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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눅 19:2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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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눅 19:28-44)
  

들어가는 말

오늘 말씀의 주제는 회개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 목사님의 회개기도입니다.
“오 주님, 이 밤 제물을 올립니다.
제 상한 심령을 제물로 드립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선하심을 따라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풍성한 자비하심을 따라 저희 죄를 제거하소서.
주님의 말할 수 없는 자비로써 제가 지은 죄에서 자유하게 하시고, 제가 받아 마땅한 징벌로부터 구해주소서.
오, 모든 어둠의 행실에서 구하시고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을 씻기소서.
그리하여 때가 이를 때, 정결한 마음과 생각으로 오직 한 분이신 참되신 하나님을 따르게 하소서.” 

저는 지난 3월 15일에 알마티에서 사역하는 주민호선교사로부터 한 컷의 동영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안내 글을 적었습니다.
“한국에서 사역하시는 한 선교사님이 보낸 동영상을 전달합니다. 저 개인적으로 한국을 위한 회개기도에 아픈 마음으로 동참하면서 함께 나눕니다. 한국을 위해 기도로 막아설 의인들이여 일어나십시오.”

동영상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신18:18-22절의 말씀이 나왔습니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이어서 Dr. David Duwor가 예언하고 성취된 내용이 나옵니다.
2009년 11월 24일에 아이티, 도미니카 대 지진을 예언했습니다.
2010년 1월 12일 대지진으로 10만 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2009년 7월 20일에 미국에 강력한 허리케인이 올 것을 예언했습니다.
2009년 8월 29일 허리케인 카타리나로 원폭을 입은 듯 수천 명이 사망했습니다.
2009년 8월 1일에 남태평양 사모아 섬의 대지진을 예언했습니다. 
2009년 9월 29일 리히터 규모 8.0의 대지진이 일어나 80명이 사망했습니다.

2009년 10월 5일에 중국 지진을 예언했습니다.
2010년 4월 14일 창하이 성 대지진으로 1,000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2009년 1월 20일에 칠레 지진을 예언했습니다.
2010년 2월 27일 리히터 규모 8.8의 지진이 일어나 700명이 사망했습니다.

문제는 Dr. David Duwor라는 사람이 제2차 한국 전쟁을 예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한국은 도를 넘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이 땅의 신문을 도배하는 불의를 보고 이런 판단을 잘못된 판단이라고 항변할 수 있겠습니까?
시간이 다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장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주민호선교사가 이런 동영상을 보내면서 기도로 민족의 재앙을 막아설 의인들이여 일어나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종려주일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부터 한 주간 ‘Holy Passion week'라는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은 겉옷을 벗어 나귀 등에 걸쳐놓거나 길에 깔았습니다.
사람들은 길가에 늘어서서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외쳤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몇몇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의 외침을 신성모독이라고 제지하였습니다. 
그때 주님은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오사 성을 보고 우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저는 본문을 읽으면서 주인공은 ‘나귀 새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귀 새끼’라는 말이 반복하여 나옵니다.
30절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33절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가 이르되.......”
35절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그래서 이번 종려주일에는 나귀 새끼를 통하여 전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1. 순종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30절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예수님은 왕으로서 자신의 왕도인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면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그 당시 왕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는 말을 타고 입성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그는 세상 왕들과 다르게 겸손과 평강의 왕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스가랴의 예언을 보십시오.
슥9:9절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나귀는 순종의 동물이긴 합니다.
그러나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사람을 태우면 불편하고 어색할 것입니다.
몸을 비틀면서 몸부림을 칠 것입니다.
‘야생마 길들이기’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본문에 보면, 나귀 새끼가 반항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나귀 새끼가 눈만 껌벅거리면서 예수님을 등에 태우고 뒤뚱거리면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눈에 선하지 않습니까?

순종!

순종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느낄 수 없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2. 예수님과 함께 하면 영광을 받습니다.

사람들이 나귀 새끼의 등에 겉옷을 걸치고, 나귀가 가는 길에 겉옷을 펼쳤습니다.
35-36절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놓고 예수를 태우니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먼지가 이는 흙길, 울퉁불퉁 거친 산길만을 걸었던 나귀 새끼는 부드러운 옷 길 위를 걸었습니다.
왕이 걸었던 붉은 카펫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종려나무를 꺾어 흔들며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38절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나귀 새끼는 등에 태온 예수님 때문에 덩달아 영광을 받았습니다.
원님 덕분에 나팔 부는 격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과 함께 하면 영광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과 함께 하면 지는 것 같지만 이깁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과 함께 하면 실패하는 것 같지만 성공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과 함께 하면 늦는 것 같지만 가장 먼저 갑니다. 
반드시 그렇습니다.

3. 예수님은 영원한 왕이십니다.

38절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늘에는 평화’라는 말은 ‘하나님께 평화’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평화’라는 것은 인간이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관계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화해한다는 의미입니다.
롬5: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나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했더라면 그들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진정한 구원과 충만한 은혜를 만끽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4. 그런데 예수님이 우셨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날에 예수님이 우셨습니다.
41절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예수님을 모신 나귀 새끼도 머쓱해졌고, 슬퍼졌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우신 적이 세 번 있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우셨고(요11:35),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우셨고(마26:38,39), 그리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우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우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먼저,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타락 때문에 우셨습니다.
사람들의 타락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강도의 굴혈(46절)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119:136절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같이 흐르나이다.”
시119:158절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거짓된 자들을 내가 보고 슬퍼하였나이다.”
또한 예수님은 메시야인 자신을 십자가 죽음에 내모는 유대인들의 어리석음 때문에 슬퍼하셨습니다.
눅19:42절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그리고 주님은 장래 예루살렘 성에 닥칠 비극을 보고 우셨습니다.
눅19:43-44절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

로마의 장군 티투스(Titus)는 A.D.70년에 그의 직속 정예부대인 제 10군단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쳐들어와 성 주변에 토둔을 쌓고, 사흘 만에 예루살렘 성을 완전히 봉쇄했습니다.
결국 음식의 보급을 끊어졌고, 예루살렘 성은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참화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2천 년 동안 나라 없는 유랑민족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2013년 종려주일을 맞이하는 교우들에게 묻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한국에 오신다면 우실까요, 웃으실까요?
오늘 예수님이 우리교회에 오신다면 우실까요, 웃으실까요?
오늘 예수님이 나에게 오신다면 우실까요, 웃으실까요?

올해 우리 한국 감리교회는 ‘하디 선교사 원산 대부흥 110주년’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디 선교사는 성령의 부으심으로 죽은 영혼을 살리고, 병든 영혼을 고치고, 잠든 영혼을 
깨웠습니다. 

원산 부흥은 원산에서 활동하던 캐롤(Miss Arrena Carroll)과 노울즈(Miss Mary H. Knowles)라는 남감리교회 여성 선교사들의 집에서 1903년 8월 24일부터 30일까지 있었던 선교사들의 기도모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모임에는 총 7명의 선교사들이 참석했는데 이 중 네 명은 원산주재 남감리교 선교사들이었고, 한 명은 원산주재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Miss Louise Hoard McCully)였으며, 나머지 두 명은 각각 중국과 서울에서 활동하던 남감리교 여선교사들이었고, 이 두 명의 여자 선교사들은 원산에서 3주 동안만 머물렀습니다. 

남감리교 선교사들 중 원산 지역에서 가장 오랫동안 선교했던 로버트 하디(Robert Alexander Hardie,1865-1949, 한국명 하리영)는 “효과적인 기도를 위한 세 가지 필수요소들”이라는 주제를 놓고, 요한복음 14:12-14절, 15:7절, 그리고 16:23-24절을 본문으로 정하고, 각각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faith in Christ)”,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abiding in christ)”, 그리고 “오순절 성령세례의 경험(an experience of Pentecost)”이라는 강연을 준비했습니다.

강연을 준비하던 중 하디는 자신에게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이 없으며, 자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지도 않았고, 성령의 충만을 갈급해 하지도 않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강연을 준비하면서 자신이 문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디는 이런 과정에서 성령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것을 동료 선교사들에게 전했을 때, 그들에게도 동일한 성령체험이 있었습니다.

이 모임에 참석했던 조세핀 하운젤(Miss Josephine Hounshell)은 “성령이 우리 가운데 찾아 오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다음 주일 아침에 하디는 원산의 교인들에게 수치스럽고 곤혹스러운 얼굴로 자신이 교만했던 것과 고집을 부렸던 것과 믿음이 없었다는 것을 고백하였습니다.
하디는 한국에 파송된 대부분의 다른 서양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학벌과 실력을 성령의 역사하심보다 더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인을 미개하고 무식한 백성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교만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낱낱이 드러나자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경험은 선교사들의 자녀들에게도 일어났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는 하디와 같이 캐나다 출신이면서 초기 미북감리교회 의료선교사로 내한한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1860-1894)의 아들인 셔우드 홀(Sherwood Hall,1893-1991)입니다.

그는 1906년 평양 남산현교회에서 있었던 하디의 집회에서 성령을 체험한 후, 사업가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버리고, 대신에 하디가 졸업한 토론토 대학교 의과대학을 1932년도에 졸업하고, 한국에 다시 돌아와 의료선교사로 사역을 했습니다.

셔우드 홀은 “자신은 하디의 집회에서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의료선교사로 자신의 삶을 바치기로 결심한 어린이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말하며 하디를 “영적인 아버지(spiritual father)"로 우러러 본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디로부터 시작된 성령체험은 다양한 한국인들에게도 임했습니다. 
하디는 교인들을 초청해놓고 매일 성경공부를 인도했습니다.
당시 원산교회는 건축 중이었기 때문에, 모임은 주로 쌓아놓은 목재 더미 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 모임에서 한 젊은 남자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저지른 죄의 목록이 적힌 종이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한 젊은이는 하디가 인도하던 주일예배가 끝마칠 쯤,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신은 며칠 동안 자신이 저지른 죄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래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디의 ‘원산 대부흥’에서와 같이 성령이 임하면 회개와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 한국 감리교회는 ‘하디 선교사 원산 대부흥 110주년’을 기념하면서 이번 종려주일, 고난주간, 그리고 부활주일을 통하여 깊은 회개운동이 일어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이 걷고 있는 인생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만이 아닙니다.
잘못된 인생의 방향에서 180도로 돌아서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에는 반드시 행동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은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의 운명을 내다보고 우셨습니다.
주님의 눈물에 동참하십시오.
자신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십시오.
자녀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십시오.
이 민족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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