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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화목한 가정 (잠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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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한 가정 (잠 17:1)
 
오늘 우리 어린이들 또 우리 중고등부 학생들 또 우리 장년 어르신들 함께 예배를 드려서 더 축복되고 아름다운 날 인줄로 압니다. 골동품에 관심이 많은 한 고고학자가 전라도 어느 시골 지역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마당에 놓여있는 개 밥그릇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개 밥그릇이 예사롭지가 않아요. 그래서 가서 자세히 살펴봤더니 이 보통이 아닌 것 같아서 좀 더 관심 있게 봤더니 그것은 굉장한 값어치가 나는 몇 백년전에 출토됐던 아주 고귀한 자기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주인에게 알려주었더니 주인이 너무 고마워하면서 좋아하더라는 것입니다. 광속에 처박혀 있던 그릇이 하나가 있어서 이 쓸데도 없어서 개가 생겨서 개밥그릇으로 사용했더니 이게 이렇게 비싼 자기인줄 몰랐다고 그것이 약 3억원이 되는 거라고 합니다. 자 이거 그냥 깨뜨려버릴 뻔 했지요. 이렇게 소중한 가치를 모르면 개밥그릇정도로 쓰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 가장 귀한게 뭘까요. 그것은 역시 가정입니다.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그런데 가정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가정을 소홀이 여길 수가 있습니다. 몇 년전에 한 상담센터에서 1500여명의 중고등부 학생들, 또 대안학교 학생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해서 조사해봤대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 라고 질문을 해봤더니 그중에 73%가 가족이 제일 소중하다고 했어요. 우리 청소년들이 볼 때에 가족이 제일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다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질문 그렇다면 가정에서 제일 중요한게 뭐냐?라고 물었대요. 그랬더니 절반 이상이 가정의 화목이 제일 중요하다. 가족이 소중하고 또 가정이 하나 되는 화목하게 되는 것이 너무너무 소중하다고 그들이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가정의 소중함을 늘 깨달아야 됩니다. 이걸 잊고 살아갈 때 세상일에 분주하고 바쁘다보면 가정을 소홀히 여기고 가족을 소홀히 여길 수 있어요. 

일찌감치 가정의 중요함을 깨닫고 노래를 지어유명해진 존 하워드 패인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은 사실은 결혼을 해본적도 없고 가정을 가져 본적도 없어요. 혼자 살았어요. 방랑자처럼 노숙자처럼 이렇게 떠돌아다니며 살았어요. 그가 어느 날 프랑스 파리를 돈 한 푼 없이 그 낯선 거리를 추위와 배고픔 속에 거닐다가 그에게 하나의 착상이 떠올랐어요. 나에게도 가정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그가 울먹이면서 하나의 노래를 지었습니다. 그 노래가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홈 스위트 홈이라는 노래예요. 미국인들이 아주 좋아하는 노래지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라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우는 내 집 뿐이라 

내 가정이 가장 아름답고 즐겁고 행복한 곳이라는 거예요. 실제로 남북전쟁이 일어났을 때 북군 쪽에서 전쟁의 흥을 돋구는 격렬한 군가를 부르다가 이 스위트 홈 노래를 부르게 되었대요. 이 남군 쪽에서도 이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아서 같아 이 홈 스위트 홈 노래를 부를 때 그날은 가족에 대한 고향에 대한 생각 때문에 아예 전쟁을 포기하고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다고 합니다. 가정은 이처럼 소중한 것이다. 가정은 이처럼 가치 는 것이다. 그런데 가정은 소중하되 화목한 가정이 귀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정은 진정 화목한 가정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성경 잠언 17장 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가정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마른 떡이라는 건 뭐예요. 자 여러분 떡은 금방 찐 떡이 맛있어요. 아니면 오래된 떡이 맛있어요. 금방 막 찐 떡이 말랑말랑하고 먹기에도 좋고, 그런데 가난한 집은 떡을 자주 못해요. 한 번 떡을 만들면 한 일주일 놓고 먹어야 돼. 그러니까 그 떡이 굳어가지고 마른 떡이 말라비틀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가난한 집이예요. 가난한 집에 마른 떡 한 조각도 화목하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먹으면 그집이 훨씬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부잣집이 제육이 집이 가득하고도 다툰다면 그건 불행한 집이라는 거예요. 제육하면 우린 남자분들이 탁 떠오르는 게 있을거예요. 뭐가 떠올라요? 제육하면 제육볶음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제육볶음은 뭘 볶는거예요? 돼지고기 볶는 것이 제육볶음이예요. 쌈에 딱 싸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어요.

성경을 보니까 그 제육이 아니야. 이 제육은 제사제자예요. 제사를 치루는데 놓는 모든 고기들을 제육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잔치를 베풀려면 먼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그 제사음식을 서로 나눠먹는거예요. 그게 잔치 음식이예요. 그러니까 잔치의 음식, 제사 드리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고기반찬을 놓고도 화목하지 못하고 다투는 집, 이 집은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더 쉽게 이야기하면 마른 떡 한 조각을 먹는 가난한 가정에서 가족끼리 화목하고 사랑하는 것이 고기 식물을 많이 준비하고 잔치를 하면서 서로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가난해도 화목한 가정이 제일 행복한 가정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부유하고 좋은 집에 살아도 거기에 화목이 없으면 다툼이 있고, 미움이 있고, 증오가 있으면 그건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잠언 15장 17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아멘. 

바로 이 이야기예요. 요즘 채소가 비싸지만 예전엔 그래도 채소가 고기보다 쌌으니까.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고기를 먹으며 살찐 소를 먹으면서 미워하고 다투는 것보다 났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물질이나 기름진 음식이 행복의 조건이 아닙니다. 행복의 조건은 바로 화목입니다. 우리 옆에 분들에게 이야기해보세요. “행복의 조건은 바로 화목입니다.”

이 화목이라는 말은 평화예요. 평화. 가정에 평화가 있어야 돼요. 또 어떻게 보면 일치, 하모니, 온 가족이 한 마음 되고 화목하고 행복하고 즐겁고 이 최고라는 거예요. 행복한 조건은 화목해야 된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요.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우리 모두가 노력을 해야 되요. 자 그러면 우리가 정말 화목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 어떤 조건이 우리에게 필요할까? 

첫째는 예수님을 모시면 화목하게 됩니다. 따라 해보세요. “예수님을 모시면 화목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예수님을 우리 구주로 모시면 우리 가정에 화목이 찾아와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화평의 왕이시니까.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기 위해 오셨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인간과 인간사이의 깨진 관계를 화목케 하시려고, 평화의 관계가 되게 하시려고 오셨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자 우리 로마서 5장 10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아들 예수의 죽으심을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아들 예수의 죽음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또 5장 11절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아멘 우리를 화목하게 하신 분이 누굽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 그래서 우리 어린이들이 많이 부르는 찬송, 복음 성가가 있지요. 

‘예수 안에서 우리 화목됐네 예수 안에서 우리 화목됐네 하나님의 영광 함께 누릴 소망 있네 예수 안에서 우리 화목됐네’ 

그래서 우리 가정이 화목하려면 우리 부모님들을 전도해야 해요. 형제들을 전도해야 해요. 자녀들을 전도해야지 진짜 가정의 화목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란 이처럼 중요한 거에요.

또 우리가 로마서에 보면 “여러분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합시다.‘라는 말씀이 있어요. 여러분 우리 가정이 화목해야 되고 교회도 화목해야 되고 나라도 화목해야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모실 때 우리 가정에 화목이 찾아온다.

자 두 번째. 서로 감사할 때 우리는 화목하게 될 수 있어요. 따라 해보세요. ‘서로 감사할 때 화목이 찾아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싸울 일이 없지요. 왜 화목이 깨어질까요? 죄가 우리 화목을 깨는 거예요.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범죄하고 선악과를 따먹을 때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고 죄가 들어오니까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고 다투게 됐어요. 그래서 창세기 4장에 보니까 형 가인이 시기심 때문에 자기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이는 일이 일어나게 돼요. 

이 모든 죄는 이 살인과 미움과 증오, 복수에는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죄가 바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을 깨뜨리는 거예요. 사람과 사람사이의 화목을 깨뜨리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의 짐을 지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이 온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래서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부부간에도 감사해야 해요. 또 자녀들은 부모에게 감사해야 해요. 부모님도 자녀들로 인해서 감사해야 해요. ‘감사하긴 뭐가 감사해. 내가 낳고 기르느라고 고생만 죽도록 했는데.’ 아니예요. 자녀들로 인해서 내게 행복이 있고 내게 즐거움이 있는 거예요. 우리는 서로서로 감사할 때 가정은 진정 화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부부를 만드실 때 서로 돕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축복하고 서로 사랑하라고 만든 것이지! 다투고 미워하고 싸우라고 만드신 것이 아니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보기 좋지 않아서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그의 갈비뼈를 빼가지고 여인을 만드신 거예요. 그것이 바로 하와예요.

많은 분들은 묻습니다. ‘왜 뼈가 많은데!! 척추 뼈도 있고 머리뼈도 있는데 하필이면 왜 갈비뼈를 가지고 여인을 만드셨을까?’하고 질문하는 분들도 있어요. 만약에 아담의 다리뼈를 가지고 만들었으면 하와가 아마 아담을 밟아 버릴 지도 모르겠어요. 만약에 팔뼈를 가지고 만들었다면 아담에게 폭력을 휘둘렀을지도 모르겠어요. 머리뼈를 가지고 만들었다면 아담을 앉혀놓고 매일 훈계했을지도 몰라요. 턱뼈를 가지고 만들었다면 말이 잘 돼서 말싸움 하다가 그저 싸움이 번졌을지도 몰라요. 목뼈를 가지고 만들었으면 교만해지고 목이 뻣뻣해졌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갈비뼈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것은 뭐예요? 팔 밑에 있기 때문에 보호의 의미가 있어요. 남편은 아내를 보호해야 한다! 안아 줘야 한다. 또 심장 가까이에 갈비뼈가 있기 때문에 사랑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부부란 서로 돌봐주고 보호해주고 사랑해 줘야 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갈비뼈를 빼가지고 아내인 하와를 만들었다고 우리는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와야 할 이 부부들이 살면서 자꾸 변질 돼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요즘엔 아내들이 너무 많이 변한다고 이야기 하더라구요. 인터넷에 보니까 이런 얘기가 있어요. 부부가 TV 채널을 놓고 가끔 다툴 때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아이를 하나 낳았을 때에는 부인이 보던 채널을 남편이 돌리면 부인이 그냥 그렇게 얘기했데요. ‘여보 당신 보고 싶은 것 봐. 나는 그냥 애나 재울게.’ 그런데 애가 둘이 생기면 달라진다는 거예요. ‘아니 어떻게 남자가 TV에 생명을 걸어 쪼잔하게.’ 이렇게 말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애가 셋이 되면 부인이 남편을 탁 째려보면서 이렇게 말한대요. ‘지금부터 숫자 센다. 하나! 둘! 셋!’ 알아서 하라는 거죠. 이 부인들이 자꾸 너무 이렇게 거칠어진다는 거예요. 아내들은 결혼 30년이 지나도 처음 결혼할 때처럼 온유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내들이 자꾸 거칠어지면 안돼요! 남편들도 마찬가지예요. 처음 결혼할 때 그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보존해야 해요. 어떤 남자분의 고백입니다. 그분은 자기가 늘 100점짜리 남편인줄 알았대요. 자기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어나 직장에 가서 열심히 일합니다. 살림살이도 웬만하면 다 갖춰놨어요. 남부럽지 않게 살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언제부턴가 가족들이 자기만 들어오면 말도 안하고 웃다가 자기만 들어오면 자기 방으로 사라진다는 거예요. 분위기가 이상한 거예요. 왜 나를 왕따 시키지? 이해가 안됐어요. 그런데 어느 날 부인이 만나자고 하더니 이혼장을 내밀더라는 거예요. 이 남편은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내가 왜 이혼을 당해야 하나? 나는 다른 곳에 한 눈 판적도 없고 외도한 적도 없고 그저 월급봉투 잘 갖다 줬는데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남편이 너무 억울했대요. 

그런데 남편이 권면을 따라서 아버지 학교에 가게 됐습니다. 제가 그 글을 읽어 봅니다. ′그 때 그는 아버지 학교를 소개 받았습니다. 거기서 자신을 돌아보게 됐는데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발견하던 첫 날! 얼마나 통곡했는지 모릅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한 것이 제육이 집안에 가득하고 다툼을 하는 것보다 나으니라는 말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보니까 아내가 보이고 자녀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때문에 아내가 그 많은 날들을 눈물로 보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가정보다 직장이 우선이었고 가족들보다 술친구들이 우선이었습니다. 유흥비에 쓰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집안에 쓰는 돈은 너무나 인색했습니다. 아내를 한 번도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았고 그저 집안의 몸종처럼 아내를 여겼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내는 결국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우울증 때문에 견디지 못해 이혼을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입을 열면 아이들을 나무라고 훈계하는 말만 했습니다. 그러니 어떤 자식이 아버지 품에 파고들고 싶겠습니까? 월급봉투만 갖다 주면 백점짜리 남편과 아버지였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그는 드디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참회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날로 그는 술과 담배를 끊기를 작정하였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던 그가 꽃다발을 사들고 집안으로 들어가서 아내에게 안겨주면서 그동안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을 사과했습니다. 아이들을 불러놓고 사랑의 편지를 읽어주면서 눈물로 아버지의 잘못을 고백했습니다. 얼마 후, 얼음장처럼 냉랭하던 가정에 따스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가정이 행복의 보금자리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에서 돌아오면 이제는 아내의 웃는 얼굴과 달려와 품안에 파고드는 아이들의 모습에 이 가정은 꿈을 꾸듯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남편들은 좀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남편들은 아멘도 안하는 것 같아요. 너무 죄진 것이 많아서. 네.. 부부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들도 마찬가지고 남편들도 마찬가지.. 서로 감사한마음을 가져야 돼요. 나 같은 사람 믿고 이렇게 참 시집와서 살아주는 아내가 너무 고맙고, 나같이 부족한 여자를 거둬줘서 이렇게 아내로 존중해주는 남편이 너무 고맙고, 우리 감사한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부부들 가운데 자기만 손해 본다는 생각이 있어요. “나만 손해 봐, 나는 잘났는데, 우리 남편은 못났어, 우리 아내가 좀 부족했어.” 착각인 것이... 부부는 서로 늘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돼요. 자녀들은 또한 부모에게 감사해야 해요. 왜? 부모란 내 존재의 근원이니까... 부모가 없었더라면 나는 이 땅에 존재할 수 없는 거예요.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분이 바로 부모님이시기 때문이니까요. 

오늘 성경에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에베소서 6장 1절부터 3절 말씀을 우리 자막에서 읽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아멘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또 네 아버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다.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 열 가지 계명을 주실 때 두 개의 돌 판에 그것을 기록했어요. 첫 번째 돌 판에는 1계명부터 4계명. 하나님에 관한 계명이예요. 두 번째 돌판에는 5계명부터 10계명까지 인간 사이에 관한 계명이예요.

그런데 두 번째 돌 판에 첫 번째 말씀이 무엇이냐? 제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는 얘기는 두 번째 돌 판에 첫 번째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자세히 보시면 다섯 번째 계명은 첫 번째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다음에 두 번째 여섯 번째 계명은 무엇인가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쭉 나갑니다. 그런데 그 첫 번째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가장 무거운 계명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를 향해서 오히려 아주 엄한 벌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욕보이는 자가 있으면 심지어 그 자식을 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부모 공경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잠언 23장 22절에 보면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잠언 23장 2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부모를 당연히 즐겁게 해드려야 합니다. 공경해야 합니다. 잘 모셔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부모를 멀리하고 때로는 부모를 구박하고 때로는 부모를 학대하는 경우도 너무도 다반사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잘못된 것입니다. 멸망 받는 세상의 상징이 무엇입니까? 부모에게 거역하는 거예요. 불순종하는 거예요. 돈을 사랑하는 거예요. 우리는 돈을 사랑할 줄 알았지 부모 사랑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한 젊은 이가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그는 배를 타는 해군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가 배위에서 작업을 하다가 그만 입고 있던 자켓이 바람에 날라가서 바다에 떨어졌어요. 이 병사가 자켓을 건지려고 바다에 뛰어들려고 하니까 옆에 보고 있던 장교가 ‘이보게, 뛰어들면 안돼. 절대 안돼.’ 하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명령을 어기고 그는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켓을 꺼내가지고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장교의 명령을 어겼기에 그는 군법에 회부되었습니다. 

재판장이 물었습니다. ‘여보게 당신은 왜? 장교의 명령을 어겼는가? 그 자켓이 뭐라고 바다에 뛰어들었는가.’ 그랬더니 그 사병이 말합니다. 물론 지휘관의 명령이 중요한 것은 알지만 그 자켓은 저에게 너무 소중합니다. 그 자켓안에는 어머니의 사진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쟁터에 나올 때 어머니는 어머니의 사진을 주시면서 이 엄마의 사진을 보면서 너는 용기를 가지고 열심히 전투해서 평화를 위해 싸워라. 엄마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거야. 이렇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어머니의 사진을 보면서 용기를 얻고 열심히 싸워왔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용기의 근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어머니의 사진을 잃어버릴 수 없어서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때 재판관은 이렇게 판결을 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군의 명령도 중요하지만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미국 형법에는 아직 어머니를 사랑하는 자를 처벌하라는 법이 없으므로 자네를 벌줄 수 없다네. 돌아가 복무토록 하게나.’ 여러분 이 사병은 어머니에 대한 이 사랑 때문에 그는 이 바다에 뛰어 들 수밖에 없었다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부모님을 사랑하는 우리 교우들이 되시기를 꼭 부탁을 드립니다. 지난 주간 어버이날이 되니까 참 마음의 한 켠이 참 섭섭해요. 어머니는 한 12년 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셔서 이제는 효도할 부모님이 안 계셔요. 그래도 부모님이 계신 분들은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그래서 우리 경로대학 선생님들하고 마침 수요일 어버이날이 경로대학 날이었기 때문에 제가 자식을 대표해서 우리 선생님들하고 같이 큰 감사의 절을 드렸어요. 

여러분 부모님 살아계실 때 기쁘게 해드리세요. 잘 모시는 것 이것이 축복입니다. 성경은 분명 부모공경에 대한 약속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이는 내가 잘되고 장수 할 것이다. 복 받는 비결은 바로 거기에 있다. 특히 우리 젊은이들 우리 부모님들 공경 잘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서로 감사할 때 가정이 화목해 질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내 잘못을 고백할 때 가정이 화목해 질 수 있어요. 내 잘못을 고백하는 것 너무 중요해요. 창세기 3장의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너희가 왜 선악과를 먹었냐고 물으실 때 그들은 서로 변명했어요. 아담은 뭐라고 말했어요? 당신이 준 하와 이 여자가 줘서 먹었다고 핑계를 댔어요. 하와야 너는 왜 먹었느냐? 뱀이 꾀어서 내가 먹었다고 서로 핑계대고 책임전가 했어요. 내 잘못이라고 고백하지 못했어요. 이것이 서로 깨어지는 원인이었던 거예요. 여러분 가정에는 내 잘못입니다. 라는 고백이 있어야 해요. 

아주 옛날이야기죠. 어느 가정에 며느리가 새로 들어왔는데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없어요. 아침을 하라고 밥을 맡겨 놨어요. 이제 쌀을 앉혀놓고 뚜껑을 덮어 놓고 불쏘시게 가지고 불을 떼라고 그랬더니 이 며느리가 어리니까 그냥 장난을 치면서 하는데 이걸 제대로 못할 것 같아요. 한참 동안 불을 떼다보니까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까 밥이 새카맣게 타버린 거예요. 밖에서 일하던 시어머니가 뛰어 들어와서 뭐라고 말했을까요? ‘아니고 며느리야 걱정 말아라. 내가 물을 많이 부어야 하는데 적게 부었나 보다. 너 잘못 없으니 걱정 하지마.’ 며느리는 어쩔 줄 몰라. 

또 남편이 뛰어 들어와서 여보 내가 귀찮아서 물을 조금만 길러왔더니 이렇게 됐구나. 이거 내 잘못이지. 당신 잘못이 아니야. 또 시아버지가 들어와서 뭐라고 말해요? 애 며느리야 미안하다. 내가 그만 장작을 크게 패서 그걸 넣으니까 화력이 너무 쌔서 다 타버렸구나. 너무 미안하다. 이런 가정이 화목하겠어요. 안하겠어요? 

화목할 수밖에 없죠. 며느리가 경험이 없어서 밥을 다 태워 먹어도 시어머니도 내 잘못, 남편도 내 잘못이고, 시아버지도 내 잘못이고 이런 가정이 행복한 거예요. 어제 제가 어떤 방송을 듣다보니 그래요. 어떤 며느리가 나이 50이 다 됐는데 방송사에 편지를 보냈어요. 자기가 섭섭할 때가 있어요. 명절인데 방안에서는 남편과 시누이가 와서 깔깔거리며 웃고 있어요. 자기는 만삭에 배가 불러있는데 시어머니는 자기 일 가르친다고 너 지금 잘 배워야해. 하면서 너는 엄마가 없어 잘 모르지 하는데 그게 그렇게 섭섭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시어머니들도 좀 회개해야 해요. 시누이 딸들 오면 딸 좀 시켜요. 세상에 며느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 배부른 며느리를 일 가르친다고 쉬지도 못하고 하고 그렇게 하니까 며느리의 마음속에도 분노, 원망이 생기는 거예요. 우리 모두가 다 잘못했어요. 우리가 내 잘못이라고 고백해야 해요. 우리 옆에 분에게 이렇게 고백합시다. ‘내 잘못입니다.’ 

그래요. 이것이 내 잘못이고, 내 책임이에요. 남편이 좀 삐뚤린 길로 가면 내 잘못이에요. 왜? 내가 남편을 위해 기도하지 못했거든 내가 남편을 위해 더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하지 못해서 우리 남편이 빗나가 버렸어. 그거 내 잘못이에요. 

아내가 좀 이상해지면 남편들도 회개해야 해요. 내가 아내를 더 따뜻한 사랑으로 돌봐야 하는데 내가 그러질 못했어. 내 잘못이고 내 책임이에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가정이 화목할 때 거기에 행복이 있고 하나님이 그런 가정을 가장 기뻐하세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온갖 고기 산해진미가 거기 있고도 화목하지 못한 것 보다 낫다. 이런 화목한 가정 만들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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