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중심이신 그리스도 (엡 1:8-14)

첨부 1


중심이신 그리스도 (엡 1:8-14)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말씀은 3-14절에 이르는 찬송시의 후반부입니다. 후반부를 이끄는 중심 단어는 9절의 ‘알리셨으니’ 입니다. 에베소서에서 안다는 단어는 중요합니다. 1장 19절의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3장 18절의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중요하듯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중요합니다. 알아야 믿고, 알아야 제대로 살 수 있고, 능력 있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는 것도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 때가 있습니다. 들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8절이 필요합니다.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넘치게 하사”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셔야 합니다. 사람이 욕심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진리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마음이 스스로 부요할 때는 진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낮추시고 또 빨리 달리던 길에 장애가 생길 때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들을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면 무엇을 알리셨는가? 9절입니다. “그 뜻의 비밀”입니다. 이 비밀의 내용이 무어냐 하면 10절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경륜’이라고도 표현하는데 경륜은 ‘계획’이라고 번역하면 됩니다. 이 경륜이 때가 차서, 곧 예수님의 때를 가르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실현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경륜, 곧 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 계획은 밝혀지기까지는 비밀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때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때가 찼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밝혀진 이 비밀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것을 왜 ‘비밀’이라 부를까요? 비밀은 헬라어로 ‘미쉬테리온’입니다. 여기서 나온 단어가 ‘미스테리’입니다. 당시 로마사회에서는 신비종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을 보통 ‘영지주의’ 라고 합니다. ‘영지(靈知)’는 신령한 지식입니다. 그들은 그들 집단이 구원에 이르는 신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 지식을 입문자들에게만 공개했습니다. 기록도 남기지 않고 비밀리에 전수되었기에 이 지식의 내용은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이들의 지식은 그야말로 자기들만 알고 있는 ‘미스테리’ 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 곧 그리스도의 미스테리는 남김없이 다 들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밀’이라고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신기하고 귀하기 때문에 ‘비밀’입니다. 여러분에게 갑자기 즐거운 일이 생겼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로또 대박을 맞았다든지, 정말 사랑하는 기막힌 사람을 만났을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자다가도 웃음이 나올 것입니다. 너무 신기해 깨물어도 보고 다시 확인도 해볼 것입니다. 자기 인생의 의미가 바뀌는 이 순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얘가 어디서 왔나?”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요즘 WBC 야구가 인기인데 우리 팀이 코너에 몰려 있다가 9회말 대타가 등장해 만루 홈런을 때려 역전시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 대타는 마치 감독이 준비해둔 ‘비밀병기’처럼 보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습니다. 예수를 만나고 예수의 은혜를 받고 보니 자기 인생이 바뀝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에 등장한 예수라는 사람이 내 인생을 송두리 채 바꿔놓습니다. 저는 대학교 때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전에는 전혀 예수를 모르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를 만나자 내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내 삶의 진로가 바뀌었습니다. 내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었습니다. 하루 종일 예수 생각합니다. 어렵고 결정적인 결단의 순간에는 어김없이 예수님을 찾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곰곰이 생각하면 미스테리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내 인생을 뒤집어 놓았으니까요. 그래서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히든 카드입니다.

둘째는 예수는 파면 팔수록 그 귀함의 끝을 알 수 없는 보물이기 때문에 ‘비밀’입니다. 저는 그래서 예수님을 감추인 보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밭에 예수라는 보물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를 발견한 사람이 진정한 부자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발견하는 예수는 채 1%도 되지 않습니다. 예수 안에 무한한 보물이 있는데 우리는 구원과 관련된 몇 가지 지식의 겉 표면만 긁다가 맙니다. 골로새서 2장 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무한한 보물입니다. 이 분을 묵상하면 우리 심령에서 생수가 터집니다. 그 생수는 생수의 강처럼 끊임없이 흘러나옵니다. 지금도 예루살렘 근처에 가면 수도사들이 있습니다. 이 중 동굴 수도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절벽 높은 곳에 위치한 동굴 위에 터를 잡고 평생 동안 말씀과 기도로 예수님만 묵상합니다. 먹을 것은 밧줄로 밑에 있는 제자들이 올려줍니다. 밤낮, 그리고 평생 묵상해도 좋을 만큼 예수는 풍성한가? 네, 그래요. 결코 다함이 없습니다. 예수라는 보물의 표피만 긁지 마세요.

뇌성마미 시인인 송명희는 ‘그 이름’이라는 시에서 예수님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예수 오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그 사랑을 말 할 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 못해서
비밀이 되었네
그 이름 비밀이 되었네

사람들 그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버렸지만
내 마음에 새겨진 그 이름은
아름다운 보석
내게 있는 귀한 비밀이라
내 마음에 숨겨진 기쁨
예수 오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예수 예수

여러분도 이런 그리스도를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예수님께 시간을 내어드리세요. 말씀도 읽고 기도도 하고 그분 생각도 하고 가끔은 기도원에도 가세요. 그분의 감동에 순종해서 봉사도 하세요. 사랑이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합니다. 같이 살고 시간 내고 신경 쓰고 대화하다 보면 정이 드는 법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하나님은 가끔 우리를 인생의 코너로 몰아가시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바쁘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방이 막힌 곳으로 끌고 가십니다. 그때서야 우리는 하늘을 봅니다. 예수님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세 번째 이유는 이런 존귀한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에 ‘비밀’입니다. 아무리 귀에 못이 박히도록 전해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래요. 예수님 때문에 감격하며 눈물 흘리며 사는 사람도 있지만, 예수라는 존재는 눈에 거들떠도 안보며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예수는 비밀스런 감추어진 존재이지요.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예수님의 음성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들려오는 경고입니다. 예수를 깊이 파세요, 깊이 묵상하세요. 감추어 두지 마세요. 그러면 그 속에서 생명의 샘물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중심이신 그리스도

이 비밀의 내용을 좀더 풀어보지요. 비밀의 내용이 무엇이라 했지요? 10절이지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통일’이라는 단어를 살펴봐야 합니다. ‘통일’은 헬라 어로 ‘아나케팔라이오’입니다. ‘아나’는 위라는 뜻이고, ‘케팔레’는 머리라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든 것이 집약되고 정리된다는 의미입니다. 1장 22절의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가 바로 이 의미라 할 것입니다. 타락 이후 만물은 통일성이 깨지고 파괴된 상태에 있습니다. 이런 피조계에 그리스도가 임하심으로 질서와 평화가 수립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혼돈을 방치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주와 역사라는 드라마는 하나님의 경륜, 곧 계획 가운데 있습니다.

먼저 우주의 무질서가 통일됩니다. ‘하늘에 있는 것’은 하늘에 있는 천사나 또 어둠의 주관자나 권세들을 가리킵니다. 초대 교회에 살던 사람들의 세계상이 이렇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하늘은 신의 영역, 땅은 인간의 세계, 지하는 죽음의 세계라는 세 영역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문학이나 신비종교들이 발달하면서 세계상이 좀 복잡해졌습니다. 지하에 있던 어둠의 세력들이 하늘 위로 올라오게 됩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는 “우리의 씨름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땅은 인간이 살고, 하늘에는 어둠의 영들이 있고, 그 위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천상의 세계가 있습니다.

이 땅은 항상 하늘의 악한 영이나, 정사나 권세 이 어두움의 주관자들이 지배합니다. 이것은 다른 식으로 우상숭배든, 미신이든, 운명론이든 그런 것들입니다. 어둠의 세력이 판을 치니까 영계도 혼란하고, 그것에 현혹된 우리 삶도 어렵고 가변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이 하늘에 있는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권 아래 두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제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우리 예수님께서 장악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왕이십니다. 그러니 운명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주팔자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온갖 귀신이나 고사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모든 영권과 영계를 주장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게 우주의 통일입니다.

두 번째는 역사의 무질서가 통일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역사의 무의미나 부정의가 사라집니다. 우리 역사나 현실을 보면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악인이 잘 사는 것 같습니다. 불의한 일도 말고 전쟁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는 새롭게 됩니다. 역사는 그리스도를 통해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시고 대신 죽으심으로 역사의 궁극적 정의가 드러났습니다. 악은 반드시 심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역사는 또한 그리스도의 나라 앞에서 힘을 잃습니다. 미래에 임할 절대 평화와 정의의 나라, 그리고 절대 겸손의 나라가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 앞에서 세상 역사는 힘을 잃습니다.

이사야가 보았던 현실이 이것입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는 나라, 어린 양과 사자들이 뛰노는 나라, 어린이가 독사 굴에 손 넣어도 물지 않는 나라. 그런 그리스도의 나라 앞에서 모든 폭력과 불의는 힘을 잃습니다. 미래의 희망이 현재의 무질서를 무력화시킵니다. 그래서 일제 시대 말기는 요한계시록을 불온 문서 취급을 하고 성경에서 재해 버렸습니다. 희망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중요합니다. 교회는 현재적으로 이 땅에 임한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 작은 자를 존귀하게 여기고, 겸손과 사랑의 왕국의 모습 앞에서 세상 역사가 질서를 잡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것은 현대 교회가 하나님의 이런 막중한 과업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교회는 빛이요 거울이요 모범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의 빛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교회를 보며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반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바로 서지 않으면 세상 역사가 중심을 잡지 못합니다. 오늘날의 혼동은 실상은 교회의 혼동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우리 인생의 무질서가 통일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은 인생은 혼란스럽습니다. 인생의 방황은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끝이 납니다. 우리 인생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중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치 집 떠난 탕자 같습니다. 재산은 가지고 나왔는데 관리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허랑방탕하게 쓰다가 돼지보다 못한 존재가 됩니다. 인간에게는 주인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자기를 제어해줄 명령자가 필요합니다. 인간에게는 자기가 일해야 될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무기력한 인간에게는 자기의 힘이 될 분이 필요합니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는 인류 역사의 모습이면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만 행복하고 질서를 잡습니다. 그것을 부인하고 떠났다 실패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인생입니다.

대 신학자요 성인인 어거스틴이 그렇습니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는 방황 가운데서 지냈습니다. 어거스틴은 10대를 불량배들과 어울려 쾌락을 좇고, 도둑질도 하며 보냈습니다. 20대에는 결혼 하지 않고 여자와 동거하여 사생아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또 당시 기독교 이단이던 영지주의의 일파인 마니교에 심취하여 지적인 방황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32세가 되던 해에 어거스틴은 소나기와 같은 눈물을 흘리며 회심을 합니다. 『참회록』에서는 그 경험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 깊숙이 숨겨져 있는 내 인생의 비참함이 그대로 내 눈앞에 드러났고, 강한 폭풍이 내 영혼을 흔들더니 내 눈에서는 눈물이 폭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그때 갑자기 이웃집에서 한 음성이 내 귀에 들려 왔다.......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나는 급히 성경을 펴들고 읽었다......‘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13:13,14)......광명한 확신의 빛이 내 마음을 비추었다.”

마치 창조 전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니까 어두움이 물러가 빛이 임하고, 혼돈이 물러나고 질서를 잡습니다. 공허가 물러나 충만해집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 인생은 통일됩니다.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이 경륜에 참여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비밀이 우리에게 알려졌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는 통일 사역의 기업, 곧 분깃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통일사역은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이 말씀은 곧 우리가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11절 말씀대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었고 그의 기뻐하시는 뜻이었습니다. 이를 다른 말로 ‘예정하사’라고 표현합니다. 예정은 전적인 은혜라는 뜻입니다. 부르심에 대한 강력한 확신입니다. 이는 하나님 편에서의 일이고 인간이 한 일은 무엇이냐 하면 12절과 13절에 나와 있습니다. 12절 ‘전부터 바라던 우리’는 구약시대를 말합니다. 메시야를 기다렸지요. 13절, 현재가 나옵니다.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믿음을 통한 결단을 통해 우리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믿은 자들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기업, 곧 교회의 일원이 됩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3절과 14절입니다. 약속의 성령이 인치셨습니다. 도장을 찍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도장 찍힌 사람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그중에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배우자와 자기 가족들입니다. 무수한 인류가 있지만 이제 하나님의 관심은 도장 찍힌 우리들입니다.

도장은 언제 찍히느냐 믿고 세례 받을 때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세례 받을 때 성령이 가시적으로 임함으로 그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마가복음 16장 16절에서는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라 말씀합니다. 세례는 평범한 의식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결혼식이 평범하던 가요? 요즘은 세례를 가볍게 여기지만 초대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종교를 바꾼다는 것은 자기 인생을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세례 받는 것과 성령의 인침을 동일시합니다.

또한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을 14절에서는 우리가 받은 기업의 보증이라고 표현합니다. 보증은 계약금입니다. 우리는 일부를 받음으로써 장차 전체를 받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장차 받을 영광스런 천국 약속의 보증금, 선불금입니다. 우리 안에 한 번이라도 예수에 대한 사랑과 감사로 충만한 적이 있다면, 그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며 살겠다는 결단이 지속된다면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신 증거입니다. 내가 성결하냐 그렇지 않느냐를 묻지 마십시오. 내가 무슨 일을 했느냐 안했느냐를 묻지 마십시오. 내 안에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있느냐를 물으십시오. 사랑이 있으면 모든 게 있는 것이고,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 결혼이란 게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도 성령은 우리 안에 내재해 계시고 우리 예배 가운데 계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임합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주님은 이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성령과 더불어 세상에 나아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능력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