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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기도문 강해 ⑧-하나님의 용서, 우리의 용서 (2) (엡 4: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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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강해 ⑧-하나님의 용서, 우리의 용서 (2) (엡 4:32-5:2)


1. 원수는 나의 스승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과 함께 중요한 것은 용서입니다. 모든 인간관계의 문제의 밑바닥에는 용서의 문제가 깔려 있습니다. 
세 명 이상 모인 곳에는 내가 대하기 까다로운 사람이 한 사람 있습니다. 공자는 "세 사람이 같이 길을 가면 반드시 그 가운데 나의 스승 될 만한 이가 있다. 그 선한 점을 가려내어 거기에 따르고, 그 선하지 못한 점을 가려내어 나의 허물을 고치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그 스승이 다름 아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내가 대하기 까다로운 사람일 수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은 나를 하나님을 닮은 자녀로 다듬어주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군대에서 빨간 모자 쓴 조교와 같은 사람입니다. 나를 단련하여 정금같이 나오도록 만드는 조교를 한 명씩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그 사람만 없다면, 세상에 그렇게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없으면, 느슨해집니다. 긴장하지 않으니, 실수합니다. 실수하고도 실수인줄도 모릅니다. 발전이 없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 때문에 나는 성숙해집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 나에게 상처주는 그 사람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주 만나는 사람, 가까운 사람이 나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줍니다. 부부간에 상처가 제일 많습니다. 그 다음이 부모, 자식간입니다. 그리고, 여자들에게는 시댁식구와 동서지간입니다. 오죽 했으면, 예수님께서도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하셨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원수지간에 서로 용서해줌으로 화해하는 은혜가 가정마다 있기를 축복합니다. 

2. 용서는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32절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하라.” 여기에 “용서하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어로 “카리조마이”(은혜 베풀다)입니다. 용서는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임금이 일만달란트 빚진 종의 그 엄청난 빚을 다 탕감해주었습니다. 임금이 종에게 은혜 베푼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임금은 하나님입니다. 일만달란트 탕감받은 종은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일만달란트 탕감받은 자처럼,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었습니다. 모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우리가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용서하셨습니다. 

일만달란트 탕감받은 종은 일만달란트에 비하면 아주 조금 밖에 되지 않은 백데나리온 빚진 친구를 탕감해주지 않았습니다. 임금이 분노하여 일만달란트 탕감해준 그 종을 다시 감옥에 넣어버렸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용서하라”고 요청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런 비유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용서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정말 어렵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상처입힌 사람에게는 보복하고자 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엡 5: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용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마음을 본받는 마땅한 삶이 용서입니다.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에 저항하다 순교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지긋지긋하여 만나기도 싫은 원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원수들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그는 결국 자기의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악당들과 조롱하는 자들에게 둘러싸여 완전히 홀로 있었습니다. 그가 온 목적은 하나님의 원수들에게 평화를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도 외딴 은둔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원수들 가운데서 살아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사명과 일이 있는 것입니다.”
본 회퍼 목사님은 원수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를, 원수들에게 평화를 주라고,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하고 도망간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에게 사형언도하고, 채찍질하고, 죽이는데 앞장 선 사람들을 용서해달라고 간구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은 미친 사랑입니다. 인간으로서는 감히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우리도 하라고 요구하십니다. 
로마서 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로마서 12: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로마서 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원수를 축복하라, 원수에게 잘 해주라, 이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입니다. 
악을 종식시키는 길은 원수 갚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원수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원수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3. 용서하는 얼굴은 하나님의 얼굴이다

창세기 33장에는 에서가 야곱을 만나 동생 야곱을 용서해주고 서로 끌어안고 울면서 화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에서는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밤을 새워 기도합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곳 이름을 브니엘 즉 하나님의 얼굴이라 지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400명의 군사와 함께 자기를 죽이러 오고 있는 형 에서의 얼굴을 본 야곱은 그 형의 얼굴에서 살기등등한 원수의 얼굴이 아니라, 반갑게 환영해주는 얼굴을 보았습니다. 뒤 따르는 400명의 군사는 전사의 얼굴이 아니라, 환영 인파의 얼굴로 보였습니다. 에서는 절뚝거리며 일곱 번 절하며 다가오는 동생 야곱에게 달려갔습니다. 이 장면을 성경은 이렇게 생생하게 기록했습니다. 

창세기 33: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에서는 달려왔고, 두 팔을 벌려 맞이했고, 끌어안았고, 입을 맞추었고, 울었습니다. 에서가 주도적으로, 적극적으로, 용서해주고, 화해합니다. 야곱이 한 일이라고는 우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이 모습은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탕자의 비유에도 등장합니다. 탕자가 가산을 탕진하고 집에 다시 돌아왔을 때, 탕자를 무조건 용서해주고 반갑게 맞이해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동생을 용서하는 에서의 모습은 곧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습니다”(창33:10)
우리는 부담스런 사람의 얼굴을 마주 대하려 하지 않습니다. 밉거나 싫은 사람은 만나기조차 싫습니다. 그런데, 형 에서를 본 야곱의 마음이 이렇게 변하다니...

실제로, 에서의 마음이 동생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여 용서해주는 마음으로 바뀌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야곱도 전날 밤, 얍복강가에서 철야기도하며 하나님을 만났기에, 하나님의 얼굴을 본 야곱, 그의 마음은 하나님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 심지어 원수까지도 하나님의 얼굴로 보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은 원수의 얼굴도 하나님의 얼굴로 보입니다. 용서하는 얼굴은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용서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4. 용서, 이렇게 하라

그럼, 어떻게 용서할까요? 간단한 말다툼과 같은 것들은 즉시 용서해주면 됩니다. 상처가 깊지 않으니까... 그러나,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상처는 가볍지 않습니다. 깊은 상처는 쉽게 용서가 안 됩니다. 용서의 전문가라는 호칭을 받는 미국의 풀러신학대학교 루이스 스미디스 교수는 “용서는 일종의 여행과 같아서 상처가 깊을수록 그 여행도 길어진다”고 합니다. 도덕적이거나 율법적인 의무감에서 용서를 너무 빨리, 너무 쉽게 하면 오히려 상처가 덧 날 수 있습니다. 

심하게 상처 입은 사람들은 용서에 시간이 필요합니다. 영화 <밀양>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주인공 신애는 너무 빨리 용서하려고 한 것이 하나의 문제였습니다. 큰 상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너무 오래 지체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지나치게 빨리 용서하는 것이 위험하다면, 지나치게 오래 지체하는 것은 훨씬 더 위험합니다. 용서하기까지 너무 오래 기다린다면, 분노가 내 영혼에 자리잡게 됩니다. 

물 한 잔에 들어간 잉크 한 방울이 컵의 모든 물을 더럽히듯이, 용서가 너무 오래 지체되면, 우리 영혼은 분노로 물들 것입니다.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해주지 않은 사람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지나치게 빨리 용서하지도 말되, 지나치게 오래 지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용서의 타이밍은 상처입은 사람만 압니다. 때가 오면, 용서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스미디스 교수는 가해자와는 관계없이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렇게 하라고 10가지 조언을 줍니다. 
(루이스 스미디스, 용서의 미학, p.200-203)
① 천천히 하라.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 때, 한 두 주간 가능성을 검토할 시간을 가지라. 천천히 해도 늦지 않습니다.

② 위험을 가늠하라.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내가 당신을 용서합니다” 라고 하는데, 상대방이 도리어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라고 따지면, 더욱 힘들어지고 상처는 더욱 깊어집니다. 그 위험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용서하십시오. 
③ 신호를 기다리라. 
가해자의 마음이 열릴 때, 용서는 효과적입니다. 가해자의 마음이 열렸다는 증거로 가해자는 어떤 형태로든 피해자에게 신호를 보냅니다. 자기가 한 일이 미안하다고 솔직하게 말한다든지, 생일카드를 보낸다든지, 전화를 한다든지, 신호를 보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④ 에둘러 말하라. 
용서의 말을 하기 전, 자녀나 건강 걱정, 가해자의 좋은 일에 대해 축하의 말을 한다든지... 다른 말을 먼저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용서는 나중에 끝날 때쯤 갑자기 생각난 듯이 말하십시오. 
⑤ 마지막에 시작하라.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게 용서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⑥ 거룩한 동기를 주장하지 마라. 
용서하는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려고 용서하는 듯한 인상을 주면 안됩니다. 
⑦ 즉흥적으로 하라. 
재즈를 연주하듯이 즉흥적으로 말하십시오. 상대방이 하는 말에 대해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말을 하면서 용서하면 됩니다. 
⑧ 짧게 말하라.
“당신을 용서합니다.” 한 번 말하고 더 이상 언급하지 마십시오. 

⑨ 가볍게 하라. 
용서의 대화는 무겁게 하지 말라. 질질 짜면서 말하지 마십시오. 
⑩ 상대방에게 시간을 주라. 
가해자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빨리 대화의 주제를 바꾸십시오. 가해자가 저지른 그 일을 생각해 볼 시간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상 10가지 용서의 전략은 피해자가 가해자와 대화를 하려고 할 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면, 아무 전략이 필요없습니다. 그냥 용서해주면 됩니다. “나는 이미 당신을 용서했습니다.” 혹은 “나는 이제 당신을 용서합니다.” 라고 말하면 됩니다. 
용서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됩니다. 피해자 혼자서 그 사람을 용서한다고 선언하면 됩니다. 그러나, 말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습니다. 가해자가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화해의 단계까지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더 큰 기쁨이 생깁니다. 

엡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용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희생제물입니다. 내가 희생함으로, 내가 손해 봄으로, 용서해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러면, 나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들어옵니다. 용서의 기쁨이 생깁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 는 말이 있습니다. 
용서, 이것은 내가 사는 길입니다. 
용서,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누리는 길입니다. 
용서, 이것은 주님의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함께 찬양을 들으면서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주님 마음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주님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복음성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복음성가곡을 띄워주세요. 인터넷에 검색하면 곡이 나옵니다.)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게 사랑을 가르치소서. 당신의 마음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주의 성령 내게 채우사 주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 당신 마음 주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에베소서 4:32-5:2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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