 굵은 대리석 기둥이 마흔 여덟개나 서 있는데, 가운데가 둥글어서 멀리서 보면 마치 평행선으로 보이도록 형상화했다니, 그 옛날에 배흘림건축양식의 솜씨가 노라운 것입니다.

그보다도 더 놀라운 사실은, 사방에서 지붕을 떠밭치던 기둥들이 가운데 하늘 높은곳을 향하고 있는데, 그 모든 동기둥들의 연장선을 연결한다면 2백75미터 상공에서 점으로 만나도록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공법과 수학적 계산방식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인간의 모든 노력이란 결국, 하늘에서 만나야 하고 하나님 한분만으로 귀결되는 이치가 바로 성령충만한 신앙생활의 목표입니다.

플로리다에서 목회하시는 친구목사님이 어느날, 미국인 친구목사로부터 받은 메일을 전송해 주었는데, “목사에게 가장 나쁜말이 무엇인지 아느냐?” 묻고는,

“성령의 도우심 없이, 너 혼자서 목회하라!” 는 말이라고 하였답니다.

과연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님과 함께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장거리 운전을 할 때면 옆에서 지도를 보아주고, 말동무가 되어 주는 친구가 필요합니다.하물며, 성령님의 도움없이 목회든지, 인생을 경영하는 분은 참으로 불쌍한 것입니다.

그처럼,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하여 목사를 비롯하여 모든 평범한 신자에게 성령충만은 필수사항입니다. 물론, 성령강림은 오순절날에 이루어졌습니다. 그 증거로 우리에게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해서 영생복음이 보존되었고 증거되었스며, 이천년을 이어왔습니다. 현재도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고 계십니다. 각양 필요한 은사를 하늘로부터 부어주십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신다는 말과,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으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성령께서 내 마음에 들어오신다는 뜻은,

요한복음 1:12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마음에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에 기초합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3:20에서,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의 음성을 득고 문을 열면 우리 주님께서 내 마음속에 들어오시겠다 약속하셨고, 요한복은 14장에서는 영원히 내주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보혜사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오시면, 당장 내 마음이 빛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입니다.

어두운 밤에 불이 켜지면 흑암이 당장 물러가듯이, 성령님께서 오시면, 내 마음이 온통 빛으로 가득해 집니다.

뿐만아니라, 성령은 생수와도 같아서, 내 속에 들어오시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된다고 약속해 주셨으니,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므로, 바람같은 모습으로, 혹은 기름과도 같이 우리에게 오실 수 있습니다.마치 하나님의 기운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공기처럼,수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체험하고 신앙생활하는데, 마치 성령이 순복음교회의 전유물이나 되는 듯이, 나홀로 성령을 모르고, 만나지도 못하고서 산다면, 그 어찌 신앙생활이 온전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신다늠 말은 하나님의 권위있는 영의 임재를 가리기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충만이란, 내 마음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열정으로 가득채우라는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충만이란, 내 안에 하나님이 들어오시고, 나를 온전히 지배하시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마치, 빈병에 물이 충만하였다면, 그 병속에는 다른 공기가 단 한 방울도 못들어가야 충만한 상태가 됩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하나님을 사모하느 ㅇ렬정으로 채우는 것이 성령충만의 길입니다.

그러면, 이제 성령충만함을 받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첫째로, 소수의 사람들만이 성령충만을 받게 되는 단 한가지 이유는, 아직도 하나님 앞에서 자아를 완전히 비우지 못했기 때뭉입니다.

빌립보서2:5절이하에서 구주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온전히 비우시고 하나님께 복종하셨으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시고 하나님의 모든 권세를 허락하셨습니다.

2. 두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속에 가득 채워야 합니다.

하늘에서 갑자기 신비한 음성이 들려오기만기다려서는 곤란합니다, 언제 그런 기적이 나타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많이 알고, 기억한다면, 어느날 갑자기 때에 적절한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 말씅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신다고 믿으십시오.

3. 집중해서 간절히 기도하면 누구나 성령충만함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녀들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목표가 분명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성령을받도록 기도한다면 누구나 응답받게 됩니다.

첫째 조건은, 하나님께 택함받은 자녀라야 합니다.

둘째 조건은, 밤낮으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4. 네번째는, 주의 사자로부터 안수기도를 받는 일입니다.

사도바울께서는 디모데에게 안수하여 성려이 불일듯 재충만하시기를 원한다고 말쓸하셨습니다. 안수기도는 성직임명이나, 병고침에서 쓰여지지만, 구약성경 레위기에는 죄인이 자기죄를 희생제물이 되는 동물의 머리에 자기죄를 덮어씌우는 죄의 전가안수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받는 안수는 분명히, 사도바울과 베드로를 통해 행해졌으며, 열두 사도들에 의해서도 능력있게 나타났습니다.

일찌기 강원도 가는 길에 청평이라는 아름다운 산기슭에, 한얼산 기도원을 세우시고 부흥회를 많이 인도하신 이천석목사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습니다만, 예전에 상이용사로 한국전쟁당시 다리를 절단하신 국가공로자이십니다.

상이용사였으며,술과 폭력으로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렸던 과거가 있다고 간증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과거에 나쁜 사람이었는지를 해학적으로 소개하시고, 소위 인생의 밑바닦에서 변화된 모습을 비교하여 해학적으로 말씀하시는데, 그 분을 이해하는 이들이 많이 은혜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과거행적을 모르거나, 집회중간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이 많이 놀라기도하였는데, 이천석 목사님이 사용하는 언어가 소위 인생막장을 사는 사람들의 밑바닦 언어라 해도 좋을만치, 오해도 많이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목사가 저렇게 상말을 하고, 버릇없이 아무한테나 반말하고 욕도 한다면서 불평하였던 것입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선비정신의 전통 때문이겠으나, 목사님이 점잖게 처신하기를 원하는 분위기가 한국교회의 일반적상황이라 한다면, 그분의 경우는 특이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천석목사님은 “와장창주차장창”이란, 유명한 유행어를 남겨놓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아가 깨어지는 소리라는 뜻입니다

성령충만함이란, 내 속에 하나님으로 가득한가 아니면, 다른 세속적인 가치들로 생각들로 분주한가를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일 뿐, 성령의 충만함을 논할진대, 성령을 적게 받으면 하나님이 힘이 모자란다거나,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은, 사람에게 `성령충만`을 비유로써, 하나님 생각으로 가득한 상태를 유지하라는 말씀으로 받게 되면, 다른 오해들은 없어질 것입니다. 세속적인 가치 육체적인 모든 소욕을 버리고, 어두움에 등불을 밝히듯이, 빈마음에 성령으로 가득 채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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