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엎드려 경배하실 분 (계 5:11-14)

첨부 1


엎드려 경배하실 분 (계 5:11-14)

1. 우리는 잘 믿으려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더 깊어지기를 바라고 더 강하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은 기도를 세게 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작은 소리로 기도하는 것보다 큰 소리로 기도를 하는 것이 더 세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목사인 저의 믿음이 그 사람의 믿음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집사보다는 권사가 믿음이 더 크고 권사보다는 장로가 믿음이 더 크다고 생각하시는 가요? 믿음이란 누가 하나님을 더 진실하게 의지하느냐에 달려 있지, 얼마나 오래 다녔느냐, 얼마나 기도를 잘하느냐, 권사냐 장로이냐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몇 번을 통독을 하면 믿음이 커질까요? 몇 날을 금식을 하며 기도를 하면 믿음이 깊어질까요? 방언기도를 하고 병을 고치는 은사가 있으면 믿음이 깊고 큰 사람인가요? 우리의 믿음이 크고 좋으면 우리의 마음대로 하나님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것인가요?


2. 예수님께서는 믿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예수님의 말씀의 요지는 믿음생활이 “주여 주여”하는 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얼마나 큰마음을 가졌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의 뜻대로 사느냐에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심지어 놀라운 능력을 가졌을지라도,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주님께서 “내게서 떠나라.”고 하신다고 하십니다.


3. 오늘 본문 말씀은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는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준 하나님 보좌 앞의 모습입니다. 

5:6절에,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음을 당한 것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서 있는 어린양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네 생물은 사자와 송아지와 독수리 그리고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내는데 쓰임 받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기를 바란다는 로마서 8:19절의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습니다.

어거스틴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낸 것이 4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기에, 네 생물은 4복음서를 상징한다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리고 24장로들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12라는 숫자의 두 배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성도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5:11절에, “내가 또 보고 들으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본문은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들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4.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러하기에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믿는 믿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믿음의 마음이 얼마나 크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맞추고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맞추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말로 핀트가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착하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충성하는 종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열심히 충성을 하는데,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충성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5. 그러면 하나님 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2절의 말씀을 보니, “큰 음성으로 이르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큰 음성이란 소리가 크다는 말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같은 소리로, 한 목소리로 외친다는 말입니다. 

무엇이라 외치는지요?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7가지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능력, 부, 지혜, 힘, 존귀, 영광, 찬송입니다. 구분하여 말씀을 드리면, 어린양 예수님은 능력과 부와 지혜, 그리고 힘이 있으신 분이시고,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실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6. 이 말씀은 두 가지를 알게 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얼마나 큰 믿음을 가졌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예수님께서 가지신 것을 공급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7가지, 능력, 부, 지혜, 힘, 존귀, 영광, 찬송을 공급받고 사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즉 예수님 때문에 힘과 용기를 얻어 사는 것이지요.

우리 마음의 그릇에 예수님의 7가지 축복을 채워가는 것이지, 우리가 잘 믿어서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무엇을 해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아이가 아버지와 밤길을 걸어갈 때에 아이가 아버지의 손을 붙잡는 것과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붙잡아 주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잘 믿고자 하는 마음은 내가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7가지 축복을 받아 사는 것은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붙잡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능력이란,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바람을 잔잔케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말합니다. 부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말합니다. 

지혜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기에 우주만물이 하나님의 질서에 따라 움직이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합니다. 힘이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힘으로, 사탄 마귀, 적대자를 물리치는 권세가 예수님에게 있음을 말합니다.

이러한 4가지의 축복을 믿고 전적으로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결코 우리의 마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세를 믿는 것입니다.


7. 또 하나는, 이러한 믿음으로 날마다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내가 이것을 믿어서 이것을 얻어야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께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존귀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영광은 예수님께서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낮은 자리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같은 인간이 되셨음이 우리에게는 놀라운 영광인 것입니다.

찬송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로 영생에 이르도록 다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늘 예수님을 향하여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리는 것이 믿음생활입니다. 찬양대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한 것은 매주 우리에게 은혜로운 찬송을 불러주는 것도 있지만, 찬양을 통하여 우리 주님께 존귀와 영광을 올려드리기 때문입니다. 찬양대가 앞에 나와 우리를 향해 찬송을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8. 우리가 찬송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찬송하는 자세는 서서 부르는 것이 가장 좋은 자세입니다. 찬송은 아름다운 가락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힘닿는 대로 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로 열심히 찬송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신학생 시절에 어머니께서 환갑이시기에 고향을 찾았더니 동네 어른들이 네 어머니를 위해 노래 한 곡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때 노래를 부르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을 높이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서로 연애를 할 때도 상대방을 위하여 노래를 불어주는 것은 그 사람을 높이는 것이지 않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찬송을 하게 될 때에 우리 마음이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보약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9.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4가지 능력을 공급받아 우리 주님께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리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 일어나는 두 번째 일은 엎드려 경배하는 일입니다. 경배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이슬람들이 무서운 것은 그들은 무릎을 꿇기도 하고 엎드려서 경배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분만을 오직 제일로 섬기고 높인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예배라는 말을 사용할 때에, Service라는 의미도 있지만, Worship이라는 뜻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이고, 하나님을 섬기고 높이는 시간이기에 가장 귀한 것을 드린다는 의미로 Worship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헌신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배에 임할 때마다 취해야 할 자세는 하나님을 높여드린다는 자세입니다.


10. 1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영원히 돌려드리는 모습입니다. “세세토록 돌릴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영원히 하나님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임을 말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함이 아닙니다.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내 뜻을 이루고자 함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주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음이 우리의 수고와 노력과 업적에 있음이 아니고, 전적으로 불쌍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기에 믿음이란 오로지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11. 그러면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 어떤 것인가요? 무엇을 주님께 드리면 그 은혜에 보답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가진 것을 다 드리면 될까요? 우리의 생명을 드리는 것일까요? 모든 부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여 우리의 가진 것을 달라하실까요?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여 주신 주님께서 어찌 다시 우리의 생명을 달라하실까요? 

여러분, 무엇으로 주님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돌려드릴까요? 14절의 말씀에,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네 생물이 아멘 하였다는 것은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라는 말씀에 <아멘>하며 화답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멘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멘>하는 것은 주님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주님을 높여드리는 말입니다. <아멘>하는 것이 곧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생활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엎드려 경배하였다는 것은 하나님만을 가장 높여드리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경배하는 것이고, 예배 드리는 자의 진정한 모습인 것입니다. 무릎을 꿇을 수 있으면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경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찬송하는 것입니다.


12.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내가 믿음이 좋아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을 공급받아 주님께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리며 사는 것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라는 말씀에 항상 <아멘>하며 화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4장로들처럼, 엎드려 경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생활입니다.

이 세상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믿음이 이 세상의 것을 얻는데 사용되는 믿음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활하신 주님께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돌려드리는 믿음이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이선영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