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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사 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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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사 1:10-17)


개그우먼 이성미 집사는 1980년 TBC 개그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으며 데뷔하여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87년 백상예술대상 코미디연기상, 88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라디오방송 진행상, 98년 제10회 한국방송 프로듀서상 출연자상도 탔습니다.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웃음을 선물하는 개그우먼이었지만 그녀의 내면은 어두웠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몰려온 상실감 때문에 2002년 세 아이와 함께 캐나다로 떠났습니다. 7년 동안 캐나다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아들에게 엄청 욕을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들에게 욕을 하고 돌아서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아들을 정말 그렇게 만들어줄까” 순간 너무 무서웠습니다. 욕한 대로 아들이 되는 것을 상상하기조차 싫어 그날 이후로 아들에게 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변하니까 아들이 완전히 달라졌고 지금은 신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집사는 오랫동안 형식적 신앙생활을 할 때는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듣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나니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돌아와 연예인선교, 북한선교에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무속인들은 귀신이 새벽에 산에 올라가라면 따지지 않고 그대로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데 지체할 수 있나요. 무조건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유익한 신앙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위한다고 신앙생활 해오면서 혹여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해오지 않았습니까? 욕도 잘하고 화도 잘 내고, 불평도 잘하고, 미워하며 산 것이 아니었습니까? 하나님과 전혀 무관한 신앙생활은 아니었습니까?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행하는 모든 신앙행위가 도무지 내게 무엇이 유익하냐?”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성전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예배를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된 하나님의 경고가 본문에 나옵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배 받기가 괴로우니 차라리 예배를 드리러 오지 마라, 마당만 밟으러 오는 사람들이니 차라리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구나! 번제와 제사도 드리지 마라, 너희가 드리는 예물은 받지 않겠노라” 선언하십니다. 현대 교회와 교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고의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유익이 되지 않는 예배의 이유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헛된 제물을 바치기에 

윌리엄 더글라스(W. I. Douglas)는 구두 제조업자로 대성한 인물입니다. 성공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한 때에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구인광고를 찾아 전전긍긍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급기야 수중에 1달러밖에 남지 않게 되는 절박한 상황까지 이르렀는데 그날은 주일이었습니다. 헌금함 앞에서 남아 있는 전 재산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선뜻 50센트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다음 날 이웃 마을에 일자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기차표를 끊으러 역전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기차 요금은 1달러였기에 할 수 없이 50센트로 갈 수 있는 거리까지의 표를 사고 나머지는 걸어갈 양이었습니다. 이윽고 50센트만큼의 거리를 지나 걸어가고 있는데, 역 한 구간도 채 못가서 새로운 구인 광고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편안하고 가벼운 구두제작에 함께 참여할 사람 구함’ 그는 단숨에 공장으로 달려가 30분만에 취업이 되었습니다. 보수도 애당초 목적지보다 주급 5달러를 더 받는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구두제조업에 발을 내디딘 더글라스는 성실과 꾸준함 그리고 언제나 아낌없이 최선의 정성을 드리는 그의 신앙으로 인해 대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지금의 500만 달러보다 그 당시 50센트는 내게 더 큰 의미였습니다.” 이렇듯 정성이 담긴 제물은 우리의 삶을 넉넉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헛된 제물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킬 것입니다.

본문 13절입니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예배를 받지 않았습니까? 헛된 제물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성소에서 드리는 제물에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가장 흠 없고 순결하고 최상의 것이어야 했습니다. 제물은 항상 흠 없는 어린 양이신 예수를 예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최상품을 드리기 아까워했습니다. 그들은 병든 제물과 저는 것들, 잘못 태어난 기형 양이나 송아지, 또 눈멀고 형편없는 제물들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기에 가장 귀한 보화 드리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기를 즐겨하십니까? 우리의 시간, 우리의 물질, 우리의 힘, 우리의 모든 것과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결코 아깝지 않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배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타성에 젖어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배가 아니라, 마음과 몸과 정성이 함께 어우러져 드리는 예배입니다. 자신들의 격식을 갖춘 예배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린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공경하는 마음이 없이 드리는 헛된 제사라고 단정하시며, 마당만 밟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하십니다. 회개와 순종이 동반되지 않는 제물은 하나님이 결단코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유익을 드림이 아니라 해를 끼치는 영적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신령한 마음으로 예배와 제물을 기다리십니다.  

둘째로 헛된 기도를 드리기에 

숲속에 움막을 지어놓고 혼자 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식사하기 전과 잠자기 전에 꼭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어릴 때 배운 기도만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는 기도를 할 때마다 유리병에 호두를 넣어서 기도하는 횟수를 세어보기로 하였습니다. 날이 지나자 호두는 여러 병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유리병이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그는 만족을 느꼈고 마음이 거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호두알로 가득 찬 병들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호두알 하나마다 한 번의 기도를 나타냅니다.” “망치를 가져다가 호두알 하나하나를 깨트려 보게” 그는 예수의 말씀대로 호두알을 깨뜨려 보니 알맹이는 하나도 없고 껍질만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자네 기도는 이 호두처럼 다 비어있네. 자네는 기도의 횟수와 말은 많이 했지만 마음은 항상 다른 곳에가 있었네. 기도란 말로 떠드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하나님과의 대화가 기도의 참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네.” 눈만 감고 말만을 되풀이 하고 감정을 폭발시키는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십니까? 알맹이 없는 빈 껍질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원치 않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귐을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중심을 뜨겁게 할 수 있는 기도야말로 헛된 기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과학과 물질문명의 발달로 더 이상 절대적인 존재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지어 기독교인들조차도 기도의 필요성은 수긍하면서도 절실하게 기도하며 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또한 기도에 대해 편견과 오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된 기도를 드리기보다 욕구를 채우기 위한 기복적인 기도에 머물러 버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타 종교의 기도는 기도하는 자신의 행복과 영달이 목적이지만 기독교의 기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드려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께서 가르치시는 참된 기도입니다. 더 이상 헛된 기도를 드리는 예배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참된 기도에는 영적인 힘이 있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습니다. 헛된 기도를 드리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기도를 드림으로 승리하는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헛된 행실을 보이기에 

‘도가니’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소재로 하는 영화입니다. 장로와 교인들이 악을 행하고 이를 비호하는 모습을 통해 크리스천들의 위선과 가식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기득권 세력과 한패가 되어 장애아들을 짓밟는 일에 동조하고 있다고 풍자하였습니다. 영화를 통해 특히 크리스천들은 교회 안에 깃들어 있는 거짓과 위선을 자각하고 악행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자, 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김병삼 목사는 영화평에서 장로·변호사·판사·검사·교육계 등 총체적으로 어두운 그늘이 만들어 놓은 아픔을 다루는 총체적 비리의 도가니이며 영화 내내 곳곳에서 보이는 십자가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고 지적합니다. 십자가는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름지기 총체적 어둠과 악행의 도가니가 아닌, 총체적 선행의 도가니가 만드는 밝은 세상을, 즉 어둠의 도가니를 빛의 도가니로 만드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16절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왜 하나님이 예배를 받지 않으셨습니까? 악을 행하며 모이는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 없이 예배하다보니 그들의 행동 또한 악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금식하고 성회에 모이면서도 서로 다투고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서로 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탄식하셨습니다.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고 손에 피가 가득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우실 수 없다고 하십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은 명목상으로 금식하고 십일조 바치고, 안식일과 절기를 통해 성회에 모이고 각종 제물들을 바쳤지만 진정으로 거듭난 신앙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악하게 행하고, 싸우고 질투하고 모함하고 비판하며, 미워하여 남을 해하려는 의도로 피가 가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페니(J. C. Penny)는 체인점을 2천개나 갖고 있는 부자로, 58세에 파산하였지만 신앙으로 시련을 극복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새 출발을 할 때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는 황금률을 자신의 사업과 생활의 표어로 정하였습니다. 서서히 사업이 일어나면서 그는 교회와 사회사업에 많은 돈을 바쳤습니다. 은퇴 교역자들을 위해 플로리다에 백 가구의 주택을 지었습니다. 그는 말년에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전에는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이니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다음부터는 주는 기쁨이 움켜지는 기쁨보다 훨씬 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에 있어서 신앙과 거리가 먼 것은 아니십니까? 교회에 다니면서도 세상의 오락과 세속적인 일에 우선권을 두는 일, 성품이나 인격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좋지 않음을 드러내는 일, 직책을 놓고 권력 다툼을 하거나 명예를 얻기 위해 싸우는 일, 분파를 만들거나 당을 짓고 반목하거나 이권 다툼을 벌이는 일, 다른 사람을 질투하고 모함하는 일은 악하고 치명적인 일이었습니다. 

예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악을 행하면서 예배하는 동안 하나님은 외면하십니다. 따라서 삶을 바꾸고 행동과 습관을 바꾸고 가치관을 바꾸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서 예배하여야 합니다. 행동과 태도가 신앙에 의해 변화된 존재로 드리는 예배만이 하나님께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께 산제사 드려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헛된 제물보다, 헛된 기도보다, 헛된 행실보다 참된 제물과 참된 기도와 참된 행실로 하나님께 유익을 드리며 예배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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