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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진리의 사람입니다 (요이 1:1-3)

첨부 1


우리는 진리의 사람입니다.

요한이서 1 : 1 - 3

: 1 장로인 나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 2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로 말미암음이로다. : 3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옆에 계신 분에게도 축복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평안이 당신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이 한반도를 축복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이 땅에 함께 하기를 축복합니다.” 이 땅에 진정한 평화와 행복이 함께 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나누기에 앞서 먼저, 우리나라 몇 개 대학의 로고(=배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서울대학교입니다. 서울대학은 국립의 ‘ㄱ’과 서울의 ‘ㅅ’과 대학교의 ‘ㄷ’이 국립서울대임을 나태내고 있습니다. 그 아래 펼쳐진 책 위에 라틴어로 왼쪽에 ‘VERITAS/베리타스’라고, 오른쪽에 ‘LUX/룩스’와 ‘MEA/메아’라고 적고 있습니다. ‘VERITAS’는 ‘진리’, ‘LUX’는 ‘빛’, ‘MEA’는 ‘나의’라는 뜻입니다. 전체적으로 ‘진리는 나의 빛이다’이라는 뜻입니다. 서울대학교 동창회 로고는 라틴어를 빼고 ‘진리’라고 한글로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의 로고는 종종 미국 하버드대학교를 모방하였다고 비판을 받습니다. 하버드대학교는 라틴어로 ‘VERITAS’라고만 적고 있는데 이는 방패와 어우러져 ‘진리를 수호하는’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진리는 구체적으로는 기독교 진리입니다.

연세대학교는 로고에 책과 횃불을 그려 넣었습니다. 여기에서 책은 ‘진리’를, 횃불은 ‘자유’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호랑이로 상징되는 고려대학교는 건학이념이 ‘자유’ ‘정의’ ‘진리’임을 굵직한 글씨로 로고에 담고 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는 로고에 한자로 ‘진(眞)’ ‘선(善)’ ‘미(美)’라고 적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진은 ‘진리’를 말합니다. ‘진리에 기초하여 인류사회의 공동선을 향한 아름다움을 추구’하자는 것이랍니다.

제가 공부하였던 대학의 옛 로고는 진리, 사랑, 봉사라고 적었습니다. 미국의 어느 대학의 로고와 비슷하다 하여 지금은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열성도 식어진 것 같이 보입니다.

위에서 소개한 대학들은 모두 건학 이념에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곳입니다. 대학은 진리의 전당입니다. 그런데 대학이 진리를 탐구한다지만, 무엇이 진리이냐는 말에는 대학마다 다른 대답을 할 것입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지만 ‘어떤’ 책인지도 다를 수 있습니다. 모두 성경책은 아닙니다.

과연 진리란 무엇입니까? 오늘 이 시대는 같은 말을 사용하지만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신앙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다시 점검하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오늘 말씀은 성도인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 성도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I. 성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성도(聖徒), 거룩한 무리라고 합니다. 성도와 진리는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1절 말씀입니다.

: 1 장로인 나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요한이서를 기록한 분은 예수님의 가장 젊은 제자였던 사도 요한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 그리고 요한 일, 이, 삼서를 기록하였습니다. 요한은 자신을 장로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어른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받는 이들은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입니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여성과 그 가족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은 교회와 그 성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요, 또한 그 자녀들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들을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어느 교회와 그 교회의 성도들에게 사랑한다고 편지합니다.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진리를 아는 모든 사람은 다른 교회의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가리켜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1. 우리는 진리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진리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서 ‘진리’라는 말은 그 자체로써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진리[ajlhvqeia/알레데이아]’는 일반적으로 진리라는 말이 가리키는 데로 객관적인 진리, 사실, 진실 등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진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느냐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프랑스의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인 끄로드 모르강의 ‘인간의 증거’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세계 제2차 대전에 참전하여 독일군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폐결핵으로 석방이 되었으나 계속하여 지하 저항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독일 비밀경찰에 다시 체포되어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동료들과 사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조국 프랑스의 국가를 힘차게 부릅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인간을 죽일 수는 있다. 그러나 진리는 영원히 죽이지 못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목숨은 죽여도 신념은 죽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영원히 죽일 수 없는 진리란 무엇이겠습니까? 아마도 자유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유가 곧 진리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시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8:32 말씀입니다.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들이다. 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 8:31-32[새])는 말씀입니다. 

이에 그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반문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일이 없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까?”(요 8:33)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될 필요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살이를 하였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었습니다. 지금도 로마에 의하여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종노릇한 일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정치적인 억압을 받았지만, 정신적으로는 종이 아니라 자유하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긍지이자 자부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사람은 다 죄의 종이다”(요 8:346). 이것은 그들이 정신적으로 노예가 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의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롭게 될 것이다.”(요 8:36)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유롭게 해 주셔야만 자유롭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죄에서 자유롭게 되는 길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말씀이신 자신을 믿어야만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또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롭게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진리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사람들을 죄에서 자유하게 하는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인간의 죄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다시 살게 하심으로 지극히 존귀하신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이 바로 진리이십니다.

또 다른 말씀에서 예수님은 더욱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근심하였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 14:1[새])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것이 곧 영원한 생명을 가지는 것이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있는 길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믿음 없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도마가 질문하였습니다. “주님, 우리는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요한복음 14:6 말씀입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시는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사람을 영원히 살게 하는 생명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른 길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 진리입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진리가 아니라, ‘누가’ 진리입니다. 사람들을 죄에서 자유하게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님이 진리이십니다. 부활하심으로 지극히 존귀하게 되어 그 이름을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을 진리로 아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자유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은 진리를 알기 위하여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셨습니까? 진리를 알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우셨습니까? 우리가 진리를 아는 사람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II. 이유
  
사도 요한은 자신과 진리를 아는 모든 사람이 이 말씀을 받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2절 말씀입니다.

: 2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로 말미암음이로다.

사도 요한은 자신과 진리를 아는 모든 사람이 이 말씀을 받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유가 진리로 말미암음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예수님 때문에 그들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는, 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오늘 말씀은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라고 합니다. ‘거하다[mevnw/메노]’는 말은 ‘머물다’, ‘계속해서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는 ‘지금 계속해서 머물러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가 그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진리가 들어와 머물러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진리를 아는 사람이 된 것 역시 진리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거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 우리 안에 진리가 거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는 진리가 우리에게 들어오셔서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우리가 믿는 진리는 그 어떤 다른 사실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은 그 분을 믿는 사람 안에 들어오셔서 그 사람과 함께 계십니다.

어떤 어린이가 영접기도를 배웠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드리면 그에게 예수님이 들어와 함께 계시게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어린이는 영접기도를 하였습니다.

“예수님! 내 마음에 들어오셔서 내 마음에 항상 계셔주세요. 그래서 나쁜 일을 하지 않게 하여주세요. 착한 마음으로 착한 일만 많이 하게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들어와 계시다는 설명을 듣고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이가 예수님을 영접한 다음부터 밥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왜 밥을 먹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셔요. 그런데 내가 밥을 먹으면 예수님 머리 위로 밥알이 들어가요. 예수님을 더럽힐까봐 못 먹겠어요.”

참으로 어린이다운 기특한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 어린이는 예수님이 영으로 그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아직 몰랐습니다.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으나,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7 말씀입니다.

(요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을 떠나심으로 성령님께서 오셔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세상에 몸으로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영으로 사람들과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말씀은 바로 하나님이신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말 역시 진리의 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령의 시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신에게 예수님이 진리의 영으로 함께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우리 안에 진리가 계시기에 우리는 진리를 아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해서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알기 위하여 밤을 지새워 공부하였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또한 진리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혜사에 대하여 설명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6 말씀입니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우리에게 들어와 함께 거하시는 진리의 영은 들어왔다 나갔다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한 번 들어 오셔서 영원토록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 안에 계시고 또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

어떤 날, 한 랍비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진리는 길에 널려있는 돌멩이처럼 흔한 것이란다.”

그러자 한 제자가 랍비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진리가 그렇게 흔한 것인데 왜 사람들은 진리를 터득하지 못합니까?”

랍비는 다시 대답합니다.
“그거야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기 싫어하기 때문이지. 허리를 굽히기 싫어하기 때문에 돌을 주울 수가 없단다.”

우리가 진리를 터득하지 못하는 것은 겸손히 허리를 구부려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고 영원히 함께 계실 그 분을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 분께 도와주시를 겸손하게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절하게 간구하지 않기 때문에 함께 계신 진리를 더욱 깊이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진리에 대한 배고픔’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모르는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없는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전혀 짐작도 못하는 진리를 두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함께 계시며 영원히 함께 계실 진리를 믿고, 진리가 어떻게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지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영접한 진리가 얼마나 풍성하고 얼마나 놀라운지를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아는 자들일 뿐만 아니라 더욱 깊이 풍성하게 알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함께 계신 진리를 믿고, 더욱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엡 3:19)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진리에 대하여 더욱 풍성하게 알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도의 축복기도가 있습니다.

  
III. 축도
  
사도는 진리 안에 있음으로 진리를 아는 자들에게 진심으로 축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또한 누려야 할 내용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 3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사도 요한은 말씀을 받는 사람들을 축복합니다. 사도는 그들에게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함께 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은혜[cavri"/카리스]’는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그리고 ‘긍휼[e[leo"/엘레오스]’은 ‘자비’입니다. ‘평강[eijrhvnh/에이레네]’은 ‘행복’, ‘평화’, ‘전쟁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진리와 사랑 안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진리를 아는 사람은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누려야 하는 것들입니다.

1. 우리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누립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이 기쁨은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이 불렀던 복음송가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당신의 삶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축복의 노래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하게 되는 가사는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있다고 하는 것만으로 기쁘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이 축복하여야 할 다른 성도가 곁에 있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요즘 딸이 낳은 아기를 보면서 느끼는 저의 기쁨입니다. 아기는 아무 것도 내게 해 주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냥 있다고 하는 것만으로 기쁨입니다. 똥을 싸고 울고 보채도 곁에 있다고 하는 것만으로 기쁨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지금 내 안에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하여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그 분을 알기 전에 그 분이 우리를 먼저 아셨다고 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기뻐하여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더라도 나 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예수님 때문에 평화를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를 아는 사람입니다. 머리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온 몸과 삶으로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누리고 있고, 더욱 풍성하게 누려야 할 사람들입니다. 나사렛 예수,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는 고난을 당하셨으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예수님이 진리임을 확신하십시오. 결코 흔들리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진리는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진리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여러분에게 더욱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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