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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이한규의 사랑칼럼) 사랑은 잘 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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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8.24 (제 54호)   사랑은 잘 듣는 것이다

  딸만 6명인 어느 행복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친구로부터 예쁜 인형을 하나 선물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이는 6명이고 인형은 하나라서 누구에게 주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엄마는 고민 끝에 말했습니다. “오늘 제일 말을 잘 듣는 사람에게 이 인형을 주겠다.” 그 말을 듣자 여섯 딸이 하나같이 소리쳤습니다. “에이! 그러면 아빠 거잖아!”

  아이들 보기에 아빠가 엄마 말을 제일 잘 듣는 사람으로 보인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그렇게 보일 정도이면 행복의 이유는 충분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은 ‘들어주기를 힘쓰는 삶’입니다. 반면에 세상에서 가장 추한 삶은 ‘들어달라고 떼쓰는 삶’입니다. ‘알아주는 삶’에는 행복이 깃들고, ‘알아달라는 삶’에는 불행이 깃듭니다. “고생만 시켜서 미안해요!” 하고 고생을 알아주는 관계는 행복할 수밖에 없고 “왜 내 고생을 몰라줘요!” 하고 고생을 알아달라는 관계는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생각은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줘!”라는 생각이고,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생각은 “내가 좀더 들어주자!”는 생각입니다. ‘들어주는 삶’에 ‘붙들어주는 삶’도 있게 되고 ‘만들어주는 삶’도 있게 됩니다. 잘 들어줄 때 사랑하는 대상은 견고한 인생으로 만들어져갑니다.

  입은 하나이고 귀는 두 개인 것처럼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두 배로 하고, 입보다 귀가 높은 곳에 위치한 것처럼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높이고 존중할 때 행복은 결코 비켜가지 않을 것입니다. 행복은 귀가 하나이고 입이 두 개인 괴상망측한 외계인에게 찾아가지 않습니다.

  소리는 정신적 에너지입니다. 우리의 차는 휘발유로 움직이고, 우리의 몸은 먹는 음식으로 움직이고, 우리의 정신은 듣는 소리로 움직입니다. 많이 말하면 정신적 자산은 소모되고, 많이 들으면 정신적 자산은 비축됩니다. 잘 말하는 삶보다 잘 듣는 삶이 정신의 키를 크게 만듭니다.

  정신의 키가 작은 사람은 “No!”라는 말을 많이 할 구실을 찾습니다. 반면에 정신의 키가 큰 사람은 “Yes!”라는 말을 많이 할 구실을 찾습니다. “Yes!”라는 말은 많이 받는 사람보다 많이 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잘 들어주려고 할 때 이해의 폭도 커지고, 친구의 폭도 커지고, 인생의 폭도 커질 것입니다. 잘 듣고 이해하고 실천하는 마음은 행복한 마음이지만 잘 듣지 않고 오해하고 실망하는 마음은 불행한 마음입니다. 사랑은 잘 듣는 것입니다. (오늘도 평안하세요!)

ⓒ 이한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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