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담대한 성도가 됩시다! (행 4:13-22)

첨부 1


담대한 성도가 됩시다! (행 4:13-22)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와 요한의 행동을 보면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담대함”이다. 그들은 지금 구금상태이고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을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도들의 모습은 전혀 위축되어 있지 않았다. 도리어 공회원들을 책망하고 있었다.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공회원들은 사도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위협한 후에 풀어주고 말았다. 공회원들은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이 사람들, 갈릴리 어촌 사람들 아니야? 무식한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어떻게 된거지?”

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사도들의 거침없는 유창한 설교, 물러서지 않는 담대한 용기, 접근할 수 없는 영적인 권위... 이런 담대함이 도대체 어디로부터 왔는가? 

물론 직접적인 동기는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다. 그때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성령님의 충만하신 임재가 그들을 담대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그들을 어떻게 변화시켜 놓았는가? 

1.성령께서 두 사도들의 마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셨다.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19절의 말씀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지금 하나님 앞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 앞에 있지 않았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예수님을 부인하고 숨고 도망쳤던 사람들이었다. 예수님 보다는 자신의 목숨이 더 소중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앞에서 두려워 떨던 그들이 지금은 어떻게 그렇게 담대해질 수 있었는가?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임하셔서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의 의미는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 중심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렇게 된 동기는 자신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일, 곧 자기들을 위해 독생자를 아낌 없이 내어주신 그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랑은 무서운 힘이 있다. 우리 안에 두려움이 있는 것은 아직 그의 사랑 가운데 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죄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을 깨닫게 되면 그 사랑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 때 비로소 담대함을 얻게 된다. 

성령께서 나의 맘을 감화 감동시키사 하나님의 그 사랑을 깨닫게 해 달라고 구하자. 
그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숨지 않게 된다.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써주소서. 이와 같은 담대한 성도가 될 줄로 믿는다. 

2.성령께서 진리를 깨닫게 하셨다

18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절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18절에서 공회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경고하였다. 공회원들의 경고에 대하여 사도들은 공회원들에게 되묻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전파하고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우리가 누구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까? 당신들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 순종해야 합니까? 판단해 보세요!”

사도들은 공회원들 앞에서 당당하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공회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본래 학문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들의 이와 같은 용기와 지혜는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그 동력은 성령님이시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신다. 진리를 깨닫게 되면 담대해진다. 비진리가 드러나게 된다. 진리를 소중히 생각하게 된다.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다. 진리를 깨닫게 되면 세상의 말이 값어치 없는 가벼운 말들 허탄한 말들이라는 것은 아는 분별력이 생긴다. 

시 18:3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여러분,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불순종하게 된 이유도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경솔함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셨다.
창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오늘날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하나님의 음성보다는 이웃의 음성을 더 크게 듣는 것이다. 그러니까 높은 사람, 힘 있는 사람, 지식이 있는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귀담아 듣는다. 그래서 실패하는 것이다. 

시 119: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 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개역)

예)어떤 자매, 고3 여름방학때, 수련회 문제로 담임선생님과 부딪히게 되었다. 선생님은 “미쳤니?” 그러나 그 자매는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수련회에 참석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매를 귀하게 쓰시려고 지금 준비하고 계신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질 때 담대해 진다.

3.성령께서 사도들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하게 하셨다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사도들의 보고 들은 것은 무엇인가? 3년 동안 예수님께 진리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놀라운 일들을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분이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신 것과 부활하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벙어리였다. 보고 들었으나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임하신 후 그들은 그들이 보고 들은 것,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힘 있게 전파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담대한 증인이 된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전도폭발 프로그램을 개발한 미국 프로리다주의 코럴릿지교회의 제임스 케네디 목사, 
교인 한 사람을 데리고 전도하러 어느 집을 방문했다. 벨을 누르고 사람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그는 기도했다. “성령님 이 영혼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는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헐크같이 험상궂고 레슬러같이 덩치 큰 남성이었다. 제임스 케네디 목사님은 그 사람 앞에 기가 죽고 말았다. 그는 예수님의 “예”자도 꺼내지 못하고 날씨 얘기 몇 마디하고는 대문 앞에서 물러 나왔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성령충만하지 못했고, 둘째는 무엇을 전해야 할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돌아가서 체계적으로 복음을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서 내놓은 것이 전도폭발 복음제시였다. 그 도구를 통해 전도폭발임상훈련을 시작해 많은 성도들을 복음으로 무장시키는 사역을 하고 있다. 훈련을 받은 성도들은 무장되어 있기 때문에 담대해 질 수 있었던 것이다.

사도들에게는 이미 보고 들은 증거들이 있었다. 그러나 성령충만하지 못할 때 그들은 생명의 주님을 부인하고 숨고 피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 그들에게 두려움이 사려졌다. 그들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대가 권세 있는 유대교의 최고 지도자들이라 할지라도 전혀 문제가 되질 않았다. 그들의 증거를 막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일상의 준비와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년 다윗이 골리앗과 맞섰을 때 하나님의 영이 그를 감동했다. 담대하게 적장과 맞섰다. 그가 가진 무기는 지팡이와 물매 5개 였다. 그리고 단 한 개의 물매돌을 던져 골리앗을 쓰러뜨렸다. 운이 좋았나요? 기도를 많이 했나요? 성령충만했기 때문인가요?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은 그가 평소에 연습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삼상 17: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경건의 훈련은 우리로 하여금 담대하게 한다. 그러나 경건의 훈련이 없으면 모양만 남게 된다. 바람이 불면 날아간다. 사도들도 3년 동안 주님을 따르면서 열심히 듣고 배우며 훈련 받았다. 
나는 가슴만 뜨겁고 머리는 빈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반대로 머리에 찬 것은 많은데 가슴은 냉냉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가슴도 뜨겁고 머리도 찬 사람을 쓰신다. 그들은 자신 있게 예수가 그리스도되심을 담대히 증거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배우는 사람들이다. 성경읽기와 성경공부하는 모임에 시간을 투자하기 바란다. 담대한 성도가 될 줄로 믿는다.

4.성령께서 그들에게 치유의 능력을 주셨다.

22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사도들은 40년 동안 앉은뱅이로 살았던 걸인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켰다. 사도들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충만히 임하셨들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킬 수 있었다. 그 증거로 병 나은 사람이 사도들과 함께 증인으로 옆에 서 있었다.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있었기에 공회원들이 시비를 걸 수가 없었다. 

성령께서는 사도들에게 치유의 능력을 주셨다. 그 경험이 그들을 더욱 담대하게 했다. 사도행전에는 사도들이 행한 놀라운 일들,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도 살리는 기적들을 많이 기록하고 있다. 성령께서 사도들과 함께 일하신 것이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도 부른다. 

그렇다면 오늘날도 이와 같은 표적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물론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사도시대와는 다르다. 그 당시에는 계시가 완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에 의해 기적들이 많이 나타났고 그 표적을 통해 교회를 세우시고 복음을 전파하게 하였다. 그러나 사도들이 죽은 후에는 표적들이 많이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분명한 표적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이다. 성경은 사도시대 이후 교회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자 표적이다. 

딤후 3:15 ...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참된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듣고 묵상할 때, 우리는 주의 음성을 듣게 된다. 진리를 깨닫게 된다. 상한 마음이 위로를 받고 치유의 역사가 나타난다. 회복의 역사가 나타난다. 

여러분, 최고의 기적은 나 같은 죄인이 예수를 믿어 구원 받은 것이고, 옛 사람의 속된 자아가 깨어지고 그리스도의 성품이 내 속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날마다 내 속에서 경험되어지면 우리는 담대해진다. 

히브리서 11장에 소개되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 같이 용기 있는 담대한 사람들이다. 
그러면 그들이 처음부터 담대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모두 허물 많은 사람들이었다. 연약해서 인간적인 생각을 품다가 곤욕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들 모두 믿음의 결단이 있었다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우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은 순종하며 나아갔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참으로 귀하게 쓰임을 받았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그들을 평가했다.

히 11: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어떤가? 
대체적으로 너무 유약해졌다. 쉽게 포기하고 주저 앉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세상을 더 두려워하는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세상에서 짓밟히는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만다.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계셔서 22년 전에 이곳에 부천평안교회를 세우셨다. 
그리고 주의 은혜로 오늘날까지 별 탈 없이 성장하게 하셨다. 이제는 청년 교회로 더욱 건강하게 성장하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에게 담대함이 필요하다. 사도들에게 주셨던 그 담대함 그 패기,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 말씀이 그 해답이 될 줄로 믿는다.
1)하나님 앞에서 - 코람데오
2)진리의 말씀을 사랑해야 한다
3)복음의 증인으로 준비
4)말씀으로 치유되고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성도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