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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생명의 말씀을 말하라 (행 5: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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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명의 말씀을 말하라 (행 5:17-42)

1. 기원전 490년에 페르시아 군과 아테네 군 사이에 전투가 마라톤에서 있었습니다. 마라톤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북동쪽 약 30Km 떨어져 위치한 지역입니다. 아테네는 페르시아 군이 마라톤에 상륙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령 페이디피데스를 스파르타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파견했습니다. 페이디피데스는 약 200Km의 거리를 이틀에 걸쳐 돌주했다고 합니다.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위급한 상황을 듣고 원군을 파병하는데 동의했지만 스파르타의 전통에 따라 보름(만월)에 출전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도움없이 몇몇 동맹도시의 도움으로 마라톤 평야에서 페르시아 군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여기서 고대 역사가(歷史家) 헤로도토스는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 승전 소식을 아테네에 전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마치 전설처럼 퍼져 있는 마라톤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는 후대에 지어낸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지어낸 이야기는 마라톤 평야에서 아테네 군이 침략해온 페르시아 군을 격파했을 때 아테네 군 전령 페이디피데스가 아테네의 승리를 알리기 위해 약 40km를 달려 ‘우리는 이겼노라’ 고 외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역사적인 달리기를 끝내고 페이디피데스는 쓰러져 죽었고 그가 달린 거리는 마라톤의 선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라톤 전투에서 패전한 페르시아의 후예국인 이란은 마라톤을 금기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올림픽과 아시아 경기대회 등 세계대회에서 마라톤 종목에 출전한 선수는 단 1명도 없었으며 자국의 도시인 테헤란에서 열린 1974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마라톤이 아예 제외되었었습니다. 전령사 페이디피데스는 승전보를 전하고 쓰러져 죽었습니다. 

기원전 1011년경, 충신 다윗을 제거하여 왕권을 아들에게 계승하려던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무려 7년간 추격하여 살해하려 했었습니다. 다윗은 7년 동안 도피하면서 수차례 사울 왕을 죽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이었기 때문에 털끝 하나 손대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추격하던 중 엔게디 광야 동굴에 홀로 들어왔을 때, 다윗은 직접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는 하나님 말씀을 지켜 사울을 살려 주었습니다. 

(삼상24:6-10)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가로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사울에게 이르되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혹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였나이다. 

그 후 또 다시 십 광야에서 다윗을 추격하던 사울 왕이 잠시 휴식을 취하며 자고 있었을 때, 다윗에게 절호의 기회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동행하던 아비새 장군이 다윗에게 ‘(삼상26:8) 하나님이 오늘날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나로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며 자신이 사울 왕을 처치하도록 해달라고 청합니다. 그때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삼상26:9-23)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 죽을 날이 이르거나 혹 전장에 들어가서 망하리라.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다윗이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 죽을 날이 이르거나 혹 전장에 들어가서 망하리라.” 고 말했던 것처럼 사울 왕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었고 그 집안 역시 망하고 말았습니다.

사울 왕이 죽은 후 사흘째 되는 날, 아말렉 사람 하나가 다윗에게 달려와 사울 왕의 전황을 전합니다. “저는 이스라엘 진에서 가까스로 살아서 빠져 나왔습니다. 군인들이 싸움터에서 달아나기도 했고, 또 그 군인들 가운데는 쓰러져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사울 왕과 요나단 왕자께서도 전사하셨습니다.” 다윗이 그 아말렉 사람에게 다그쳐 묻습니다. “사울 왕과 요나단 왕자께서 전사한 줄을 네가 어떻게 알았느냐?” 

그 젊은이가 설명합니다. “제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갔다가, 사울 왕이 창으로 몸을 버티고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에 적의 병거와 기병대가 그에게 바짝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사울 왕이 뒤로 고개를 돌리시다가, 저를 보시고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그러시느냐고 여쭈었더니, 저더러 누구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말렉 사람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사울 왕이 저더러 ‘어서 나를 죽여 다오. 아직 목숨이 붙어 있기는 하나,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일어나서 사실 것 같지 않아서, 다가가서 명령하신 대로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저는 머리에 쓰고 계신 왕관을 벗기고, 팔에 끼고 계신 팔찌를 빼어서, 이렇게 가져 왔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여, 자기의 옷을 잡아 찢으며 깊이 애도합니다.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 가문이 칼에 맞아 쓰러진 것을 슬퍼하면서, 해가 질 때까지 울며 금식하며 애도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자기에게 소식을 전하여 준 아말렉 사람에게 “네가 어떻게 감히 겁도 없이 손을 들어서, 주께서 기름을 부어서 세우신 분을 살해하였느냐?” 며 호통을 치며 신하를 불러 “가까이 가서, 그를 쳐 죽여라.” 고 명령해서 그 아말렉 사람이 처형되었습니다. 

그 때에 다윗이 죽어 가는 그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죽는 것은 너의 탓이다. 네가 너의 입으로 ‘주께서 기름을 부어서 세우신 분을 제가 죽였습니다.’ 하고 너의 죄를 시인하였도다.”(삼하1:1-16) 

사울 왕의 죽음은 다윗에게 있어서 고달픈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영광스러운 왕위에 오르게 되는 경사스런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왕이 비록 자신의 원수였을지라도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사실을 중요시하는 신앙으로 사울 왕의 죽음을 진심으로 깊이 애도했던 것이고, 사울 왕을 자신이 죽였다고 자처하면서 훈장과 포상을 바라며 승전 소식을 전한 아말렉 사람은 자신의 입으로 ‘주께서 기름을 부어서 세우신 분을 제가 죽였습니다.’ 하고 자신의 죄를 시인하므로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아말렉 사람은 사울에게 칼을 대지 않았지만 사울 왕이 다윗의 원수였었다는 사실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거짓 보고를 하므로 자신의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울 왕의 전사 소식은 다윗에게 기쁜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아말렉 사람은 허위 날조된 소식을 전하므로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2. 오늘 하나님께서 사자(使者)를 통해 성도 여러분에게 “가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고 하십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뛰게 하자 그는 곧 바로 성전에서 가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를 목격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랍게 여기자 사도들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그 앉은뱅이가 온전하게 되었노라고 증거했습니다.(행3:1-26) 이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 부활을 가르치고 전하는 일을 몹시 싫어하여 사도들을 체포하여 심문합니다. 사도들이 심문하는 그들에게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이렇게 증거합니다.

(행4:10-12)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사도들이 담대하게, 그리고 그 병 나은 사람과 함께 자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자 사도들을 딱히 비난할 말이 없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며 협박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행4:19-20)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며 전혀 그들에게 굴하지 아니합니다. 결국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수많은 백성들이 사도들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 두려워 사도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석방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백성들이 알게 되자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행4:21)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 

이후 사도들의 손을 통해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자 믿는 사람들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행5:12-14)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이렇게 사도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이 강림하자 사도들이 권능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강하고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생명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행1:4-8)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사도들에게 임하게 되자 권능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그의 이름으로 수많은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자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사도들로 하여금 예수를 전파하지 못하도록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번에는 심문하지도 않고 무조건 구속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자(使者)들을 보내어 사도들을 탈옥시켜 주시면서 “(행5: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기가 가득한 유대교 지도자들(산헤드린을 구성하고 있는 대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 등)이 사도들을 핍박한 종교적 이유는 첫째, 권위의 문제였습니다. 산헤드린은 당시 유대인 사회에 있어서 최고의 법적 지위를 가진 실질적 통치기관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생전의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영육간에 허덕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력있는 말씀과 놀라운 표적을 베풀었을 때 점점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기쁨의 대상이 되어갔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상대적으로 유대교 지도자들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것은 물론 그들의 종교적 기반을 뿌리채 흔들만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사도들을 핍박했던 것입니다. 둘째, 예수 살인죄에 대한 정당화 문제입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한 직접적인 장본인은 바로 유대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십자가에서 죽은 줄 알았던 예수가 다시 살아나서 부활하셨고 이제 그의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한다는 소문이 현실적 문제로 대두되었을 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를 죽인 죄값(罪價)을 받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행5:28)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이런 이유로 유대교 지도자들은 연합하여 사도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도록 온갖 수단을 동원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 전파를 방해하기 위한 온갖 음모가 꾸며졌으나 하나님께서는 일촉즉발의 살벌한 위기 상황 속에서도 사도들로 하여금 담대히 그리스도를 전파하게 하셨고, 그들로 더 큰 용기와 확신 속에서 예수의 증인된 사명 수행에 진력(盡力)할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도들이 하나님의 사자(使者)의 손길로 감옥에서 풀려난 후 즉시로 예수를 증거했고 다시 공회 앞에 잡혀왔을 때도 전체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자처하기를 조금도 꺼려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 순종의 태도를 보여 주었습니다. 

사도들은 유대교 지도자들의 태형<笞刑-가죽 끈을 세 줄로 꼬아 만든 형장(刑杖)으로 때리는 것으로 보통 40대에서 한 대 감한 매를 칠 수 있었습니다. 이 형장으로 매를 맞을 경우엔 살가죽이 벗겨지고 심지어는 뼈가 드러날 상태까지 이르게 됩니다.>을 맞는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께서 고초당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아픈 상처가 미처 가라앉기도 전에 기쁨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쉬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는 주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모범을 확실히 보여 준 것이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절 주일을 맞아 성도 여러분에게 성령의 권능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담대히 생명의 말씀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핍박과 박해 중 석방된 사도들에게 주어진 명령은 “가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석방 즉시 생명의 말씀,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 전도 사명을 위한 석방이었습니다. 성도들은 이 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나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신 것은 편히 살다 죽으라는 뜻이 아니라 복음 전파, 즉 사명을 위해 살려주셨다는 것입니다. 가난에서 벗어나 재물을 갖게 하신 것은 잘 먹고 잘 살라는 뜻이 아니라, 그 재물을 가지고 복음전파를 위해 물질 축복을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업을 축복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나라 민족을 부강한 나라로 축복하신 것은 열강가운데 우상숭배하며 사치하고 음란하며 교만하라는 것이 아니고, 세계를 구원하는 복음을 전파하는 제사장 나라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무시하고 자기의 욕심을 따르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일은 결코 방해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병에 걸리거나 사업에 실패한다고 해서, 아니면 여러분들이 그 일을 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복음이나 하나님의 일이 실패로 돌아가거나 중단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일로도, 하다못해 우리의 연약함으로도, 하나님의 하시려는 일은 중단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B.C.760년경,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회개하라고 외쳐라. 그들의 죄악이 내 앞에까지 이르렀느니라.” 니느웨에 가서 죄악을 회개하라고 외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배를 타고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향합니다. 니느웨는 당시 악의 대명사이자 과거 이스라엘에게 숱한 아픔을 안겨주었던 원수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한 것은 니느웨 사람들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구원받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서, 그들에게 회개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 다시스로 도망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큰 폭풍을 불게 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가 거의 부서질 지경이 되게 하셨습니다. 뱃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저마다 저희 신들에게 부르짖고, 배를 가볍게 하려고,모든 짐을 바다에 내던졌습니다. 요나는 벌써부터 배 밑창으로 내려가 누워서,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마침 선장이 그에게 와서, 그를 보고 소리를 쳤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소? 잠을 자고 있다니! 일어나서 당신의 신에게 부르짖으시오. 행여라도 그 신이 우리를 생각해 준다면, 우리가 죽지 않을 수도 있지 않소?” 그래도 도저히 안되자 뱃사람들이 서로 말합니다. “우리가 어서 제비를 뽑아서, 누구 때문에 이런 재앙이 우리에게 내리는지 알아봅시다.” 당시 제비를 뽑아 죄인을 가려내는 것이 고대의 통상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들이 제비를 뽑으니, 그 제비가 요나에게 떨어졌습니다. 그들이 요나에게 물었습니다. “우리에게 말하시오. 누구 때문에 이런 재앙이 우리에게 내렸소?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어디서 오는 길이오? 어느 나라 사람이오? 어떤 백성이오?” 요나가 대답합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오.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그분을 섬기는 사람이오.” 그리고 요나가 그들에게, 자기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달아나고 있다고 말하자,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겁에 질려 그에게 소리칩니다. “어쩌자고 당신은 이런 일을 하였소?” 바다에 파도가 점점 더 거세게 일어나자, 사람들이 또 그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해야, 우리 앞의 저 바다가 잔잔해지겠소?” 요나가 말합니다. “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지시오. 그러면 당신들 앞의 저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오. 바로 나 때문에 이 태풍이 당신들에게 닥쳤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소.” 결국 뱃사람들이 요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지자 폭풍이 일던 바다가 순식간에 잔잔해졌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 한 마리를 준비하여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그 물고기 뱃속에서 지내며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니느웨 해변에 토해내게 하셨습니다.

(욘2:10) 여호와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말씀하십니다. 
(욘3: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결국 요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니느웨로 가서 하룻길을 다니며 외칩니다.
(욘3:4)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요나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뜻하지 않게 니느웨는 왕을 비롯하여 전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하며 회개합니다.

(욘3:5-9)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마침내 하나님께서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를 받으시고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욘3:10)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가 도망쳤지만 하나님의 선택은 철회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도망치는 요나를 따라가 회개시키고 다시 돌이켜 하나님의 그릇, 복음 전도의 그릇이 되게 했습니다. 다시 말해 억지로일지라도 니느웨 성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원수같은 니느웨 사람들일지라도 회개하여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을 택하사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신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사도들은 어떠한 핍박과 박해 가운데서도 굴하지않고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 나갔습니다. 사도들이 여러 가지 심문을 받고 공갈과 협박, 능욕을 받은 후에 풀려나면서도 오히려 기뻐하며 예수를 전파하는 일을 쉬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40-42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행5:40-42)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는 성도,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 선생이 시카고에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집회를 마치고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가로등에 기대어 서 있는 것을 발견한 무디는 그에게로 다가가 “당신은 예수님을 믿으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청년은 이상한 얼굴을 하고 무디를 노려보더니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얼굴을 붉히며 차마 치지는 못하고 ‘악!’ 소리를 질렀습니다. 전도를 해보려 말을 건네다가 크게 봉변을 당하나보다 생각한 무디는 침착하게 다시 말했습니다. “내 말에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합니다. 나는 그저 당연한 것을 물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자, 이 사나이는 격한 어조로 말하기를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너 할 일이나 하라.”고 소리쳤습니다.

이때에 무디는 다시 말하기를 “실은 이것이 제가 하는 일이랍니다.” 하고는 돌아왔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아무 일도 없이 3개월이 지났는데 어느 추운 날 새벽녘에 무디의 집 문을 노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무디는 읽던 책을 덮어 놓고는 나가서 “누구시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하고 묻자, 밖에서 들리는 음성은 “네!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무디는 문을 열었는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바로 3개월 전 전도를 받고 무디를 때리려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디의 안내로 집에 들어선 사나이는 공손히 면저 무디에게 인사를 하더니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나는 선생님의 전도를 받고부터는 지금까지 마음에 변화가 없고 말할 수 없는 번민으로 고통을 당해 왔는데, 어젯밤에도 밤새껏 잠을 이루지 못하고 번민하다가 결심하고 이렇게 찾아왔으니 제발 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날 이후로 믿는 자가 된 이 젊은이는 무디 선생이 운영하는 주일학교에서 교사일을 보다가, 독립전쟁이 시작되었을 때에 자원 출전하여 현역이 된 다음 최초의 전사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도자의 뿌린 씨앗은 언젠가는 반드시 거두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 생명의 말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집에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도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는’, 복음 전도의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하시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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