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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에 충격 주는 삶 (계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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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시록은 미래에 될 일을 미리 계시하신 말씀입니다. 사도요한이 밧모 섬에서 유배생활 할 때 받은 계시를 그대로 적어놓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계시록의 말씀은 대체적으로 어렵고 난해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말씀은 계시록에서 입문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이고 서론적이고 그러면서도 가장 쉬운 말씀입니다. 여기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 말씀은 “내가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로 받은 말씀”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이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때가 가까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때가 가까웠다”라는 말은 “승천하신 주님이 다시 오실 시간이 가까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이 임박한 시간개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즉 종말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합니다. 그래서 종말신앙이 가장 좋은 신앙입니다. 이 종말신앙이 없으면 신앙인으로서 그 시대를 자신을 잘 지켜 살아가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며 살아가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잘 세우고 다지고 살아가는 방법이 이 세 가지입니다.

“읽는 일”

읽는 일이 참 중요합니다. 읽는 일은 무슨 책을 읽든지 중요한 일입니다. 거기다 성경을 읽는다면 더 중요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강한 이유가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이 이스라엘민족이 읽는 민족이라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은 교육 중 가장 큰 특징은 읽게 하는 교육입니다. 그것도 성경의 율법서를 아이들이 아주 어려서부터 읽게 합니다. 구약 신명기서를 보면 이 말씀을 미간에 붙이고 손목에 매고 문설주에 바르고 읽게 하고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매일 보고 읽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교육이 이 율법서를 아주 어려서부터 읽게 하는 것이 교육방법입니다. 왜 읽는 교육이 중요하냐 하면 읽을 때 많은 생각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을 때 눈으로는 책을 보지만 마음과 생각으로는 그 보는 내용이 머릿속에서 상상되고 영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때 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생각되고 상상력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더구나 계시록의 말씀을 항상 읽는다면 얼마나 엄숙한 삶이 뒷받침 되겠습니까. 그래서 읽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읽기를 싫어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래서 많은 서점들이 문을 닫습니다. 책도 글씨가 많고 두꺼운 책은 더 읽지 않습니다. 책이 얇고 글씨가 커서 부담 없는 책들만 읽습니다. 그래서 한번 읽고 아깝지 않게 버릴만한 책들이 잘 팔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생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거기다 오늘은 이 TV가 문제입니다. 책을 읽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모두 TV가 제공해 줍니다. TV는 읽는 수고 없이도 그냥 앉아서 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책은 멀어지고 TV만 가까워졌습니다. 그런데 TV가 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TV를 오래 보다 보면 생각이 없어진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TV는 눈으로 보기 때문에 머리로 생각할 부분까지 다 보여주어서 굳이 생각이 필요 없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TV를 볼 때 넋을 잃고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고 앉아있는 것입니다. 생각이 중단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오늘은 핸드폰을 들고 다니며 영상을 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생각하지 않는 국민들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읽는 일이 이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에서는 후손들에게 읽게 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성경을 읽는 삶이 중요합니다. 그것도 예언서를 읽고 자꾸만 가까이 다가오는 종말의 때를 준비하며 살아가도록 이 말씀을 읽으며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읽을 때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이고 경거망동 하다가도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 계시의 말씀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산을 가까이 하면 마음이 조용해지듯이 물을 가까이 하면 마음이 맑아지듯이 책을 가까이 하면 상상력이 풍부해지듯이 계시록의 말씀을 가까이 하면 시대를 알고 경건을 유지하며 종말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으라고 했습니다.   

“듣는 일” 

이 성경의 말씀을 읽는 일도 중요하지만 또 듣는 일도 중요합니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멀리서 들려오는 말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성경을 읽으면 주어지는 말씀을 듣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때 듣는 말씀은 이 세상에서 듣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던 것을 듣게 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시1:에 나오는 “묵상하는 사람”이라는 뜻은 “말씀을 씹는 사람” 이란 뜻입니다. 말씀을 씹으며 읽다 보면 그 말씀의 맛을 알게 되고 그 말씀이 주시는 영감을 얻게 됩니다. 그 말씀을 받아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그 말씀에서 길이 나오고 방법이 나오고 뜻이 나오고 내가 할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 주시는 음성을 듣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 말씀을 읽고 읽을 때 주시는 음성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이 성경의 말씀은 영감으로 쓰인 책이기 때문에 읽을 때 영감을 얻게 되고 그 영감은 또 우리에게 음성으로 다가 옵니다. 그 음성이 나로 하여금 갈 길을 가게하고 깨달을 것을 깨닫게 하고 할 일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온갖 세상의 소리만 듣게 됩니다. 세상의 소리는 모두 다투는 소리, 싸우는 소리, 속이는 소리, 아픔의 소리. 원망의 소리들입니다. 그 소리들을 듣다 보면 짜증이 나고 갈등이 유발됩니다. 그래서 마음의 평정이 깨져서 불화하고 짜증을 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일상의 말은 주위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염됩니다. 내가 소망의 말을 하고 희망의 말을 하면 그 희망의 말들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그대로 소망적으로 전염됩니다. 그렇지만 내가 불화하고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면 그 불화한 말들이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염됩니다. 그래서 함께 불화하게 되고 싸우고 다투게 됩니다. 참 무서운 전염병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중요합니다. 혼자 따발총 쏘듯 쏘고는 그냥 돌아가지 말고 하나님이 말씀하실 시간을 드리고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묵상의 기도입니다. 묵상의 기도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시간입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 영감이 주어지고 내가 할 일을 깨닫게 되고 내 부족함이 느껴지고 내 죄가 사함 받는 것을 알게 되고 잊은 것을 생각하게 되는 축복이 주어집니다. 그런 시간을 가질 때 마음이 넉넉해지고 푸근해지고 따뜻해지고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오늘 사람들에게 그런 시간이 없으니까 그 삶이 매일같이 안달하며 각박하게 살아가고 짜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오정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성은 “사”이고 이름은 “오정”인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이 사오정 선생님이 새 학교에 부임해서 첫 시간에 책을 읽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의 자세가 흐트러졌습니다. 그때 아이들을 잡는 방법으로 혼을 낼 수도 있고 화를 낼 수도 있고 막대기를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때에 사용하는 방법으로 그 선생님의 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오정 선생님의 방법은 너무나 어필한 방법입니다. 그때 읽은 책 내용에 묵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책을 읽어나가던 선생님이 갑자기 회상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얘들아 나는 묵 이야기만 나오면 생각나는 작품이 있단다.” 그러자 아이들이 순간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 무슨 거창한 작품이 나오나 하고 기대하면서 모두 자세를 바로잡았습니다. “나는 묵 이야기만 나오면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가 생각난단다.”

그 순간 교실 안에 폭소가 터졌습니다. 선생님은 자세가 흐트러진 것을 화내지 않고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함으로서 긴장을 풀어주고 다시 공부하게 했습니다. 오늘 사람들이 모두 넉넉한 마음이 없이 모두 각박해서 조그만 말에도 감정을 폭발시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두 자연과 동떨어져 살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듣느니 세상의 소리만 듣고 각박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오늘 사람들이 각종 무서운 병에 시달리고 질병에 쓰러지고 단명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 피츠버그대학 메디컬 센터에서 장수비결을 연구하던 중 신앙 생활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사람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최하 3,1년을 더 사는 연장효과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장수하는 이유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사람들이 가장 힘든 것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일입니다. 스트레스가 어디에서 오는가 하면 욕망이나 욕구는 큰데 그것이 충족이 안 되는데서 오는 부작용 입니다. 많이 주어졌는데도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데서 오는 절망감들이 심적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적절하게 절제하게 되면 참으로 마음이 편안하고 만족하고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는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데 그것이 조절이 안 되기 때문에 마음의 균형이 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묵상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이 말씀을 읽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내 마음과 삶과 정신과 영이 조절되고 평온하게 되고 넉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엎드려 기도할 때 그 기도 속에서 들려오는 음성과 메시지를 들을 때 비로소 나를 수정하고 내 뜻을 축소하고 하늘의 뜻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이 말씀이 예언의 말씀이고 장차 될 일을 예시해 주신 계시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경건함과 삶을 바로잡게 해 주는 말씀입니까.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듣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삶이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하고 건강한 신앙을 유지하고 건강한 관계의 삶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지키는 일"

여기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은 “그렇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읽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중에 얻어진 마음을 삶으로 연결시켜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지킨다는 말은 내 뜻을 접고 듣고 보고 믿은 것을 그대로 따른다는 말입니다. 거기에는 의지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내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순종하려면 먼저 나를 극복하고 나의 부정하는 결단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지키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신앙인에게 한 가지 고민이 있다면 읽고 듣고 알기는 하는데 실제로 지키기가 어렵다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인들의 고민입니다. 말씀을 읽어서 알고는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들어서 알고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지키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민입니다. 우리들이 알고들은 것을 그대로 실행한다면 이 세상에 큰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감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에서 세상은 경이로움을 느낄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에 주는 충격이고 위력이고 영향력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소금과 빛의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세상에 충격을 줄 수 없는 것은 그대로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세상에서 우리들을 향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나무라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늘 죄송한 마음이 들고 부끄러운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실력이고 우리의 한계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조금만 더 가난하고 비어있고 자기를 부정한다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을 것인데 문제는 우리들이 너무 야무지고 내가 너무 똑똑한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알고 지켜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지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너무 똑똑하고 야무지고 내 자신이 너무 큰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내안의 예수가 나보다 너무 작고 힘이 없어서 언제나 나한테 치이기 때문에 내가 흔쾌히 그 앞에 엎드리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고 부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정말 생명의 말씀이고 종말의 말씀이고 예언의 말씀으로 내가 읽고 받아들이고 그 말씀이 주시는 뜻을 안다면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듣지 않을 수 없고 지키지 않을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내 자신이 너무 똑똑한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미래에 주어질 이 예언의 말씀보다 오늘을 살아가는 오늘의 이 현실이 더 크게 보이고 그 현실의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들이 너무 똑똑하기 때문에 내 뜻을 선뜻 포기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다음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번 곰곰이 우리들 자신의 모습 을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학교에서 성탄절 때 연극을 했습니다. 마리아가 만삭이 되어 여행 중에 여관에 들러 빈방을 찾고 있습니다. 여관집 주인 역에는 모든 아이들이 반대하는데도 좀 모자란 아이에게 그 역을 맡겼습니다. 연습해서 마침내 막이 오르고 만삭의 마리아가 여관에 들러 빈방을 애처롭게 찾고 있습니다. 그때 이 좀 모자란 아이가 우리 집에는 빈방이 없다고 매몰차게 거절하는 연기를 잘 하다가 이 아이가 마침내 울음을 터트립니다. 그리고 절규합니다. “우리 집에는 빈방이 있으니까 우리 집으로 가세요” 그러자 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지고 연극은 엉망이 되었지만 이 아이의 순진한 절규에 관객 모두를 목이 메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그런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그 좀 모자란 아이의 순전한 마음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깨닫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누가 예수를 받아들이고 영접할 수 있는가 하면 이 아이같이 조금은 모자라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주님이 오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만이 나를 부정하고 축소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요구라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종하고 지킬 수 있는 용기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밧모 섬에 유배되고 유형생활을 했습니다. 그 유배 생활하는 중에 기도시간에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습니다. 그때 장차 될 일을 계시 받아 그대로 기록해 놓은 책이 이 계시록입니다. 그 계시록 서두에서 요한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때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탁해지고 인간주의가 만연되었으면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재림하시겠습니까. 그때 우리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읽을 때 주어지는 음성을 듣고 또 듣고 깨달은 것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것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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