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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풍을 만났을 때 (행 27: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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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사람을 골라서 찾아오지 않는다.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한 평생 살면서, 이런 저런 위기상황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 위기는 어떻게 오게 되는가? 어떤 위기는 마귀가 가져다준다. 어떤 위기는 자기 스스로 불러들이기도 한다. 어떤 위기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억울하게 닥쳐온다.

  어떤 위기는 하나님께서 주신다. 어떤 위기는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에 당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사도 바울의 생활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묵상하면, 위기 끝의 인생이 얼마나 복된 인생인지 발견하게 된다.

  위기를 만났을 때 잘 극복하면, 믿음은 더욱 성숙하게 되고, 많은 유익을 가져다주기에, 중국인은 위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위기는 위험(危險)과 기회(機會)다. 위기를 당하면 당황하거나 분노하지만, 위기로 인해 사람은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기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2차 대전 초, 영국 처칠 수상이 미국의 원조를 얻기 위해,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숙소에서 목욕을 한 뒤, 수건만 두르고 있는 처칠 앞에 돌연 루즈벨트가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났다. 순간, 몸을 일으키던 처칠의 허리에서, 갑자기 수건이 스르르 흘러내렸다.

  정장의 루즈벨트와 알몸의 처칠, 참으로 난감한 장면이다. 그때 처칠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보시다시피 영국의 수상은, 미국 대통령에게 숨길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흉허물없이 협상이 잘 진행될 수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가 있기 바란다.

  인생 중에 하나님을 만나는 일보다, 더 귀하고 복된 일은 없다. 우리는 어느 때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나? 극적인 위기가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위기는 위험해 보이고, 때로는 절망하는 고통이 있지만, 위기 끝에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본문은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다가, 당시 집권층인 율법주의자들에게 잡혀, 로마로 압송되면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위기를 겪었던 말씀이다. 우리 인생은 광야의 길을 가는 나그네와 같고, 바다를 항해하는 자와 같다. 때로는 순풍도 만나지만, 때때로 광풍을 만나서,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바울은 이 위기가운데 요동치 않고, 침착하게 대처하여, 전도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다. 따라서 우리에게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우시기 바란다.

1. 인생을 행해할 때, 가장 중요한 일은, 목적지를 정하는 일이다.

목적지 없이 향해하게 되면, 방황할 수밖에 없다. 우리 인생도 목적지 없이 향해하면, 방황할 수밖에 없다. 인생이 태어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함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죄만 지은 인생이 되었다. 그래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비참한 인생이 되었다. 사람들은 죄를 지적하면 싫어한다. 헤먼드 침례교회는 강대상을 방탄 유리로 감쌌다. 잭 하일스 목사님께서 죄를 심하게 지적하기에, 총으로 쏘는 일이 2번 있었다.

  우리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정말 싫어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을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외면하셨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죄에 대해 철저하게 이를 갈고 계신다.

  그러면 우리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기 때문이다.

  물론 예수님을 믿으면, 좋은 점, 훌륭한 점이 참 많다. 주님을 믿으면 잘살게 되어, 가난한 사람을 많이 도와줄 수 있다. 우리 교회도 다른 교회들도,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세계 각처의 사람을 돕고 있다. 그렇지만 구제하는 일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아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생명을 살리는데 있다. 지옥의 불 못에 떨어져 죽을 생명을 살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는데 있다. 따라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죄인을 건져서, 천국의 백성이 되게 하는 일이, 교회가 가장 신경을 써야 할 일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전하셨고, 사도들도 생명을 걸고 전했던 기독교의 본질은, 다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알고자 할 때는, 먼저 십자가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 십자가가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아야 하고, 왜 십자가를 전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이 십자가를 고난의 상징으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 고난이 많다는 이야기를 할 때, “내게는 십자가가 있다, 이게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고생이 많다, 어려움이 많다’라고 말하면 되는데, 구태여 ‘십자가’라는 말을 넣어 표현한다.

  십자가는 귀신을 쫓아내는 부적이 아니다. 예쁜 목걸이, 귀걸이로 사용하기 위한 장신구도 아니다. 탁월한 윤리의 표준도, 병자를 고치는 치유의 능력도 아니다. 그러면 십자가는 무엇인가? 십자가는 하나님의 유일한 구원 방법이다.

  우리는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그 십자가의 대속을 믿어야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이처럼 우리 인생의 최종목적지는, 영원한 천국이 되어야 한다. 천국 가지 못하는 사람은,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가장 후회하는 사람이 된다(눅13:28).

  2003년에, 한 우울증 환자의 방화로, 대구 지하철 참사가 있었다. 그때 자기 휴대폰으로 자신들의 마지막 절규를, 가까운 사람들에게 들려줬다. 어느 딸은 “아빠 불이 나서 뜨거운데, 문이 안 열려요, 구해주세요” 하면서 아빠를 향해 절규했다. 이처럼 죽음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온다.

  그 날 아침 화염과 연기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던 사람들 가운데, 그 날이 자신의 생애 마지막 날이 되리라고, 알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안 죽음에 전해 대비하지 않을뿐더러, 생각조차 하지 않다가, 어느 순간 찾아온 죽음에 크게 당황하곤 한다.

  그래서 성경은, 늘 준비된 인생을 살라고 말씀한다. 죽음 앞에 선 인간에게, 명예도, 돈도, 권력도, 가장 중요하지 않다. 죽음 앞에 선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예수님의 이 은혜를 아는 사람은, 감사하는 생활이 자리잡게 된다.

2. 위기는 어떻게 찾아오는가?

(1) 인간의 욕심 때문에 찾아온다(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 하기가 위태한지라…”

  금식하는 절기는, 유대인의 속죄일을 말한다. 향해 경험으로 보아, 9월 이후의 향해는 위험을 만날 수 있기에, 좀 의심스러웠고, 특히 11월 이후에는 불가능하였다. 속죄일은 9-10월경이다. 그 해에는 그 날이, 10월 초반에 해당하였다. 그런데 성경은 ‘이미’ 지났다고 했다. 따라서 굉장히 위험하였다.

  그렇지만 선주는 로마로 양곡을 싣고 가서, 파는 사람이다. 양곡을 빨리 팔아 넘겨야, 많은 돈을 만질 수 있기에, 속히 가고자 하였다. 이처럼 욕심이 앞설 때에는,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된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져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때 한쪽 벽이 무너졌어도, 영업을 계속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하루만 장사를 안 해도 많은 손실이 있기에, 공사를 하면서 영업을 했다. 인간의 욕심을 포기하지 않으면, 위기가 반드시 다가온다.

  상담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 길은 하나님의 길이 아닌데, 자꾸만 가려고 한다. 이런 사람에게 어떻게 상담해야 하는가? 길이 아니라고 하면 사랑이 없다고 하며, 오히려 왜 축복 기도를 해주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길이 아닌데 길이라고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변조시키는 행위다. 만일 이러한 마음이 있다면 버려야 한다.

(2) 인간의 철학과 방법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할 때 찾아온다(10-11).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바울의 확신에 찬 어조를 볼 때, 겨울철에 향해하면 위험하다고 한 말은, 상식적인 판단에 의해서 말했다기보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말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백부장과 그 배의 관계자들은, 자신의 판단과 기술을 믿고, 바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늘날의 가장 큰 위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다는데 큰 문제가 있다. 마치 소돔 성이 멸망할 때, 롯의 사위들이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김같이,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려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려고 하기에,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3) 백부장은 대다수 승객이 원했기 때문에, 항해를 감행했다.

승객들은 빨리 가고싶었다. 물론 다수의 의견은 존중해야 하지만, 사람은 완전하지 못하기에, 거기는 많은 위험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결정이다.

  빌라도 총독은, 유대인들이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지르니까, 십자가형을 선고하고 만다. 백부장이 여론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 바울의 권면을 받아드렸다면 그들은 풍랑을 만나지 않을 수 있었다.

(4)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했기 때문이다(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에 가까이하고 행선하더니”

배가 출항하자 남풍이 순하게 불었다. 순풍은 그들의 마음을 해이하게 만들었다.

  후에 대풍이 닥쳤을 때,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게 만들었다. 우리도 무슨 일을 하면서, 어려움이 있으면 열심히 기도하다가도, 순조로워지면 기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낭패를 본다. 순조롭다고 마음놓지 말고, 하나님께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잘 나간다고 생각될 때, 더 조심해야 한다.

3. 위기를 당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1) 자신의 힘과 뜻대로 되지 않았다(15-17).

15절에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쫓겨갔다” 처음에는 바람을 맞추어, 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기술과 장비와 힘을 다 동원하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다가 광풍을 이길 수 없어서, 광풍이 가는 대로 그냥 쫓겨갔다. 광풍이 몰아가는 대로 그냥 쫓겨가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힘과 뜻대로 되지 않았다.

(2) 중요한 것들을 버리게 된다(18-19).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18),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렸다.”(19)

  배에 실었던 짐은 그들의 사업이요, 재산이었다. 항해에 필수적인 배의 기구는, 그들의 생명과도 같았다. 그렇지만 위기를 당한 그들은, 모든 것을 자기들 손으로 바다에 내어 버렸다.

(3) 절망하였다(20).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다.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지만, 위기의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4)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했다’고 했다. 풍랑과 싸우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자고 힘을 많이 쓴데다가, 오래 먹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대로 두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우리도 위기를 만나게 되면, 이와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 위기를 자신의 힘으로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소중하게 붙들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버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절망에 빠지고 만다. 어떤 사람은 고민에 잠겨,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기도 한다.

  그러나 믿음의 사도 바울은 일반 사람들과 달랐다. 모든 사람들이 요동하는 가운데에서도, 바울은 요동치 않았다. 침착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든 다 포기하고, 절망에 빠졌으나, 바울은 포기하지 않고 살 소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 비밀은 인생의 풍랑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4. 위기 극복의 원리

(1)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이다(23).

유라굴로 광풍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자가 자기 곁에 서 계심을 확신하였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확실하게 약속하셨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다.

(2) 주님의 소명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다(24).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에게 전하여 준 말씀은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 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하였다.

  바울은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행19:21)는 계획을 가지고 기도해 온 사람이었다. 그는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23:11)고 말씀하신 주님의 약속을 믿어온 사람이었다.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함은, 그의 소망인 동시에, 주님께서 보증해 주신 소명이었다. 그런데 지금 로마로 가는 배에 타고 가다가 광풍을 만났다. 그러나 유라굴로 광풍이, 그의 길을 막을 수가 없었다. 로마를 보기 전에는 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주님의 소명을 확신할 때, 광풍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소명을 이루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데려가지 아니하심을 확신하고, 그 소명을 이루고자 하는 결심을 굳게 할 때, 눈앞의 풍랑을 침착하게 헤쳐나갈 수 있다.

(3)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이다(25).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유라굴로 광풍이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환경을 발아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믿을 때, 바울은 요동치 않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아무리 말씀하셔도 믿지 않으면 평안함이 있을 수 없다.

  바울의 믿음은, 성난 파도를 바라보지 않고, 파도 넘어, 로마를 바라보게 하였다. 가이사 황제에게 복음을 전할 그 날을 바라봤다. 여전히 검은 구름이 빛을 가리어, 광풍은 불어오지만, 그 검은 구름 속에는, 여전히 빛나는 태양이 있었다.

  믿음은 위기 상황의 온갖 장애를 뚫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그 날을 바라보게 한다. 믿음은 지금 눈에 보이지 않으나, 소망하는 그것을 확실히 이루게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믿음으로, 위기를 그처럼 초연히 극복할 수 있다.

  우리 가운데 유라굴로 광풍과 같은 위기에 처한 분이 계시나요? 혹시 우리 주변에, 이러한 위기를 만난 분이 계시나요? 우리는 위기상황에 압도당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도 바울처럼, 주님의 임재와 소명과 약속을 확실히 믿고, 초연히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광풍으로 해와 별이 보이지 않고, 바람과 물결이 거세게 일어도, 믿음의 닻을 굳게 내리고, 날이 세기를 기다리셔야 한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유라굴로 광풍도 아니고, 사공도 아니고, 오직 우리 주님이시다. 이 일을 겪은 후,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이 말씀에 의지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위기에 처한 이웃들을 격려해 주시기를 원한다.

  결론이다. 그러면 광풍이 주는 축복은 무엇인가?

(1) 무엇이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풍랑이 깊어질 때, 사람들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풍랑이 깊어지자, 사공들은 집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18), 배의 기구를 내버렸다(19).

  풍랑이 깊어질 때, 생명이 가장 소중함을 알게 된다. 바울은 무엇보다, 그 배에 타고 있던 276명의 생명을 모두 구원하는 일이 가장 소중함을 알았다. 사공이 자기들만 도망가려고 구명선을 내려놓을 때(30), 배에 있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서, 구명선을 끊어버렸다(31-32).

  풍랑이 깊어질 때, 우리들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생명을 발견하게 된다. 풍랑이 오기 전까지는 인생의 우선순위를 잊고 산다. 가장 중요한 관계는 하나님, 또 혈육과 믿음의 공동체이다. 이 땅에서 아무리 풍족하게 산다고 해도, 영생을 얻지 못했다면, 가장 귀중한 것을 잃은 것이다.

(2) 하나님의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영원한 천국을 행해하는 영적 순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처음에는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풍랑을 통하여 사도 바울의 말에 신뢰하고 따르는 모습을 보여준다(21-22).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볼 때, 세상 경험도 없어 보이고, 권력도 없고, 돈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신비로운 영감이 있다.

(3)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23).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찾아오실 때는, 가장 힘든 어두운 밤, 절망의 밤에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셨다.

  잠 못 이루는 밤, 음모의 밤에 우리를 찾아오시어, 우리를 위로하신다. 또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신다. 바울의 말에 순종하자, 마침내 육지에 상륙하여, 276명이 구원을 얻게 되었다. 그러므로 광풍을 두려워 말라. 근심하지 말라.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신뢰하여, 영광스런 성도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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