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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이한규의 사랑칼럼) 행복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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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7.2 (제 37호)    행복의 출발점

  어느 날, 한 유대 선생과 제자가 함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제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진리란 길가의 조약돌처럼 널려 있다고 하셨는데 사람들은 왜 진리를 터득하지 못할까요?” 선생이 대답했습니다. “진리는 조약돌처럼 많지만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지 않기 때문에 그 돌을 줍지 못하지.”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진리와 위안’의 백년손님은 사라지고, ‘왜곡된 자아의식’의 불청객만 찾아옵니다. 철학자들은 그 ‘왜곡된 자아’가 불행의 출발점이라고 말합니다. 사실상 많은 사람들의 불행은 그들이 나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지나치게 강해 타인의 신음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소크라테스는 말했습니다. “나는 모른다는 것만을 안다. 너는 너 자신을 알라.” 그의 말은 참 자아의 발견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우는 말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결국 “너의 왜소함을 인정하라!”는 말입니다. 짧은 인생길에서 높은 마음으로 ‘죽음을 향해 수동적으로 가는 사람’에게는 진리가 외면하지만 낮은 마음으로 ‘죽음을 향해 능동적으로 가는 사람’에게는 진리가 따라옵니다.

  우주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원리입니다. ‘남을 죽이는 삶’에는 불행이 따르고 ‘나를 죽이는 삶’에는 행복이 따릅니다. 나를 높이는 만큼 남으로부터 높임을 못 받고, 남을 높이는 만큼 남으로부터 높임을 받습니다. 삶에 능력과 행복이 없는 이유는 ‘나의 높음’에는 관심이 많지만 ‘나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똑똑한 사람이 대체로 불행한 이유는 행복을 찾기보다는 행복을 요구하는데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내가 죽어져야 주어집니다. 목이 뻣뻣하면 유익이 적고 목이 부드러우면 손해가 적습니다. 자신의 자랑이 선포되는 곳에서는 행복이 멀어질 것이고, 자신의 죽음이 선포되는 곳에서는 행복이 찾아올 것입니다.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하려는 욕망이 클수록 마음에 불안이 깃들고,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하려는 욕망이 작을수록 마음에 평안이 깃들 것입니다. 남의 성공을 깎으면서 자기의 유능함을 증명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깎이고, 남의 성공을 높여주면서 자기의 무능함을 반성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마음이 높아 앞선 자를 외면하는 사람은 결코 앞서지 못하고, 마음이 낮아 앞선 자를 배우려는 사람은 반드시 앞서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끔 고난이 필요한 이유는 그때 자신의 왜소함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침묵하는 광대한 우주를 바라보며 인식을 박탈당한 채 살다가 때로는 말 한 마디에 무너지는 왜소한 인생! 그 사실만을 인정한다면 절망이지만 그 사실로 인해 우리가 타자(他者) 앞에서 겸손해질 수 있다면 그 지점이 바로 행복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 이한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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