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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적들의 위협에서 승리한 느헤미야(2) (느 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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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들의 위협에서 승리한 느헤미야(2) (느 6:10-14)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은 개인적으로나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특별히 성벽재건 공사는 일종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회복 운동이요, 개혁운동입니다. 

그런데 어떠한 공동체라도 변화와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문제는 변화와 개혁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힘을 모아 성벽재건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대적들의 심각한 방해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놀라운 지도력으로 성벽 재건공사는 이제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무너진 성벽들은 다 복구가 되었습니다. 이제 성문의 문짝을 달면 모든 성벽재건 공사는 완성이 됩니다. 

그런데 성벽재건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자 대적들의 방해는 더욱 집요하게 그리고 교묘하게 진행됩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보신 것처럼 성벽재건 공사의 방해자인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사람을 보내어 느헤미야를 죽이려고 오노 평지에서 만나자고 제의를 하였습니다. 네 차례나 사람을 보내어 만나기를 제의하였지만, 느헤미야가 이들의 음모를 알고 나가지 않자 사람을 통해 봉하지 않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왕을 반역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다는 것과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한다는 정치적인 모함의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이 방법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음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제 더욱 간교하고 사악한 방법으로 느헤미야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산발랏과 게셈은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도 성공하지 못하자 마지막 방법을 사용합니다. 산발랏은 느헤미야의 선지자 혹은 제사장이었을 스마야를 뇌물로 사서 그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에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리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그가 이르기를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스마야가 느헤미야를 위해서 한 말처럼 보입니다. 느헤미야를 죽이려고 하기에 성전 안에 들어가서 잠시 머물러 있으면서 그 위기를 피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무서운 함정이 있습니다.  

13절 말씀에 “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스마야가 느헤미야에게 이렇게 말한 것은 결코 느헤미야을 위해서 한 말이 아니라, 오히려 느헤미야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율법을 어기는 죄를 짓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만일 느헤미야가 성전 안에 들어가면 율법을 범하게 됩니다. 여기에서는 성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성소는 들어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레위인도 제사장도 아닙니다.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 성전에 들어가면 율법을 어긴 죄로 죽임을 당합니다.

느헤미야는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도 지혜롭게 해결합니다.  

11절 말씀을 보세요.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이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느헤미야는 대적들과 스마야가 이러한 음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12절 말씀입니다. “깨달은즉 저는 하나님의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스마야가 대적들에게 뇌물을 받고 이런 가짜 예언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단호하게 스마야의 제의를 거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에서 느헤미야가 이러한 대적자들의 교활한 위협과 음모를 어떻게 알고 잘 대처할 수 있었습니까?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느헤미야는 영적인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구약성경 사무엘상을 보시면 사울왕과 다윗의 쫓고 쫓기는 사투의 현장마다 두 사람 주위에는 항상 그들을 돕는 조력자들이 있었습니다. 사울에게는 에돔사람 도엑이 있었고, 그일라의 지도자들 그리고 십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윗에게도 사울 못지않은 충직된 부하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일하게 돕는 자들을 보유하고 있던 사울과 다윗, 이 두 사람에게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사울은 그가 받은 조언과 도움이 하나님의 뜻 안에 올바른 것인지를 점검하고 되돌아 볼 영적 여유와 판단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무리 충직한 부하의 의견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거부하고, 더 나아가 그들을 옳은 길로 인도할 줄 아는 영적인 분별력과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느헤미야도 이러한 영적인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성벽재건 공사의 방해자인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 등이 느헤미야를 유인하여 죽이려는 의도로 오노 평지에서 만나서 평화조약을 맺자고 했습니다. 이때도 느헤미야는 이것이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스마야의 거짓 예언을 듣는 즉시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예언이 거짓임을 분별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느헤미야는 영적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느헤미야가 대적자들의 교활한 위협과 음모에 잘 대처할 수 있었던 비결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1절 전반절에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느헤미야는 자신만 살기 위해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느헤미야가 살겠다고 성전 안으로 도망가면 백성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모든 백성들은 성벽재건 공사에 생명을 내어 놓고 있는데, 느헤미야가 지도자로서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도망한다면 백성들도 다 도망하여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성벽 재건 공사는 완전히 중단될 것이고, 결국 대적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나는 도망을 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느헤미야는 이미 하나님께 헌신된 몸입니다. 성벽 재건을 위해 생명을 내 놓은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만일 느헤미야가 죽음을 두려워했다면 높은 관직을 버리고 예루살렘 총독으로 오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 힘든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벌써 페르시아로 돌아가서 이전의 술맡은 관원장으로 복직하였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핍박과 박해를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믿음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 박해와 핍박도 기쁨으로 감수하였습니다. 사자의 밥이 되고, 손발이 작두에 잘리고, 기름 가마솥에 던져지고,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도 주를 위하고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겠다는 믿음으로 살 때 우리도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고, 흔들리지 않는 바위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있을 곳은 살기 위해서 피한 성전이 아니라, 마무리 지어야 할 성벽 공사 현장입니다. 피하는 것보다 대적과 싸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대적들의 위협 앞에서도 도망하는 자가 아니라 믿음을 담대히 싸워 승리하는 삶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느헤미야가 대적자들의 교활한 위협과 음모에 잘 대처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켰기 때문입니다. 

본문 11절 말씀 중반절에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외소”는 성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전은 세 곳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성전 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남자들은 성전 뜰에는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소는 제사장 이외에는 들어 갈 수가 없고,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대속죄 날에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민 18:7절에 “너와 네 아들들은 제단과 휘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음을 당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만 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아닌 사람이 들어가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느헤미야가 성소에 들어가서 은신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먼저 하나님께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것을 범한 사실을 알면 율법을 어긴 자로 백성들 앞에서 고소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어긴 자는 죽일 수 있는 율법이 있으므로 충분히 느헤미야의 사역을 중단하게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성소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잘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느헤미야에게는 죽음의 협박이 바로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어쩌면 정말 밤에 자객을 보내어 그를 죽일지도 모르는 상황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더욱이 믿고 있었던 제사장인 스마야에게까지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니 긴장할 법도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느헤미야는 죽음의 위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이 그의 삶에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말씀을 가볍게 여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하나 뿐인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말씀을 지키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긴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악한 대적들의 유혹과 시험을 이기는 방법은 말씀 위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신령한 눈을 떠야 합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면 양심적이고, 도덕적이고, 영적인 분별력으로 어떤 위협과 음모도 분별하며 승리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느헤미야가 위협과 음모를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항상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페르시아의 수산궁에서 예루살렘이 훼파된 채로 방치되었다는 슬픈 소식을 듣고 기도했습니다. 수개월 동안 금식하여 기도하다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해 총독으로 자원했습니다. 성벽 공사를 하면서 안팎으로 여러 가지 일을 겪을 때마다 기도의 힘으로 극복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살해 위협도 기도의 힘으로 극복했습니다. 

여러분, 느헤미야처럼 위협과 음모와 모함을 받아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면 보통사람들은 어떻게 기도하겠습니까? 대부분 아마 이렇게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 억울합니다, 원통합니다. 분합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를 모함하고 비방하는 자들, 나를 해치고자 하는 모든 대적들을 물리쳐 주시고 혼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동일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9절 후반을 보면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14절 후반절에도 “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라고 기도 했습니다. 

느헤미야의 이러한 기도는 자신에게 이러한 위협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달라는 것입니다. 이 손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힘있는 손으로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느헤미야가 그 어려운 도전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의 과정 속에서도 만만치 않은 도전과 위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처럼 원치 않는 오해로 갈등하고, 고민하고, 또 내 힘으로 풀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한숨 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새힘을 주시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도 한숨짓고 염려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느헤미야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주여 능력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여 더욱 힘있는 생활, 능력 있는 믿음생활을 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사람도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극복해야 합니다. 이겨야 합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대적하지 마십시오. 주의 일을 하다가 생긴 일이니 주저하지 말고 맡겨진 일을 계속 하십시오. 

그리고 힘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분명 힘을 주실 것입니다. 기도는 무너진 나를 일으켜 세우는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 대적들을 적게 보고, 나를 강하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입니다. 이 믿음으로 어렵고 힘든 모든 과정을 잘 이겨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인생에 시험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풍랑 없는 인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디에나 문제와 시험과 유혹과 협박과 오해와 아픔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었기 때문에 모든 일이 평탄하고 쉽고, 그 길이 넓고, 편안하리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이 길은 좁은 길입니다. 동행자가 적습니다. 가시밭길 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피를 흘려야 되고, 때로는 손해를 봐야 될 지도 모르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바르고 의로운 길입니다. 감격이 있는 길입니다. 소망의 길입니다. 그 길 끝에 가면 주님께서 두 팔 벌려 위로의 품에 우리를 안아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시험을 이기는 비결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를 묵상하십시오. 그의 방법을 따라가 보십시오. 시험을 이기고 목표를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느헤미야의 모범을 따라 시험을 능히 물리치는 승리의 삶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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