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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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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살전 5:16-18)

신앙생활은 내 뜻과 하나님의 뜻 그리고 마귀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하는 영적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서 내 뜻은 내려놓아야 하고 마귀의 뜻은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령한 생활이고, 그것이 승리하는 생활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눅 22:42에 보면 십자가를 앞두신 주님의 기도가 나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육신의 뜻이며 동시에 마귀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 때 영적인 충돌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때 내 뜻은 내려놓으셨고 마귀의 뜻은 물리 치셨으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받아드리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내 뜻과 하나님의 뜻 그리고 마귀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할 때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지난번에 자동차 안에 설치된 구형 내비게이션과 신형 내비게이션의 충돌을 말씀드렸습니다. 같은 목적지를 찍었지만 구형 내비게이션은 과거에 다니던 길로 인도를 합니다. 그 길은 멀고 기름이 많이 드는 길이지만 그렇게 셋팅이 되어 있기 때문에 구길로 인도를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내비게이션은 새로 뚫린 길로 인도를 합니다. 그 길은 지름길이고 기름도 덜 드는 길입니다. 이 때 우리는 구 내비게이션을 부인하고 새 내비게이션을 선택해야 합니다. 영적인 생활이 이런 것입니다. 자아는 부인하고 마귀는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신령한 생활입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삶에서는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뜻을 우선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알
아져도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내 뜻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뜻을 위하여 하나님을 포기하게 만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오솔길을 걸어가던 중 두 갈래의 길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하나님의 뜻대로 갈 마음으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의 길을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지팡이를 중앙에 놓고 쓰러뜨렸을 때 지팡이가 왼쪽으로 쓰러지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쓰러지면 오른쪽으로 가겠습니다.” 할머니는 지팡이를 쓰러뜨렸습니다. 그러자 지팡이가 오른쪽으로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마음은 왼쪽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할머니는 다시 지팡이를 쓰러뜨렸습니다. 하지만 역시 지팡이는 오른쪽으로 쓰러졌습니다. 할머니는 다시 지팡이를 쓰러뜨렸고 여러 번을 거친 후에 왼쪽으로 지팡이가 쓰러지자 할머니는 “역시 하나님이 왼쪽 길로 인도해 주시는구나.” 하면서 왼쪽 길로 유유히 걸어갔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축복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도, 이 세상의 정욕도 지나갑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기 때문입니다(요일 2:17)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권면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그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1. 항상 기뻐하라(16절) -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첫 번째는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살면 기쁘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50년을 목회를 하셨는데 50년 목회를 돌아보니 단 하루도 교회에 문제나 염려 근심 슬픔이 없던 날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인생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우리가 기쁨을 잃어버렸다면 그것은 환경 때문도 아니고 사람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면 당연히 기쁜 것입니다. 이는 마치 설탕을 먹으면 당연히 단 맛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기쁨이 충만했고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고 성령께서 바울 안에 거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노력으로 기뻐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기뻐할 수 있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어떻게 기뻐합니까? 슬픈 일을 만났는데 어떻게 기뻐합니까? 원수가 나를 괴롭힐 때 어떻게 기뻐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노력으로 항상 기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시 16:8-11을 봅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을 자기 앞에 모시고 살았습니다. 늘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몇 가지 있습니다. 8절을 보니 흔들리지 않습니다. 9절에 보니 마음이 기쁩니다. 영도 즐거워합니다. 육체도 안전합니다. 10절에 보니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살면 멸망하지 않습니다. 11절에 보니 기쁨이 충만하고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약간 억지 같지만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혈압으로 비유를 해 보겠습니다. 고혈압 환자가 정상적인 혈압을 유지하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식생활 개선과 운동을 통해서 혈압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으로 도저히 안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정상 혈압을 유지하려면 혈압약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혈압약을 먹어 혈압을 낮추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언제나 항상 정상혈압을 유지하려면 날마다 혈압약을 먹어야 합니다. 늘 혈압약의 효과가 자기 몸에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정상혈압을 기쁨이라고 가정합시다. 항상 정상혈압을 유지하듯이 항상 기뻐하려면 내 힘으로 안 됩니다. 주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날마다 기쁨 속에서 살려면 날마다 혈압약을 먹듯이 날마다 주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때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충만한데 또 어떤 때는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 이유는 늘 하나님 앞에서 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데 어떤 때는 하나님 없이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할 때는 우리 편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항상 하나님을 인정합시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앞에 계시고, 내 우편에 계시고, 내 속에 계시다는 것을 의식하며 인정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주님을 모시고 주님을 인정하며 주님 앞에서 사십시오.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2. 쉬지 말고 기도하라(17절) -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두 번째는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솔직히 말해봅시다. 가능합니까? 불가능합니까?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무엇에 집중하면 그 순간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나요? 저는 그럴 때가 많던데요. 저만 그런가요? 아마 모든 사람이 그럴 겁니다.
   
그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저는 2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늘 하나님을 의식하도록 힘쓰라는 의미이고 또 하나는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의미입니다.
   
형광등이 늘 빛을 발하려면 쉬지 말고 전기가 공급되어야 합니다. 전기가 끊어지는 순간 형광등의 빛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형광등에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빛으로 살고 생명으로 살려면 전기와 같은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단절되는 순간 우리는 빛을 잃고 생명을 잃게 되어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영이 함께할 때마다 놀라운 힘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 힘으로 큰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여인의 유혹을 받아서 자신의 비밀을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잘리고 나니 하나님이 그를 떠나셨습니다. 삿 16장에 보면 하나님이 그를 떠나시니 그가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삼손을 떠나시는 순간 삼손에게 있던 힘도 능력도 다 사라지고만 것입니다.
   
삼손이 가장 신경을 썼던 일은 여인을 기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어리석음입니다. 삼손이 정말로 가장 힘써야 했던 일은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시지 못하게 하는 일이었어야 했습니다.
   
다윗은 이 비밀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범죄했을 때 그가 올렸던 기도는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1)였습니다.
   
자동차가 기름 없이 갈 수 있을까요 갈 수 없을까요? 갈수 있습니다. 기어를 중립으로 놓고 밀면 자동차는 갑니다. 하지만 그렇게 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자동차가 달리려면 기름이 채워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기름 없는 자동차를 미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생활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돼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은 기름 충만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기름을 채우듯이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을 채우는 방법이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가 끊어지면 신앙생활이 기름 떨어진 자동차를 모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를 쉬지 않고 하면 신앙생활은 기름 충만한 자동차를 모는 것과 같습니다.
   
흔히들 기도를 영적 호흡이라고 합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죽음입니다. 사람은 밥을 먹지 않고 40일을 살 수 있습니다. 제가 증인입니다. 두 번이나 40일 동안 밥을 먹지 않았지만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습니다. 또 사람은 7일을 물을 먹지 않고도 살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호흡은 다릅니다. 40일이나 7일 동안이 아니라 10분만 숨을 쉬지 않아도 죽습니다. 아니 5분만 숨을 쉬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밥보다 물보다 공기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는 영적 호흡입니다. 기도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쉬지 말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부분에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하시든지 스스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아버지와 연결되셨고 아버지의 뜻을 아셨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쉬지 않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셨습니다. 

 
3. 범사에 감사하라(18절) - 언제나 좋으신 하나님을 믿으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세 번째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언제나 좋으신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좋은 일이 일어날 때에는 쉽게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을 만나거나 억울한 일을 만나거나 슬픈 일을 만났을 때 감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그 일을 허락하신 분이 좋으신 아버지라는 것을 믿을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일이 저주라는 포장지에 포장되어 있고, 고난이라는 포장지에 포장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포장지를 뜯어내면 그 안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이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잘 믿는데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왜 고난을 당하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고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롬 8:28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좋으신 분으로 선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많습니다. 여기서는 욥기를 통해서 고난의 이유를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고난의 이유를 살펴보는 것은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첫째, 우리의 교만을 깨기 위함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었지만 그 속에는 교만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교만을 제거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고난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우리 속에 있는 것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욥은 고난 중에 숨어있던 교만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자기의 의를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욥 32:2에 보면 엘리후가 욥에게 화를 냅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욥은 자기 의로 충만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했던 교만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욥이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욥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십니다. 이 때 욥의 대답입니다.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욥 40:4) 욥이 친구들과 대화를 하는 것을 보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 욥은 자신이 이치에 맞는 말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교만입니다. 

그런데 욥이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고 난 후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3) 이제 욥이 겸손하게 하나님께 대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교만을 깨고 그가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셔서 복을 주시려고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고난 속에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를 귀하게 만들기 위한 연단입니다. 욥은 고난의 과정 속에서 기가 막힌 진리를 말합니다. 욥 23:10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금광석에서 금을 캐내기 위해서는 금광석이 부서져야 합니다. 그리고 불을 통과해야 합니다. 불을 통과하면서 금속에 있는 찌꺼기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계속된 단련을 통과하고 나면 순금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욥을 순금처럼 귀하게 만드시기 위하여 단련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귀한 존재로 만들어주시기 위해서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명심하고 고난 속에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에게 하나님을 깊이 경험시키시기 위함입니다. 욥은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욥 42:5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고난을 통해서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깊이 경험한 것입니다.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을 찾습니다. 고난이 있을 때 기도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더욱 잘 믿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고난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넷째, 우리를 사랑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욥이 고난을 당하는 중에 친구들이 욥을 위로하기 위하여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욥의 사정을 보고는 기가 막혀서 말을 못했습니다. 그러더니 한 사람씩 입을 열어 말하는데 그들의 말은 욥을 위로하는 말이 아니라 욥의 속을 뒤집어놓는 말이었습니다.
   
친구들의 말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람이 고난당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분명히 네가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밖에 살지 못했느냐?” 이런 식입니다. 친구들의 말을 들은 욥은 그들의 말을 받아드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반발심만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격입니다.
   
여러분이 욥의 입장이라면 친구들이 얼마나 밉겠습니까? 욥을 위로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욥에게 지적하고 정죄하니 욥은 그들이 미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그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친구들의 잘못을 지적해 주시면서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게 합니다. 그런데 그 제사를 드릴 때 욥의 기도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욥 42:10을 보니 욥은 그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를 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하니 욥의 곤경을 돌이켜 주십니다. 그리고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많은 소유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변화시켜주십니다. 우리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원수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섯째, 우리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과정입니다. 욥은 고난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받은 복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영적인 복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교만하던 그가 겸손해 졌습니다. 영적인 복입니다. 또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영적인 복입니다.
   
욥이 받은 또 다른 복은 물질적인 복입니다. 고난 후에 욥은 고난 전보다 갑절의 소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욥 42:10입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것을 믿고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어느 목사님은 감사기도가 일등기도라고 말합니다. 감사합니다.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일등 기도입니다. 불평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 목사님이 개척 초기에 새벽기도에 오셔서 오래 기도하는 분이 계셨답니다. 그 집사님은 몸을 흔들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기도 안 하고 늘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합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등을 탁 치면서 “그게 무슨 기도요?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게 무슨 기도요” 그랬더니 그 집사님이 “그것도 감사합니다. 그것도 감사합니다.” 하더랍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요즘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분 참 현명한 사람인 것 같답니다. 왜요. 목사님이 결국 살아보니 그저 그저 감사한 것밖에 없답니다. 좋은 것은 좋아서 감사하고 안 좋은 것은 좋게 될 것이니 감사하고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니 그저 그저 감사하답니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이 아주 초보 기도이지만 제일 최고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가 안 나오는 사람은 감사만 많이 하십시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첫째,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라는 말입니다. 늘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둘째,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말은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전기가 차단된 전등과 같습니다. 언제나 빛으로 생명으로 살려면 언제나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셋째,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말은 언제나 하나님을 좋으신 분으로 믿으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문제나 고난도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문제나 고난은 결국 우리를 세우고 우리를 복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범사에 감사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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