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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최후의 담판 (요 2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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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담판 (요 21:15-18) 

(15절)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절)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절)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최근 한반도 주변정세가 심상찮습니다. 북한의 핵위협,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전략, 일본의 군국주의, 미국의 핵 제한 등등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들입니다. 새 정부가 어떻게 담판을 하여 실익을 챙길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제질서에만 담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사에도 크고 작은 담판이 상존합니다. 우리는 지혜의 원천이신 주님 앞으로 나아와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공생애기간 동안 주님은 구원(요 1:43-51), 거듭남(요 3:1-21), 예배(요 4:1-24), 세금(마 22:15-22), 안식일(눅 6:6-11), 부활(마 22:23-32), 신성모독(마 26:65), 마지막으로 유대인의 왕(마 27:11) 문제를 놓고 담판을 벌이셨습니다(마 27:11). 

이 최후의 담판에서 저들이 이겨서(눅 23:23)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디베랴에서 제자들과 함께 조반(朝飯)도 드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조반 먹은 후’의 일입니다(요 21:15). 주님은 베드로와 담판을 시작하십니다. 이렇게 볼 때 빌라도와의 담판이 최후가 아니라 디베랴바닷가의 이 담판이야말로 땅위에 계시면서 행하셨던 최후의 담판입니다. 

베드로의 본래 이름은 ‘시몬’이고, 주님이 ‘게바’라고 이름붙이셨지만, 주님은 ‘시몬’이라는 호칭을 가장 즐겨 사용하셨습니다(마 17:25, 막 14:37, 눅 7:40, 22:31). 그런데 최후의 담판에서는 ‘요한의 아들 시몬아!’란 호칭을 사용하십니다. 왜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던 특이한 호칭을 세 번이나 사용하셨을까요?(요 21:15,16,17)

유대인들은 원래 족보를 대단히 중시해서 누구를 제삼자에게 소개할 때 ‘누구누구의 아들’이라는 식으로 소개합니다(행 13:22, 수 14:6, 눅 3:23-38). 하지만 코앞의 당사자를 향하여는 이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주 특별한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그의 선조까지 언급하여 상대에 대해 최고의 예(禮)를 갖출 때입니다(마 16:17).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최후의 담판을 시작하시면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하신 것은 그를 향하여 최고의 예를 갖추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부인하기까지 했던 인물이며, 제자들을 선동하여 옛 삶의 현장으로 되돌아갔던 베드로인데, 그를 향하여 최대한 존중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담판의 출발점, 담판의 첫 번째 원리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15). 

헬라어에서 ‘사랑’이란 단어가 여러 개 있습니다. 이성적인 사랑 ‘에로스’, 가족 간의 사랑 ‘스트로게’, 친구,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 ‘필리아’입니다. 이 사랑의 공통점은 모두 조건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던 칠십인경(LXX)학자들은 ‘아바드’란 히브리어를 어떻게 번역할지 고심하다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아가페’란 단어를 찾아내어 ‘아바드’를 ‘아가페’로 번역했습니다. 이 ‘아가페’란 단어를 집중적으로 사용하신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지금 그 ‘아가페’로 물으시지만, 베드로는 ‘필리아’로 답합니다(요 21:15).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습니다(요 21:16). 

베드로는 썩어빠진 자존심을 드러냈습니다. 이렇게 담판은 팽팽한 줄다리기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주님께서는 ‘필리아’로 물으십니다(요 21:17). 

‘아가페’이신 그분이 ‘필리아’의 수준으로 내려오십니다. ‘필리아’로 답하는 그에게 계속 ‘아가페’를 요구하시거나 다그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의 불완전함을 고스란히 수용하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그를 받아들이십니다. 형편없는 베드로를 아가페로 대하십니다. 이것이 담판의 두 번째 원리입니다.

그러면 마지막 원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일보다 사람입니다. 사람을 놓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일이나 성과보다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면서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입니다. 바로 그때 베드로에게 미묘한 심정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근심하여 이르되’(요 21:17). ‘lupeo’란 이 단어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 비탄에 빠짐’이란 뜻입니다. ‘아가페’ 앞에서 두 번씩이나 당당했던 그가 ‘필리아’ 앞에서는 의기양양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가슴에 찢어지는 듯한 아픔, 말할 수 없는 비탄에 빠져 들고 있습니다. 존중, 내려오심,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심, 이 세 가지 예수님의 모습 앞에서 베드로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결국 무엇일까요? 말씀순종입니다. 주님께서 섬기라고 하셨습니다(눅 22:26-27). 긍휼히 여기라고 하셨습니다(마 5:7).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 대고,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주고,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십 리를 동행하라고 하셨습니다(마 5:39-41).

서기관들과 다른 주님의 모습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서기관들은 행함이 없었는데 주님은 가르치신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요 14:21). 말씀을 실천하는 그 현장에 이런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런 저런 담판을 해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방법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씀은 말씀이고, 삶은 삶이고, 항상 우리는 이중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면, 부활주님께서 그 삶의 현장에 개입하십니다. 부활주님께서 개입하시면 우리가 생각할 수 없던 일들이 그 사건 속에 나타납니다. 그 사람 속에 역사하시고, 문제를 풀어주십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마주할 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혜자(施惠者)의 위치에 설 때가 많습니다. 퉁명스럽게, 쌀쌀맞게 대하고, 슬슬 기게 만들고, 내가 우월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과연 관계가 회복될까요? 그런 자에게 주님의 은혜가 나타날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이란, 상대가 나의 수준에 맞추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수준에 나를 맞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아가페’한다는 것은 그의 모든 허물과 유치함과 모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 있는 그대로의 그의 전(全)존재를 내가 수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가페의 출발입니다. 

예수정신, 그것은 승패나 손익에 상관없이 가야할 길을 그냥 가는 것입니다. 희망이 보여서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걷기 때문에 희망을 보는 것입니다. 밀알은 썩고 나서야 새로운 싹을 틔우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가는 길, 예수를 따르는 길은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그 길, 가고 있는 넓은 그 길이 아니라 아무도 가지 않는 좁은 길, 가시밭길, 그 길입니다. 

그 길을 갈 때에 그 현장에 부활주님이 찾아오셔서 변화시키십니다. 사건을 변화시키시고, 사람을 변화시키시고,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이 은혜가 넘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옥성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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