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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받으라 (요 20: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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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으라 (요 20:19-23)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19)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1)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2)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3)
<요한복음 20장 19~23절>

할렐루야! 
주안에서 평안하십니까?

지난 1999년에 국내 어느 조사 기관에서
‘지난 천 년 동안 최고의 발명품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가장 많은 사람이 ‘전화’라고 대답했습니다.
오늘이(19일) 1957년에 제정된‘발명의 날’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집에 전화를 두고 사는 가정이 몇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국내 이동전화 가입자 수가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은 5300만 명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휴대전화가 보편화 되다보니
지하철, 버스, 식당 … 심지어는 조용하고 엄숙해야 할 
도서관, 극장, 미술관, 장례식장 등 곳곳에서 
휴대전화 벨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려 퍼집니다.
지난 달, 미국 미시간 주 지방 법원 한 법정에서는
재판 중 판사의 휴대전화 벨이 울리자
판사가 스스로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고 합니다.
신성한 법정에서 휴대폰 전원을 끄지 않아
재판에 지장을 주었다는 게 판사가 자신을 처벌한 이유였습니다.
<2013년 4월 17일, 조선일보, A34면, 참조.>

교회에서도 가끔 예배 중에 벨소리를 듣게 됩니다.
기둥교회는 예배 중에 벨소리가 들리면 
벌금 10만원입니다. 
거둬서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하는데 
전화벨이 울리면 벌금을 잘 내시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몇 명은 내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늘 마음이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예배드리는 이 시간에 필요한 것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성령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예배 …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예배 …
성령의 감동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예배 … 
치료되고 회복되는 예배 능력이 나타나는 예배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 강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오순절(Pentecost, 행2:1) 날
한 곳에 모여 있던 1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하늘에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형상으로 임하는 (행 2:2~3)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했고 방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행 2:4)
그때 성령의 권능을 받은 제자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부활주일 후 50일이 되는‘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2천 년 전 다락방에 임하셨던(행 1:13) 성령께서는
지금도 변함없이 예수 믿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고전12:3, 롬8:9, 요일4:15, 요14:16~17)

‘성령 강림 주일’의 기원은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성령의 임재 사건이지만 …
성령은 구약 성경에도 ‘하나님의 영’이라는 표현으로 여러 차례 나옵니다.
- 꿈의 사람 요셉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었고 (창 41:38)
- 이스라엘이 모압 평지에 진 치고 있을 때도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임했습니다. (민 24:2)
- 이스라엘의 왕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도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삼상 10:10)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던 순간에도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렸다”고 했습니다. (마 3:16)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오늘 본문 말씀에도 성령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그 날은
안식일 후 첫 날이었습니다.
오늘로 치면 안식 후 첫날은 주일입니다.
그날 아침 일찍, 제자들 중 베드로와 또 한 제자는
예수님의 시신을 두었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서
빈 무덤과 바닥에 놓인 세마포를 직접 보았습니다. (요 20:1~8)
막달라 마리아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고
그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리기까지 했습니다. (요 20:11~18)

그러나 저녁이 될 때까지도 제자들은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 …” (요 20:19) 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 그 사실을 알았는데 …
제자들은 여전히 사람들이 무섭고 두려워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지만
제자들이 느끼기에 세상은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 예수님을 못 박았던 유대 지도자들이 그대로 있었고
- 로마 통치자와 군인들도 그대로였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문 닫고 무서워 벌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 
예수님이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 …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1:19, 21) 

“두려워하지 말아라”, “괜찮아. 이제 마음 놓아”
평강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첫 번째 메시지였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죽은 후 제자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두려웠습니다.
믿고 따르던 선생, 혹시 왕이 되면 
한자리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그 예수는 죽임을 당했고 
이젠, 유대 지도자들과 로마인들의 손에
자신들의 운명이 달려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십자가에서 분명히 죽었던 예수님, 
무덤에 묻혔던 예수님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부활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 
실제 살아난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기 전에도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신 후 일어날 일들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 14:29)

실제로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을 때 …
그 일을 믿게 하기 위해
예수님은 부활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제자들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께서 
“평안을 … 주노라”고 말씀하셨을 그때는
제자들이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평안을 누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 병을 고치고 죄 사함을 선포하던 예수님을 보며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었습니다.
- 풍랑을 잠재우고, 죽은 자를 살리는 예수님을 보며
그들은 메시아가 오셨음을 확신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기만 한다면 하늘에서 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큰 소리 내며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평안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 평안의 선포가 믿어지지 않을 그 때를 위해서 …
- 도저히 평안할 수 없는 그 시간을 대비해서 …
- 예수님이 함께 하시지 못할 그 날을 위해서 …
“평안을 주노니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미리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본문 말씀이 나오는 그 상황이
정말 제자들에게 평안이 필요한 때였습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선포하신 평안은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도 하나님게서 허락해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게 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수 1:9)

하나님은 한 민족을 이끄는 사명을 맡기시고
여호수아에게‘평안’을 선언해 주셨습니다.
강하라고 … 담대하라고 … 
두려워하지 말라고 … 놀라지 말라고 …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평안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평안한 사람을 쓰십니다.
믿음으로 두려움을 없애고 담대한 사람을 크게 쓰십니다.
환경이 불안할지라도 … 상황이 불리할지라도 …
쓰임 받을 일꾼은 마음의 평정을 가져야 합니다.

이사야 26장 3절 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사 26:3)

언제, 어디에 있든지 심지가 견고한 신앙 …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신뢰하는 신앙으로
평강의 복을 누리는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받으라

평강을 선언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 20:21)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마 28:19)
- 병든 자들을 고치기 위함이었습니다. (눅 9:1)
-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요 11:25)
-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믿어 구원 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요 3:17)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은 제자들의 지식이나 경험이나 …
그들의 말과 행동만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함께하셔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고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요 20:22)
창세기 2장 7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했습니다.

흙덩어리 인간에게 생명의 숨을 코에 불어넣자
하나님을 닮은 … 하나님의 자녀 …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통해 생명을 주셨듯
예수님도 생기를 통해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 성령은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능력을 행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제자들은 
“기사와 표적을 많이 나타냈다”고 했습니다. (행 2:43)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도 성령께서 함께하시면 가능합니다.
- 성령은 연약함을 돕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해도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간구한다”고 했습니다. (롬 8:26)

- 성령은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요 14:26)
- 성령은 거룩하게 하십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도적질 하는 자, 탐욕스러운 자,
술 취하는 자, 남의 것을 속여 빼앗는 자들이 많았으나
그들 모두 성령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고전 6:11)

우리도 성령의 생기를 받아,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
구별된/변화된 주의 자녀로 살아가야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차는 정말 좋습니다.
러시아에서도 한국차 인기가 최고랍니다.
러시아 쌍뜨페쩨르부르크에 다녀왔습니다.
그쪽에 한국차 조립공장이 있다고 합니다.
작년에 25만대의 차를 만들었는데 미처 만들지 못해 
팔지 못한 차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한국차의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차가 좋아도 기름이 들어있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연료를 넣지 않고,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비싼 차라 할지라도 고철덩어리일 뿐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연료를 가득 주입하고
성령의 불에 인도하심 따라, 
성령에 따라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함으로 거룩함의 시동을 걸어
소망의 천국을 향해 가야 합니다.

우리 속에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대부분의 교회는 성령의 역사를 
위원회로 대치시켰습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전에 회의를 먼저 합니다.
회의하면서 싸웁니다.
저도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생각해봤습니다.
‘나는 과연 목회하면서 무슨 일이 있을 때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는가? 기도하는 일에 집중했는가?
아니면 회의에 신경을 썼는가? 
안건을 냈는데 어떤 장로님이 반대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먼저 하며 성령의 역사를 방해한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주의 인도하심, 성령의 역사하심을 … 
지식과 경험과 자료에 근거하여 막아버립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보다 회의에서 결정된 것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교회가 되었습니다.

10년 전 쯤의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났는데 이런 저런 얘기가 들립니다.
우리교회 주보는 수요일에 거의 완성하여 
목요일이면 인쇄소에 넘깁니다. 
그런데 주보를 인쇄소에 넘긴 후에 설교 본문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다른 본문으로 설교를 다시 준비하고 
그에 따라 찬송가도 다시 선택했습니다.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는데 찬송가도 바뀌고, 
성경본문도 바뀌었으니 순서 맡았던 분들이 당황스러웠나 봅니다. 
그러더니 목사가 준비성이 부족해서 
이랬다 저랬다 한다는 말이 제 귀에 들렸습니다. 

여러분, 목사가 주보 인도하심 따라 예배 드려야 합니까?
주의 인도하심 따라 예배 드려야 합니까?
오늘 주보는 제가 2주 전에 준비해 놓은 것입니다.
제 마음이 바뀌지 않아서 그대로 한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대신 인위적인 프로그램을 우선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보다는 다수결이냐, 민주적이냐를 따집니다.
교회의 모든 제도들이 제적회원 과반수 이상이 참석해야 의결되고
회원 2/3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성령의 역사보다 회의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일할 수 없는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처럼 판단하는 목사, 
자기가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큰소리치는 장로 … 
자기가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칼질하는 권사, 집사들이
한국교회를 서글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은 어떤 마음을 가지셨습니까?

독일 북부에 있는 항구도시 뤼벡(Lübeck)에 있는
오래된 한 교회의 벽에는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답니다.

“너희는 나를 주라 부르면서 따르지 않고
너희는 나를 빛이라 부르면서 우러러보지 않고
너희는 나를 길이라 부르면서 따라 걷지 않고
너희는 나를 삶이라 부르면서 의지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존귀하다 하면서 섬기지 않고
너희는 나를 강하다 하면서 존경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의롭다 하면서 두려워하지 않으니
그런즉 너희를 꾸짖을 때에 나를 탓하지 말라.” 
<2010년 12월 16일 국민일보 32면 ‘겨자씨’ 참조.> 

지금 우리는 / 지금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 있는지요?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그 자체가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시다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했고
로마서 8장 9절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했습니다.

평안 속에서 성령의 임재를 느끼라

물론,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시는지 …
예수님께서 내 마음속에 계신지 …
성령께서 내 삶을 인도하고 계신지 …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 느끼지 못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삶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
우리들의 삶 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 고 하시기 전에,
먼저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야 우리 마음이 평안해 지기도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예수 믿고 구원받았음으로 인해서 
먼저 마음의 평안함을 누려야 합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답답하고 눈물 나는 일이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하심이 어디에 계신지 나는 알 수 없으나 
그래도 ‘나는 평안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찬송가 413장(통일찬송가 470장)의 작시자는 
‘19세기의 욥’이라 불리우는 
호레이쇼 ‧ 스파포드(H.G.Spafford, 1828~1888)입니다.
미국 뉴욕 주에서 출생한 그는 변호사, 교수, 
시카고 장로교회 주일학교 교사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1871년에 그의 전 재산을 투자하여
시카고에 호화 별장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시카고를 초토화한 대화재로 인해 
그의 모든 재산도 모두 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크게 상심한 아내와 네 딸을 위로할 겸 유럽 여행을 계획했으나 
공교롭게도 자신이 해야만 할 일이 있어서 가족만 떠나게 되었습니다.

1873년 11월 15일, 예정대로 가족들은 
프랑스 여객선을 타고 뉴욕 항을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후인 22일 새벽, 
영국의 철선 로션(Lochearn)호와 정면충돌하여 
30분 만에 대서양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이 사고로 226명이 희생되었는데, 스파포드의 가족은 부인만 구조되고 
네 자녀는 그 이름만을 희생자 명단 속에 남겨두고 영영 떠나고 말았습니다.
연속적인 재난으로 망연자실해 있던 그는 
서둘러 아내가 구조되어 있는 영국으로 갔습니다.
배를 타고 사고 해역을 지나면서 아이들을 생각하며 밤새 울부짖었습니다. 
그 후 선실에 돌아와 기도로 간구하며, 성경에서 위로를 구하다가 
시편 23편을 읽고 크게 은혜 받아 쓴 것이 바로 이 찬송입니다. 

찬송가 413장(통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같이 부르겠습니다.
1.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후렴)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여러분도 이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 겪는 관계의 어려움 …
일터에서 … 교회에서 … 학교에서 … 
세상 여러 곳에서 부딪치는 이런 저런 문제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안을 선언하고 
평안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선언해 주신 
성령으로 함께 계시기 때문에 평안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평안속에서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때문에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평안을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평안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이야기, 불의 혀같이 임했다는 성령을 
형상화하여 장식한 꽃꽂이만 보고 그쳐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속에 함께 계시는 성령으로 평안하고
평안을 선언하고 평안의 인도를 따라 사는 
복된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큰 풍파로 무겁고 험해도 평안을 선언할 수 있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영혼 평안하다고, 나는 주님 안에서 평안하다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평안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 믿고 평안하다고 
평안을 선언하며 사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평안을 받으라는 말씀을 듣고 그치는 자가 아니라
성령받았음을 믿고,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고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대로 사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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