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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다 대신 맛디아를 세우다 (행 1: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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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대신 맛디아를 세우다 (행 1:15-26)

성경에는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인생에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가끔 등장합니다. 인생에 실패한 사람 중에 본문의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따라다니며 제자교육을 잘 받았던 그가 왜 예수님을 팔아먹고 인생에 실패한 사람이 되었는가? 우리는 실패한 사람들에게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살지 않아야 인생에서 실패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왜 인생에서 실패했는가? 

그리고 21절 이하에서는 유다 대신 맛디아를 제자로 세우는 말씀이 나옵니다.


1. 가룟 유다의 실패원인(:15-20) 

1) 가룟 유다는 물질에 눈이 멀었기 때문에 인생에서 실패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배반자로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로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의 능력을 보시고 돈을 맡는 회계직을 맡겨주셨습니다. 세리 출신인 세리 마태가 있는데도 가룟 유다가 회계직을 맡았다는 것은 그가 이 부분에서는 탁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돈을 너무 잘 알고 돈을 너무 잘 다루다보면 사람이 째째해집니다. 돈 밖에 모릅니다. 매사를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하고 돈이면 다 되는 줄 압니다.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돈이 최고인 줄 압니다. 돈이라면 벌벌 떱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돈을 알기를 돌같이 알아야 합니다. 돈 몇 푼가지고 시험들지 말고 무슨 계산을 할 때도 항상 남보다 더 많이 내고 남보다 더 먼저 내서 내가 손해본다 생각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돈은 우리 생활에 있어서 꼭 필요하기는 하지만 매사에 돈이 앞서서는 안됩니다. 세상에는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많고 돈이 전부가 아닙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동고동락하면서 생사를 같이 했고, 주님을 위하여 일생을 헌신하며 살겠다고 결심하여 자기의 전부를 버리고 따라나섰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결국 18절에 기록된 것처럼 비참하게 자살로 인생을 끝마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문 18절을 봅니다.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했습니다. 결국에는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넘기게 되었습니다. 은 30냥에 미혹을 받아 자기의 모든 양심도, 신앙도, 또 주님도 배신했습니다. 

돈을 사랑하면 돈에 반드시 미혹을 받습니다. 성도가 이 세상의 물질에 눈이 어두워지면, 동시에 은혜의 세계에 눈이 어두워집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부자 청년의 신앙의 실패원인도 영생을 구하려 예수님께 왔다가 재물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숭실대학교 명예교수이신 안병욱 교수는 현대인을 지배하려는 귀신 넷이 있다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물인 귀신 외에 눈에 보이는 네 가지 귀신을 영어의 M으로 시작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4M 귀신이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머쉰, 기계입니다. 컴퓨터를 비롯한 기계로 인해 인간성을 잃어 버렸습니다. 

둘째는 매스, 큰 것입니다. 큰 교회, 큰 병원, 큰 차, 큰 것을 좋아합니다. 

셋째는 마샬인데 로마 군대의 힘, 강력한 힘을 뜻합니다. 힘있는 자는 살아남고 힘이 없는 자는 도태시키는 마샬이라는 귀신이 현대인을 지배합니다. 

넷째는 머니, 즉 돈입니다. 돈 귀신이 현대인의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돈 귀신에 사로잡히면 부모 자식간의 도리도, 형제의 우애도, 교회 직분도 파괴시키고, 순수하고 정직하던 성품도 교만하고 괴팍한 사람으로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바른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이런 악의 권세를 깨뜨리고 여기서부터 참 자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안교수님의 말대로 현대인을 지배하는 네 가지 귀신을 제어하지 못하면 참 믿음도, 보람있는 인생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청지기라는 의식이 투철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중에도 반드시 저축할 줄 아는 정신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물질은 나만 위해서 쓰고 쌓아 두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과 도움과 자비가 필요한 이웃을 위해서 자선 사업을 위해서 사용할줄 아는 정신이 어렸을 때부터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어서 그리스도인의 경제관이 바로 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2) 가룟 유다는 신앙의 결심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가 처음에 예수를 따를 그 당시에는 엄청난 모험과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유대교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가족, 이웃에게 버림을 받을 수도 있고, 사회로부터 온갖 기득권 박탈을 감내해야하고, 무엇보다도 온갖 핍박과 환난을 감수 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그는 강한 결심으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점점 결심이 약해지고, 첫 사랑이 식어버리자 그 열심의 자리에 유혹이 들어가 버렸습니다. 

3) 가룟 유다는 회개하지 안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얼마나 잘못했느냐, 잘했느냐 이것보다도 우리에게 하나님은 회개가 있는 신앙을 기뻐하시고 회개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세 번이나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21절) 

이미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 사람이 자기 자신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아닌 것처럼 “주여, 내니이까?”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두 번째 회개할 기회를 주님이 또 주셨습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23절) 

그래도 그는 회개하지 않고 “랍비여, 내니이까?”하고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말하였도다”(25절)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는 가룟 유다에게 세 번이나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죄가 많은 자가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가 지옥 갑니다. 

히브리서 10:17에 보면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회개한 죄에 대해서는 주님이 기억지도 않으시고(사 43:17), 주의 등 뒤에 던져버리시며(사 38:17),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멀리 옮겨버리시고(시 103:12),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다 씻어주시고(행 22:16), 용서하여주신다(사 55:7)고 말씀했습니다. 


4) 가룟 유다는 마귀에게 철저히 이용당했습니다. 

결국 가룟 유다의 말로를 보십시오. 본문 18절을 다시 봅니다.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정말 자살을 해도 이렇게 자살합니까? 마귀는 요한복음 10: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는 속이는 영입니다. 마귀는 이 땅에 우리를 속여서 우리의 영혼을 도적질해갑니다. 가룟 유다는 마귀에게 속아서 마귀에게 영혼을 도적질 당하니 자기의 스승도 몰라보고 자기 스승인 예수님을 돈 몇 푼에 팔아먹은 것입니다. 마귀는 가룟 유다에게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를 죽입니다. 유다야 너 죽어라 너 죽어라 스승인 예수를 팔아먹었으니 너는 살아보았자 예수께 용서받을 수 없다. 죽어라 죽어라. 

이렇게 마귀가 사주하자 가룟 유다는 극단적인 방법인 자살을 선택한 것입니다. 자살은 절대로 안됩니다. 자살은 내가 나를 죽이는 것이지만 마귀가 나에게 나를 죽이라고 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마귀는 가룟 유다를 멸망시켰습니다.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서 까지 멸망시킵니다. 지옥으로 끌고 간 것입니다. 여러분들 명심하십시오. 돈 때문에 마귀에게 속지 마십시오. 마귀는 실컷 이용해먹고 버립니다. 마귀에게까지 버림받으면 이 땅에서도 끝이요 죽어서도 끝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특히 돈 때문에 예수님 팔아먹지 말고 끝까지 예수 잘 믿고 이 땅에서도 큰 은혜와 축복을 받고 살다가 주님 부르실 때 주님계신 천국에 들어가 주님과 함께 영원한 영생을 누리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 맛디아의 보선(:21-26)

제자들은 가룟 유다로 인하여 공석이 된 한 사도의 자리를 충원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 자리를 대신할 사도를 뽑게 되는데, 베드로는 자격을 다음과 같이 이릅니다.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이처럼 교회의 직분자에게는 일정한 자격이 필요합니다. 초대 교회는 직분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직분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집사들을 택할 때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을 택하였습니다. 목사와 장로의 자격도 엄격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직분자들은 자신이 맡고 있는 직분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각자 자신을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베드로는 유다를 대신할 사도의 자격을 요한이 세례를 베풀기 시작한 때로부터 시작해서,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까지 예수 곁에서 동고동락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가만히 음미해 보면 그러한 사람이라고 하면 매우 신실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말하자면 열두 제자와 똑같이 자기의 삶을 포기하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예수 뒤만 따라다녔다는 말인데, 이는 신실한 신앙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한 때 사람 앞에서는 가리어지고 숨겨지더라도, 언젠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찾아내십니다. 그리고 역사에 전면에 등장시키시고야 맙니다. 진정한 사도의 자격이, 요한의 세례로부터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까지 동고동락한 사람이어야 했듯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매일매일 예수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직책은 유능한 사람,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이 맡는 것이 대체적인 흐름이지만, 하늘의 직책은 이처럼 믿을 만한 사람 충직한 사람이 맡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독교회는 유능한 사람 똑똑한 사람보다는, 이처럼 충실하고 자기희생적인 사람에 의해 부흥하고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능력있는 사람, 똑똑한 사람보다는, 신실한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다섯 달란트를 열 달란트로, 두 달란트로 네 달란트를 만든 종에게 '능력있는 종아' '똑똑한 종아'라고 하지 않으시고,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상기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 직분을 맡을 자의 보다 더 중요한 자격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본받아 살면서, 그의 거룩하심을 이루는 것입니까? 물론 맞는 말씀이기는 하지만, 바른 대답은 아닙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와 교회, 성도의 최대 최고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성도 전도인이 되고, 전 성도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후보로 두 사람이 추천되었습니다.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고, 또 한 사람은 맛디아였습니다. 바사바와 요셉은 히브리식 이름으로 '안식일의 아들'이란 뜻이고, '유스도'는 로마식 이름으로 '정의'라는 뜻이 있습니다. 반면에 '맛디아'는 '여호와의 선물'이란 뜻을 가졌습니다. 

이들 모두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 줄곧 제자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좇으며 신앙의 터를 쌓아 온 믿음이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후보 둘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동고동락하며 신임받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할 줄 꿈에도 몰랐던 일입니다. 사도들은 사람의 판단과 선택보다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기도하기를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 할 자를 보이시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같이 우리는 모든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 그 뜻을 묻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맛디아가 제비 뽑혀 선택되었습니다. 바사바는 별명을 둘씩이나 가지고 또 먼저 이름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모든 면에서 보다 유력한 후보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오히려 보다 이름이 나지 않고 소박한 맛디아를 택하게 하신 것입니다.

 잠 16:33에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우리가 직분을 받는 것이 사람의 판단에서 하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맛디아의 보선에서 보는 것처럼, 반드시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을 생각지 말고, 사명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다락방 기도회를 통하여 합심 기도의 교훈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서 합심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던 120문도 처럼,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교회 부흥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는 성도들 중에 한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유다처럼 안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도라는 영광스러운 반열에 속하였지만, 항상 돈에 대한 탐심을 극복하지 못하다가 은 30에 주님을 팔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나오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유다처럼 안되기 위해서, 돈주머니에 대한 회개를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늘 오늘 바로 살고, 현재에 바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전날 영광된 사도의 반열에 있었던 가룟 유다와 같이, 화려한 과거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오늘입니다. 또한 언제나 자신의 분수를 알아 겸손하기를 힘쓰십시오! 정녕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유다가 없어도 하나님의 일은 계속되듯이, 우리 한 사람 없어도 주님의 교회는 다른 사람이 내가 하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겸손히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직분자는 그 직분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신하며 충성을 다하고 있는지, 각자 여러분의 직분을 조용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이 유다 대신 맛디아를 보선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그렇습니다! 맛디아의 선택은 선택받은 성도들의 삶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나 같은 죄인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여 주신 것,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어,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게 함에 있는 것을 명심하시고, 전도하는 일에 앞장서 충성된 주님의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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