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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이한규의 사랑칼럼) 즐거운 날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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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8.17 (제 52호)   즐거운 날은 온다

  슬픔의 시인 베들레에느는 <인생은 가혹하다>라는 시의 첫 부분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인생은 가혹하다/ 너무 쾌활한 사나이에게는/ 피는 지쳐 있는데/ 잔에는 술이 없다.” 과연 이 시인이 말처럼 인생은 가혹한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해 저는 희망의 시인 푸쉬킨의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로 대답하고 싶습니다.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말라 탓하지 말라
  마음 아픈 날엔 가만히 누워 견디라/ 즐거운 날이 찾아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산다/ 지나치는 슬픔엔 끝장이 있게 마련
  모든 것은 순식간에 날아간다/ 그러면 내일은 기쁨이 돌아오느니

  인생이란 달콤한 사탕처럼 기쁜 일만 지속되지 않습니다. 실패와 아픔이 인생의 복병처럼 곳곳에서 달려듭니다. 그러나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인격이 단단해지고 인생의 진리를 깨우친다면 고난 때문에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난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포용하여 진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삶이 진정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요?

  어느 날, 세계적 바이올린 연주자인 ‘오을 볼’씨의 파리 연주회 도중에 바이올린 A선 하나가 끊어졌습니다.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연주를 계속했습니다. 결국 세 가닥 줄로 연주를 무사히 끝냈는데, 그 일로 그는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그때 어떤 분이 말했습니다. “A선이 끊긴 채 세 가닥 줄로 완성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누구에게나 삶에 단절의 아픔은 찾아오지만 단절의 과거로 희망의 미래까지 잃어서는 안 됩니다. “추위에 떤 사람일수록 태양의 따뜻함을 느끼고 인생의 고뇌를 겪은 사람일수록 인생의 존귀함을 알게 된다”고 시인 휘트먼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절망적 사건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더 의미 있는 인생을 위한 전령자로 주어진 사건입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이 오면 그 고난을 분석하고, 고난 앞에서 밤잠을 못 이루는 철학자가 됩니다. 낙엽이 왜 생겨야 하는지를 분석하지 못하고 겨울이 왜 찾아와야 하는지를 분석하지 못하면서 인생 최대의 신비인 고난을 어떻게 분석하겠습니까?

  고난이 찾아오면 고난을 분석하려는 허영심보다 차라리 정직한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리고 눈물의 렌즈를 통해 인생의 진실을 관찰한 후 눈물을 닦고 희망의 세계로 나아가면 됩니다. 어제의 실패를 ‘전환기의 교사’로 삼아 내일을 향한 출발점으로 승화시킬 때 즐거운 날은 곧 찾아올 것입니다.

ⓒ 이한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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