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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접 (요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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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접 (요 1:9-14)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제 친구를 좀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아주 단짝으로 지낸 친구가 있습니다. 저는 그 친구가 없이는 한 시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또 친구도 늘 제 곁에 머물기를 기뻐했습니다. 저는 그 친구를 참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친구는 제가 고독할 때 늘 저에 곁에 있었고 제가 힘들고 외로울 때 저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마 저를 버려도 제 친구만은 저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좋은 친구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그 친구를 여러분들에게 꼭 소개해 드리고 여러분도 좋은 친구를 얻고 돌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을 드립니다. 

그 친구는 고향이 대한민국이 아니라 이스라엘입니다. 갈릴리 나사렛입니다. 그 친국의 아버지는 요셉이고 어머니는 마리아입니다. 그 친구는 정말 제 삶속에 늘 동행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예수님을 친구라고 하니까 아니 목사님이 미쳤나, 어떻게 예수님이 자기 친구가 된담? 예수님은 2000년 전에 계시다가 승천하셨는데 이런 질문을 하실 겁니다. 

우리 한 번 자막에 요한복음 15장 13-14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를 향해서 “너는 나의 친구라”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바로 우리는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만이 아닙니다. 찬송에도 이런 아름다운 가사가 있습니다. 찬송 90장을 보면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했네, 그 크신 사랑 나타나 내 영혼 거듭났네

주 내 맘에 늘 계시고 나 주에 안에 있어 저 포도 비유 같은 참 좋은 나의 친구“ 할렐루야 찬송가에도 주님을 가리켜 나의 친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절도 그렇습니다. “내 친구 되신 예수님 날 구원하시려고” 3절도 그렇습니다. “내 진실하신 친구여” 찬송가 가사에도 내 친구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친구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좋아합니다. 친구 되신 예수님이기 때문에 여러분 친구란 얼마나 좋습니까? 아이들은 자기 비밀을 부모에게 이야기합니까? 친구에게 이야기합니까? 친구한테. 부모님께 자기 비밀 이야기하는 애들 거의 없어요. 선생님에게 애기하는 애들 별로 없어요. 자기 친구들에게는 뭐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까지도 다 애기합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신다면 우리 마음속에 작고 세밀한 이야기까지 예수님께 다할 수 있어요. 예수님은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분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좋아했을까?

예수님은 편견이나 차별이 없어요. 예수님은 누구를 가리신적이 없어.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유유상종이라고 좀 있는 사람들은 있는 사람들끼리, 없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경향이 있거든요. 또 학벌이 좋은 사람들은 학벌이 좋은 사람들끼리, 조금 학벌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떨어지는 사람들끼리 어울릴 수 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부요한 사람들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 거릴 것이 없으셨어요. 특별히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 특별히 창기들이라고 하는 그 시대 가장 밑바닥에 있던 사람들을 더욱 가까이 하셨어요. 그들을 식탁에 초대하셨고 그들과 함께 식사 나누는 것을 즐겁게 여기셨어요.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비난 받는 레위라고 하는 인물이 세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제자가 됩니다. 또 세리장인 삭개오의 집에도 들어가시고 축복하시고 그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십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특별히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너무너무 싫어하는 사람들이 사마리아인들인데 그 사마리아 동네로 일부러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누구를 만나느냐 한 여성을 만납니다. 이 사마리아의 여인,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이 여인을 만나서 그 여인에게 생명의 축복을 부어주십니다. 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차별이 없으셨습니다. 더구나 이 여인은 성경에 보니까 결혼을 다섯 번이나 했다고 그랬어요. 왜 다섯 번이나 했을까? 첫 번째 남편은 아마 암으로 돌아가시고, 두 번째 남편은 맹장염으로 돌아가시고, 세 번째 남편은 아마 외국 가시고 그러다 보니까 다섯 번이나 결혼한 여성이에요. 사람들은 그 여인에게 조롱을 하고 멸시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렇지를 않습니다. 그 여인을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이고 그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공급하시게 됩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인종이나 민족이나 피부색에 차별을 두시지 않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가 어린 아이든 어른이든, 노년이든 장년이든, 청년이든 예수님은 따지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의 아픔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찌 보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그리고 내가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는 아픔들을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저는 결혼한지가 한 32년, 33년이 되가는데 사실은 30년 동안 결혼생활을 해도 아직도 아내의 속을 다 모를 것 같아요. 

어떤 때는 아내가 막 힘들어하는데도 그걸 모르고 뭐 반찬이 시원치 않다든가, 왜 집안이 이렇다든가 막 뭐라고 그럴 때가 있어요. 아내가 굉장히 섭섭해 해요. 나는 지금 굉장히 힘들어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딴소리만 한다고 말입니다. 좀 아내가 힘들어할 때는 그 표정만 봐도 아 우리 아내가 힘들어하는구나. 좀 위로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30년을 살아도 아직 아내의 속마음을 제가 잘 몰라요. 여러분 부부간에도 그렇습니다. 때로는 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그런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픔을 예수님은 다 아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너의 마음의 고민을 내가 알고, 너의 마음의 아픔을 내가 알아. 너의 괴로움을 내가 알고 너의 고독과 외로움을 내가 알아. 주님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아무도 동네 사람들은 요한복음 4장의 이 여인을 위로해줄 사람이 없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을 찾아가시고 그 여인을 위로하시고 그 여인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 주십니다. 

정말 사람들이 무서워서 사람들이 만나기 싫어서 사람이 많이 오는 아침 시원한 시간에는 물을 뜨러 오지 못하고 아무도 오지 않는 낮 12시에 이 양동이를 메고 물을 기르러 왔던 이 여인, 예수님을 만나고 이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축복을 받을 때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뛰어가서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내가 예수님을 만났다고 그는 소리 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깊은 곳에 아픔으로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아픔을 다 경험하셨어요. 여러분 그게 중요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내가 부요하게만 산 사람은 가난한 사람의 심정을 잘 몰라요.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경험하셨어요. 그는 사십일 동안 굶주림 가운데 사신적도 있습니다. 그는 또한 피곤하셔서 행로에서 쉬기도 하셨고, 배 밑창에서 주무신 적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때로 목마르셔서 제자들에게 물을 요구하신적도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때로 가족들에게 오해를 받으신 적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나가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선포하실 때에 가족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저 예수가 귀신들렸다고, 미쳤다고 그를 흉 본적도 있었습니다. 그를 낳아준 부모들도 때로 그를 이해하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은 가장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한적도 있습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제자가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버린 일도 있습니다. 아니 또 그 상황 속에서 가장 믿었던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적도 있습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세요. 내가 가장 믿었던 친구가 나의 동업자가 나를 배신한다면 얼마나 마음이 괴롭겠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경험하신 분이예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신 적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다 체휼하신 분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체휼이라는 말은 그가 우리의 고통을 이미 다 겪어보셨다. 이해하신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모든 고난을 겪으신 그분이 진정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우리를 위로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그래도 부유하게 살기 때문에 예전에 어르신들이 굶주렸다 하루에 한 끼를 먹었다. 그런데 이해를 못하지 않습니까. 뭐 저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우리 어르신들 말할 때는 저 일제 시대 때 너무 먹을게 없어서 칡뿌리를 캐먹었다 풀을 뜯어먹었다. 또 나무껍질을 벗겨 먹었다. 그럼 아이들은 그걸 이해를 못하는거예요. 그 그렇게 말하죠. 아 왜 바보같이 나무껍질을 벗겨 먹냐고, 컵라면 끓여 먹으면 되는데. 

여러분 그걸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남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내가 정말 가난을 경험해 봐야 되요. 아침에 밥하려고 쌀독을 뒤져보니까 쌀 한 톨이 없어. 그래서 새벽에 옆집에 가서 “영희 엄마 미안해. 잠자는데 깨워서. 쌀 한 됫박만 꿔줘. 내가 내일 갖다 줄게” “철희 엄마 연탄 한 장만 좀 꿔줘.” 연탄이 마침 다 떨어졌네. 이렇게 가난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정말 가난이란게 얼마나 힘든가를 이해할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그런 분이예요. 

그는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에 가장 낮은 자와 가난한 자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은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자녀들을 이해하는 것 같지만 자녀들이 뭐 잘못하면은 한 번 두 번 세 번은 이해하고 용서한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다섯 번씩 똑같은 일을 한다면 “야 이놈아 너는 눈을 어디다 뜨고 다니는거야. 너 그래가지고 밥이나 얻어먹고 살겠냐 이놈아.” 우리는 혼을 내거나 책망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적어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 실수 할 수 있지. 걱정 하지마. 열 번 스무 번 실수해도 괜찮다. 내가 너를 믿어줄 거야. 내가 널 후원해줄 거야. 다시 일어나봐. 다시 도전해봐.” 이렇게 주님은 말씀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 예수님이 얼마나 좋은 친구냐 하는 겁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들어하고 비틀거리는 우리를 향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우리의 고통을 체휼해 주시는 그런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린 주님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주님이 우리를 구원할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무슨 외모가 능력이다. 이렇게 해서 얼굴에 많이 투자하는 것 같아요. 물론 그것이 능력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여러분 정말 이 시대에 우리에게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경제적인 능력도, 지식적인 능력도, 인격적인 능력도 우리에게 필요하죠. 제일 필요한 것은 역시 신앙의 능력이에요. 

여러분 세상적인 능력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아 어려운 사람을 보고 좀 도와주고 싶은데 당장 도와주려했더니 내 주머니에 만원도 없어. 이거 뭘로 도와주요? 동생이 사업하다가 3000만원이 꼭 필요하다는데 저거만 도와주면 사업이 어떻게 서겠는데, 3000만원이 없어서 그걸 도와줄 능력이 없어서 도와 줄 수가 없어. 답답하지 않습니까? 어떤 자매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두 아이를 키우는게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못 살 것 같아서 누구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도저히 못 살 거 같아서 누구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직장도 있다고 하고 집도 있다고 해서 이런 남자 만나면 고생하지 않으리 생각하고 애들 굶기지 않으리 하고 결혼했대요. 결혼하고 한 달 만에 남편이 직장을 그만 두더래요. 그래서 왜 그만 두냐고 하니까 원래 이 직장은 결혼하기 전 까지만 다니기로 한 직장이래요. 임시직이에요. 계약직이요. 그리고 직장을 안 나가고 술만 사오라고 하고 술주정을 합니다. 이집은 우리 집인가 했더니 그 집도 자기 집이 아니래요. 삼촌이 외국에 가서 잠시 그 집을 거처로 삼고 있었던 거래요. 

여러분!! 이런 무능력한 사람 만나면 여러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우리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10절에 “그가 세상에 계셨고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바로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그분의 것입니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을 소유하신 전능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도울 능력이 있으신 분이예요. 그분은 능력이 있으시고 우리를 너무너무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창조하신 그 분은 우리가 인생이 꼬일 때마다 말씀하십니다. 너의 인생이 꼬인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바로 저것 때문이다. 너의 인생을 바로 잡으려면 이렇게 해야 해. 이 꼬인 실타래를 풀려면 이렇게 해야 해. 주님은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고 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자동차 도시가 디트로이트입니다. 디트로이트의 한 정비사가 아침에 차를 몰고 출근을 하는데 고속도로에서 차가 가다가 서 버렸어요. 아무리 해도 차를 못 고치겠어요. 자기도 자동차 정비사 1급인데 그것을 못 고치겠어요. 그렇게 당황해 하고 있으니까 지나가는 차가 하나 서더니 한 노신사가 내립니다. ‘여보게 내가 좀 도와줄까?’ 하고 쳐다보았습니다. ‘아니 내가 정비사 1급인데도 못 고치는데 할아버지가 어떻게 고치겠어요?’ ‘아니 내가 좀 봐줄게 차 본 넷을 열어보게’ 그랬더니 여기 저기 몇 군데 만져 보더니 ‘시동을 다시 한 번 걸어봐’ 시동을 거니까 차가 부르릉 걸리는거예요. 깜짝 놀라서 ‘할아버지 누구예요?’ 빙그레 웃으시는거예요. 명함을 한 장 주더니 유유히 떠나는 거예요. 그 명함을 보니까 헨리 포드!! 누구냐? 바로 이 차를 만든 사람이예요. 차를 만든 사람이 차의 고장을 못 고치겠습니까? 자기가 만들었는데요?! 마찬가지예요.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마음의 질병을 고치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아시는 분이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지요. 그 분이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신다면 무엇이 두려울 수 있을까요? 그 분은 우리를 구원할 능력이 있으십니다. 우리 인생을 회복할 능력이 있으셔요. 더구나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원합니다. 

얼굴이 예뻐지면 좀 행복해 질 것 같아서 너무너무 많은 투자를 하지요. 우리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성형을 한다고 합니다. 요즘 웬만하면 분들은 자꾸 이렇게 성형외과로 고치더라구요. 아마 림스 내과도 성형외과로 고칠지도 몰라요. 돈을 잘 번다고 해서. 아무튼 병원의 한 60%는 성형외과로 전업하는 거 같아요. 

여러분 원래 성형외과라는 것이 2차 세계 대전 때 전쟁 파편을 맞아가지고 얼굴이 흉하니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하니까 그것을 가려주기 위해서 성형을 시작했데요. 그런데 이제 그것이 돈 잘 버는 도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자매들이 돈만 있으면 얼굴 고치는 거예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 선물이 뭐냐? 엄마 얼굴 고쳐 주세요. 대학 졸업할 때 선물 뭐 사줄까? 얼굴 고쳐 주세요!! 왜 그럴까요? 외모가 능력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여러분 정말 얼굴이 예쁘면 행복할까요? 묻고 싶어요. 

여러분 마릴리 먼로는 세상에서 제일 예뻤다고 합니다. 남자들이 그 마릴리 먼로를 보면 탄성을 저질렀어요. 섹스 심벌이라고 해서요. 그런데 그렇게 예쁜 여자들도 자살했다니까요? 여러분 물질이 행복을 줄까요? 좋은 차나 좋은 집이 행복을 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유한 나라들의 행복 지수가 가장 낮아요. 가장 가난한 방글라데시의 행복 지수가 1위에요. 여러분 물질이 행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예요.

며칠 전에 손호영이라는 유명한 가수가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로 돌아갔어요. 자기 애인이 먼저 차에서 죽고 자기가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여러분 손호영이 얼마나 유명한 가수입니까? 얼굴 잘 생기고 돈 있고 인기 있고 뭐가 부족해서 자살을 합니까? 여러분 그것이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올 때 행복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인간이 그렇게 행복하기 원하는데 왜 행복하지 못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죄가 들어와서 그래요. 죄예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할 때 인간에게 죄가 들어와서 그 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 막았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이 인간에게 전달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쉬운 예를 들면 태풍이 불어서 나무가 뿌리 채 뽑혀 버렸습니다. 이 나무가 죽을까요? 살까요? 죽지요! 왜? 수분을 공급받지 못하니까! 수분을 공급 받아야 해요. 뿌리 채 뽑힌 나무는 또 죽어가요. 그럼 죽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것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여러분 어항을 떠난 금붕어가 살까요? 죽을까요? 죽지요. 물이 없으면 금붕어는 죽을 수밖에 없어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단절되어 버리니까 인간은 마치 어항을 떠난 금붕어와 같고 뿌리채 뽑힌 나무와 같아요. 그래서 불행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은 뭔가 마약을 의지하고 알콜을 의지하고 세상 쾌락을 의지하는데 잠시 쾌락을 주지만 영원한 행복은 줄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해보다 안되니까 결국은 자살 해 버리고 마는 거예요. 우울증에 걸리고 결국은 비참하게 살다가 죽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분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저와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보혈을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셨어요.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 앞에 감사하며 찬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게 된거예요. 

여러분 인간의 죄를 씻을 수 있는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많은 종교가 다 훌륭합니다. 우리 한국의 역사 속에 보면 불교도 있었고 유교도 있었습니다. 다 훌륭합니다. 유교가 있었기에 우리는 부모에게 더 잘하고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더 잘 지킵니다. 불교가 있었기에 사람들은 욕망을 절제하고 자기 스스로 도를 깨닫는 철학적인 사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구원은 없다는 것입니다. 불교나 유교나 어떤 것도 인간의 죄를 용서할 길이 없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길을 열어 주셨어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있는 능력 있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구원할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분을 우리의 친구로 삼을 수 있다면 그리고 내 마음에 구주로 영접하고 그 분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나는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성경에 영접과 거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 11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아멘. 

예수님이 현존해 이 땅에 왔으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 분이 누군지 몰랐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 분을 거절했고 그 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제자들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그리고 예수님의 유언을 따라서 그들은 이제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자 우리 12절 말씀 한 번 읽어볼까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셔 들이는 거예요. 우리 집 대문을 누가 두드려요. 나가보니까 아버지가 오셨어요. ‘아이고 아버님 얼른 들어오세요.’ 그것은 영접이에요. 그런데 밖에 나가보니까 약을 팔러 오셨는데 나에게 필요 없는 약이에요. 그리고 나는 바빠. ‘아이고 저는 지금 만날 수가 없네요. 지금 바빠요.’ 이것이 바로 거절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모셔 들이는 거예요. 그리고 동시에 영접은 무엇입니까? 그 이름을 믿는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내 구주로 믿는 것이 바로 영접이예요. 내 마음에 모셔 들이고 그 분을 내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영접이라는 것입니다. 이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여러분의 자녀들은 권세가 있어요? 없어요? 있지요!! 

공부를 못하고 성적표를 0점짜리를 받아와도 그 다음 날 아침을 먹으려고 아침상에 나와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권세라구요. 사고치고 와서 아침에 ‘아빠 돈 줘요.’ ‘네가 맡겨놨냐?’ ‘아이 빨리 줘요!!’ 세상에 무슨 권세가 그런 권세가 있어요. 자녀에게 권세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자녀가 부모를 위해 해 준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부모에게 맡겨 놓고 찾아가듯이 무조건 달라고 요구해요. 자녀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요.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이런 권세가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자녀의 권세를 가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을 내 친구로 모셔 들이고 그 분을 내 구주로 영접하면 우리는 모두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줄 몰라요.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은 너무너무 위대한 일이예요. 특별이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죄의식 속에 살아갑니다.

어떤 아이가 초등학교 앞에 문방구가 있는데 친구들과 문방구에 몰려들었어요. 친구가 무엇을 사는데 자기가 갖고 싶은 장난감이 앞에 있는데 주인이 안 보는 것 같아요. 얼른 주머니에 집어 넣었어요. 그리고 나오는데 가슴이 벌컹 벌컹!! 그 다음부터 학교에 가려면 문방구 앞을 지나가지 못해. 문방구 아저씨가 튀어 나와서 목을 잡고 ‘이 놈 너 물건 훔쳐갔지?’ 할까봐요. 두려워요. 무서워서 그 앞을 못 지나다니겠어요. 

일주일이 지났어요. 어느 날 엄마가 아침 식탁에서 ‘야! 철이야 엄마가 이틀 전에 학교에 볼일이 있어서 갔더니 문방구 아저씨가 엄마를 부르더라. 너가 문방구에 와서 돈 낼 틈도 없이 장난감을 하나 가져갔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돈을 다 주고 왔거든. 그러니까 이제 편안하게 생활해.’ 자 그때부터 문방구 앞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어요. 없어요? 왜요? 그 빚을 다 엄마가 갚아 주셨기 때문이지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죄로 인해 쫄아 가지고 불안하게 생활 했는데 이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다 치러 주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마지막 하신 말씀이 뭐예요? ‘다 이루었다. 테텔레스타이’ 내가 너의 죄의 값을 다 치렀다. 우리의 죄의 값을 다 치러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행복하게 얼마나 화평하게 살아갈 수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을 영접할 때 이 놀라운 죄씻음과 구원의 은총과 자녀의 기쁨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게 되지요. 여러분 특별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늘 경험하고 살아가게 되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 축복이 따라오죠.

요즘 잘 나가는 골프 선수가 탱크 최경주 선수입니다. PGA 통상 8승을 달했습니다. 그는 무명의 선수였지만 이제는 세계적인 선수 타이거 우즈와 어깨를 나란히 겨룰 정도로 유명한 선수가 됐습니다. 이 최경주는 사실 전라도 완도의 시골 사람입니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제대로 학교도 다니지 못합니다. 그는 어릴 때 꿈이 원양 어선을 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닷가에 나가서 원양 어선 타가지고 돈을 많이 벌어서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 동네에 골프장이 들어섰어요. 신기해가지고 가서 구경하다가 골프장에서 일하면서 골프를 배우게 됐어요, 열심히 하고 잘하니까 골프장 사장이 골프채도 주고 일을 배우면서 골프를 쳤어요. 그런 후 30살에 프로로 전향했어요. 무명의 선수에요. 그는 미국에 건너갔는데 대회에 나갈 때마다 승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결혼을 했는데 아주 믿음 좋은 자매하고 결혼했어요. 그래서 부인을 따라서 교회에 따라가 줬어요. 그랬더니 가랑비에 옷이 젖는 다고 자기도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그는 골프를 칠 때 마다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대회에 나가면 먼저 하나님께 무릎꿇고 기도하고 골프를 치면 골프가 그렇게 잘 되요. 1999년 일본에서 한번 어려운 골프대회를 하게 되었는데 그는 먼저 골프장에서 무릎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곤 눈을 떴는데 세상에 자기가 치는 골프공에서 홀까지 눈을 뜨니까 누가 잔디에 분필로 쭉 그려놓은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대로 치다보니 홀 안에 골이 들어가게 되었어요. 놀라운 일 상상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골프공이 가는 길이 딱 분필로 그려져 있어요? 그는 늘 이런 놀라운 경험을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게 늘 도움을 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에게도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어요. 그는 그때마다 무릎 꿇고 감사해요. 그에게도 슬럼프가 있고 실패할 때가 있죠. 하나님 제가 이렇게 골프 칠 수 있는거 감사합니다. 그는 역경가운데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더 겸손하여지고 더 낮아지는 훈련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늘 경험하며 살아요. 

제가 자주 이야기하는 내용이 있죠.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능력을 받습니다. 이 할렐루야 캡틴이라고 불리는 신일덕 장로님 그 분은 대한항공 조종사셨습니다. 그는 비행기가 이룩할 때마다 늘 할렐루야. 이 비행기에는 하나님이 동승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어디까지 모시고갈 기장 신일덕 입니다. 이렇게 인사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별명이 할렐루야 캡틴이에요. 어느 날 그는 신혼부부 60쌍을 태우고 사이판으로 비행기가 이룩을 합니다. 아주 기분 좋은 비행이에요. 신혼부부로 꽉 차있으니까 사이판 도착 5분 전 바퀴를 내리려고 스위치를 누르니까 바퀴가 내려오지 않습니다. 바퀴가 내려오지 않으면 비행기는 동체 착륙을 해야 합니다. 관제소에 연락해서 바퀴가 안 빠지니까 동체착륙을 하겠다고 급히 연락을 했습니다. 엔블란스가 동원되고 소방차도 동원됩니다. 

신일덕 장로님이 생각해보니까 비행기가 동체착륙을 한다는 것은 고철덩어리가 그냥 착륙을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비행기가 두 동강 날 수도 있고 많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요. 어떻게 장로가 운전하는 이 비행기가 사고나 사람들이 죽을 수 있나. 하나님 영광 가리우지. 그는 조종대를 부기장에게 맡긱 무릎을 꿇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지만 하나님께 뜨겁게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이 비행기 살려달라고 이 비행기 고쳐달라고 그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가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자기 몸이 공중에 붕 뜨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하나님 주시는 세밀한 음성이 있어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내 하나님이 됨이라.’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용기가 생겼어요. 

일어나서 그는 정비사에게 수동으로 조종해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정비사가 수동으로 조작하니까 왼쪽 바퀴가 빠졌다는 거예요. 오른쪽도 해봐 또 빠졌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이런 일이 어디 있어요? 관제소에 연락을 했더니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냐고 그래서 비행기는 안전하게 잘 착륙했습니다. 그리고 기내방송을 통해서 그 사실을 다 알려주었어요. 60쌍의 신혼부부들이 황천길로 갈 뻔 했는데 서로 박수를 치며 껴안고 얼마나 좋아하던지 그들과 한명씩 포옹을 하고 기쁨의 인사를 나누고 다 내려 보내고 마지막 기장과 부기장이 비행기에서 내려옵니다. 

그때 부기장이 물어요. 기장님 진짜 유압장치 하이드로릭이 기장님이 기도해서 바퀴가 빠진 거예요? ‘자네 보고서도 못 믿나? 참 이상하네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 부기장은 불교신자거든요. 그런데 그 후 몇 년 후에 보니까 그 부기장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누구 권유를 받고 교회를 나가게 됐고 신학교를 가게 됐고 목사안수를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참 놀라운 일이죠. 

여러분 이것은 신앙의 세계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시고 우리 인생을 다스리고 돕고 계신 줄로 믿으시기 바립니다. 어떤 분들은 그래요.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하나님이 정말 세상을 창조한 거 맞냐고 별의 별 질문을 다하죠?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으면 이 우주를 누가 만드셨겠어요. 여러분은 이 땅에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 그거야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 왔죠. 그렇죠. 여러분을 만드신 분이 있어요. 그럼 엄마 아버지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그거야 할아버지 할머니가 만들었어요. 여러분 인간을 만드신 분이 있어요.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난 것이 아니에요. 여기 이 마이크가 그냥 생긴 거예요? 만든 사람이 있는 거예요? 만든 사람이 있어요. 이 컵도 만든 제조업자가 있어요. 이 온 우주 해와 달과 태양과 별과 이 모든 질서를 누가 만들었어요? 하나님이 만드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어떤 분들은 이런 질문도 해요. 아니 기독교에는 왜 이리 이단이 많아요? 그건 이유가 있어요. 여러분 다이아몬드는 진짜 명품 다이아몬드가 있지만 가짜도 있어요? 없어요? 가짜가 있어요. 가짜가 있다는 사실은 진짜가 있다는 이야기에요. 진짜 기독교가 진리의 종교이기 때문에 자꾸 가짜 종교가 생겨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 능력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을 얻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알톨 중독에도 빠지고 마약 중독에도 빠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올까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는데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제가 방송을 보다보니까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 설교 속에 자기교회 여고생 한명이 선생님께 쓴 편지를 낭독하시는데 제가 들어도 감동이 되더라고요. 여러분들에게 소개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엄마는 어린 나이에 결혼식도 없이 그냥 오빠 임신하시고 저도 낳고 그러셨어요. 그런데 아빠가 의처증도 있으셨고 알코올 중독도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7살 전 까지는 엄마랑 아빠랑 같이 살았는데 기억에 남는 게 엄마는 일 가셔서 늦게 들어오시고 오빠랑 저는 이유도 모르고 아빠한테 맞고 그러다가 엄마가 들어오시면 엄마도 맞으시고 경찰분도 많이 오셨었고 이런 기억 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하루는 아빠가 오빠랑 저랑 둘이 때리시다가 고아원에 보내겠다고 할머니에게 전화하시고 정말 고아원 문턱까지 갈 뻔했는데 다행히도 할머니가 데리러 오셨어요. 그리고 할머니랑 살면서 엄마랑 아빠랑 이혼하시고 두 분 다 연락이 끊겼어요. 할머니가 저 어릴 때에는 제가 어릴 때에는 알코올 중독이 좀 있으셔서 가끔 길거리에 누우셔서 소리 지르시고 누워서 주무시는데 업고 갈 힘이 없더라구요. 길바닥에 누워서 주무실 때는 정말 답이 없어서 할머니 옆에 앉아서 울면서 길 가는 아저씨에게 부탁도 하고 했었어요. 

가끔 할머니에게 화도 내고 짜증도 성질도 많이 냈는데 또 길거리에서 소주병 폐휴지 줍고 팔고 하시는데 참 많이 죄송하더라구요. 이렇게 힘든 일도 있었고 또 학교에서 가정 연락망 쓰는 종이를 쓰는데 엄마 아빠 핸드폰 번호 쓰는 칸이 저만 둘 다 비워져 있어서 애들이 자꾸 묻는데 회피하는 것도 많이 싫었고 어버이날에 학교에서 엄마 아빠 이름표 주면서 카네이션 만들라고 하는 것도 많이 싫었고 운동회 같은 날 부모님 안 오시는 것도 싫었었고 엄마 싸인 받아 오는 숙제를 못 해갔는데 애들이 ‘쟤는 할머니랑 살아서 못 받아온다.’는 얘기도 참 많이 싫었어요.

누구랑 사이가 안 좋아졌을 때도 행여나 싸워서 부모님 모시고 오라고 할 까봐 항상 먼저 사과하고 눈치도 많이 봤었어요. 6학년 어느 날에 몇 년 만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받았는데 밑에서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고 내려오라고 하시면서 새 아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오늘 하루 자고 올 거라고 그러셔서 오빠랑 꺼림칙하게 내려가서 엄마 어디 있나 하고 찾는데 사람들 틈에서 엄마 얼굴을 봤는데 엄마 같은 몸은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가까이에 갔는데 엄마가 거의 만삭이시더라구요. 많이 당황했는데 그래도 그냥 이해하고 낯설지만 살았어요. 그 분에게 아저씨라고 불렀는데 2년 정도 지나니까 엄마가 이제 아빠라고 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해서 한참 후에서 아빠라고 작게 불렀어요. 

몇 년 만에 처음 불러보는 거라 많이 어색했는데. 그러고 몇 달 만에 이혼 하시더라구요.

중간에 내용을 다 생략하구요. 이런 아픔을 겪은 아이예요. 그런데 이런 어려운 아이에게 분당 우리교회의 에듀 투게더랑 연결이 된 거예요. 우리 성도님들 중에 고맙게도 무료로 시간을 내서 이런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고 수학을 가르쳐 주는데 거기랑 연결이 되면서 이 아이에게 복음의 빛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내용을 들어 보세요.

이렇게 중학교 시절도 지났네요. 제가 에듀 투게더를 접하게 되고 중 1때부터 다니기 시작했는데 창환 선생님을 만나게 된 건 중 3때에요. 그런데 참 창환 선생님을 보면서 신기했던 것이 수업도 기도하고 시작하고 싸이월드 같은 곳을 보면 교회 사진, 교회 친구 분들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즐거워 보인다 싶었는데 학기 말에 선생님이 교회 한 번 와보라고 해서 네 이러고 한 번 가보게 된 거예요. 제가 하나님이 믿어지기 시작한 것은 겨울 수련회 때에요. 목사님 설교도 듣고 기도라는 것도 해보고 찬양이라는 것도 들어보고 했는데 사실 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런데 겨울 수련회 때 첫 째 날에 찬양을 부르다가 갑자기 마음이 막 꼬물꼬물 그러면서 막 눈물이 나기 시작하더라구요. 

나를 지으신 주님. 이 찬양이 저를 바꾼 찬양이예요. 이렇게 고 1의 시작은 하나님을 만나고 시작된거예요. 교회에서 예배드리면서 기도하면서 울기도 하고 찬양하면서 감격하기도 하고 설교 들으면서 하나님을 좀 더 알아가는 것 같아서 기뻤고 교회에서 하는 활동도 재미있었고 교회 친구들이랑 얘기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렇게 예배 끝나고 집으로 왔을 때 집은 여전히 암담했지만 요즘에 와서 참 저희 집안 상황이나 경제적인 문제를 대하는 저의 마음이 많이 바뀌었다고 느껴요. 예전에는 그냥 의지할 곳 없이 집 문 앞에서 쪼그려 앉아 울고 허무하고 내가 뭘 해야 할지 뭘 할 수 있을지 생각조차 못 했었는데 이제는 암담한 생활 가운데서도 힘들어서 많이 울기도 하지만 울면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상황 올려 드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된다고 믿으며 차차 한 걸음씩 일어나고 걸어가고 있어요. 그리고 정말 지금은 살아있는지도 모르는 아빠를 원망했었는데 특새때 기도하면서 아빠를 용서하고 하나님께서 아빠와 함께 해주시리라 기도하게 되었어요.

또 제가 겪었던 많은 상황들이 다른 친구들에게 공감을 주고 하나님을 전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또 기뻐요. 상황이 힘들어도 하나님께 정말 의지할 수 있고 의지 했을 때 마음 회복할 수 있게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고 또 집 안 문제 경제 문제 보면서 좀 더 굳건해 지고 하나님과 함께 해서 이겨내자고 다짐하고 믿음 지킬 수 있는 것 같아요.

내용 중략하고 맨 마지막에 이 아이가 이렇게 마무리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그렇습니다. 이 여고생은 너무나 어려운 처지이지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행복의 길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분이 내 친구가 되시면 우리는 행복을 소유합니다. 죄를 씻음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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