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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치료하시는 하나님 (출 15: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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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7장을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일전이 나옵니다. 사울 왕과 이스라엘의 많은 장군들은 골리앗의 기세에 눌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라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다윗과 사울 왕, 이스라엘의 장군들의 태도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생각의 차이,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바라보았고, 사울과 이스라엘의 장군들은 골리앗의 위세와 그의 큰 덩치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의 반응을 보입니다. 마귀는 문제를 과장하게 하며 우리를 낙심케 만듭니다. 「10년 후, 한국」등의 베스트셀러를 저술한 공병호 씨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득권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치고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주변에서 종종 '기득권 세력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다'느니 '기득권 세력을 타파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봅시다. '기득권'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의 마인드에는 보통 다른 사람들이 이미 모든 기회를 다 차지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속에 체념이 있고 기회가 없다는 낙심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생각해 봅시다. 실제로 기득권이라는 것이 존재합니까? 사실 '기득권'이라기 보다는 '좀 더 유리한 조건' 정도가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기득권'을 들먹이는 사람은 책임이 상대에게 있다는 시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책임이 상대에게 있다고 보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원망과 푸념을 그칠 줄 모르며,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가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책임이 내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작은 유혹에도 타협하지 않고, 원망 없는 모습으로 다른 사람까지 세우겠다고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정적인 기득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느끼고 스스로 만들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병든 세상입니다. 질병과 상처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나라와 한국 교회와 가정과 사람들이 앓고 있습니다. 육체와 마음과 영적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자연까지도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누가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하셨습니다. 직역을 하면 '나 여호와는 너희의 치료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자이신 동시에 우리의 모든 질병과 아픔을 치료해 주시는 친근한 분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치료'의 히브리어 '라파'는 의사나 의원을 가리킵니다. 곧 우리의 의원 되시는 여호와는 모든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실 뿐만 아니라 죽음과 죄와 인생의 모든 크고 작은 문제까지도 깨끗이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예배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 드립니다.

1. 마라 인생

  본문 23-24절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섭리 속에서 계속 3일 동안이나 건조한 사막 지역을 경유하여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물을 찾았으나 불행히도 그 물은 써서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마라'라고 하였습니다. '쓰다', '괴롭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사건을 체험한 큰 기쁨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세를 믿었던 3일 전의 태도와는 달리 환경이 변하고 갈증이 나고 육체가 피로해지자 곧 불평과 불만을 터뜨렸던 것입니다. 인간의 변덕스럽고 간교한 속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곧 우리의 모습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이들보다 더 원망하고 불평을 하였을 것입니다.

  광원들을 가득 태운 여객선이 미시시피강에서 기관 고장을 일으켰습니다. 배가 강 복판에서 휘청거리자 배 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승객들은 구명정에 올라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건강한 남성들은 옷을 모두 벗어 던진 채 강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뭍을 향해 헤엄을 쳤습니다. 승객들이 대부분 탈출한 후 한 남성이 갑판 위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옷을 입고 있었고 몸에는 각종 보석들이 휘감겨 있었습니다. 그는 강물에 뛰어들었으나 물 위로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한참 후 구조대원들이 물 속에 잠긴 그의 시체를 건져 올렸는데 그 사람의 주머니는 승객들로부터 훔친 금덩이와 귀중품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귀중품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익사한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한 번 재물에 눈이 먼 사람은 체면과 사랑과 우정도 모두 내팽개칩니다. 불을 향해 돌질하는 불나방처럼 재물을 향해 끊임없이 돌진하다가 쓸쓸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인간을 파멸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은 과욕입니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 고통을 이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삶의 과정 속에서 수많은 '마라'를 경험합니다. 이웃의 배반, 가족의 사별, 인생의 실패로 실망과 좌절을 끊임없이 겪습니다. 룻기에서 나오미가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고 울부짖듯 우리의 인생 자체가 매일 매일 '마라'인 것입니다. 너무 쓰고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누구에게나 '마라'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마라'를 만납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하고 언제나 믿음과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마라'를 만났다고 포기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더 기도하고 담대하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부르짖고 매달려야 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반드시 건져 주시고 응답하십니다. '마라'는 우리를 연단하시고 훈련시키시고 기도를 시키시는 연단의 교육 과정입니다. '광야 학교'인 것입니다. 오늘의 '마라'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청종 인생

  본문 25-26절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쌔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지도자로서 모세는 백성들의 원망을 일축하여 꾸짖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백성들과 같이 동조하여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없었습니다. 다만 중재자로서 문제 해결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지시하시는 '한 나무'를 물에 던졌더니 쓴 물이 단 물로 변하였습니다. '한 나무'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기적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쓴 물과 같은 세상과 인생살이를 단물과 같은 행복과 기쁨으로 변화시키십니다. '한 나무'는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죄로 인해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인간의 슬픔을 기쁨으로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고난의 쓴잔을 마심으로 우리 인생에 단물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의 험난한 인생을 기쁨과 감사의 인생으로 바꾸십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말씀에 절대적으로 청종해야 합니다. '청종'이란 시키는 대로 온전하게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순종과 복종을 합한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나 뜻대로가 아닌 하나님 말씀하시는 대로 전폭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청종할 때 치료의 역사와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쓴 인생이 달콤한 인생으로 상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청종할 때 인생의 방향과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미국의 레슬리 상원의원이 주지사 선거에 나가기 위해 흑인 지역사회 모임에 나가 연설을 했습니다. 긴장된 마음으로 일장 연설을 마쳤을 때 분위기는 그야말로 썰렁했습니다. 결국 레슬리 의원은 흑인 공동체의 마음을 사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통감했습니다. 우연히 다른 흑인 사회 모임에 참석하게 된 레슬리 의원은 얼마 전 실패로 낙담하여 그 자리에서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습니다. 2시간 동안 한 마디도 못한 채 듣기만 하고 모임을 마쳤을 때, 레슬리에게 악수 세례가 이어졌습니다. 어떤 흑인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이제까지 내가 나누었던 대화 중에 최고의 대화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레슬리는 의아해 하면서 옆에 있던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왜 이렇게 반응이 좋지?"
  "성심껏 들어주었기 때문이야. 이곳 사람들에게는 흔한 일이 아니지. 자네는 상원의원이 아닌가?"
  최상의 연설보다 묵묵히 들어주기만 한 것이 더 나은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관심의 힘입니다. 은퇴 이후 최고의 대통령이라고 평가받는 지미 카터의 기사가 롤링스톤지에 실렸습니다. 지미 카터는 세계의 많은 독재자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을 열어놓고 대화하여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 그에게 롤링스톤지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가면, 독재자들이 왜 그렇게 협상에 잘 응하는 겁니까?"
  지미 카터가 말했습니다.
  "독재자들 상당수가 그들의 문제를 들어주고, 그들의 두려움과 분노를 알아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독재자들은 사실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자신들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는 지미 카터에게 마음을 연 것입니다. 관심은 독재자의 마음까지 열어버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말이나 세상의 소리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청종하여 하나님의 치료와 기적을 날마다 체험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엘림 인생

  본문 27절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 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당시 '엘림'은 비가 자주 왔고 개울과 샘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특히 이곳은 물샘 12개와 종려 70주가 있었는데 이는 완전수인 12와 70(7×10)이 상징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완전한 휴식처와 안식처를 의미했습니다. 또한 물샘 12개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종려 70주는 이스라엘 70장로를 상징합니다. 이는 온 나라와 성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와 민족이라도 어떠한 직분이라도 하나님 안에서는 참된 안식과 휴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마라 인생'이지만 하나님께 청종하면 '엘림 인생'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모두에게 복을 주시어 샘물이 늘 흐르고 시원한 종려 그늘이 있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아야 행복할 수 있고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사막이고 쓴 물입니다.

  미국 뉴욕의 성 요한교회는 매년 한 번씩 성 프랜시스를 기념하는 예배를 갖습니다. 이 날은 성 프랜시스의 풍성한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 신자들이 집에서 기르고 있는 모든 동물도 함께 데려오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시시의 성자'로 불리는 프랜시스는 설교시간에 지저귀는 참새들을 조용하게 만들고 사나운 짐승을 온순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프랜시스는 원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것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고 그가 입은 옷을 걸인들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는 가끔 누더기를 걸친 채 귀가했습니다. 프랜시스는 종종 한센씨병에 걸린 환자들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으며 걸인들의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프랜시스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그대여, 진정 행복과 평화를 원하는가? 그러면 먼저 마음을 비워라. 그리고 그 빈 곳에 이웃에 대한 사랑을 채워라. 사랑이 있는 곳에서는 분노와 탐욕은 눈처럼 녹아 내린다."

  인간이 자신의 힘과 혈기로 살려고 하면 상처와 쓴 물뿐입니다. 그러나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마련하시고 예비하십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축복의 샘과 종려가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샘물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퍼주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샘은 펑펑 솟아날 것입니다. 종려의 그늘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더 많은 종려나무를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치료하시는 건강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가족과 생업과 신앙이 엘림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기쁨의 날'을 위해 노력하고 '특새'에 참여합니다. 전도하고 기도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립시다. 우리의 인생이 마라 인생에서 청종인생과 엘림 인생으로 변화되도록 여호와께서 치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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