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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삼하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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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삼하 3:1)
  

돌아가신 김 목사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잘 되는 사람은 잘 되는 이유가 있고,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이유가 있어. 잘 되는 교회는 잘 되는 이유가 있고, 안 되는 교회는 안 되는 이유가 있어.>

가정도 그렇습니다.
잘 되는 가정은 잘 되는 이유가 있고, 안 되는 가정은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울의 가정은 안 되는 가정이고, 다윗의 가정은 잘 되는 가정이라고 성경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정은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가정에 대하여 두 가지 이야기를 드리고 시작하려고 합니다.

첫 이야기

1934년 세계 최초로 다섯 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디온(Dionne) 가정에서 생긴 분만이었습니다. 이미 다섯 쌍둥이 잉태된 것을 알았기에 분만할 때 수많은 구경꾼 그리고 신문, 라디오, 각종 잡지 매스컴 기자들이 현장을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학계에서는 즉각 연구에 들어 갔습니다. 그 집은 불행하게도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다섯 쌍둥이는 모두 의학자들이 연구 대상으로 각각 데려다 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한 인간이 아니라 연구 대상이 되었습니다. 태어났지만 가정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모두가 불행하여졌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하버드대학팀들이 가정에 대하여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영국 북쪽 스콕크홈이라는 섬이 있습니다. 이 섬에 Manx라고 불리는 새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새들을 잡아 비행기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하버드 대학으로 가지고 와서 놓아 주었습니다. 이 새들은 자기 가족들이 있는 스콕크홈 섬을 향하여 힘차게 나르기 시작하였습니다. 12일 걸렸습니다. 3, 050마일, 그러니까 약 5,000 km를 날랐습니다. 하루 평균 400 km를 나를 셈입니다. 이 새들은 목숨을 걸고 가정으로 돌아가려고 안간힘을 다 하였습니다. 그 노력도 돋보이지만 나침반도 없이 어떻게 그 멀리 가정을 찾았는 지 아직도 신비입니다. 가정이란 생명을 걸고 들어가야 하는 곳입니다.

가정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삼하3;1)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에 전쟁이 오래 되었습니다. 두 가문 사이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두 집안 사이의 싸움이 전쟁이라고 표현한 것에 관심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구태여 전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어야 할가요? 두 집 사이에 싸움이 있었다고 하면 안 될 가요? 구태여 전쟁이라고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싸움은 이기고 지는 것입니다.
전쟁은 죽이고 살리는 것입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죽이고 살리는 치열한 전쟁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살벌한 관계입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을 대조시켜 주고 있습니다. 두 가문 사이에 전쟁이 오래도록 계속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다윗의 집은 강하여졌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졌습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점점 좋아 지는 가문은 좋은 가문이고, 시간이 흐를 수록 점점 나빠지는 가문은 좋지 않은 가문입니다.
그러면 다윗의 집은 점점 강해지고 사울의 집은 점점 무너져 버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시기와 사랑의 차이입니다.

사울의 마음은 시기로 가득 찼고, 다윗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하였습니다.
블레셋으로 인하여 나라가 바람앞에 등불처럼 꺼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17살 밖에 안된 다윗은 전보대만한 강한 장수 골리앗과 단독으로 대결하여 싸워 이겼습니다. 나라를 구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외쳤습니다.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다.”

이 말을 들은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작정하였습니다. 자기보다 인기가 좋다는 이유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수차례 시도하였습니다. 그 때 사울은 이미 후계자를 길러야 할 때였습니다. 좋은 후계자가 생겼다고 넓은 마음을 가지고 기뻐하여야 할 때였습니다.

사울은 군사를 이끌고 다윗을 죽이려고 찾아 다녔습니다. 다윗은 쫓기다가 굴속에 숨었습니다. 사울은 피곤하였던지 다윗이 숨어 있는 지도 모르고 다윗이 숨어 있는 굴속으로 들어가 정신없이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다윗이 사울을 죽이기는 쉬웠습니다. 식은 죽먹기였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쫓아 다니는 원수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잘랐습니다. 그리고는 옷자락만 자른 것도 마음에 걸려서 아파하였습니다. 이유는 기름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종의 옷을 잘랐다는 이유였습니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 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 니라>(삼상24;4-6)

사울의 시기를 다윗은 사랑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하늘에서 확실히 보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집은 강하게,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지게 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요셉을 형들이 시기하며 팔았지만 요셉은 형들의 자녀들을 잘 돌보고 기른 것과 똑같습니다. 시기하는 형들을 사랑을 감싸는 요셉의 종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시기하지 않고 친구의 성공을 존경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는 거의 없다.>
<우리의 불행을 동정할 사람이 한 명쯤 된다면 우리의 성공을 미워할 사람은 천명쯤 된다.>
<시기는 다른 사람을 쏘지만 결국은 상처는 자기가 입는다.>
<자기 밑에 있는 사람을 돕기에 바쁜 사람은 자기 위에 있는 사람을 시기할 틈이 없다.>

다윗의 집이 강해진 이유가 분명합니다. 다윗의 집은 사랑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집은 시기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시기하는 사람을 이깁니다.

2. 회개 차이입니다.

사울은 회개에 더디었고, 다윗은 회개에 빨랐습니다.
하나님은 회개에 빠른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다 잘못도 하고 실수도 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죄를 짓게 됩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울도 다윗도 죄를 지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후의 자세는 전혀 달랐습니다. 사울은 회개에 늦었고, 다윗은 회개에 빨랐습니다.
아멜렉과 전쟁할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 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 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삼상15;3)
그런데 사울은 이 명령을 어겼습니다.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삼상15;9)
이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15;11)
사무엘은 무슨 일이 사울에게 벌어졌는 지 궁금하여 사울을 찾아갔습니다. 그 때 양소의 울음소리가 났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물었습니다.
<내 귀에 들어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찜이니이까(15;14)

사울은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분명히 자기와 군사들이 같이 남긴 것인 데 백성들이 그렇게 한 것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15;15)

분명히 9절에서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도 자기만 쏙 빠진 비겁한 변명이었습니다. 사무엘은 구제불능이라 생각하고 말했습니다.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15;26)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못 하고 뻔뻔스럽게 변명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사울은 더 이상 왕이 아니라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고 남편을 죽인 사건은 다윗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적인 실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 나단 선지자가 와서 그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다윗은 즉각적으로 회개하였습니다. 시편 51편은 이 때 회개하면서 지은 다윗의 유명한 시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 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51;1-19)

이같이 사울은 회개에 무디고 다윗은 회개에 빨랐기에 하나님은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게 하시고 다윗의 집은 점점 강하게 하셨습니다.
회개가 문제였습니다.

3. 옹졸함과 넓은 마음 차이입니다. 

사울의 마음은 옹졸하였고, 다윗의 마음은 포용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사울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이는 죽이려는 옹졸한 이였습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 85명이 다윗에게 협조하였다고 그들 모두를 죽였습니다(삼상22;18)
사울은 잔인하였습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죽이는 살인자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도 다 포용하고 끝까지 붙들고 있는 이였습니다. 두 가지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한 사건은 시므이 사건입니다.
압살롬이 다윗을 죽이려 하자 다윗은 도망하였습니다. 이 때 시므이가 따라오면서 다윗왕을 향하여 저주하였습니다.

<피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삼하16;7-8)
이 말을 들은 아비새 장군이 왕에게 물었습니다.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이 때 다윗왕은 화가 치밀때 범죄치 않았습니다.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 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내 몸에서 난 내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날 그 저주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삼하16;10-12)

그런데 그 다음이 더 은혜롭습니다. 그렇게 가만히 있으니까 시므이도 그만 둔 것이 아닙니다. 시므이는 <산비탈을 따라 가면서 저주하고 저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더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 다윗의 자세를 보십시다.
<왕과 그 함께 있는 백성들이 다 곤비하여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삼하16;14)
나중에 다윗은 압살롬으로부터 승리하고 시므이로부터 승리하였습니다. 이같이 다윗은 모든 것을 다 품을 수 있는 이였습니다.

또 한 사건이 있습니다
사울을 죽이려던 사울을 아멜렉 사람이 죽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와서 보고하면 상을 줄줄 알고 당당히 보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사람을 죽이면서 말했습니다.

<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 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소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저를 죽이라 하매 그 가 치매 곧 죽으니라. 다윗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 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삼 하1;14-16)

이같이 다윗은 사울을 죽인 이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런 대조적인 두 마음을 보시며 하나 님은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게 하시고 다윗의 집은 점점 강하게 하셨습니다.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지고 다윗의 집은 점점 강하여진 것은 마음의 차이였습니다. 옹졸한 마음과 넓은 마음의 차이였습니다.

헨리 포드는 참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포드 자동차로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작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친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백만 장자의 집 치고 너무 초라하지 않습니까?>
포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건물이 문제가 아니지. 그 속에 사랑이 있으면 좋은 가정이고 사랑이 없다면 석조로 지은 대저택도 무너지는 가정일 수 밖에 없지.>
마음이 큰 사람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고등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버지가 어느 때 가장 불쌍하다고 느껴지는가?>
대답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첫째는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야단 맞을 때입니다.
둘째는 아버지가 밤늦게 회사에서 돌아와 가방을 힘없이 내던지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흐느껴 우실 때입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이기지 못 한 때입니다.
셋째는 아버지가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말고 갑자기 나가셔서 혼자 복권을 맞추어 보실 때였답니다.>
우리는 좀 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4. 하나님 동행의 차이였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떠나셨고,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지고 다윗의 집은 점점 강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세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것입니다.
사울의 집에서는 하나님이 떠나셨고 다윗에 집에는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삼상18;12)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삼상16;14)

하나님이 떠난 가정이 잘 될 리가 없습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평안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집에는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여러 곳에서 이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삼하 5:10)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삼하 7:9)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 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삼하 8:6)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 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삼하 8:14)

하나님이 함께 한 집은 강하여 가고 축복이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게 하시고 다윗의 집은 점점 강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 가요?

1. 시기와 사람의 차이였습니다.
2. 회개 차이였습니다.
3. 옹졸한 마음과 넓은 마음의 차이였습니다.
4. 하나님 차이였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삼하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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